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61)
레필리아 레소드-262화(261/398)
레필리아 레소드 262화
2차 대륙전쟁(3)
비극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불패하리라 믿었다.
두 갈래로 나뉘었던 파벌이 하나로 합쳐졌다.
강한 신념이 있어야만 배울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 그것을 앞세운 성기사들의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단단한 갑주마저 잘라낼 수 있으니까.
물론 신성 기사들의 전면에 선 철혈의 마왕은 누구도 막아낼 수 없었다. 혼자서도 군대를 돌파하는 그 무력은 누구도 믿지 못할 장면이었다.
흑사자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거침없는 돌파였다. 그의 등 뒤로 칠흑으로 만들어진 깃털들이 흩날릴 때마다 적의 사기는 급감하였다.
코스모스 교단의 1만 대군과 루나레이크의 1만 5천 대군이 혈투를 벌인 리리아페 평원은 그야말로 시체로 가득하였다. 그 시체의 밭을 일궈낸 마왕은 붉은 광채를 흩뿌리며 루나레이크의 수도로 진격하였다.
루나레이크의 귀족 대신들은 자신들의 패물을 싸 들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렇게도 차지하려던 빈 왕좌는 칠흑의 마왕이 차지하게 되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루나레이크는 멸망했다. 마왕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군을 정비하고서 강철의 대공이 있는 로빈타로 출정하였다.
마왕 리에르가 등장했다는 말에 로빈타는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로빈타로서도 쉽게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던 루나레이크를 초토화한 마왕 군은 말 그대로 두려움만 전달하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리엘 군.”
강철의 대공, 이실렌 폰 페를네아브는 이제 눈에 덮인 듯한 설원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맞서 싸우기 위하여 출정 준비를 하는 템플 나이트들이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보였다. 라이벌 국가였던 크샨타와 수 없는 공, 방을 반복해 왔던 그들이었고, 크샨타를 점령하고 흡수하면서 그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리에르와 동맹을 맺고 그와 함께 교단과 싸우려던 이실렌 대공은 오히려 배신을 당한 씁쓸함에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대공 각하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어떤 소식보다 반갑게 느껴집니다.”
굉장히 무례한 언사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이실렌은 뒤를 돌아보며 탄식하였다.
짧은 머리카락에 평범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청년이 이를 사리물고 있었다.
지금껏 이실렌 대공에 대한 충의 때문에 참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참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순백의 기사, 아제리엘의 문양을 대표하는 사내였다.
한때는 아렌 왕국의 십일검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철천지원수인 리에르 아르빈트 때문에 국가를 등질 수밖에 없었던 남자.
언뜻 보면 시골 청년처럼 수수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템플 나이트의 에이스라는 칭호를 받은 피스 메이커는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되어 있었다.
페이서스의 비극. 그것이 벌써 10여 년 전의 사건이지만 피스 메이커에게 바로 어제처럼 잊을 수 없는 지옥이었다.
병이 있으면서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성시키기 위해 일을 하던 어머니, 그리고 순수하고 구김살 없었던 소중한 여동생.
꼭 출세해서 가족을 호강시켜 주겠다는 집념만으로 갈고 닦았던 검의 길.
평민으로서 귀족이 되려는 유일한 길이자 가장 빠른 길은 기사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이룩해 낼 즈음, 이제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선물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비극뿐이었다.
‘오너라, 적혈의 악마! 이번에야말로 네놈의 숨통을 끊겠다.’
로빈타 왕국은 국가의 사활을 걸 각오로 2만의 대군을 편성하였다. 마왕 리에르가 이끄는 교단 군과 맞서기 위해 출정을 시작하였다.
전운이 감도는 로빈타 왕국과 마찬가지로 아르빈트의 피가 흐르는 아렌 왕국도 위기가 찾아들고 있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네버 에이지의 군대가 출정을 시작하였다.
용기사들이 이끄는 마물 군단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정찰병도 정확한 수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페이서스를 점거하고 있던 검은 숲도 다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많은 몬스터 대군에 아렌 왕국의 몇 개 마을은 초토화가 되어 단 하나의 생명조차 남지 못했다.
