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46)
레필리아 레소드-247화(246/398)
레필리아 레소드 247화
마왕의 부활(6)
리에르는 칠흑의 검을 어깨와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렸다.
숫자는 겨우 오십. 하지만 파티장 안에 있는 인원들은 비무장인 상태.
무장한 기사들이 무장하지 않은 귀족을 없애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교단이냐.”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하였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녀석들은 리에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의 검에서 은은한 붉은빛이 보였다.
레필리아 레소드를 익혔다는 증거였다.
녀석들은 신호도 없이 마나를 실은 검을 뻗어왔다. 멀리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폭을 줄이며 달려드는 검은 전사들을 향해 리에르는 아르카를 휘둘렀다.
채-앵!
긴 쇠의 굉음이 울려 퍼진다. 일격에 목을 베려 했지만, 상대는 리에르의 검을 막아냈다.
리에르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오는 검. 시뻘건 마나가 불타듯이 보이는 이 기술은 리에르에게도 낯익은 기술이었다.
‘임페리얼 소드(Imperial Sword).’
5식 레소드, 임페리얼 소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페리안을 습격했던 양산형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리에르는 아르카에게로 마나를 끌어모았다. 기본적으로 에고 소드들은 사용자의 마나를 전달받음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사용자가 마력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면 그 힘을 증폭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리에르는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오는 임페리얼의 기운을 옆으로 쳐내 보였다.
치이익!
마나로 이루어진 불똥이 마치 부싯돌에서 일어난 것처럼 리에르의 앞으로 튀어든다.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는 다섯밖에 안 되지만 레필리아 레소드를 익힌 전사들이다 보니 쉽게 해치울 수 없었다. 녀석들은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는지, 다섯 놈이 리에르를 둘러싸고서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부작용이 없는 건가.’
페리안에서 보았던 양산형 레필리아 레소드 전사들은 인공적인 마력 개방을 위해서 교단에서만 만들어지는 특수 마약을 흡입하였다. 분명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도 그와 동일한 약물을 복용했을 텐데 합동 공격까지 펼치고 있었다.
리에르가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바로 반격을 하려 하면 옆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피하면서 동시에 검을 뻗어내면 또 다른 녀석이 검을 뻗어온다.
벌써 3분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 리에르는 단 한 명의 전사도 제거하지 못했다. 리에르은 군데군데 검상을 입었고, 자잘한 상처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계속 싸우면 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리에르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아 들었다.
-Master의 Rebound 가능성으로 인해 Count를 시작하겠습니다.
리에르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그의 등 뒤로 칠흑의 깃털들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너무 순식간에 각성해 버린 리에르에게 놀란 것인지, 아니면 겁을 먹은 것인지 전사들은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리에르는 진각을 밟으며 눈앞에 서 있는 전사에게 검을 들어 올렸다. 상대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과 머리가 분리되어 후드득, 피 분수를 일으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네 명의 전사들이 동시에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각각 레필리아 레소드의 초식을 운용하기에 막아내기도,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나의 영역을 개방하고, 포스의 힘을 끌어낸 리에르의 눈에는 상대의 동작이 느리게 보였다.
-590 Sec.
‘겨우 10분인가.’
리에르는 아르카의 카운트를 듣고서 씁쓸한 웃음을 머금어 보였다.
“하지만 충분해.”
얼굴로 날아드는 임페리얼 소드를 가볍게 피하며 리에르는 아르카를 위에서 아래로 베어 내렸다.
츄악!
허공으로 핏빛 파도가 물결을 그린다. 옆구리를 향해 찌르고 들어오는 전사의 검을 피하고 뒤편에 있는 전사를 향해 칠흑의 검상이 그려진다.
-580 Sec.
리에르는 널브러진 다섯 시체를 짓밟고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곧장 연회장으로 향하던 리에르는 바닥에서 시체와 함께 널브러진 장검 하나를 집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측면의 벽으로 검을 집어 던진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튕길 것 같던 검은 벽면에 박힌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던 벽에서 검을 중심으로 천천히 혈화가 피워 올랐다.
쉬리릭!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리에르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방에서 칼날이 날아든다.
강철로 주조된 갑옷이라 할지라도 두부 자르듯이 자를 수 있을 무서운 검격이었다. 오히려 상대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리에르에겐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포스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만큼, 한꺼번에 달려드는 편이 그에겐 오히려 도와주는 일이었다.
리에르가 차가운 눈빛으로 갖가지 마나를 듬뿍 담아낸 무구들을 바라보았다. 리에르는 진각을 밟으며 아르카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을 허공에 펼쳐 보였다.
리에르의 등 뒤로 펄럭이는 칠흑의 날개, 그 흩날리는 빛의 깃털들은 먹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칠흑의 검으로 변이되기 시작했다.
“홀 블레이드(Whole Blade).”
