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68)
레필리아 레소드-269화(268/398)
레필리아 레소드 269화
2차 대륙전쟁(10)
와이번이라는 몬스터는 용의 한 종류로 인식되고 있었다.
실제 사람들이 인식하는 용, 즉 드래곤은 고도의 지능을 지닌 마법 생명체였다.
즉 살아 있는 생명 중 가장 강력함을 상징한다.
와이번은 드래곤은 아니지만, 비행 중 선회하는 공격이 유사했다.
강인한 발톱과 갑옷 재료로 인기가 많은 단단한 비늘을 지니고 있었다.
성인이 된 와이번은 일명 브레스 어택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죽음의 숨결을 맞은 이들은 맹독에 감염되어 순식간에 사망에 이르고 만다.
“아저씨보다 파워 어택 못하는 놈은, 아저씨가 나중에 단독 면담할 거다.”
철사 같은 수염을 흔들며 아로운은 담배를 뻐끔거렸다.
그러고는 시큰둥한 얼굴로 대궁을 연신 쏘아냈다.
아로운이 쏘아내는 화살은 마치 포탄으로 착각을 일으켰다.
비상하는 와이번들은 전부 화살 한 방에 즉사하고 있었다.
아니, 화살이 박혀 들어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와이번을 폭파하는 듯이 보였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은 적에게나, 아군에게나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서 연합 대장이자 페루의 지휘관인 패트릭 후작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적어도 최종 수비 전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저항은 예상하였다.
그리고 그 치열한 접전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유일하게 비행이 가능한 와이번 기사단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와이번은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신궁의 아로운을 시작으로 그가 직접 키워낸 파천대가 포격을 시작했다.
화살이 파공을 가르는 소리는 귀를 찢을 듯했다.
수북하게 날아드는 화살에 와이번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대패를 당했다.
패트릭의 동공을 여미며 꽉 쥔 손을 분노로 떨었다.
지금 이 순간 수치심으로 인해 그는 말을 잊고 있었다.
아주 기본적이고도 이상적인 전술이었다.
비상하는 와이번들이 공중에서 적들을 교란하고, 학살한다.
죽음의 숨결을 뿌리는 와이번, 그리고 그 위에서 창을 던지고 활시위를 당겨대는 용기사들은 적에게 죽음의 사신과도 같아야 했다.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관문을 열고 지상군이 총진격을 하면 끝나는 일방적 학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트릭 후작의 전술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펑, 퍼펑!
와이번들의 기괴한 비명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적들의 궁수 부대는 특수한 화살을 사용하는지, 적에게 적중한 화살은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하였다.
신궁 아로운뿐만 아니라 그가 데리고 있는 일당백의 궁수들은 그 누구보다 사냥꾼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패트릭 후작! 용기사들을 후퇴시키시오!”
보다 못한 크로노스 국의 지휘관이 대노하며 소리쳤다.
제대로 적과 싸워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추락한 와이번의 시체에 깔린 사망자가 셀 수도 없었다.
피 같은 와이번 기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패트릭 후작은 이를 딱딱, 소리 나게 떨고 있었다.
저 와이번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 용기사를 키워내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갔다.
그런 소중한 정예들이 겨우 싸구려 화살 한두 발에 비명횡사하는 것은 절망적이기만 했다.
“용기사……. 후퇴한다!”
패트릭 후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겼다.
자국의 자랑인 용기사를 이런 식으로 잃은 순 없었다. 망신만 당하고 물러서는 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전술을 바꿔서 패트릭 후작은 방패병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람의 몸 하나는 우습게 가리는 거대한 타워 쉴드 (Tower Shield)를 머리 위로 들고서 전진하는 전방 부대는 화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콰앙!
벼락 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타워 쉴드를 들어서 막고 있던 병사들이 거대한 화살에 꿰뚫렸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아로운은 와이번을 잡지 못하는 것이 영 아쉬운 듯이 쓴 입맛을 다셔 보였다.
하나하나 화살로 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타워 쉴드를 내세운 적의 전방 부대가 관문을 부수기 위하여 충차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충차가 관문에 부딪히니 그 진동이 관문탑 위까지 전해져 왔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다른 수성 병사들은 관문 바깥으로 기름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미끈거리는 기름이 타워 쉴드에 적셔지고, 몸을 축축하게 적시자 연합군은 두려운 눈빛으로 관문 위를 바라보았다.
