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57)
레필리아 레소드-258화(257/398)
레필리아 레소드 258화
EP4 아르카의 하루
“저기, 에렌…….”
리에르는 조심스럽게 에레사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얼마 전 리에르는 페리안의 근위 기사인 텟사와 함께 미복속 영지로 출격했다.
대략 1천의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 전투에서 리에르는 자그마치 스무 개의 영지를 복속시키게 만들었다.
리에르는 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압도적인 무력과 돌진력으로 전장에서 크게 이름을 날리게 하였다. 덕분에 복귀한 리에르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 있었다.
리에르는 큰 공을 세웠기에 한동안 푹 쉴 수 있도록 배려받았다. 그렇기에 그는 오랜만에 에레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 리엘. 풉!”
에레사는 리에르를 발견하고 반갑게 맞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에르는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보고 눈가를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에레사의 손아귀에는 또 순정소설책이 쥐어져 있었다.
일명 로맨스 판타지의 대서사시. 장미의 기사 프란츠 시리즈.
리에르는 그 소설의 표지만 봐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 이미 그 소설의 어마 무시한 이야기 덕분에 한 번 크게 혼이 났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에렌, 뭐 오늘은 내가 한가하니 잠깐 나가줄 수도 있고.”
“응?”
리에르의 말에 에레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안 나가도 되는데?”
예상치 못한 에레사의 반응에 리에르는 잠시 입을 닫았다.
“계속 침대에만 누워 있으면 운동 부족으로 비만 될걸?”
“흐응. 책 읽으면서도 운동하니까 걱정하지 마.”
에레사는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흔들어 보였다. 리에르는 그것을 보면서 숨쉬기 운동도 운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너 전에 먹고 싶다던 거…….”
“아니, 나 안 먹어.”
에레사는 리에르에게 시선을 떼고서 소설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면 너 좋아하는 연극이라도…….”
“아니, 나 연극 이제 싫어해.”
아직도 그녀는 소설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면 쇼, 쇼핑이라도…….”
리에르로선 대단한 모험이었다. 에레사가 한 번 쇼핑몰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야만 집으로 복귀했다. 가게에서 옷과 물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게 주인들과 차까지 얻어 마실 때도 있었다.
리에르는 두근두근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나 옷 안 입어.”
리에르는 조용히 책 넘기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왠지 짜증은 나는데 옷 안 입는 것만은 기대가 되었다.
“아니면…….”
“아니, 나 지금 독감 땜에 힘들어.”
그렇게 말한 것 치곤 에레사는 지나치게 건강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리에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섰다.
에레사는 한 번 로맨스 판타지를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리에르는 그녀의 집중력을 잘 알기에 오늘은 포기해야만 했다.
-쯧쯧 입니다. Master는 어리석습니다.
리에르는 갑자기 도발하는 아르카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지금 대장간 가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거냐?”
-쯧쯧 입니다. 그저 폭력만으로는 검조차 설득 못 합니다.
리에르는 에레사에게 까인 덕분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때 아르카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
리에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대장간으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대장장이에게 물건을 맡기고 구경만 하는 신세가 아니었다.
리에르는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목적으로 담금질과 연마를 배웠고, 그 스킬은 아르카를 공포에 물들게 했다.
-다시 말합니다. Master는 절대 불리한 Spec 아닙니다. 그것을 이용 못 하는 것은 Master의 오판입니다.
“응, 짖어. 그래 짖어.”
리에르는 콧노래를 부르며 팔목에 감긴 아르카를 슬슬 풀었다. 아르카는 팔과 다리를 생성해서 최대한 달라붙으려 했다. 하지만 포스 사용자의 완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아르카는 괜히 입을 놀렸다가 리에르에 의해 수차례 연마, 아니, 폭행을 당했다. 리에르는 스트레스가 해소된 듯 보였으나, 아르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 *
리에르는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한때 적혈의 악마였을 때에는 조금만 틈을 보여도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포근한 침대, 따뜻한 음식과 기분 좋은 욕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여전히 잠귀는 밝았지만, 리에르는 제법 숙면다운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리엘, 언제까지 잘 거야. 백수인 거 티 내?”
리에르는 기다리고 있던 목소리를 듣고서 기분 좋게 눈가를 열어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자고 있으면 깨우러 오는 것은 에레사의 존재였다.
리에르는 기분 좋게 일어나며 에레사에게 짓궂은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한 음성이 귓가로 들려왔다.