가옥은 다 부서지고, 시체들마저 괴물들이 먹어치워 그야말로 텅 빈 대지만 남게 되었을 뿐이었다.
추정되는 몬스터 대군은 약 2만.
황성에서 벌어진 적혈의 악마 사건으로 인해 로이스타 아르빈트는 실각될 위기에 처했었다.
사상 초유의 몬스터 대군이 조직되자, 이 위기를 막기 위해 다시 대원수로 복직하는 희극이 발생했다.
아렌 왕국 내에서 강한 실권을 부여잡고 있던 로이스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정치가들이지만 그가 없다면 아렌 왕국을 이끌 인물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원수 로이스타는 십일검 기사단장인 파에트, 그리고 열 한 명의 기사 대장들을 왕성으로 집결시켰다.
각 국경 영지를 지키고 있던 대장급까지 모이는 것은 아렌 왕국 초유의 사태였다.
그 어느 때보다 왕성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일검 대장 피터 경, 이검 대장 라비에타 경, 삼검 대장 밀피유 경은 각 3천을 이끌고 국경 수비에 힘써주세요.”
이제는 완연히 왕녀로서의 위엄, 그리고 완숙된 아름다움을 지닌 아렌의 여왕, 제이미 룬 아레스트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녀의 명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듯이 세 명의 대장들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허리를 숙여 보였다.
“네버 에이지의 군대에 맞설 총지휘관은 로이스타 원수님이 맡으실 겁니다.”
“성검 발락시아에 맹세코, 아렌의 이름을 걸고 왕의 적을 베겠습니다.”
다부진 근육질의 남성, 마치 곰을 연상하게 만드는 아렌의 거인은 여왕의 명을 받들어 보였다.
그의 기개와 넘치는 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되게 하였고, 말하지 않아도 손뼉을 치게 했다.
제이미는 로이스타에게 시선을 떼어내고 그의 곁에 서 있는 검푸른 머리카락의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항상 그의 등을 바라보았고, 지금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십일검 단장은 남은 기사 대장들과 함께 로이스타 원수님을 도와주세요.”
“네.”
검푸른 머리카락의 미청년, 파에트 아르빈트는 가슴에 주먹을 대고 망토를 흩날리며 한쪽 무릎을 땅에 대어 보였다.
그의 뒤를 따라서 다른 기사 대장들도 여왕의 명을 따르겠다는 듯이 맹세의 자세를 갖추었다.
불패의 신검, 로이스타 아르빈트. 그리고 대륙 최강의 기사단인 십일검이 질 리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제이미는 불길함을 억누르고 싶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같은 전장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왕성에서 소식만 기다리는 조마조마한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는 여자의 몸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왕이 되었습니다.”
제이미는 왕으로서의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여성이기 때문에, 왕은 남성만의 자리라고 생각했기에 욕심을 내지 않았었다.
그녀는 미숙했다. 그리고 부족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제가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대륙 최강의 기사단.
대륙 최고의 영웅들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로이스타 아르빈트의 이름값은 컸다. 아버지의 오랜 지기이자, 오랜 충신이었던 그가 아니라면 아렌을 하나로 묶을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저는 부족하지만,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 아렌의 기사가 대륙 최강이라는 것.”
영광이라는 듯 기사들이 부복을 한다.
“승리해서 오세요. 나는 그대들이 없이는 나약한 여자에 불과합니다. 온전히 가서, 온전히 돌아오세요. 그것이 제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명령입니다.”
“명을 받듭니다.”
총지휘관인 로이스타 아르빈트가 선창을 하자, 출정하는 기사들이 후창을 한다.
전쟁을 준비하는 아렌 왕국과 같은 시기. 유트 남매에게도 전쟁의 암운은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말하라.”
유트는 자신이 들은 보고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되물었다. 왕성에 모여 들은 대신들은 체통도 잊은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왕좌에 앉은 유트를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는 기사는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통곡하듯 다시 소리쳤다.
