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63)
레필리아 레소드-264화(263/398)
레필리아 레소드 264화
2차 대륙전쟁(5)
로빈타의 기사들은 백병전에 뛰어났지만, 교단의 기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로빈타의 템플 나이트 중, 아제리엘의 기사인 이리스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그는 오러 블레이드에 밀리는 아군 기사들을 독려하며 종횡무진 하였다.
다부진 체격에 철사 같은 수염이 자라난 사각 턱의 이리스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성기사들을 순식간에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아군의 선두에 서서 명예를 드높이는 것.
그것이 바로 아제리엘의 기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결국, 불리하게 돌아갔던 기병 싸움은 이리스의 활약으로 로빈타가 승리를 거두었다.
도망치듯 후퇴하는 몇 남지 않은 성기사들을 보면서 사기를 북돋우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초전의 승리 덕분에 로빈타 군은 사기가 복 돋아졌지만 이실렌 대공만은 침묵을 지키며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기병전은 이겼지만, 상대적으로 피 튀기는 혈투였고, 치열한 공방이었다.
어느 정도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에 마지막엔 승리한 것이지, 손쉬운 장담은 할 수가 없었다.
이실렌은 오랜 전투 경험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불길함을 느꼈다.
“진군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대공 전하!”
이실렌의 부관이 흥분하여 재촉했다.
전초전의 목적대로 아군의 사기는 올랐고, 적의 사기는 줄었다.
엇비슷한 병력이 맞부딪히게 된다면 전초전의 승리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진격하라, 로빈타의 아들들이여! 출정하라, 로빈타의 수호자들이여! 진군하라, 승리자들이여!”
지휘관 망루에 서 있던 철의 대제가 호령하자 부관급, 대장급, 그리고 백부장을 통하여 진군 명령이 전달되었다.
천둥소리 같은 고함, 대지를 뒤흔드는 흙먼지 속에서 로빈타군 이 먼저 진군을 시작하였다.
초반부터 총 전력을 쏟아붓는다.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낀 이실렌 대제의 전술적인 공격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피스도 경호에서 벗어나, 적을 베기 위해 기병대를 이끌었다.
피스는 손아귀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복수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리에르 아르빈트!”
지옥 속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피스는 자신의 사복검을 높이 들었다. 그는 리에르가 있는 중앙 진을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큰 흑마의 위에서 칠흑의 망토를 흩날리는 마왕.
그는 높은 곳에서 아랫것들이 오는 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주인이 사라져 규합이 되지 않은 루나레이크와 로빈타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피스의 검이 허공으로 그어지자 티디딕 소리와 함께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채찍처럼 늘어나는 검의 날은 정면의 병사들을 도륙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로빈타의 군병들은 교단의 밀집 대형을 파훼하면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교단의 장창에 찔려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지는 중기병들.
말이 장창에 찔려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이 아수라장 속에서 땅바닥을 뒹군다.
비명과 고함이 오가는 전장 속에서 일순간 지독한 피비린내가 풍부하게 퍼져 나간다.
전장의 전사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는 무의미한 전투를 반복하였다.
처음은 로빈타와 교단은 호각세를 이루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흐름은 확연히 드러났다.
기세가 올라 있는 로빈타는 기병을 앞세운 강력한 중무장 돌파력으로 교단 군의 장창 밭을 짓밟고 있었다.
‘자, 어떻게 나오겠느냐.’
높은 망루에서 전장을 굽어살피는 철의 대공은 회색으로 바래진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로빈타 왕국의 핵심은 중장기병이었고 그들의 랜스는 파괴력이 뛰어났다.
템플 나이트들, 그중에서도 로빈타를 상징하는 순백의 아제리엘은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전황을 보고 전술적인 전투를 벌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덕분에 이들은 하나같이 이실렌 대공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실렌 대공은 정치, 상업뿐이 아니라 뛰어난 용병가였다.
큰 전투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독려했다. 자금 이 순간도 그는 높은 망루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아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이 느껴졌다.
교단의 총지휘관은 리에르 아르빈트였다.
그의 무력이 최강이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상태다. 지휘관은 무조건 강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이실렌이 알고 있는 리에르는 절대로 지략형 장군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술에 밝다고도 평가되지 않았다.
물론, 부관이나 참모들이 전략과 전술을 겸비하여 보조할 수 있으나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지휘관이 할 일이었다.
여러 부관의 조언 속에서 옥, 석을 구분해 내는 것은 지휘관의 능력이었다.
로빈타의 전면에 나선 것은 중장기병이었다. 그의 뒤를 중장보병이 밀집 대형으로 따라왔다.
로빈타는 힘으로 돌파하는 것이 기본 전술이었고, 교단은 장창병을 내세운 밀집 방진이 주 전술이었다.
‘지략형 장수라면 멍청하고, 무력형 장수라면 힘에 밀릴 것이다.’
수많은 전장을 아우른 로빈타의 거장은 확신에 차 있었다.
드넓은 평지에서 힘과 힘으로 싸우는 이상 전략은 먹힐 수 없었고, 오로지 전술로만 싸워야 했다.
어설픈 방진은 로빈타의 압도적인 중장비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
양쪽의 밀집 대형이 서로를 향해 전진했다. 흙먼지가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라인 배틀이 시작되었다.
장창을 세우고 전진하는 중장보병에 교단의 방진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휘관께선 설마 패배하실 생각입니까.”
교단의 지휘진, 그 안에서 전장을 살펴보는 음침한 사내가 빈정거린다.
긴 갈색의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남자는 뱀을 연상시키는 세로줄 눈을 갖고 있었다.
비아냥을 들은 칠흑의 사내는 아무런 미동도 하질 않았다.
