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56)
레필리아 레소드-257화(256/398)
레필리아 레소드 257화
EP3 장미의 기사 프란츠
죽음이 물든 대지, 한없이 펼쳐진 황무지. 그 속에 자리 잡은 이름 없는 도시는 밝은 태양 빛 아래에서도 어둠만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굶주림이 피폐해지고 물 한잔을 훔쳐내기 위해서는 숭고한 사람의 목숨마저 칼을 대는 곳.
부모가 배를 곪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를 죽이기도 하는 어둠으로 가득 찬 도시에 어울리지도 않는 화려한 복식을 걸치고, 눈부시게 새하얀 백마를 타고서 걸어오는 남성이 있었다.
성 아스란 기사단을 의미하는 장미 문양의 칼날 마크가 수 놓인 붉은 색 망토, 등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를 가진 매혹적인 남성은 도시라고 부를 수도 없을 대지를 보며 탄식하였다.
“아아, 신이시여. 여기가 정말 당신의 피로 만들어진 대지 중 한 곳입니까. 사람들은 죽음에 익숙하고, 배고픔을 옷처럼 입으며 살 텐데, 당신의 사랑은 왜 전해지지 않는단 말입니까.”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는 남성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며 통곡했다.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기사를 시큰둥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배고픔에 지쳐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다가간 남성은 슬픔에 젖은 속눈썹을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아이야, 왕성의 방향이 어디인지 아느냐.”
지저분한 몰골의 어린아이는 백마 탄 남성의 고귀함에 눈부신 듯 눈을 찌푸리며 힘없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비록 큰 나라는 아니었지만, 죽음으로 물들어진 도시를 다스렸던 레탄 왕국은 풍족한 자원으로 부유함을 유지하고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예전의 일이 된 지 오래였다.
지혜로운 레탄의 왕은 사악한 마법사에 의해 조종당하고, 더 사악한 드래곤은 레탄의 공주를 납치해 왕성의 탑 꼭대기에 가두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혼자서만 감상하였다.
많은 용사가, 또 많은 왕자가 군대를 이끌고 레탄을 구하러 갔지만 사악한 마법사의 마법은 재해를 불렀고, 더 사악한 드래곤의 횡포에 소중한 생명이 마모되었다.
비록 자신의 물음에 답을 주진 않았지만, 남성은 굶주린 아이에게 고맙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빵 한 조각을 쥐여주었다.
남성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실로 엮어진 배낭. 그것 안에 물을 넣으면 시원함과 따뜻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과일도, 음식물도 절대 상하지 않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남성이 건네준 빵은 모락모락한 온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것을 받아든 꼬마의 얼굴도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빵과 남성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남성은 마력과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이에게 금화 몇 닢을 주었다.
“희망을 잃지 말고 살 거라.”
긴 속눈썹을 들으며 따뜻한 말을 속삭이는 남성에게 크게 감동한 듯이, 아이는 아아 감탄하는 얼굴로 천사를 바라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왕성까진 약 20마일 정도 가시면 도착하실 것이며, 기사님의 고귀함과 어울리는 백마가 빠른 속도로 직진한다면 58분 이내로 도달할 겁니다.”
소년의 손안에 빛나는 금화를 보고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기사님, 고귀한 공주님을 구하러 가신다면 독의 늪을 지나야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필요하지 않으시나요?”
“근력을 올려주는 약병 팝니다.”
“적의 장거리 공격을 빗나가게 하는 미끌미끌 기름이 있다면 전투에서 안성맞춤!”
“캐쉬 템 팝니다!”
“극딜 버프 싸게 ㅍㅍ.”
갑자기 이것저것을 제시하기 시작하는 마을 사람들 덕분에 남성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억지로 말의 안장 속으로 물건을 집어놓고 손을 내미는 마을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눈빛.
별수 없이 백마 탄 남성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금화를 한 닢, 한 닢 뿌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굶주린 메뚜기 떼가 지나간 듯이 주머니는 먼지만 남았다. 주머니는 가죽 가방에 구겨놓은 채, 백마 탄 남성은 쓸쓸한 눈빛을 떴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이후 처음에 보았던 어린 소년은 백마 탄 남성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호갱…… 아니, 기사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함을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백마 탄 남성은 눈가를 가리는 곱슬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리며 봄 햇살처럼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 아스란의 장미 기사 프란츠 폰 니드베르그. 정의를 수호하고, 사랑을 지키는 기사 중의 기사란다.”
“아……. 그렇군요.”
프란츠라고 스스로를 밝힌 남성은 순간적으로 소년에게 스쳐 지나간 비웃음을 읽었다.
