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8)
레필리아 레소드-28화(28/398)
레필리아 레소드 28화
리에르와 유트(3)
리에르는 괜히 잠자는 사자를 깨워서 으르렁거림을 듣기 싫었다.
그렇기에 일단 집에서 도망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어머, 일찍 일어났네. 리엘.”
우연하게도 만난 에레사는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긴 금발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땋고, 타이트한 바지를 입었다.
덕분에 그녀의 탄력 있는 라인이 잘 드러나 보인다.
그것은 지나가던 남성들의 시선을 빼앗는 마법이었다.
“오늘 본선 시합 있나?”
“응, 오늘 본선만 이기면…… 결승전에선 만날 수 있겠네?”
에레사는 리에르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면 두 사람은 적이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에레사와 한 팀이 되어서 싸우는 것은 본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에레사와 그의 연인 티미의 앞을 가로막는 적일 뿐이었다.
에레사와 적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당장 한 번 이기기도 힘든데, 결승은 무슨.”
“그래도 유트랑 함께잖아.”
“그 녀석 혼자서 계속 싸우게 둘 수는 없잖아.”
“유이도 잘하고.”
“충혈 눈알은 요리조리 쥐처럼 잘 피하고 다닐 뿐이지.”
“그럼 결국 리엘이 잘해야겠네?”
에레사의 말에 리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몸은 좀 괜찮아?”
에레사의 다정한 말에 리에르가 투덜거렸다.
“어때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리에르는 허세 가득한 몸풀기를 했다.
“아직 머리가 아픈 것으로 보여.”
“머리는 원래 나빴어.”
에레사는 리에르에게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제는 정말 대단했어. 내 친구들도 너 기억하더라.”
“잘생겨서?”
“아니, 지저분해서.”
에레사의 대답에 리에르는 잔뜩 얼굴을 구겼다.
“못생기고, 둔하고, 성격 나쁘고, 실력 없는 아르빈트가 어제 혼자서 랭커들까지 올킬 했다고 화제였었어.”
“그 앞의 말은 빼면 안 돼?”
“어차피 사실이 아닌데, 뭐 어때.”
“그러려나.”
리에르는 볼을 긁적였다.
“파엘 오빠나 유트 같은 사람이랑 어울려 다녀서 그렇게 저평가된 거니까 걱정하지 마.”
“웬일로 나를 칭찬해?”
“난 항상 칭찬했거든? 네가 기대를 어긋나게 해서 문제였지.”
“기대할 사람에게 해야지.”
리에르는 투덜거림을 내뱉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대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축제도 열띤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구경거리를 찾아 모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많아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대를 어긋나게 할 것 같지 않아.”
에레사가 빙긋 웃으면서 리에르에게 말했다.
리에르는 에레사의 티 하나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감동했다.
“나한테서 형이나 유트 녀석을 바라지 마.”
“다치지나 마.”
“나만 보면 맨날 다친다는 이야기만 하냐?”
“경험은 무시 못 하는 거거든.”
에레사의 말에 리에르는 할 말이 없어졌다.
구경거리를 찾아온 사람들은 올해 챔프는 누가 될 것인지를 기대했다.
당연히 유트는 항상 0순위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대회는 팀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유트의 팀은 랭킹 밖의 팀원만 존재했다.
이런 팀으로는 우승은커녕, 8강 안에 드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현재 대회에서 배팅이 가장 많은 팀은 티미 아크우드였다.
그의 팀은 카이샤의 실력자만 포함되었다. 그중 한 명은 에레사였다.
“리엘, 사람들이 널 주시하고 있어.”
“널 보는 거잖아.”
리에르가 대답하자, 에레사가 주변을 다시 휙휙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리에르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냐. 제라드 팀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었어.”
“걔들이?”
확실히 거기 팀은 자기들은 제법 강하다고 자뻑을 하긴 했었다.
“준프로인 사람들이었는데 너한테 올킬당했잖아.”
리에르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어 보였다.
“무감각한 것도 병이다, 정말.”
“응? 뭐가?”
에레사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사람들이 시선은 리에르에게 향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리에르가 대단해서 보는 것이 아니었다.
못생긴 놈이 늘씬한 미인을 옆에 끼고 다니는 것이 고까운 시선이었다.
에레사의 둔함에 리에르는 조소했다.
“유트랑 티미랑 누가 우승하려나?”
“당연히 티미지.”
“유트 그놈 엄청 강하잖아.”
“티미는 약하냐? 그리고 이번엔 팀전이잖아. 유트 원맨팀이더만.”
“삼 년 연속 챔프 달성을 보려 했는데 아쉽네.”
사람들의 대화가 리에르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
‘두고 보자.’
리에르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오늘 엄청 놀라겠네.
아르미안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소리를 냈다.
“소문으로는 팔검 기사 엘빈이 와 있다는데?”
“그 내장수집가?”
리에르는 엘빈의 이야기를 듣고는 속이 안 좋아졌다.
내장수집가.
엘빈의 변태적인 성향을 너무나 잘 설명해 놓은 호칭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검제의 제자까지 왔다던데?”
“검제가 제자를 뒀다고?”
“어제 특별히 등록되었다고 하더군.”
“이야, 이번엔 어찌 될지 모르겠는데.”
검제의 제자라는 단어에 리에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 밉살스러운 갈색 머리 호모도 참가하는 것 같았다.
‘아주 박살 내주지.’
리에르는 명분이 생겼다고 내심 노리고 있었다.
“표정이 흉악해졌어.”
“내가 흉악하면 세상 사람들 전부 범죄자인상이겠다.”
“리엘……. 미안해…….”
“차라리 딴지를 걸지, 왜 사과를 하는 거야?”
