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69)
레필리아 레소드-270화(269/398)
레필리아 레소드 270화
2차 대륙전쟁(11)
생전 처음 보는 두려운 마법 때문에 연합군은 이미 통솔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리즈가 캐스팅한 주문은 순식간에 1천 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마법의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밀집대형이었기에 피해는 클 수밖에 없었다.
포스라는 괴물이 쏘아낸 위력을 보고서 연합군의 사기는 급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크의 마법을 믿고서 정면 대결을 하려 했지만,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믿고 있던 아직크 대장이 순식간에 목이 떨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아직크는 통솔이 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법병이라 해도 그것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해 줄 지휘자가 필요했다.
모여지지 않은 마력들은 그저 화살만도 못한 공격으로 돌변했다.
애초에 리즈가 말했던 대로 오합지졸로 모인 군대에 불과했었다.
싸워야 할 이유도, 단합도 없는 그들의 군대는 각자의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움직였다.
거대한 마법에 공포를 느껴서 흩어지는 그들은 이미 군대가 아니었다.
“패트릭 후작! 지금 군을 통솔해야 합니다! 이대로 관문을 넘으면 그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의 전초전을 벌였던 아키서스, 그곳을 점령한 아렌드와 자하의 대장들은 멍 때리는 연합장에게 호소하였다.
눈에 보이는 효과는 분명히 거대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도 혼전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저런 마법이라면 적군은 물론이거니와 아군까지 피해를 보기 때문에 백병전에선 마법사가 효과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마법사가 힘을 발휘하는 전투는 적과 거리가 떨어진 소모전뿐이었다.
그 본질을 꿰뚫고 있는 아렌드와 자하 대장들은 패트릭 후작을 독려하였다.
하지만 이미 공포로 인해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패트릭 후작은 군을 통솔할 정신이 없었다.
다급하게 용기사들을 부르며 자신을 태워 이 전투에서 후퇴할 것을 명령할 뿐.
처음과는 다르게 겁쟁이인 패트릭 후작을 보고 아렌드와 자하 대장은 깊은 살의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분노 때문에 연합장을 베어 버린다면, 연합이라는 의미는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야말로 연합끼리 싸우게 되는 내분이 일어나고, 최고의 수혜자는 페리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만약에 페리안이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게 된다면 북 대륙은 물론이거니와 이 전쟁에 참여한 국가 전부를 흡수하는 괴력을 발휘할지도 몰랐다.
“어쩔 수가 없소. 군을 정비하고 다시 전투를 시작해야 하오!”
다른 연합군 소속인 크로노스 국 대장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크의 대장은 죽었고, 페루의 대장은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다.
강국인 페루의 대장이니만큼 그도 전장의 지휘에 능숙하겠지만 초반에 와이번 기사들을 힘없이 잃은 것은 지금의 결과를 낳고 있었다.
눈앞에 부서진 관문, 그곳만 지나가면 이 모든 전투를 뒤바꿀 수 있었기에 아렌드 국의 대장은 이를 뿌득, 뿌득 갈았다.
아쉬운 듯이 관문을 바라보는 그의 눈 안으로 페리안의 군사들이 진출하는 것이 보였다.
아렌드 국 대장은 추격이라도 시작하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지금 전열이 무너져서 후퇴하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연합군은 대군이었다.
언뜻 봐도 숫자가 많지 않은 아키엔드에 상주한 페리안 군만으론 추격했다가 제 목을 조이는 격이었다.
어쩌면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덕분에 대반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것이 스쳐 지나가자 앞서 나가고 있는 다른 지휘관들을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아렌드 국 대장의 말을 들었는지, 앞에 가던 지휘관들이 하나둘씩 말을 멈추기 시작하였다.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그것은 곧 모래성의 기대처럼 산산이 흩어져 내린다.
후퇴하던 연합군은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지휘관들은 곧 연합군을 가로막고 있는 이유를 지켜보게 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수북한 군마가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연합군을 향해 돌격을 시작하였다.
언뜻 보아도 3만 이상은 됨직한 대군. 페리안을 상징하는 군기가 펄럭였다.
“설마…….”
아렌들 국의 대장은 앞과 뒤로 포위된 것을 보고 가슴 한 켠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쪽 팔을 잃고, 반역을 일으킨 부친에 대한 사건이 있었어도 여전히 페리안의 제1기사로 남아 있는 레온.
그리고 말수는 적지만 항상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은 완벽하게 해내는 수성의 달인 프세.
페리안이 건설되었을 때부터 존재했던 두 명의 기사와 새로 영입된 기사들이 포함된 포진이 시작되고 있었다.
