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55)
레필리아 레소드-256화(255/398)
레필리아 레소드 256화
EP2 지센라이드의 유쾌한 상담소
세계는 경제난에 시달린다. 황금의 늪에 빠져 있을 것만 같은 황제도 귀족들의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할 정도로 엉망진창인 세계.
아무리 잘나가는 영웅이라 하여도 자신의 뒷배가 되어줄 인물은 필요했고, 검 하나로 먹고사는 데에도 문제는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청년은 가족이 없었다.
고로 먹여 살릴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자신도 오랜 삶을 산만큼 돈에 구애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엘 파실드의 계획을 함께하다 보니 페리안 건국을 하게 되었다.
페리안은 나날이 국토가 넓어지고 인구도 늘어났다.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군대를 구축하고, 시설을 구축하고, 여러 가지 정책을 세우다 보면 항상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돈.
군대를 양성하고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신생 왕국인 페리안은 국비가 부족하기만 하였다.
평상시에는 페리안의 재상으로서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리즈였다. 하지만 근검절약만으로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리즈는 매우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수해야만 했다. 서류는 산더미였고, 결재 도장을 찍는 손은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시에는 총지휘관이 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다른 일은 둘째 치더라도 전쟁만은 리즈도 힘들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포스 각성 시 남아 있는 목마름은 살인 충동을 끝도 없이 불러일으켰다.
결국, 리즈는 서류 더미와의 전쟁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도 떠났다.
그는 개인적인 취미이자 부업을 하기 위해 수도에 조그만 식당을 하나 개업했다.
리즈의 식당은 매우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대륙의 미식가 미스터 쿠킹마저도 인정한 그의 요리는 입소문을 타고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덕분에 리즈는 가게를 넓혔고, 점원들도 늘었다. 자연스럽게 돈은 굴러들어왔다. 리즈가 체인점을 생각할 때쯤 저주와도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리즈가 후원하는 페브리안 남매. 페리안의 공주이기도 한 유이는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다.
리즈는 유이의 생각을 알기에 미소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 아니, 어쩌면 그녀는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에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즈의 입장에서 유이가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갖는단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렇기에 리즈는 성심성의껏 그녀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리즈의 교육도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건드린 식 재료들은 하나같이 하수구 맛이 났다.
막대한 치료비. 파리만 날리는 식당. 그리고 포스 오브 머더러가 이번엔 식당으로 사람을 잡는단 소문만 파다해졌다.
결국, 리즈는 벌은 만큼 손해 보상을 해주면서 사업을 접게 되었다.
그렇다고 리즈가 유이에게 항의할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만약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큰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리즈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서류 더미에서도, 핏빛 전장 속에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그만의 부업.
[지센라이드 상담소.]현대인들은 직장에서 겪는 막대한 스트레스를 이기기 힘들었고, 자기 자신의 멘토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하여 리즈는 수도에 최초로 상담소를 개업하였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리즈는 새로운 직장을 위해 붉은 로브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의사를 연상시키는 흰색 가운을 걸쳐 보였다.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련됨과 섬세함을 품게 되었다.
물론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리즈는 상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하여 안경까지 끼고서 지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똑똑똑.
리즈의 귓가로 첫 상담자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리즈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맑고 청아하게 입을 열었다. 첫인상은 상대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 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인상보다 앞서서 듣게 되는 것은 목소리였다.
절대 그 누구도 지금의 리즈가 내는 목소리를 듣고서 머더러를 연상할 사람은 없었다.
리즈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로 양손을 가지런히 올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심상치 않은 말을 시작으로 들어온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힘없이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가 말려주지 않으면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인 그를 보면서 리즈는 손을 들어 자리를 권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더 미친놈이니까 편안하게 말해보세요.”
심상치 않은 대답을 해주는 것으로 리즈는 상담자를 안심시켰다.
“실은 제가 세 명의 여자가 있는데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그것참 부러운 일이 아니던가요?”
리즈는 현재 솔로였고 독신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이런 부러운 고민을 한 청년을 후려갈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렇지도 않아요……. 소꿉친구는 배때기에 칼침 못 놔서 안달이고……. 또 다른 소꿉친구는 잔소리만 늘어놓고……. 마지막 여자 친구는 틈만 나면 노예처럼 부려먹으려 하고 말이죠…….”
“당신이 선택하지 않아서 그럽니다. 우유부단함으로 끈을 늘어놓게 되면 갈등은 심화하죠.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선택하세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리즈는 미소로 그에게 답변하였다. 어디까지나 리즈는 프로 상담사였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이지 말아야 하며, 배알이 꼴려도 상대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어줘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음의 말을 듣기 이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근데 세 명 다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거. 소꿉친구도 얀이 되기 전까진 사이가 좋았어요. 제 첫사랑이기도 하구, 다른 애는 예쁘고 나름 츤츤거리는 매력도 있고 공주님이니 직위 상승도 될 거고……. 또 다른 여자는 농밀한 얀데레지만 이것저것…….”
