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72)
레필리아 레소드-273화(272/398)
레필리아 레소드 273화
로빈타 전쟁(1)
아무리 많은 병사를 벤다고 해도, 전쟁이 당장 끝나진 않는다.
하지만 지휘관이 죽게 되면 군대는 통제를 잃고, 정보 차단이 이루어진다.
즉 그 군대는 더 이상 군대가 아니게 되었다.
리에르는 정면 돌파를 위해서 칠흑의 검, 아르카를 들어 올렸다.
그것이 겨냥하는 것은 높은 망루 위에 앉아 전장을 내려다보는 철의 대공, 이실렌이었다.
리에르가 전면에 나선 모습을 보면서 이실렌은 중장보병을 밀집시키며 중앙 수비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이실렌은 리에르가 자신의 목을 노릴 것을 알고 있었다.
리에르가 적혈의 악마였던 시절부터 그는 항상 중추적인 인물을 제거하는 암살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최강의 무력은 전쟁에서 더없이 무서운 것이었다.
“로빈타의 위대한 병사들이여! 로빈타를 빛내는 용맹한 국민들이여! 로빈타의 아들들이여, 이 전투로 인해 그 어떤 적도 위대한 로빈타를 넘보지 못할 것을 약속한다! 나, 철의 대공 이실렌 폰 페를네아브가 말하노니!”
로빈타를 상징하는 철의 권위를 상징하는 로드.
그것을 들어 교단을 겨누는 이실렌은 노쇠한 몸에 걸맞지도 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포효하였다.
“용맹함의 상징이 무엇인지, 승리자가 누구인지, 마왕의 목을 베어 전 대륙에 공표하겠노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벅참.
로빈타를 수호하는 중장병들이 무구를 들어 올리며 포효하였다.
첫 전투에 이은 두 번째 전투도 승리할 것이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밀집된 중앙 대형의 양옆으로 중장 보병들이 날개를 이루고, 언제든 순백의 기사들이 템플 나이트를 이끌고 적 중앙으로 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백의 아제리엘, 그 에이스라고 지칭되는 남자는 이 넓은 전장에서 마왕, 리에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리에르 아르빈트…….’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병석에 있던 그는 복수의 날을 갈면서 일어섰다.
피스 메이커는 자신의 무기를 들어 올리며 전면에 있는 리에르를 향하여 겨누었다.
그의 사복검은 이전과 다르게 노란색 번개를 치지직 피워내며 불길함을 예언하였다.
‘오늘 넌 죽는다.’
피스 메이커는 검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검에 로빈타 수호의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새삼스럽게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대륙 최강의 중장 기병들은 랜스를 세웠다.
절대적인 악, 이 대륙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들. 종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폭주하는 군사 집단을 향한 로빈타의 반격.
그것의 신호가 되는 뿔 나팔 소리가 전장에 길게 드리 내렸다.
일제히 중장보병들은 장창을 들고서 적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로빈타 왕국의 장기인 밀집 대형, 그리고 양익으로 중장 기병들이 랜스를 이용해서 측면 돌파를 할 셈으로 철마를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것을 사용할 텐가.’
로빈타 군을 지휘하는 철의 대공은 선두에 서서 달리는 순백의 아제리엘, 피스 메이커를 바라보며 되뇌었다.
룬 위시(Rune Wish).
강력한 힘을 가진 로빈타의 아티팩트.
아티팩트란 신의 힘을 지닌 물건을 말하며, 그 개체에 따라 각기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때때로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강력하며, 어떤 것은 매우 미시적이어서 발견하기도 어렵다 하였다.
일찍이 인류 초대 영웅인 아리아가 여신 아라미아에게 받은 다섯 무구들은 영웅 왕의 사후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중 하나인 룬 위시는 번개를 발하는 액체라는 것 이외에 역사서에서도, 아리아 연대기에서도 나와 있질 않았다.
이실렌조차도 처음 룬 위시와 고문서를 발견했을 때에도 아티팩트로서의 존재를 긴가민가했었다.
평생에 걸쳐 그것을 연구한 결과 이실렌은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얇은 지혜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이실렌은 오늘의 전쟁에 승리해야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만약에 마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교단의 기세는 꺾을 수 없었다.