그 모습이 답답해 보였는지 긴 갈색 머리의 사내는 음험한 입술 사이로 톱니 같은 이를 드러내 보였다.
“그분께서 지켜보고 있는데 재미없는 전개가 진행된다면 그대에게 좋을 건 없을 겁니다.”
사내의 으르렁거리는 말을 듣고서 칠흑의 청년이 눈가를 열어 보였다.
헬름 사이로 보이는 루비 빛 눈동자. 그것을 보는 순간 음침한 남성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오싹함이나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닌, 온몸의 세포 조각이 얼어붙는 듯한 착각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켜냈을 때, 칠흑의 청년은 차갑게 조소하였다.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건방진 소릴 지껄인다면 베겠다.”
대륙을 피로 적시고 있는 교단의 마왕.
그를 상징하는 붉은색 눈동자가 냉기를 뿜자 사내는 입이 얼어붙어 말대답도 하지 못했다.
비록 감시자이자 부관으로 마왕의 곁에 있는 그이지만 살기등등한 상관의 모습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우리 핀란드 참모님을 괴롭히시면 안 되죠, 총대장 각하.”
긴 머리카락의 음침한 남성의 이름이 핀란드였다.
칠흑의 마왕은 달갑지 않은 시선을 그에게 건넸다. 부드러워 보이는 금발의 곱슬머리를 가진 소년은 마왕의 시선에도 위축되지 않고서 싱글싱글하고 있었다.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소년은 커다란 전투 해머를 흔들며 이를 드러냈다.
“자, 또 죽이러 가시죠. 총. 대. 장. 각. 하.”
곱상한 얼굴과는 다르게 초승달로 일그러지는 광기 어린 눈동자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교단이 테헤라자드의 계시를 받고 키워낸 인형 중의 하나.
그를 보면서 칠흑의 청년은 차갑게 조소하였다.
“얼마든지.”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칠흑의 청년은 광기 어린 붉은 눈동자를 초승달 형태로 일그러뜨렸다.
* * *
‘어디에 있느냐, 리에르 아르빈트!’
티디딕!
귀에 익숙한 사복검의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허공에 춤을 추었다.
주변을 피보라로 만드는 순백의 아제리엘. 그중 에이스 나이트 피스가 밀집 대형의 선두에 서 있었다.
벌써 수 없는 교단 군을 베어 넘겼으나 리에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싸움에 집중하다 보니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도 없었다.
교단 군의 저항은 처음에는 거셌지만, 로빈타의 강력한 중장 보병에 점점 시체들이 쌓여갔다.
아제리엘의 기사들이 지휘하는 전장은 순식간에 로빈타의 우세로 점쳐지는 듯했다.
망루의 끝에서 전장을 굽어살피던 철의 대공 이실렌은 교단을 괴멸시키기 위해서 중장기병들을 양익에 전개했다.
다섯 개로 나뉜 밀집 돌격 대형, 그리고 양익으로 중장기병과 경기병들이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우회하기 시작한다.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전법. 망치와 모루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것은 용병술을 좋아하는 이실렌의 장기 중의 하나였다.
“교단이 로빈타를 우습게 보았나 보군요. 교단 군의 움직임이 둔한 것이 티가 납니다.”
이실렌의 부관은 점점 줄어드는 교단의 행렬을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에 출정 준비를 하고 군단을 끌어모았을 때는 나라가 멸망하는 것도 각오했던 터였다.
힘없는 교단의 모습에 보좌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지만 이실렌은 전장의 상황이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륙 최강의 힘을 지닌 리에르 아르빈트라면 전방에서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 당연했다.
무엇보다 리에르 아르빈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적혈의 악마라는 이명보다, 흑사자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그 돌파력에 있었다.
리에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실렌은 불안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을 말소시키기 위해 로빈타가 자랑하는 중기병과 경기병들이 반호를 그리며 적의 뒤를 치러가고 있었다.
이실렌은 교단의 포진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앞줄은 로빈타의 장창병과 순백의 기사들에게 전멸당했고, 그 여파 덕분인지 교단의 후미 열이 뒤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부관이 교단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고 비아냥거렸다.
이실렌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무너지기 시작하는 후미 열이 하나둘씩 일 열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재정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후미 열은 넓게 포진하더니 갑자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중기병과 경기병을 후퇴시켜라!”
보좌관은 이실렌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완벽하게 승리의 쐐기를 박을 순간인데 그것을 물리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이실렌은 다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하였다.
경기병과 중기병의 후퇴를 알리는 깃발과 나팔이 혼잡한 전장 속에 어지럽게 울려 퍼진다.
교단 군의 일렬, 그리고 이 열, 삼 열로 후미에서부터 나뉘기 시작한 포진은 마치 부챗살처럼 로빈타에게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른 경기병은 후퇴가 쉽지만 중기병들은 속도가 무거웠기에 돌진해 오는 교단의 기병들과 맞부딪히고 말았다.
전장에 다시 한번 어지러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지독한 흙먼지가 하늘을 가리기 위해서 피워 올랐고, 고약한 피비린내는 메마른 대지 위를 호수처럼 메워냈다.
마치 겹겹이 쌓인 파도 같은 진형이 긴 횡을 그리며 전진했다.
그 속에 파묻힌 중기병들과 장창병들이 순식간에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좌익의 경기병과 중기병을 우익으로!”
이실렌 대공의 명령을 전달하는 힘찬 나팔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아무리 숙련된 병사라 해도 갑작스럽게 변하는 진형은 혼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숙련된 부관들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이실렌 대공은 자신이 우려하던 인물이 서서히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피스, 알헨, 그라잔드, 오스카, 필립. 이리스 다섯 명을 우익으로!”
뿌우우!
뿔나팔과 함께 다섯 명의 아제리엘 깃발들이 마른 공기 속에 휘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