덕분에 연합군들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부서진 관문에서는 붉은 머리카락의 미남자와 대륙의 신군이 거느리는 부대들이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즈 지센라이드, 제2의 포스이자 죽음을 관장하는 매혹적인 남자의 등 뒤로 붉은 깃털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관문을 향하여 돌진하라!”
연합장인 패트릭 후작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아직 잔존해 있는 와이번 기사들이 있었고, 전면의 대군을 상대하기보단 관문 쪽으로 질주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다른 지휘관들도 함정에 당한 이상 차라리 관문을 돌파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때였다.
아키엔드 관문의 양옆으로 있는 벼랑의 끝에서 커다란 돌과 나무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연합군은 전투를 위해서 정비를 하던 중, 난데없는 공격에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이미 예전부터 리즈가 대기 시켜두었던 산병들은 벼랑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며 연합군을 공격하였다.
붉은 미소를 흘리며 리즈는 순혈로 물든 눈동자를 들어 보인다.
“남김없이 전부 혈액으로 만들어 드리죠.”
패트릭은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군사적인 면에서 이렇게까지 밀릴 수는 없었다.
언뜻 보아도 3만 이상을 웃도는 페리안의 군사는 예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정찰병을 통해 알고 있는 정보로는 페리안에게 이 정도의 군대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오로지 단 하나.
‘동쪽에서 관문 수비를 포기했다?’
양쪽 관문을 틀어막고 버틸 줄 알았던 페리안은 오히려 총력전으로 나서고 있었다.
사면으로 둘러싸인 연합군이 학살을 당하고 있을 때, 패트릭 후작의 생각과는 다르게 동측 관문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동으로 진격하는 연합군의 장은 갈테오 영지의 대장군이었다.
약 60세를 넘긴 헬리온이라는 노장수는 뛰어난 전략도, 뛰어난 전술도 지니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전장을 누벼온 그는 오트리아 제국에서도, 그가 몸담은 갈테오에 있어서도 신뢰받는 장군이었다.
비록 나이는 많으나 젊은 기사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용맹한 무관이었기에 동쪽 연합군은 그를 장으로 하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지금쯤 서쪽 연합이 관문을 공략하고 있을 것이오, 우리는 일단 동쪽 관문과 탐색전을 벌이겠소.”
흰 수염과 흰 머리카락을 가진 노년의 대장군이 하는 말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들 연합군은 동과 서로 갈라질 때, 서쪽으로 전력을 더 갖추었다.
페루가 자랑하는 와이번 기사단, 그리고 마도병을 내세운 아직크의 파괴력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쪽 연합군은 탐색전을 벌이고, 서쪽이 관문을 돌파하면 총력전을 펼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 관문 앞에 있는 그들은 서쪽 연합군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아니여, 오늘 안으로 점령하면 돼여.”
노 장군의 말을 가로막는 낭랑한 음성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꽂혔다.
내로라하는 지휘관들의 시선이 모여들자 말에 타고 있는 흑발의 여성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타고 있는 말에 얻어 탄 보라색 머리의 소년은 흐리멍덩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린다.
“도련님,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흑발의 여성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보랏빛 머리의 소년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도 보랏빛 소년은 쩝쩝거리며 초콜릿 과자를 물어뜯고만 있었다.
“왜? 사샤는 이기는 게 싫어?”
소년은 입가에 잔뜩 초콜릿을 묻히고서는 뚱한 얼굴로 사샤라 부른 여성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용병왕 니드 님의 자제분이라 할지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 말하는 것이 아버님의 누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피리네오 영지의 지휘관은 최대한 점잖게 말했으나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일찍이 검 하나만으로 나라를 만들었던 영웅. 사람들은 루카스의 왕을 존경을 담아 용병왕이라 불렀다.
루카스 국의 지휘관으로 참여한 꼬마는 이제 갓 열 살이 넘어 보였다.
더군다나 혼자 말을 탈 줄도 몰라서 보호자인 여성에게 얻어 타는 한심함을 선보이고 있었다.
“허허, 나무라지 마시게. 연합군의 지휘관으로 왔으니 그도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라네.”
너그러운 노인처럼 너털웃음을 터뜨린 갈테오 대장군 헬리온은 사려 깊은 이해심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용병왕 니드의 아들, 나스는 손에 묻은 초콜릿을 혀로 핥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이상한 걸여. 시간을 끌면 우리가 질 건데 왜 기다려여?”
다시금 중얼거리는 소년을 보고 피리네오 지휘관은 울컥해서 흑발의 여성을 노려보았다.
소년의 보호자, 사샤는 찔끔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헤헤, 겸연쩍은 얼굴을 지어 올린다.
“용병왕께서도 자신의 아들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것이니 괜찮네. 껄껄.”