“백수 아니다. 역시 가장 먼저 욕정 하는 것은 에레사라 불리는 암컷인 거다?”
“뭐……?”
에레사는 리에르의 말을 듣고 눈썹이 찌푸려졌다. 리에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원하지 않는 단어들이 마음껏 나열되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에레사라고 불리는 것 날 찾아왔다. 짝짓기 원하는 것 아닌가? 그럼 줄 수 있다. 나의 욕정을.”
“리엘…….”
퍽!
에레사의 묵직한 핵 펀치가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이미 한 대 맞을 줄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니, 실제로 그에게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이 덜 깬 거야? 얼른 나오기나 해.”
에레사는 그렇게 핀잔하며 먼저 방 밖을 나섰다. 리에르는 지금의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리에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실전은 어렵다. 첫 경험을 나는 원한다. 하여 가능하다.”
-……너 누구냐?
리에르는 자신의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묘하게 자신의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Master에게 대답을 허락지 않는다.”
리에르는 이맛살을 잔뜩 구겨 넣으며 웅웅,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너 아르카냐?
“아니다.”
-너 아르카지?
“아. 니. 래. 도. 입니다.”
리에르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몸의 제어권을 빼앗겨 본 적이 있었지만, 상대가 마녀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처럼 이와 같은 일이 생기리라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남자는?
“수컷.”
-여자는?
“암컷.”
-여자랑 남자가 방에 있어. 뭐 하고 있어?
“짝짓기.”
리에르는 이를 뿌드득뿌드득 갈면서 대답했다.
-지금 당장 원위치 안 해놔?
리에르는 자신이 고철 덩어리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불쾌해졌다. 그 순간 리에르의 몸, 아니, 아르카는 잇몸을 보이며 소리 내 웃었다.
“ㅋㅋㅋ.”
그렇다. 리에르는 아르카에게 배신당해 몸을 빼앗기고 말았다.
* * *
리에르는 최대한 냉정하게 사태파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리에르는 아르카가 되어, 아니, 고철 덩어리가 되어 자신의 팔목에 감겨 있었다. 그리고 아르카는 리에르가 되어 당당하게 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유가 뭐냐.
리에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검이 주인의 몸을 바꿔치기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어째서 그럴 이유가 있는지 의문도 들었다. 더군다나 이런 반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전개는 단 한 톨도 없었다.
“이것이 전부 Master를 위한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따위 짓거리가 날 위한 것이 되는 걸까?
리에르의 핀잔에 아르카는 냉철한 눈동자로 답했다.
“아르카는 Master라는 숙주가 있어야만 존재 가능합니다.”
-알고 있지.
아르카는 마력 공급이 이뤄져야만 정상적인 가동을 하는 특이한 검이었다. 마치 장작을 태워야만 집이 따뜻해지는 것과도 같은 에너지 구성이었다.
“Master는 매일 위험한 전투 합니다. 생존권 바닥입니다. 혹시라도 Master 뒤지면 아르카 X 됩니다. 그렇다면 번식은 필수인 겁니다. 하지만 Master 준수한 Spec에도 불구하고 고자입니다. 아르카 Master 페로몬 알려줍니다.”
-…….
아르카는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다.
“고맙습니다?”
리에르는 창백한 얼굴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친놈아, 하지 마.
리에르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르카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고는 우아하게 양팔을 벌리며 당당하게 워킹 했다.
그 순간 리에르는 기묘한 현상을 보았다. 주변의 모든 시녀가 리에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붉어진 그녀들의 모습은 마치 사랑에 빠진 이들과 같아 보였다.
아르카는 다이내믹하고도 액설런트한 걸음으로 모델 워킹을 하며 남자로서의 페로몬을 흩뿌리고 있었다. 리에르는 모든 이성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보고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리에르는 문득 이상한 점을 보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잠깐만요……?
“이것이 바로 페로몬이란 겁니다. Master 욕정 됩니다?”
-아니, 이 미친놈아……. 너 지금 사타구니에 있는 거 뭐냐……?
리에르는 자신의 몸에 허락 없이 달려진 거대한 것을 보고서 창백해져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자신이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이대로 방으로 도망쳐 갔을 터였다.
지금 리에르의 사타구니엔 아주 거대한 빠따가 달려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알고 있는 평소의 사이즈가 아니었다.
당연히 주변의 시선이 리에르에게 쏠리는 것도 당연했다.
“레볼루션(Revolution)이라고 합니다.”
