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16)
레필리아 레소드-216화(216/398)
레필리아 레소드 216화
음모(1)
북방 대륙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던 페리안은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고, 그 규모는 아리아 대륙 오대 강국 중 하나로 우뚝 서게 했다.
순수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던 무법 지대는 유트 페브리안이라는 젊은 패왕 덕에 질서를 찾아갔다.
대륙의 왕국들은 강력해진 그들을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북으로 페리안이 성장하고 있다면, 동으로는 철의 대공 이실렌 폰 페를네아브가 있었다.
리에르 아르빈트에게 죽은 것으로 위장되어 있던 이실렌은 교단과 내통하고 있던 배신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말로만 순백이었던 로빈타의 기사단은 해체되었다.
배신자들을 처분하고 철의 대공 이실렌이 비밀리에 키운 결사대, 템플 나이트가 로빈타 왕국의 새로운 주력 기사단이 되어 맹렬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그 활약은 결국 수년간 앙숙이었던 이웃 국가 크샨타를 굴복시키기에 이르렀다.
소국에 불과하던 로빈타는 크샨타를 집어삼키고, 주변 영지를 흡수하면서 왕국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영웅들의 등장에 발맞추어 동남쪽에 자리 잡은 아렌 왕국도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렌 왕국의 대학자인 자하르는 대륙의 폭룡, 네버 에이지의 검은 숲을 와해시킬 방법을 찾아냈다.
아렌에 자생하는 아카시네 나무는 검은 숲의 성장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 나무의 독특한 향과 넓게 뿌리 내리는 방식은 검은 숲을 잡아먹었다.
대규모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장은 힘들지만, 향후 검은 숲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검은 숲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본능적인 위협을 느꼈는지, 몬스터를 진출시켰다. 그리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파에트 아르빈트가 기사단을 이끌어 반격했다.
검은 숲의 몬스터는 싹 토벌되었고, 살아남은 몬스터는 도망쳤다.
아렌 왕국이 몬스터의 위협에서 벗어나자 긴장하게 되는 것은 주변 국가들이었다.
아렌은 명실상부 대륙 최강의 기사를 이끄는 왕국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점령전을 하지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검은 숲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검은 숲에 대한 방비가 제대로 세워지니, 이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약진하고 있는 페리안, 로빈타, 아렌 왕국은 리에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절친한 친구가 왕으로 있는 페리안, 아버지와 형이 주축인 아렌,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동맹자, 철의 대공 이실렌.
대륙에서 가장 세를 떨치고 있던 교단은 리에르와 연결된 삼강에게 패전하여 위세가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교단의 힘은 아직 채 드러나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유일신 테헤라자드.
그저 신화 속에서나 나오던 유일신은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아낌없이 괴물을 만들었다.
이제 지루해져 가는 아리아 대륙을 피로 씻어내고 새로운 오락거리를 만들려는 듯이.
지난 대전의 패배로 직위를 박탈당한 교단의 영웅, 티미 아크우드는 오트리아 제국으로 건너가 있었다.
아무리 직위를 박탈당했다곤 하지만 아크우드 가문은 교단 내에서 입지가 넓었고, 아크우드 가문의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오트리아 제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도 티미, 그대의 모습을 보아 기쁘다. 그대가 알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기대되어 밤잠을 설쳤다네.”
일찍이 아리아 대륙을 통일하고, 다른 대륙까지 그 지배력을 떨쳤던 거대한 제국.
오트리아의 현 황제인 필 루드비히 오트리아는 의자에 앉아 티미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은 황제는 황금색 담요를 덮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예를 취하는 티미를 보며 웃어 보였다.
“넓디넓은 이 대륙을 소유한 주인께서 하찮은 이야기를 들어주신다니 광영될 뿐입니다.”
비록 티미가 입에 발린 소리로 대륙의 소유자라고 칭했으나, 그것은 차가운 비웃음에 불과했다.
이미 황제의 권력은 대륙에 미치지 못했다.
각 땅덩어리는 오대 강국으로 나뉘어 패권을 다퉜다.
즉, 황제라는 지위는 그저 이름만 남아 있었다.
사실상 오대 강국은 이미 독립된 세력으로 선포하는 것이 가능했다.
전 황제 실 루드비히 오트리아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의 죽음 이후 뒤를 이은 필 루드비히 오트리아는 심약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그도 전 황제의 뒤를 이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업적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10대 후반에 야만 부족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그 이후로 패기도, 용맹도 사라졌다.
이름뿐인 종이호랑이. 그것이 전국 시대를 막아내지 못한 현 황제의 호칭이었다.
간신배들과 아첨꾼만 가득한 황실에 둘러싸인 그는 힘이 없었다.
지금도 대륙 오대 강국 중 하나인 루나레이크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루나레이크는 스스로를 신하라고 말하지만, 사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황제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티미 아크우드뿐이었다.
티미는 잇따른 원정에서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아크우드 가문의 장남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경력을 많이 달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는 만들어진 경력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를 중심으로 젊은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그는 현시점에서 많은 귀족들이 주목하는 인재였다.