칠흑의 무구들이 리에르를 에워싸는 듯하더니, 빠른 속도로 둥글게 퍼져 나간다. 사방으로 혈화가 퍼져 나갔다.
교단 전사들이 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것이 보인다. 제아무리 레필리아 레소드를 익혔다 해도 마약을 먹으며 사육된 짐승들은 한계가 있었다.
후두둑!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분홍빛 내장들과 살점들이 비산했다. 언뜻 보아도 수십 구로 보이는 살점들을 밟으며 리에르는 차가운 루비빛 눈을 떴다.
-490 Sec.
연회장에 도달하기까지 막아서는 것들은 많았다. 하지만 포스의 힘을 끌어낸 리에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에르는 방심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불길함. 포스의 힘을 손에 넣고 나서 리에르는 그 무엇도 자신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강력한 공포가 리에르에게 한 가지의 가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일신, 테헤라자드.’
엘 파실드와 리즈를 통해 들었던 괴물. 이 세상을 잉태하고, 만들어낸 미치광이 창조자.
신을 꿰뚫을 수 있는 유일한 창은 자신뿐이라며 설득하던 그들을 떠올린 리에르는 희미한 조소를 머금었다. 손끝이 떨려오는 것은 자신에게 없는 줄 알았던 각인된 공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복수해야 할 존재임은 분명했다.
리에르는 최대한 힘을 아끼기 위해선 포스를 거둬들여야 하나, 개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살기.
등골에서는 연신 소름이 돋아났다. 무언가가 계속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리에르는 위험한 줄은 알지만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기에 연회장 쪽으로 다가섰다. 주변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 수북한 것을 보고 리에르는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연회장으로 향하는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리에르에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연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음악은 들려오지 않는다. 문 안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것은 시커먼 옷을 걸치고 있는 교단의 전사들과 공포에 질린 채로 떨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이었다.
“페리안의 흑사자이자 한때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적혈의 악마, 리에르 아르빈트를 소개합니다!”
언제 들어도 불쾌한 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리는 귀족들의 소음, 그리고 교단의 전사들은 검을 뽑아 들며 마나를 축적하는 모습이 보인다.
검은색 제복에 달라붙은 검은 핏자국, 리에르는 얼굴에 달라붙은 핏자국을 닦아보지만, 오히려 얼굴에 칠을 더하는 격이 되었다.
파티장 안쪽에 모여 있는 귀족들은 누구 하나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분명 황실에서는 황제를 수호하는 근위병들만이 무기를 소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교단의 전사들이 무기를 들고 있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적혈의 악마는 죽었다고 하지 않았소?”
“너무나 두렵게도 그는 아직 우리 앞에 있군요!”
귀족들과 교단의 전사들 사이에서 티미는 양팔을 벌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는 듯이.
“흑사자와 적혈의 악마가 동일 인물일 리가 없지 않소!”
귀족 중에 흑사자를 보고 싶어 한 인물도 많았다. 혼자서 정예 부대를 돌파한 그의 기량은 모든 군주와 영주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것이었다. 최소한 자신의 기사로 영입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기사와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민중의 영웅으로 급부상한 흑사자와 살육을 억제하지 못해 발광하는 적혈의 악마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괴리감이 있었다. 귀족들 사이에선 티미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아아. 루나레이크의 여왕은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 모인 많은 분과 만찬을 즐기려 한 여러분들의 친한 친구이자 동료는 비열한 악적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하였습니다!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황제 폐하의 집정관인 저는 비열하고 악독한, 저주받을 괴물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파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여제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안 그래도 의문이었다. 그녀는 황성에 관련된 이벤트라면 절대로 불참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빠르면 빨랐지 늦는 법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리에르는 교단의 전사들이 마치 귀족들을 지키는 형태를 취하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강력한 기운의 괴물이 어디선가 살기를 뿜어내고, 공포감이 머릿속을 지배했다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리에르는 혼란스러운 머리 때문에 함정에 빠졌음을 자각했고, 위기에 빠졌음을 인지하였다.
티미의 말투는 리에르에 대한 것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실제로 리에르는 자신의 과거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루나레이크의 여왕 베로니카를 암살하였다.
새어 나갈 정보를 걱정하여 그녀를 호위하는 장미 기사단 전부를 학살하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었다.
덕분에 유이 일행마저 리에르가 한 짓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티미가 알 리가 없다.
“주인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지옥의 문턱에서 올라온 충성스러운 기사를 모시겠습니다!”
집정관 티미가 너무나 확실하게 말하자 귀족들도 크게 동요했다.
그들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페리안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어 했다.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는 집정관이라 해도 증거 없이 비방하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리에르는 자리를 피하지도 못한 채 티미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보았다.
연회장 뒷문으로 들것에 실린 무언가가 보인다. 귀족들 사이에서 경악스러운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