로빈타의 백성뿐 아니라 전 대륙이 교단의 먹이로 전락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실렌은 자신이 총애하는 순백의 기사 아제리엘, 그곳에서 최강의 전투 능력을 지닌 피스 메이커에게 로빈타의 아티팩트를 넘겼다.
비밀리에 가문의 수하들에게 시켜서 깊은 곳에 안치해 두었던 룬 위시가 담긴 통.
그것을 개봉했을 때에 짙은 안개만 끼어 내린 채, 응답하지 않았었다.
마왕 리에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 이상의 힘이 필요했고, 로빈타에게는 그 힘이 절실하기만 했다.
이실렌에게도 응답하지 않던 룬 위시는 복수를 위해서 살아가는 피스 메이커에게 유일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룬 위시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유리병이 깨지며, 자장은 띈 누런 액체들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림한 룬 위시는 현란한 자장을 허공에 뿌려내며 피스 메이커의 어깨에 감싸아졌다.
그것은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의 망토같이 사용자를 감싸 안았고, 절대적인 무력을 얻게끔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실렌은 예감하고 있었다. 룬 위시는 절대로 동화 속 이야기처럼 따뜻한 전설만 있진 않을 것을.
양 군의 고함과 함께 진격이 시작되었다.
로빈타의 군대는 밀집 대형으로 양익을 열고서 진격하였다.
교단 군은 첫 전투와 마찬가지로 사선진을 열은 상태였다.
이실렌의 예상처럼 칠흑의 마왕은 이번에도 최전선이었고, 이번에도 극단적인 쐐기 진형의 돌격 형태로 돌격해 왔다.
실제 전쟁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는 극단적인 진형이었다.
말 그대로 최전선에 있는 자는 소수이며, 뒤로 갈수록 병력이 증가하는 형태인데 이것은 힘의 집중력은 좋을지 모르나 병력의 소실이 큰 진형이었다.
자신의 무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는 진형.
이실렌은 다른 지휘관들처럼 리에르의 행동을 비웃을 수 없었다.
어지간한 무력을 지닌 이들이 사용한다면 저보다 한심할 수 없지만, 대륙 최강의 돌파력을 지닌 리에르 아르빈트가 돌진해 온다면 그것만큼 두려울 수는 없었다.
강력한 힘을 소유하는 만큼, 소중한 무언가를 내놓아야만 했다. 피스 메이커라는 인재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악마라고 손가락질을 당한다 하여도 이실렌은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실렌의 생각처럼 피스 메이커도 이 전쟁, 아니, 리에르 아르빈트라는 원수를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다.
자기 자신 하나만 바라보면서 모진 고생도 감당해야만 했던 어머니와 여동생.
리에르에게는 그저 이름 모를 먼지들, 혹은 알고 싶지 않은 죽음들이라 하여도 피스는 보여주고 싶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리에르 아르빈트에게 자신이 죽인 자의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키고 싶었다.
“네 목을 베겠다, 리에르 아르빈트!”
기합을 내지르며 피스는 사복검을 들어 올렸다.
황금빛으로 찬란한 그의 망토는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검에 기운을 새겨 넣었다.
치지직!
강력한 황금빛 번개가 소음을 동반하며 사방을 밝혔다.
피스는 아티팩트를 사용하자 몸의 곳곳이 고통스러운 것을 느꼈다.
이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는 피스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비며 살아왔던 그의 감은 이 전투가 승리든, 패배든 마지막을 바라보게 하였다.
가족이 죽고 절망적인 나락에 빠졌던 피스에게 맛있는 음식이든, 향기로운 음악이든 그 무엇도 무미건조하기만 하였다.
물론 슬픔만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우들과의 시간은 소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의 아가씨.
그녀의 아치형 눈썹이 웃음 짓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항상 그녀 앞에서 쩔쩔매고, 그런 자신을 구박하는 대공의 손녀 마리엔느와 함께 한 시간은 소중했었다.
그것은 무릇 남녀 간의 애정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여동생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그녀가 웃는 모습은 피스에게 행복을 전달해 주었다.
하찮기만 한 피스 자신의 존재를 아들처럼 대해주었던 이실렌 대공의 상냥함은 살아갈 이유를 전해 주었다.
피스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머금어졌다.
마지막 전투가 되어서야 그는 깨달았다.
