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6)
레필리아 레소드-26화(26/398)
레필리아 레소드 26화
리에르와 유트(1)
“정말 괜찮은 거냐. 리엘?”
유트는 아까의 시합 이후로 리에르를 걱정하고 있었다.
항상 침착한 모습만 보이던 유트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쉽지 않은 구경거리였다.
리에르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장난이라도 쳐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괜히 혼만 날 것 같기에 손을 들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이 몸은 매우 멀쩡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에라도 본선 시합을 참가할 수 있답니다.”
리에르는 유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싸한 느낌을 받아 주변을 보았다.
아까 본선 시합에서 맞붙었던 제라드였다.
그는 리에르에게 입은 부상 때문에 의무실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리에르는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하아.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 그러면 에렌이 이렇게 빨리 갔겠냐?”
“어쩔 수 없잖아. 에레사도 시합이 있으니까.”
그때였다.
끼익, 하고 의무실 방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특유의 짐승 같은 분위기로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그거 다행이군. 본선 시합에 계속 나갈 수 있다니.”
천하의 아르미안까지도 꺼리는 야성미가 넘치는 사나이.
엘빈 트위아는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분은……?”
유트는 리에르를 흘낏 보며 물었다.
리에르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렸다.
“엘빈 트위아. 아주 귀한 분의 호위 기사시지.”
“엘빈 트위아……? 팔검 대장?”
“날 아는 건가?”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는 유트 로자리오입니다.”
엘빈은 유트의 얼굴과 은발 머리카락을 보더니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대답했다.
“그렇군, 자네가 그 유트 로사리오군.”
“절 아시나요?”
“그래, 알지. 파에트 경이 많이 칭찬하더군.”
그의 말에 유트는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리에르는 엘빈의 말을 듣고 궁금해서 물었다.
“저는요?”
“많이 칭찬하더군.”
“뭐를요?”
리에르의 말에 엘빈은 잠깐의 정적을 만들었다.
“많이 칭찬하더군.”
“아, 네…….”
유트는 엘빈과 악수하였다.
“파엘 형은 잘 지내나요?”
“너무 잘 지내서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지.”
엘빈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워낙 음흉하고 어두워서 꼭, 협박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근데 혹시 이 아저씨 유명해?”
“유명하지. 파엘 형은 여러모로 화제의 인물이지만, 엘빈 경도 꽤 유명해. 하지만 아군보다 적군에게 더 유명하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지.”
“엘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적에게 더 유명하단 겁니까.”
리에르의 질문에 엘빈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앞에 선 녀석은 다 베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
리에르의 입장에선 정말 할 말이 없는 양반이었다.
리에르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엘빈의 곁에 있어야 할 그 싸가지가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고매하신 검제의 제자는 어디에 계시는지요?”
“너와 겨뤄보겠다고…….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러 가셨다.”
“이미 참가 신청은 마감되었던 거로 아는데, 멍청하네.”
“영주의 자제. 거기다 검제의 제자인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아, 네……. 그렇군요.”
리에르는 대번에 할 말이 없어졌다. 세상이 참 불공평했다.
서민들은 힘들게 출세를 위해서 바동거리며 위로 올라가지만, 윗선의 존재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바둥거리는 사람을 내려본다.
‘내가 만약 언젠가 이 나라의 위정자가 된다면 꼭 부패 정치 막고 만다. 낙하산 대회 인선 막아보자. 권력 주의 철폐한다!’
-위정자? 누가?
아르미안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리에르는 바로 앞에 엘빈이 있으니 굳이 그녀에게 답변하지 않았다.
아르미안도 엘빈의 앞에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벌써 엘빈은 아르미안의 목소리를 느꼈는지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렇다면 엘빈 경 당신도 나오는 건가요.”
“아마도.”
“흥미롭군요.”
유트의 도발적인 발언에 리에르는 노려보듯이 동공을 확장했다.
‘오, 맙소사.’
제이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실력가인 엘빈 트위아가 옆에 달라붙어 있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거 사기잖아!”
“대신 페널티를 받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눈을 가리고 싸우거나?”
“이상한 이야기책을 너무 많이 본 것 같군.”
엘빈의 지적에 리에르가 솔직히 인정했다.
이쪽에도 유트라는 챔프가 있다.
검제의 제자와 현직 팔검 기사가 팀을 먹는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리에르는 엘빈과 칼을 마주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유트의 반응은 당황스러웠다.
“현직 기사와 대결을 해볼 수 있겠군요.”
유트는 기절초풍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눈빛을 반짝였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느꼈는지 엘빈이 입꼬리를 올렸다.
“투지가 불타는 얼굴, 꼭 파에트 경을 보는 것 같은데.”
엘빈은 즐겁다는 듯이 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매번 풀만 뜯다가 기름기 가득한 고기를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어떤가. 지금 한번 나와 겨뤄보는 것이.”
엘빈의 말에 리에르가 탄식을 저질렀다.
‘아, 신은 참 희한한 성격이다.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이상한 놈들투성이야.’
생고기만 먹을 것 같은 엘빈이 혀로 입술을 핥는 모습을 보고서 리에르는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유트는 오히려 호승심이 도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갈까요?”