날조된 경력은 착실하게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돈을 받고 섭외된 음유시인들은 가짜 업적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황제에게까지 들어갔다. 황제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 티미 아크우드를 믿었다.
그에게 친분의 마음을 담아 황제의 친구라는 호칭까지 선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티미는 충성심 따위를 가지는 남자가 아니었다.
‘쳇, 또 이 앉은뱅이의 시중 따위나 들어야 한다니.’
겉으론 미소를 지으면서 황제에게 영광을 표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힘없는 황제에 대한 비웃음과 조롱으로 가득했다.
‘내가 황제였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티미의 속을 전혀 알지 못하는 황제는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시녀들을 불렀다.
산해진미가 그의 앞에 쌓였다.
티미는 덥수룩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피식, 웃어 보였다.
시녀가 바퀴 의자를 끌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시녀 두 명이 거들어 주지 않으면 제대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황제는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황제는 그저 직위만 있을 뿐, 실상 아무 가치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내가 만약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티미, 그대와 같은 영웅들과 전장을 누비고 다녔을 터인데.”
못내 아쉬움이 가득한 눈길을 가진 황제는 꺼져가는 제국의 등불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필요한 말만 하면 되는 종이 인형은 세상으로 가는 귀와 눈이 닫혀 있었다. 그는 항상 듣기 좋은 말들과 이미 결정 난 결과에 대한 수긍 이외에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용맹하고도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폐하를 치료할 약을 구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쾌차하시면 이 대륙에 그 영위를 드높이실 수 있을 겁니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티미는 입에 발린 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확신 없는 말이라 해도 지극히 바라고, 소망하는 말이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게 된다.
황제라 해도 말이다.
“그래, 최근 아렌 왕국이 폭룡의 부하들을 몰아내고 있다던데 정말 대단하지 않소?”
“네,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아르빈트가의 이름이 헛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시일이 좀 걸렸던 부분이 아쉬운 점이지만요.”
티미는 황제의 말을 수긍하면서 교묘하게 그들을 낮추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파에트 아르빈트라고 하였던가. 그 신검의 아들이라는 기사가.”
“네, 그러합니다.”
아르빈트의 이야기가 나오자 티미는 조심스럽게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가문의 이름이다.
위세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아크우드와는 다르게 아르빈트는 점점 대륙에 이름을 알렸고, 아버지에 이어 장남인 파에트도 부전자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티미의 부친은 로이스타 아르빈트와 젊었을 적부터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 원한은 아들 대에도 이어졌다. 티미는 유트와 리에르를 극도로 혐오하였다.
페이서스에서 경험했던 트라우마는 아직도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대와 비슷한 나이대에 대륙에서 손가락 안에 들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하더구려. 그 어떤 것도 베지 못하는 게 없고, 검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번개 같다고 들었소.”
“그는 융통성이 있고 기교가 뛰어나 열 수만 겨뤄도 상대의 장단점을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처음 대면하는 상대는 그 안에 그와 승부를 짓지 못한다면 필패할 겁니다. 또한, 옮고 그름이 분명해, 군율을 어지럽히는 걸 용서치 않고, 약자를 핍박하는 자는 절대 그냥 두지 않는 성격을 가졌지요. 저 또한 페이서스에서 그와 동문수학했을 때, 그의 됨됨이를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티미는 파에트와 같이 카이샤에 다녔을 때를 떠올렸다.
모든 면에서 그에게 뒤처졌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손쉽게 해내는 그를 보면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그런 한편 그에게는 동경심마저 느껴졌다.
파에트는 티미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선배로서 검술을 지도해 주기도 했고, 단련도 도왔다. 종종 식사나 술도 함께했었다.
파에트는 정말 욕심이 없는 사내였다. 그를 경계하던 티미가 우스워질 정도로.
“아, 한 번이라도 보고 싶구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영웅들을 말이오.”
황제는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인재들을 생각하며 커다란 창문 쪽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틈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며 황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겉으론 세상을 전부 소유한 남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황제는 티미의 말을 듣고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다. 티미는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황제 폐하께서 찾으면 신하로서 와야 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오대 강국의 사람이든, 그 누구이든 간에 말이죠.”
“하지만……. 겨우 그런 사적인 일로 내가 찾는다 해서…….”
그냥 보고 싶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오라 가라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온다는 것도 예상이 되지 않는다.
“아니요,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데 그 어떤 것이 어려울까요.”
티미의 머릿속에 생각지도 않은 음모가 떠올랐다.
아무리 종이 황제라지만 아직까지는 황제는 황제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영웅이라 해도 황제의 부름을 받지 않는 것은 반역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신흥 왕국인 페리안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된 작위조차 인정받지 못한 유트다.
말하자면 그는 황제의 인가 없이 불법적으로 땅을 점거하고 있는 무법자에 불과하다.
즉,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유트는 황제에게 군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부름에 오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오지 않는다면 반역이다.
‘황제를 알현하면서 대군을 이끌고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지.’
티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음흉한 눈동자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검이 안 된다면 머리를 쓴다.
티미는 이번 기회에 은발의 애송이를 제거할 생각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