당당한 아르카를 보고 리에르는 조용히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이게 왜 레볼루션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슴 수컷은 왜 거대한 뿔 가집니다?
-아니 사슴이고 나발이고…….
“공작새 수컷 왜 꼬리 펼치면 화려합니다?”
-아니, 왜 갑자기 내 물건이 공작새랑 비교가 되는 거냐고요.
리에르는 혼돈을 느꼈다. 지금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보고 탐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서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레볼루션은 Master에게 있어 사슴의 뿔입니다.”
아르카는 바보 같은 주인을 다 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무나 당당한 아르카를 향해 리에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었다.
리에르는 아르카에게 최대한 설득하는 형식으로 대화하기로 했다.
-일단 다 알았으니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싫습니다. 아르카는 Master에게 생존권에 대해 확고하게 주장합니다.”
몸의 주도권을 가져가자 아르카는 더 시건방졌다. 리에르는 짜증이 치솟았지만 애써 화내지 않고서 다시 말했다.
-그럼 뭘 어쩌자는 건데, 아르?
리에르는 애써서 아르카의 애칭을 만들어 불렀다. 손과 발이 퇴화해서 닭발이 될 것 같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아르카는 리에르의 말에 빠르게 즉답했다.
“아르카는 아르가 아니라 아르카입니다. Master 고철덩이 되더니 머리도 고철이 된 겁니다?”
-아놔 누가 그걸 몰라? 이 고철덩이가 감히 주인의 몸을 빼앗아서 돌아다녀? 아니, 다 좋아. 왜 내 피부는 갑자기 흑인처럼 된 건데? 아니, 그것도 그렇다 치자. 아니, 내 사타구니에 다리 하나를 더 달아놓은 이유가 뭔데? 그게 네가 말하는 페로몬이라는거냐?
리에르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아르카가 자신의 팔목에 감긴 리에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매우 슬픈 눈동자를 해 보였다.
-왜? 너무 핵심 찔렸냐?
리에르는 아르카를 향해 빈정거려 보였다. 이렇게 기선을 제압하고 자신의 몸을 내려놓도록 설득하기만 하면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르카는 갑자기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에는 평소 리에르가 자주 들르던 간이 대장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르카는 주섬주섬 담금질에 사용되는 망치와 갖가지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영문 모르는 리에르는 자신을 풀어내라는 아르카를 보고서 의문을 던졌다.
-너 뭐 하냐?
아르카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Master가 좋아하는 행위 합니다.”
-어?
깡! 깡!
아르카는 리에르를 인정사정없이 단조하기 시작했다. 모루 위에 올려진 리에르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사정없이 내리 찍히는 망치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덕분에 리에르는 한동안 얌전해졌고 아르카는 굉장히 개운해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Master의 기분을 조금 이해합니다. 담금질 I Like 할 듯합니다.”
이제 아르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리에르는 아르카가 하는 대로 그냥 관찰자가 되어 지켜보기만 하였다.
아르카는 얌전해진 리에르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갔다. 성 밖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고 활기차 보였다. 전란의 시대이지만 북에서는 패자가 되어 있는 페리안이다 보니 평화로웠다. 평화를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했다. 무력 없이는 평화를 지킬 수도, 이룩할 수도 없었다.
리에르는 지금 힘없는 아르카의 신세가 되어보니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있었다.
“확실히 Master의 Spec은 나쁘지 않습니다. 암컷들 다 쳐다봅니다.”
-아니, 틀렸어. 네 표현을 빌리자면 수컷들도 다 쳐다보잖아. 네 그 망할 놈의 레볼루션인지 뭔지 좀 어떻게 하면 안 될까?
“뿔 없는 사슴은 사슴이 아닙니다. 왜 그걸 모릅니다?”
아르카는 리에르의 말에 코웃음을 쳐보였다. 아무리 지금 행동하는 것은 아르카라도 몸은 리에르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고스란히 그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근데 어디 가냐?
리에르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아르카를 보고 중얼거렸다.
“술집 갑니다. 거기가 굶주린 암컷들 많습니다.”
-멍청한 놈.
“왜 멍청입니다?”
아르카는 리에르의 힐난에 반문했다. 인간이 아닌 그가 느끼기에는 이런 행위들이 아무 의미 없는 생각들일지도 몰랐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생존에 관련된 것뿐이니까. 하지만 리에르는 아르카와 생각이 달랐다.