‘아니, 악의 무리가 가득한 땅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프란츠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며 정해진 행선지를 향해 말을 몰았다.
* * *
“그놈 바보 아냐? 거절이란 걸 할 줄 모르는 거야? 딱 봐도 수상한 물건들 아냐.”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 보이며 말했다. 청년의 반대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은발 머리카락의 여성은 고운 미간을 찌푸렸고, 금발 머리카락의 여성은 도리어 혀를 쯧쯧 차 보이며 대답했다.
“원래 장미의 기사 프란츠는 너무 자상해서 상대가 상처받을 짓을 안 하는 거거든?”
“그거……. 단순히 요령이 없는 놈 아니야?”
금발 여성의 말에 검은 머리칼의 청년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닥쳐, 바보 원숭아.”
“아, 그래.”
은발의 소녀는 입만 다물고 있으면 참 귀여웠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지 않고 으르렁거리기 일쑤였다.
검은 머리칼의 청년은 불만스럽게 입술을 비죽거리며 팔짱을 낀 채로 다시 경청했다.
* * *
독충이 우글거리는 죽음의 늪을 지나고, 사나운 맹수들이 가득한 숲을 지나 장미의 기사는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에 당도했다. 이전에는 고귀함을 자랑했을 듯한 거대한 성은 타원형 지붕 위로 오랫동안 손질되지 않은 거로 보이는 나무 덩굴로 둘러싸여 있었다.
화려함과 웅장함을 감춘 고즈넉한 고성을 보면서 프란츠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아 보였다. 그러고는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나의 공주여. 그대의 아름다움으로 비롯돼 생겨난 비극을 내 풀어주러 왔소. 그대 지금 내 곁에 없지만, 그대의 귓가에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고 속삭이겠소. 그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를. 그대를 위한 나의 용기에 찬사를.”
마치 고대의 마법 주문을 외우듯이 소리친 프란츠는 빛나는 황금 검과 황금 방패를 꺼내 들고서 백마를 달렸다. 용감한 장미 기사를 막아서기 위해서 고성을 지키는 사악한 마법사의 충실한 부하들이 창을 들었다.
주로 야행성 몬스터이자, 지능은 낮지만, 주인의 명령에 충실한 코볼트들은 아름다운 장미 기사를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아름답고 잘생기고 싸움까지 잘하는 프란츠의 질주를 막기에는 무리인 듯 그들은 순식간에 도륙되어 나자빠진다.
“거기까지다, 아름다운 장미의 기사여!”
코볼트들을 몰아내자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악한 마법사가 프란츠를 막아 세웠다. 보기에도 낡은 고성과 잘 어울리는 음습함을 지닌 마법사가 마나 로드를 들어 올리며 프란츠를 위협하듯 소리쳤다.
“날 막을 셈이라면 그대의 목을 쳐야 하오!”
“과연 그것이 쉬울까?”
사악한 마법사는 로브 속에서 음흉한 웃음을 지어 올리며 마나 로드를 흔들어 보였다. 그가 사악한 주문을 쓰려는 기미가 보이자 프란츠는 하압, 기합을 지르면서 들고 있던 황금빛 검을 투척하였다.
상대와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안심하고 있던 사악한 마법사는 깜짝 놀라서 서둘러 마법 방어막을 쳤다. 하지만 그의 캐스팅보다 더 빠르게 날아온 황금의 검에 가슴을 꿰뚫린 채, 마법사는 피를 토하면서 비척거렸다.
“역시 명성은 헛되지 않았나 보구나……. 장미의 기사 프란츠…….”
“그대 역시 보통은 아니었소, 다만 정의를 수호하는 나를 만난 것이 운이 없었을 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
“그대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오.”
피를 토하는 사악한 마법사를 보면서 프란츠는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마치 눈부신 꽃송이를 피워 올리는 듯한 그의 수려함을 보면서 사악한 마법사는 아아, 탄식의 신음을 내뱉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사악한 마법사는 벌떡 일어나서 프란츠의 손을 붙잡았다.
“나 역시 더 사악한 드래곤 때문에 길을 잘못 걸었을 뿐. 이제부터 자네와 함께 길을 가고 싶네.”
“좋소, 그대가 지은 죄업은 스스로 지워낼 수 있도록 나 장미의 기사 프란츠의 이름으로 돕겠소.”
프란츠의 말에 사악한 마법사는 감동한 듯이 펑펑 눈물을 토해내었다. 노년의 마법사와 장미의 기사는 서로 악수하면서 신의를 결속하였다.