관문 위에서 불꽃을 머금은 화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겁하며 방패를 집어 던지는 병사들은 불길을 피하지만, 뒤늦게 움직인 사람들은 지독한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관문을 부숴야 한다는 임무도 잊고, 몸에 달라붙은 불을 끄기 위해서 뒹굴고 비명을 지르는 연합군들을 바라보며 아로운이 껄껄껄, 웃어 보였다.
“적의 수는 보잘것없다! 밀어붙여라!”
패트릭 후작은 부대를 독려하면서 계속 밀어붙였다.
관문만 부순다면 전쟁은 더 이상 전쟁이 아닌 학살로 바뀔 수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의 이익이었다.
패트릭은 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소모시킬 수 있는 타국의 병사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
기름과 불화살이 날아와도 충차를 움직이는 연합군은 다시 한번 관문을 타격하였다.
틱, 티딕!
요란한 소리가 위기를 전달한다. 관문 위에서 화살을 쏘아내는 궁수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아직 적의 병력은 건재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관문을 파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리즈는 관문탑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선 채로 적군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적군의 방패병들은 충차에서 손을 놓지 않았고, 아직크의 마법 기병들은 불꽃의 주문을 외우며 관문을 태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뮤턴트 국이 가져온 공성용 사다리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페리안의 수성을 위협하였다.
‘뭐, 어쩔 수 없나.’
리즈는 천천히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진홍의 눈동자를 열어 보였다.
그는 지독한 광기 덕분에 한동안 전투에서 손을 떼고 살았었다.
한 번 발동하게 되면 막을 수 없는 광기. 리즈는 그것이 두려워서 전투에서 손을 떼고 살아왔다.
하지만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리즈는 자신의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흰 치아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깨물자 싸리한 통증과 함께 붉은 선혈의 꽃이 피어났다.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떨어질 만큼 아슬아슬한 위치.
리즈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정면을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기다란 그의 손가락들이 전장의 공기를 갈랐다.
그것은 마치 연주를 하듯이, 곡조와 운율을 조종하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로운 님, 전 연약하니까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리즈는 천천히 살기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눈동자를 찡그리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아로운은 철사 같은 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어 올렸다.
“네놈이 연약하다고?”
“네, 아주 연약하지요.”
리즈는 붉은 입술 사이로 흰 치아를 내비치며 요염하게 웃어 보였다.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두근거릴 만큼 매력적인 미소였다.
리즈는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핏방울을 들어 허공에 룬 문자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아로운에게 한 말처럼 리즈는 연약하고 연약했다.
단 그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약함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유혹에 약하고, 살의에 약했다.
나약한 정신은 언제나 처음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파공 안에 이르는 내 눈 안의 진자여…….”
뒤로 묶었던 리즈의 긴 머리카락이 타는 듯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펄럭이는 망토, 그리고 심상치 않은 마나의 충돌음이 주변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로운의 사냥꾼 부대가 날아드는 사다리차를 겨냥한다.
휘릭, 휙!
바람을 찢어 갈기는 화살촉은 단말마의 비명들을 불러일으킨다.
아로운도 어느새 입에 물은 담뱃재를 털 시간도 없이 대궁을 쏘아 올렸다.
그가 거대한 철궁을 쏠 때마다 사다리차와 충차들이 박살 나버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위력이지만 수적 너무도 열세였다.
드디어 관문을 뚫을 낌새가 보이자 신이 난 패트릭 후작은 검을 들고 앞에 나서며 연합군을 독려하였다.
패트릭 후작과는 다르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아직크의 대장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쿠르릉!
갑작스러운 천둥소리. 어느새 붉게 바뀐 하늘에서 시뻘건 구름들이 피워 올랐다.
그 사이로 누런 천둥들이 소음을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시야 안으로 리즈가 지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공을 가르며 유유히 움직이는 흰 손가락. 그의 지휘에 이끌리듯이 붉은 구름이 잔뜩 주름을 피워내며 꿈틀거렸다.
어느새 불기 시작하는 바람은 마치 칼날이 되어 모든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지금 내 앞의 모든 것을 절명하게 하소서.”