에레사의 불필요한 사과를 끝으로, 두 사람은 각자의 대기실로 헤어졌다.
리에르는 에레사가 다른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한숨이 흘렀다.
에레사와 적.
리에르는 되도록 그녀와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건 비극과도 같으니까.
대기실에 들어오자 화제의 인물인 유트가 손 인사를 해 보였다.
“길 안 잃고 잘 찾아왔네?”
“에렌이랑 같이 왔어.”
“쳇.”
유이가 한쪽 구석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리엘, 뭔가 달라진 것 같다?”
유트는 리에르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확실히 뭔가 달라졌는데.”
유트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멍청함이 더 늘어났어.”
유이의 밉살스러운 말에 리에르가 주먹 감자를 먹였다.
유이는 엄지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이며 도발했다.
“네 보호구 준비해 놨어.”
“어, 고맙.”
리에르가 보호구를 착용하는 동안 유트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선봉이니 네가 보호대를 사용하게 될 시간은 없을 거다.”
“칫……. 원숭이를 제물로 삼아야 한다니깐.”
유이는 유트가 선봉으로 나가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 선봉으로 나가도 상관없는데.”
“아니, 어제 일을 생각하자면 걱정이 돼서.”
유트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유이는 옆에서 한마디 던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미친 원숭이 같았지.”
“응, 꺼져. 충혈 눈알.”
“관중석에서 바나나 구걸이나 하시지, 미친 원숭아.”
두 사람의 투덕거림을 보며 유트는 잔잔하게 웃어 보였다.
곧 팀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퍽!
탁!
툭!
유트의 선언은 절대로 광오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유트 로사리오! 2년 연속의 챔프입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몇 번의 대전을 거치고 본선에 올라온 팀이었다.
하지만 유트가 선봉으로 나가자 시합이 끝나는 데에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탁!
퍽!
퍽! 퍼퍽!
그다음 시합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하지 마, 바보 원숭이.”
“네 오빠는 진짜 나쁜 자식이야.”
유트에게 순식간에 발린 상대 팀은 하나같이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쪼금만 인정.”
유이는 절망하는 상대 팀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들은 이야기보다 더 괴물이군.”
엘빈은 유트의 시합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타인에게 무감각하고 베는 것만을 생각하는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엘빈은 파에트와 같은 유격 기사단이란 것을 제외하고도 왕래가 잦은 사이였다.
같은 기수였던 것도 그러했고, 난관을 같이 헤쳐 나왔던 시간도 그러했다.
그런 파에트는 종종 엘빈에게 중얼거리던 것이 있었다.
유트 로사리오라는 천재 소년과 자신을 싫어하는 착한 동생 이야기를.
“어떻습니까? 파에트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엘빈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유트를 가리켰다.
제이미의 눈길은 유트를 보며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쟤 뭐야?”
“파엘 경이 아끼던 후배랍니다.”
“잘 모르겠어.”
제이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나이 또래에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지금 유트의 경기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지…….’
제이미는 영지 내 최강의 기사들이 모여 있는 성안에서 그들이 하는 검술을 지켜보았다.
현 대륙 최강자라고 불리는 신검 로이스타에게 검술을 사사 받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처음 마주하는 유트의 모습에서 파에트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울러 감각적으로 그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는 신호가 전해져왔다.
‘짜증 나.’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도 이런 연약한 여자의 몸이 아닌, 사내의 몸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고.
“우리도 본선 시합을 준비하죠.”
제이미는 분한 마음으로 으르렁거렸다.
“피라미들에겐 관심이 없지만, 유트 군과 리에르 군이 기다리는 준결승으로 올라가려면 힘내야겠군요.”
“아니, 선봉은 내가 설게.”
엘빈은 제이미의 얼굴에서 투지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시죠.”
엘빈은 음험하게 웃어 보였다.
분명 유트의 시합을 보고 자극받은 것이리라.
아니, 어쩌면 여성인 자신의 한계치를 부정하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너란 녀석은 위기라든지, 어렵다는 건 전혀 모르는 거냐?”
리에르는 올킬을 달성하고 들어오는 유트를 보며 뚱하게 축하를 전했다.
그의 말에 유트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타월을 받았다.
“항상 위기고, 항상 어려워.”
유트는 타월로 땀을 닦고서 목에 걸었다. 양심도 없는 그의 말을 리에르는 비웃는다.
“넌 이럴 때 보면 정말 나쁜 녀석이야.”
리에르가 그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유트를 상대한 녀석들은 하나같이 검 한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어도 준결승까지 올라올 사람들이라면 실력자인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상위 실력자들은 마치 운만으로 올라온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트는 리에르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저어 보이며 입술을 열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통하는 거고, 다음은 현 유격기사다.”
유트는 냉정한 눈으로 자신이 떠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현 유격기사 엘빈과 신검의 제자라는 제이미가 나서고 있었다.
“각 팀 선봉 앞으로.”
주심의 말에 따라 제이미는 앞으로 나섰고, 상대 팀에서도 180은 넘어 보이는 거구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집애 같은 놈이군. 칼은 들고 다니냐?”
“리에르 같은 놈.”
거구는 제이미의 말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는 나는군.”
“내가 아는 최고의 욕을 한 거다.”
제이미는 그렇게 말했다.
“왠지 불쾌한데.”
“왜? 저 사람이 아르빈트 아저씨의 제자라서?”
유트의 말에 리에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그냥 기분이 별로.”
“털 달린 원숭이는 주기적으로 바나나를 섭취하지 못하면 주인에게 화를 내는 법이지.”
유이와 리에르가 서로 주먹을 들고서 투덕거리는 사이에 유트는 시합이 개시된 경기장 위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