* * *
“잠깐만요…….”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막아섰다.
“이거 명백하게 뭔가 이상하지 않아?!”
검은 청년은 당황한 듯이 두 소녀에게 항의하였다.
“뭐가, 이 바보 원숭아.”
검은 청년이 또 이야기를 끊어먹자 은발의 소녀는 고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뾰로통한 대답을 보여주었다.
“아니, 사악한 마법사라며? 뭐가 이렇게 쉽게 당해? 아니, 그 이전에 그 녀석 가슴에 칼 맞고 죽는 거 아니었어? 근데 갑자기 장미 기사랑 파티는 왜 맺는 건데?”
“나 참, 아무리 사악한 마법사라도 엄청 강한 프란츠에겐 한 방이거든? 그리고 자상한 프란츠는 사악한 마법사가 개과천선할 것을 예상하고 안 죽게 찌른 거거든? 그걸 아니까 사악한 마법사도 감동해서 프란츠를 도와주려 한 거고.”
열렬한 프란츠의 팬인 듯, 은발 소녀는 검은 청년의 무식함을 죄인 것처럼 힐난하기 시작했다. 황당한 것을 감출 수 없는 검은 청년이 금발 여성에게 시선을 주었을 때, 그녀가 고개를 저어 보이는 것이 보였다.
“나 참, 이래서 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책을 안 읽으니 원.”
이런 순정 소설도 문학 부류에 들어가느냐고 항의하려다가 검은 청년은 애써 말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겉만 멀쩡한 두 소녀가 난폭하기 이를 데 없으니, 괜히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한 번만 더 끊어먹으면 안 들려줄 거야.”
마치 어린아이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사탕을 주지 않겠다는 듯한 금발 소녀의 말투.
검은 청년은 더 이상 변명을 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무성의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아, 네.”
* * *
정의롭고 아름다운 장미의 기사, 프란츠. 그리고 그의 인품에 반해 개과천선하고 그를 돕기로 한 사악한 마법사는 공주를 구하기 위하여 같이 움직였다.
두 사람은 더 사악한 드래곤을 퇴치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섰다.
이전에는 수많은 걸음이 오고 갔을 꽃의 정원. 수북한 먼지로 뒤덮인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카펫. 24시간 꺼지지 않고 타올랐을 촛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검은 그을음만 가득했다.
[버러지 같은 인간이 또 하나 찾아왔구나.]고성에 울려 퍼지는 천둥 같은 목소리.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게 공포를 전달하는 전염병과 같았고, 붉게 빛나는 루비 빛 세로줄 눈동자는 보는 이를 마비시키는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더 사악한 드래곤이여, 오늘, 네 악행을 끊어주노라!”
어두운 고성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생명체를 보고서 프란츠는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성 아스란 기사단의 것임을 알리는 황금빛 롱소드는 정의를 구현하는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고, 신념에 패배하지 않는 기사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어리석은 버러지.]더 사악한 드래곤은 프란츠의 외침에 비아냥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거대한 몸집답게 갈고리 같은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강력한 힘을 실은 손길이 프란츠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험하네, 프란츠!”
드래곤의 손길을 미처 피하지 못한 프란츠의 위험을 보고, 사악한 마법사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프란츠를 옆으로 밀어내어 그를 구한 사악한 마법사는 거대한 드래곤의 발톱에 찢겨 나갔다.
프란츠는 조금 전만 해도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이던 사악한 마법사가 피투성이로 쓰러지자 이를 사리 물었다.
“사악한 마법사!”
드래곤의 손길이 훑고 지나간 대리석 바닥은 마치 두부처럼 으깨져 있었고, 그 위로 선혈로 적셔진 노쇠한 마법사가 피를 토해내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무거운 추라도 달린 것 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열어 보이던 마법사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며 입술을 다물었다. 사악한 마법사의 죽음에 분노한 프란츠가 입술을 깨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서할 수 없다……!”
그때였다. 장미의 기사 프란츠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 주변으로 황금빛 기류들이 타오르듯 휘몰아쳤다.
“크큭, 결국 해냈구나. 프란츠…… 아니, 초 프란츠인.”
사악한 마법사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 *
“잠깐만요, 아니, 진짜 잠깐만!”
“아, 또 왜 그러는데?”
은발 머리 여성은 검은 청년이 또 태클을 걸자 짜증부터 부렸다. 청년은 소녀들이 짜증을 부리든 뭘 하든 일단 자기 할 말부터 내뱉었다.