사랑이란 것은 좀 더 고귀한 것이었다. 그저 인스턴트 사랑처럼 우연히 만나 우연히 이별하는 그런 관계는 원하지 않았다. 그런 사랑이라면 얼마든지 만들고도 남았다.
-잘 들어 아르카.
“금발 머리 암컷. 너는 마셔야 한다. 나와 술을.”
리에르가 설교하기도 이전에 아르카는 길에서 여자 한 명을 납치하려 했다. 금발 여성은 같은 금발인 에레사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굉장히 육감적인 몸매가 잘 드러나는 타이트한 롱치마. 그리고 풍만한 가슴이 잘 드러나 보이는 패인 셔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끌었다.
“이 오빠 말투 재미있네?”
금발 여성은 아르카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특히나 레볼루션을 보더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아르카의 팔짱을 꼈다.
“나 보기보다 많이 먹는데 괜찮아?”
“괜찮다. 오빠 돈 많다. 오빠가 차 사준다. 가방도 사준다.”
리에르는 아르카의 행태를 보고 황당해했다. 자기 검집 하나 없는 주제에 타인에게 허세를 부리려는 그의 모습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아르카는 생각보다 능수능란했다. 여성을 카페의 안쪽에 앉히고서 이런저런 화제들을 떠올리며 대화하는 모습이 프로 같아 보였다.
아르카는 리에르에게 보란 듯이 기분이 좋아져서 열심히 떠들어댔다. 하지만 상대 여성은 아르카의 얼굴이 아닌 레볼루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오빠 이제 올라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여성이 먼저 적극적으로 말했다. 리에르는 어이가 없어서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았다. 오빠가 오늘 레볼루션으로 혁명을 보여주겠다.”
보통의 마을 주점은 1층은 식당, 2층이나 3층은 숙박 시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금발 여성과 아르카는 팔짱을 낀 채로 위층으로 올라섰다.
리에르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남자로서 이런 것들이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관심 없는 여성과 저런 부적절한 관계는 싫었다. 정말로 아르카가 이렇게 손쉽게 성공할지 몰랐기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르카와 금발 여성이 객실로 들어섰다. 리에르는 부들부들 떨면서 계속해서 위기를 탈출할 방법을 떠올리려 했다.
“먼저 샤워하고 올게.”
“알았다. 너는 곧 보게 될 것이다. 홍콩을.”
금발 여성은 아르카의 말에 깔깔 웃으며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너 남의 몸으로 이딴 더러운 짓거리 해댈 거야?
“아르카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씨 좋은 검.”
-아니, 까놓고 말해서 네가 이러고 싶으니까 그러겠지.
“아르카는 Master가 고자가 아님을 증명하려 합니다. 혼자만 착한 어른인 척하지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아르카는 굉장히 상기된 얼굴이었다. 리에르도 초조하게 샤워 부스를 돌아보며 아르카를 닦달했다. 하지만 그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 순간 샤워실의 부스가 열렸다. 상기된 두 남자는 거의 동시에 돌아다보았다. 그때 둘의 눈에 보이는 것은 괴기한 형체였다.
수북한 다리의 털. 단단한 갑주와도 같은 가슴. 손가락 마디마디 털이 잔뜩 난 것은 고릴라를 연상시켰다. 더군다나 턱수염은 마치 바이킹을 연상시키듯 곱슬곱슬했다.
무엇보다 몸의 형태나 얼굴 형태가 극단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저기……. 누구입니다?”
아르카는 알 수 없는 생체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이상해했다. 그때 바퀴벌레를 뒤집어놓은 것 같은 털북숭이 남성이 윙크를 하며 미소했다.
“아잉, 오빠 화장 조금 지웠다고 몰라보는 거야?”
“…….”
리에르는 자기도 모르게 맙소사 하는 소릴 중얼거렸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수도의 화장법은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라는 소문은 들었었다.
리에르는 에레사나 유이가 화장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기에 미인이란 기준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엔 이제 나름 꾸미는 것과 입는 것으로 인해 인상이 달라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엔 매우 특수하고, 매우 심한 정도였다.
“저기, 아르카…….”
리에르는 중얼거리다가 흠칫했다. 어느새 자신의 목소리가 원위치 되어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 아르카와 몸이 바뀌었었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리에르는 매우 기뻐하려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야릇한 눈빛을 하며 다가오는 금발 형님이 보였다. 리에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금발 형님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느새 아르카가 사타구니에 달아놨던 레볼루션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으아아아아아!”
리에르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절규했다. 아르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음 같은 침묵만 지키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