“그렇군요, 지금부턴 당신의 목숨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검은 머리칼을 가진 청년은 리즈가 말하는 의미를 몰라서 눈만 끔벅거렸다.
리즈의 등 뒤로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창날이 생성되었다. 허공중에 붉은 파문을 일으키며 튀어나오는 창날을 보고 검은 머리칼의 청년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칠흑의 검을 수십 자루 소환해 내었다. 칠흑의 검날과 핏빛의 창이 맞부딪히며 서로에게 공수를 전환한다.
“다음 들어오세요.”
안경을 고쳐 낀 리즈는 바닥에 묻은 핏자국과 다잉 메시지를 대충 닦고서 자리에 앉았다.
“아무 고민이나 되는 거지?”
긴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년이 상담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지만, 리즈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영업 미소를 입가에 그려 넣었다.
“물론입니다. 말씀해 보세요, 당신의 고민을.”
“사람들이 나보고 병신이래. 무슨 신이 저렇게 멘탈이 약하냐고 그래.”
“저런.”
리즈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번에도 정상적인 상담자는 아닌 거로 보였다.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는 광기를 담아서 정말로 병신으로 보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금방 풀어졌다 하는 것을 보니 감정 기복도 심해 보였다.
“지들은 학교에서 1시간 수업받는 것도 지루하다고 하고 야자 3시간만 해도 땡땡이치고 싶어서 안달하면서. 회사원은 뭐 달라? 겨우 몇 시간 일하는 것도 퇴근 시간만 기다리면서. 하! 생각해 봐. 1년, 30년도 아니야. 겨우 하루, 이틀도 그 지겹다고 설치는 것들이 천 년 동안, 만 년 동안 같은 세계 속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짓을 하고 이제 더 이상 안 해본 것이 없으니 안 질리게 생겼어?”
“이해합니다. 정말 힘들죠, 시간 때우기라는 거.”
테헤라자드, 아니, 긴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안 해본 걸 해보세요.”
리즈의 말에 긴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대번 성을 내면서 따진다.
“없다니까!”
“대충 원x스 같은데 출연해서 고무고무 펀치나 배워오든가. 아니면 드x곤 볼에서 셀이나 죽이고 오시든가.”
“솔직히 인지도 없는 신들은 다른 세계 출입하기 힘들어. 나 솔직히 요새 사람들 트렌드에 맞는 신은 아니잖아.”
침울해하는 소년을 측은하게 리즈는 바라보았다.
한동안 혼자 중얼거리다가 화를 내다가 반복하던 소년이 나가고서 리즈는 창문을 열고 방 안을 환기시켰다.
자신은 프로페셔널 상담사이지만 모든 이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좋은 방안이 있다면 제시해 주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만 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였다.
똑똑똑.
서로 개인사에만 관심 가득한 이 세상에는 고민을 가진 자가 끝도 없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주고, 서로가 서로를 아낀다면 이런 상담소가 성업하는 이유도 없을 것이다.
쉴 틈도 없이 다시 들어오는 상담자와 대화하기 위하여 리즈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한때는 스스로의 광기를 이기지 못해 머더러로서 사람을 학살하고 다녔던 그였지만, 자신이 지은 죄만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터였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내린 형벌이자 죄 갚음이며, 유트 왕이 만들어 낼 정의로운 세계가 곧 나라가 되고, 세상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저기, 정말로 고민이 있는데……. 내가 만든 요리는 왜…….”
은발 머리카락의 소녀가 붉은빛 눈동자를 흐리면서 들어왔다. 서글픈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안 들어도 모든 전말을 알 것만 같았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응?”
은발 머리의 소녀는 리즈의 영문 모를 말을 듣고 토끼 눈을 떠 보인다.
“아니, 정성껏 요리를 만들어도 다 썩는다 이거잖아요?”
“썩는다니 말이 심해!”
“썩은 거지, 그게 그럼 뭡니까? 무슨 비피더스 유산균이라도 된답니까? 왜 방금까지만 해도 싱싱했던 채소가 옆집 할아버지 똥 기저귀 맛이 나는데요?”
리즈의 말에 은발의 소녀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토라진 얼굴을 홱 돌리고 씩씩거렸다. 그래도 딴에는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되니 그녀도 얼마나 힘들까?
리즈는 자신이 실언한 것 같아서 미안함을 느끼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치관을 바꾸세요, 그러면 편해집니다.”
“가치관을?”
리즈의 말에 은발 소녀는 무슨 희망적인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관심을 보인다.
“그냥 당신 음식으로 세계를 정복하세요. 포스도 잡는 마당에 신도 요리 먹여 죽여 버리…….”
철퍽!
리즈는 말을 하던 중 은발 소녀가 집어 던진 무언가를 얻어맞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흐물흐물한 무언가가 뺨을 적시고 턱을 쓰다듬는다. 지독하디 지독한 썩은 내가 풍기는 그 무언가와 함께 리즈의 책상으로 접시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