아무리 패배를 모르는 챔프라지만 기사와 학생이 붙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강한 자와 겨루고 싶다는 유트의 승부욕은 꺼질 줄 모르고 엘빈과 시선을 교환하였다.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기운이 펼쳐졌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당장에라도 유트와 피보라라도 일으킬 것 같던 엘빈은 입맛을 쩝, 다시면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곧 보게 되겠지.”
“아쉽군요.”
그의 대답에 유트는 정말로 아쉬운 듯이 의자에 앉아버렸다.
의외로 이 늑대 같은 남성도 이성이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리에르는 생각했다.
아니, 지금까지 음험한 모습들은 그냥 분위기 때문일 뿐이고, 실제로는 피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닐 수도 있었다.
리에르는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모친 라일라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까지 봤던 위험한 모습은 그저 겉모습뿐일 수도 있어.’
리에르는 생각난 김에 자신 있게 콧김을 뿜으면서 말했다.
“유트 대신에 제가 상대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당장 나가지.”
리에르는 엘빈이 눈을 반짝이자 당황스러웠다.
‘왜 유트보다 내 살을 베고 싶어 하는 거야?’
리에르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제가 오늘은 환자라……. 대회에서 뵙죠.”
“그거참 아쉽군…….”
정말로 아쉬운 듯이 엘빈은 풀이 죽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무서운 얼굴로 시무룩한 토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고!’
리에르는 당장에라도 엘빈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오늘은 말을 전해주러 온 거니……. 있다가 보자고 리엘 군.”
엘빈은 차가운 웃음을 공기 중에 띄우며 자리에서 물러섰다.
‘휴, 살았다.’
리에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과는 정반대로 유트는 생기발랄한 눈동자를 빛내면서 리에르에게 말했다.
“이번 대회 여러 가지로 재미있어지겠는걸.”
‘그건 네 생각이지.’
리에르는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 못 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리엘, 그런데 오늘의 시합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유트는 리에르가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리에르는 잠시 머뭇거렸다.
유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르미안의 존재? 리즈라는 변태의 등장? 그리고 자신이 마법의 재능을 지니었다는 것?
유트와는 막역한 사이기에 굳이 비밀을 두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비밀과 걱정거리는 서로 다른 문제였다.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사실은 말하고 싶지만.’
아르미안의 존재에 대해서는 자랑을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리즈라는 위험인물이 있는 이상, 위험을 확장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 녀석은 위험하다.’
리즈라는 사내에 대한 리에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말하기 어렵다면……. 다음에 해줘. 하지만, 난 언제나 네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마.”
유트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평소에 잘 웃지도 않던 그가 웃으니,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리에르는 왜 유트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은지 알 것 같았다.
“네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진 내가 선봉에 설게. 그동안은 네게 경험을 주기 위해 선봉에 세웠지만, 오늘 시합을 보니 나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위험하다면 발을 빼야 해.”
유트의 말을 듣고서 리에르는 뜨끔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아무것도,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은 반응이었다.
실제로 유트의 맑은 눈동자는 리에르만을 직시하고 있었다.
“위험하면 네가 도와줄 거잖냐.”
리에르의 말에 유트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당연하지.”
* * *
유트는 내일 있을 본선 시합을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리에르도 리즈에 의한 충격은 있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제라드의 집착 어린 시선이 등을 찔러댔지만, 그에겐 아무 말도 못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러뜨려서 미안하다고 해봤자 제라드가 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별로 아프지 않아요. 라고 대답할 리도 없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항상 그녀에게 교육을 받던 공터에서 리에르는 검술을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나 호흡법으로 시작되었다.
“후우, 하아…….”
리에르는 두 눈을 감은 채로 가부좌를 틀고서 호흡을 정리했다.
아르미안은 리에르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나 하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리에르의 집중력은 몰라보게 좋아져 있었다.
아니, 그가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나무, 풀과 바위도 함께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인다.
호흡을 들이켜면 나무의 자장들이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내쉬면 자장들이 뭉쳐서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리에르는 리즈와는 달랐다. 저주받은 힘에 조종당하지는 않고 있었다.
-리엘, 넌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감각이 발달해 있을 거야. 네 힘은 모든 것을 조종하는 거대한 능력, 네 능력을 조종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 전조는 너를 제외한 모든 사물이 너의 움직임에 비해 느려 보이는 것. 그리고 분노로 인해서 통념을 잃게 되는 것이야. 그 힘을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을 이제 배양하기 위해서 레필리아 레소드를 마스터해야 돼.
“솔직히 무슨 말들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호흡을 끝낸 리에르가 가부좌를 풀고 천천히 땅을 딛고 자리에 일어섰다.
“하지만 친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아버지와 형의 후광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리에르의 마음속에 있는 솔직한 말.
“그리고 에레사에게 더 늦기 전에 고백하고 싶어요.”
고백한다.
지금까지 숨겨왔던 마음을 그녀에게 제대로 고백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라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에레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녀는 지금껏 함께해 왔던 소꿉친구이자 마음의 연인이었다. 그 진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 좋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아르미안은 미소 짓듯이 대답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넌 레필리아 레소드를 익히기 매우 좋은 몸으로 발전해 있어. 모든 통념이 발달된 이상 마나를 깨닫는 과정은 이미 불필요해. 검술은 어렸을 적부터 단련되어 있어. 이제 남은 것은 기본 검법과 연소점을 활용하는 방법이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