“아키서스 성이 점령되었습니다!”
기사의 갑옷은 험난한 전투를 뚫고 온 것을 의미하듯이 군데군데 헐어 있었고, 핏빛 칠이 잔뜩 되어 있었다.
일찍이 교단의 대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던 아키서스 요새가 점령되었단 말에 대신들은 다시 한번 술렁였다.
“적은 누군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트가 물었다. 국왕인 자신이 흔들린다면 대신들도 크게 흔들릴 것이 뻔했다. 파발 기사는 애끊는 심정을 토해내듯이 천천히 입을 열어내었다.
“아렌드 국과 자하 왕국의 연합군 5천이 기습을 들어왔습니다.”
페리안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아렌드, 그리고 아직 왕국 선포령을 하지 않은 자하는 유트가 아직 토벌하지 못한 땅이었다.
아무리 페리안의 국력이 강해도 쉬지 않고 토벌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훗날에 유트가 정벌하려고 마음먹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설마 상대방이 먼저 쳐들어올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두 나라가 연합을 한다 해도 페리안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곧 또 다른 곳에서 파발 기사들이 하나, 둘씩 전쟁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페리안 주변의 국가, 혹은 대영지에서 군대가 모여들고 있었다.
아키서스 성을 점령한 아렌드 왕국, 자하 왕국을 시작으로 주변 국가가 움직였다. 그들의 병력은 대략 10만을 넘었다.
한밤의 악몽.
유트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당혹감을 밀어내지 못했다. 페리안은 국가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교단의 짓이 분명합니다.”
적막하던 회의실에서 빅스터 나이브만이 입을 열었다.
페리안 최고의 지장이자 전략 참모인 빅스터마저 이번 사태는 미리 예견하지 못했다. 아무리 교단의 위세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자국의 이익이 크지 않다면 전쟁에 참여할 리가 없었다.
더더군다나 자그마치 열 개의 나라에서 침공을 해오는 것은 초유의 사태였다. 강하긴 하지만 쌓아온 연력이 적었고, 그만큼 지반이 약하고 인재도 한정되어 있었다.
“누가 교단의 짓이란 것을 모르오? 아렌드, 자하, 뮤턴트, 크로노스, 갈테오, 루카스, 아직크, 페루, 피리네오, 갈라파고스. 도합 열 곳에서 페리안에 동시다발적으로 침공하고 있소! 교단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한 대신이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국왕의 앞에서 굉장히 무례한 행위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 정도로 회의실 안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어두웠고, 침묵을 지키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페리안의 멸망.
페리안의 군사력이 아무리 좋아도 모을 수 있는 병력은 5만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페리안을 둘러싸고서 쳐들어오는 적에 대해서 페리안도 병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페리안에는 인재가 너무도 부족하였다.
대다수 영지, 혹은 영지 급의 국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금 마법으로 유명한 아직크와 용기사로 유명한 페루는 큰 위험요소였다.
하지만 루카스 왕국은 오대 강국 중 한 곳이었다.
페리안과 단독으로 상대할 수도 있는 국가가 연합을 이루고 있었다.
용병왕 니드가 다스리고 있는 루카스의 경기병은 전쟁터에서 굉장히 위협적이다.
10만 이상의 엄청난 대군을 맞이하는 페리안은 꿈도 희망도 보이질 않았다. 전략 전술에 밝은 빅스터 나이브만 역시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다른 대신들은 한마디씩 떠들었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소망을 이야기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우방인 아렌 왕국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아렌 왕국은 폭룡 네버 에이지의 공습을 받고 있소! 자기 코가 석 자인데 누가 누구를 돕는단 게요!”
“로빈타 왕국에 사자를 보내는 방법도 있소!”
“로빈타 왕국도 지금 마왕 군과 정면 대결을 펼치는 중이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소!”
“교단에게 항복하는 방법도 있소.”
“당신 마누라부터 집, 아이들까지 갖다 바쳐야 할 것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