쿠르릉!
내리치는 번개가 벼랑으로 떨어져 내렸다.
붉은 섬광이 일으킨 돌 파편들이 떨어지자 페리안의 궁수 부대도 잠시 활시위를 멈추었다.
쾅!
충차의 충돌과 함께 관문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패트릭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희색을 드러냈다.
갑자기 치기 시작하는 천둥소리에 패트릭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두 눈을 여는 리즈 지센라이드를 중심으로 하늘이 붉은 기류에 휩싸여 회오리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리즈의 아름다운 얼굴이 미소를 그렸다.
붉게 물든 하늘에서 수십 가닥의 붉은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빛의 뱀과도 같았고,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을 벌하듯이 쏟아졌다.
관문을 넘어서려던 연합군은 거대한 핏빛 번개를 얻어맞고 산산조각 났다.
조금 전만 해도 옆에 있던 동료가 순식간에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병사들은 두려워서 도망치기만 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살기 위해 달려야 할 자신의 다리가 잘려 나간 채로 핏빛 강을 허우적거리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다시 한번 하늘에서 핏빛 번개가 내리쳤다.
콰과광!
수도 없이 내려치는 번개 가닥들은 대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도륙하였다.
삽시간에 핏빛 강을 이루는 전투 지대를 보면서 아로운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자기도 모르게 떨어뜨렸다.
하지만 연합군도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리즈의 고대어 주문에 맞서서 아직크의 마법병들이 마나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들이 친 마법진 가운데는 아직크의 대장, 중년의 여성이 붉은 후드를 덮어쓴 채로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이 학살자, 리즈 지센라이드의 마법!”
희열에 찬 그녀의 얼굴은 제자들의 마나를 받으면서 전 방위 프로텍터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연금 마술은 진짜 마법보다 못할지는 모르나, 효과는 확실했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마도사의 창.
그리고 새로운 여성 현자로서 이름을 알리는 그녀의 방패. 아직크에서 그녀가 페리안 침공 군대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페리안의 마도사이자 역사책에서 보았던 남자.
혼자서 마법을 터득한 천재이자 웨이브 캐스팅을 창안한 인물.
또한, 여성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이면 뒤로 잔혹함을 드러내는 마왕.
아직크의 마법병, 그리고 대장이 걸어놓은 전 방위 프로텍터가 푸른색을 뛰면서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내려 꼽히는 붉은색 천둥은 푸른색 방패와 격돌하며 요란한 충돌음을 흩뿌린다.
사방에 퍼져나가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마나 파편들이 잔상을 뿌리며 불똥처럼 흩어져 내렸다.
그것을 본 아직크의 대장은 호호호, 긴 웃음을 토해냈다.
천하의 리즈 지센라이드가 시전한 마법을 막아냈음은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리즈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현란한 마법 대결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연합군도 우왕좌왕하던 것을 멈추었다.
푸른색의 거대한 프로텍터 마법이 연합군을 휘감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패트릭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제 부서진 관문을 진군하라고 소리쳤고, 연합군은 일제히 진군을 시작하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직크의 대장을 본 리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던 그는 작게 조소하더니 검지를 입가에 넣고서 깨물어 보였다.
그의 전매특허는 웨이브 캐스팅. 끊임없는 연속 주문으로 적을 괴멸로 몰아가는 것이 장기였고, 조금 전에 쓴 마법은 그저 전채요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리즈가 아직 깨지지 않은 붉은 하늘을 다시 운용하려 할 때, 쐐에엑 하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창을 연상시키는 화살. 그것은 전 방위 프로텍터를 가볍게 뚫어 버린다.
그것에 그치지 않은 화살은 주문을 운용하고 있는 아직크 대장을 즉사시켜 버렸다.
삽시간에 붉은 피로 적셔지는 그녀를 보고서 아직크 마법병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어느새 리즈의 옆에 다가온 아로운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더 세거든? 아저씨는 마법이든 여자든 다 이기거든?”
경쟁하듯이 리즈를 바라보는 아로운은 보라는 듯이 아직크 대장의 시체를 가리켰다.
흐릿한 붉은 색을 띠고 있던 리즈는 아로운을 보면서 잠시 허탈한 듯이 피가 뚝뚝, 흐르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괜히 깨물었군요.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