“초 프란츠인이란 건 대체 뭐야? 아니, 다 좋다 치자. 근데 프란츠라는 건 이름 아니었어? 왜 갑자기 어디 사이어인처럼 바뀌는 건데??”
은발의 소녀는 검은 청년의 말을 듣고서 혀끝을 차 보였다. 옆에 있는 금발 여성도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소설에는 5대 요소가 있어.”
“아니, 내 말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지금 위기 단계이고 극적인 감정이 절정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초 프란츠인으로 변하는 거야. 이해 안 가?”
“아니, 그러니까…….”
“언니, 학교에서도 맨날 잠만 자던 애한테 설명해도 의미 없어요.”
“아니, 저기…….”
검은 청년은 두 여성에게 극딜을 당했다. 억울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차라리 십만 대군과 무력과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 * *
초 프란츠인은 사랑과 열정의 힘으로 무장했다. 그의 강력함 앞에 더 사악한 드래곤은 결국 무릎을 꿇게 되었다.
프란츠는 숨을 고르게 쉬며 더 사악한 드래곤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검을 들었다.
“잠깐만요, 장미의 기사 프란츠!”
프란츠는 연약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제 죽어가는 드래곤마저도 여미었던 눈가를 열어 보였다.
탐스러운 금발 머리카락에 청순하고도 화사한 순백의 드레스를 걸친 여성. 왕관을 쓴 그녀는 누가 봐도 프란츠가 애타게 찾던 레탄의 공주였다.
“공주님, 무사하셨군요. 당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를, 당신의 미소를 볼 수 있는 나에게 영광을.”
하르츠는 자신의 고생이 전부 헛된 것이 아니었기에 감동적인 눈물마저 흘러나올 것 같았다. 이젠 어김없이 공주와 프란츠만의 시간이 펼쳐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공주는 자신을 구하러 온 용감한 기사가 아닌 드래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공주, 이게 무슨…….”
황당한 프란츠의 얼굴을 보고 공주는 표독스럽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당신이야말로 뭐 하는 짓이죠? 왜 그이에게 이렇게 지독한 짓을 하시는 거죠?”
“네……?”
프란츠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공주는 쓰러진 드래곤에게 안겨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래곤은 콧김을 내뿜으며 입가를 열어 보였다.
[따, 딱히 너 같은 공주는 좋아하지도 않거든? 이제 그냥 저리 꺼져 버려!]“엉엉,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전 이제 당신 없으면 못산단 말이에요!”
프란츠는 맑게 웃어 보였다.
비록 사악한 드래곤이긴 했지만, 그는 드래곤이기 이전에 뛰어난 수완을 가진 CEO였다. 인간 고기 유통, 지역 전쟁 조장, 약탈, 방화, 살인 온갖 짓을 다 했으나 그로 인한 소득도 만만치 않았다.
강하고 돈 많고 의외로 자기 암컷에겐 자상한 수컷. 그런 이에게 끌리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그대들을 축복합니다, 아디오스.”
사랑의 전사, 장미의 기사 프란츠는 그들의 행복한 사랑을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구원을 위해 그는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장미의 기사 프란츠는 결국 공주를 구하진 못했지만, 그녀의 행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는 만족했고, 행복했고, 기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겐가, 프란츠. 아니, 초 프란츠인이여.”
사악한 마법사는 어느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사랑의 힘은 그 무엇도 개화시킬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프란츠이기에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다음 슬픔이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있을 곳이고, 내가 가야 할 곳이오.”
* * *
검은 청년은 소설이 끝이 나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말 구역질이 날 만큼 재미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해서 억지로 박수갈채를 쳐 보였다.
“브라보, 정말 결말 부분 끝내준다.”
검은 청년은 방청객이 된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연기했다. 하지만 은색 여성과 금발 여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래?”
“응……?”
은발 여성이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금발 여성은 턱을 괴며 한숨을 쉬어 보였다.
“요새 프란츠 작가 글럼프 라더니……. 이번 권은 예전 같지 않네.”
“응, 맞아. 예전 전성기 때는 정말 사랑이 충만한 듯한 내용이었는데.”
“…….”
예상치 못한 반전에 검은 청년은 할 말을 잃게 되었다.
“뭐랄까 공주 너무 속물 같아. 여자들이 다 그런 것 같잖아?”
“인정. 무엇보다 이번에 프란츠 필살기도 안 썼잖아. 적어도 에네르x 파 정도는 썼어야지. 아니면 기어x 정도는 쓰든가.”
두 여성의 대화를 들으며 검은 청년은 마음속으로 깊이 맹세하고 있었다.
‘장미의 기사 프란츠 작가 죽인다, 꼭 죽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