이번 전투에 목숨을 건 이유는 마왕에 대한 복수 때문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피스 그가 사랑하는 두 번째 조국. 어느새 생긴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들을 만난 이 땅을 수호하고 싶었다.
지키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하찮은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바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여도.
“하아아압!”
피스가 기합과 동시에 잘 단련된 오른팔을 들어 사복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번개가 산화됨과 동시에 위협적인 소음들을 내뱉었다.
마치 날카로운 뱀의 독니처럼 날아드는 검 끝.
칠흑의 마왕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독니를 보고서 아르카를 휘둘렀다.
이번에도 피스의 공격은 무위로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피스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며 손목을 회전했다.
그와 동시에 튕겨 나간 줄 알았던 그의 검 끝은 회전하며 방향을 선회했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았다.
-Master에게 보고. 두 번째 아티팩트, 룬 위시 발동하였습니다.
사복검은 아르카이제에 휘감긴 채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 순간 검 끝을 타고서 황금빛 전류가 벼락처럼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리에르는 무덤덤하였다. 그에게는 포스의 힘이 있었다.
-회피할 것을 권유합니다.
리에르는 아르카이제의 경고음을 들었다.
모든 힘을 흡수할 수 있는 존재에게 있어 그런 경고는 불필요한 것에 불과했다.
치직, 치지직!
심상치 않은 소음과 함께 전류는 석셔너를 상징하는 칠흑의 장막을 꿰뚫었다.
리에르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다급히 수비를 하려 했다.
퍼엉!
리에르는 실로 오랜만에 통증을 느꼈다.
묵직한 타격을 입은 리에르는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마비를 놓치지 않고 피스는 기합을 지르며 검을 뒤로 끌어당겼다.
피스의 금빛 체인에 묶인 아르카가 리에르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피스의 등 뒤로 황금빛 망토가 펄럭이면서 광활한 나선포를 생성해냈다.
펑, 펑! 콰과광!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교단의 병사들이 금빛 나선에 꿰뚫리며 힘없이 죽어 나갔다.
황금빛 나선에 닿는 모든 것은 뼈와 살이 분해되었다.
단단한 갑주라 해도 그것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리에르의 전면으로 검은색 자장들이 어지럽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피스가 쏘아 낸 금빛 마력 포들을 전부 흡수했다.
치이익!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금빛과 칠흑이 한데 엉켜 그을음과 연기를 허공에 피워냈다.
리에르는 아르카이제를 묶고 있는 피스의 검을 다른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장난감 하나 주웠다고 나와 마력 대결이라도 하자는 거냐.”
차가운 얼굴로 이죽거리는 리에르의 모습.
그것을 보며 피스는 이를 사리물어 보였다.
황금빛으로 찬란한 망토 형태의 마나가 굉음을 뿜어내며 나선포를 생성시키기 시작했다.
“좋은 무기를 얻으면 강해지는 건 줄 알았나?”
강력한 나선 포들이 다시 한번 수십 가닥으로 어지럽게 쏘아졌다.
피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드는 황금빛 번개들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는 침착했다.
“어울리지 않는 전투 법. 익숙하지 않은 장난감에 맞춰서 덤비는 것으로 날 잡을 수 없어.”
리에르의 등 뒤로 칠흑의 깃털들이 펄럭이기 시작하였다.
황금빛 잔상을 뿌리며 날아드는 번개의 창.
붉은빛 안광을 흩뿌리며 날개를 펼쳐 낸 마왕의 앞으로 칠흑의 장막이 커튼처럼 형태를 갖추었다.
룬 위시의 힘으로 만들어진 나선 포들은 리에르가 만들어 낸 검은 기류에 몽땅 흡수되어 버렸다.
피스는 이를 사리 물으며 자신의 사복검을 회수하기 위해 손목을 흔들었다.
하지만 단단히 붙잡은 리에르의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이명을 잊었나?”
붉은빛 마왕의 매혹적인 미소.
그 중얼거림과 함께 리에르 아르빈트 앞을 지키고 있던 칠흑의 커튼들이 넓게 펼쳐졌다.
그와 함께 금빛 나선 포들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석셔너 오브 포스. 말 그대로 흡수할 권리를 지닌 존재였다.
“빌어먹을!”
피스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