다시금 연합장, 헬리온이 너털웃음을 터뜨려 보였다.
소년의 보호자인 사샤는 연신 죄송하다는 듯이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작게 중얼거림을 내뱉는다.
“어휴, 도련님. 손에 묻은 것은 핥지 마시라니까요.”
품위 없는 행위를 나무라며 사샤는 소년의 지저분해진 손을 손수건으로 닦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본 피리네오 영주는 크게 웃으면서 손사래를 쳐 보였다.
“루카스 왕국은 멀리서 과자나 먹으며 구경하고 있게. 전쟁이 무엇인지, 영웅의 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줄 테니 말일세.”
치욕적인 말을 들어도 사샤는 미간을 살짝 찌푸릴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용병왕 앞에서도 그렇게 말해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
지휘관들이 전쟁의 개시를 위해서 북을 울리고, 공성용 사다리차와 충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강철의 갑주를 걸친 용맹한 병사들은 방패와 창을 전면에 내세우고 곧 있을 전쟁을 대비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사샤의 품 안에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사샤, 우리 몇이나 있어?”
“네?”
엉뚱한 그의 말에 흑발의 여성은 잠시 생각을 골똘히 하더니 답하였다.
“루카스 2만, 갈테오 1만5천, 피리네오 3천, 갈라파고스 5천 도합 4만 3천의 대군이지요.”
“그렇구나……. 그럼 우리가 더 많이 먹으니까 지겠다.”
엉뚱한 소년의 말에 사샤는 난색을 보였다.
원래 왕실에 있을 때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였지만, 전장에 나오고 나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도련님, 전쟁은 많이 먹고 지는 거로 지는 게 아니라요…….”
“아냐, 저쪽은 우리보다 조금 먹는걸…….”
품에서 다시 초콜릿 과자를 하나 꺼내며 소년은 중얼거린다.
희미한 그의 눈동자 안으로 전쟁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연합의 대군이 대지를 진동시키며 함성을 포효하였다.
곧 이루어질 전투를 위하여 사기를 극대화로 올리는 노장, 헬리온의 모습을 보면서 은회색 머리칼의 청년은 눈가를 열어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연합군은 둘로 갈라졌어도 대군이었고, 사기 또한 드높았다.
아무리 좁은 입구를 지니어 수성에 유리한 관문이라지만 저런 대군을 겨우 5천으로 막기는 불가능하였다.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쪽 관문에서 리즈가 빠른 승리를 거두고, 지원을 오는 것뿐이었다.
5만의 페리안 군은 적의 공세를 막기 위하여 둘로 갈라졌다.
서쪽으로 간 리즈와 아로운은 4만 5천의 군사를 가지고 있었고, 유트는 5천의 군사를 데리고 있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으로 서쪽이 적군을 정리하고, 동 연합군을 초토화한다는 도박 같은 전략.
그것이 먹힐지, 안 먹힐지는 유트로서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의심은 불필요하다는 듯이 검은 머리의 중년인은 입을 열었다.
“저녀 걱덩 할 거 엄습니다, 베리타스.”
중년의 남성은 콧수염과 턱수염에 빵조각을 잔뜩 묻히면서 연신 먹고만 있었다.
그런 중년의 남성, 페리안의 전략 군사인 빅스터 나이브만을 보면서 유트는 쓴웃음을 머금어 보였다.
“물론 난 그대들을 믿습니다.”
“더 믿으셔도 됩니다.”
겨우 빵을 억지로 삼켜내면서 빅스터가 작게 웃어 보였다.
시간이 길어지면 페리안은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시간이 짧아지면 페리안은 불리해진다.
이미 전략적인 준비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빅스터는 유트 왕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전쟁은 먹기만 하면 이기니까요.”
다시 빵을 우깃우깃 씹어 먹을 분위기로 빅스터는 가져온 가죽 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구운 지 얼마 안 되는 빵 특유의 온기.
향긋한 계피 냄새를 맡으며 빅스터가 유트에게도 빵 하나를 넘겨주었다.
얼떨결에 빵을 집어들은 유트는 어색한 얼굴을 지어 올렸다.
빅스터의 머릿속에는 이 전쟁의 승리만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 전쟁이 끝난 후에는 페리안은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전부 갖출 수 있게 된다.
부족했던 인재들도 보충하게 되고, 더 넓은 지배력으로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국이 되고, 나아가서는 힘을 잃은 제국마저도 집어삼킬 자신이 있었다.
유트를 왕이 아닌, 황제로. 비어버린 황좌에 앉을 영웅을 자신이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빅스터는 흥분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빅스터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연합군의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진주가 곧 광채를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