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82)
레필리아 레소드-283화(282/398)
레필리아 레소드 283화
로빈타의 횃불(1)
로빈타 수도 함락 1개월.
강철의 대제가 이끄는 로빈타 중장기병들이 대파 당한 지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로빈타 구국의 영웅이 패배하자 전쟁의 흐름은 순식간에 교단의 우세로 바뀌었다.
현재 대륙 전쟁은 대략적인 구도가 확실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오대 강국이었던 루나레이크와 로빈타는 칠흑의 마왕에게 함락당하고 패전국이 되었다.
그리고 아렌 왕국은 폭룡 네버 에이지의 군대와 전쟁을 치러내고 있었다.
폭룡이 만들어 내는 어둠의 숲은 군대가 되어 진격을 시작했고, 아렌의 용맹한 전사들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무리 아렌 왕국이 오대 강국 중 으뜸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거대한 폭룡이었다.
첫날의 전투에서 네버 에이지는 직접 아렌의 수도까지 날아와서 브레스 어택을 강행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수도는 혼란스러웠다. 아울러 먼 상공에서 폭격을 감행하는 네버 에이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순백의 마법사, 엘 파실드였다.
엘 파실드는 수도로 날아드는 폭격을 전부 마법으로 막아내고, 오히려 반격까지 나섰다.
그로 인해 아렌은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엘 파실드 입장에선 굉장히 씁쓸한 순간이었다.
리에르와 맺은 맹약이 아니더라도 엘에게 있어 아렌 왕국의 사람들은 소중한 장기 말이었다.
곧 있을 테헤라자드와의 대전을 위해서 그들은 꼭 필요한 인재였기에 죽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공격해 오는 것이 네버 에이지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엘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다.
절대적인 충성을 자랑할 것 같았던 그가 배신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떤 조건에서인지는 알지 못했다. 네버 에이지는 엘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서부의 강자 루카스 왕국을 중심으로 10개 국가의 연합은 북방의 강자 페리안을 향해 대대적인 침공을 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끝날 것 같았던 대전은 페리안의 압도적인 우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단순 수치상으론 서부가 압도적이었지만 각자 다른 지휘권을 가진 그들은 밀도 높은 전략, 전술에 뼈아픈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북부와 서부의 대전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페리안은 마지막 위기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루나레이크에 봉기가 일어났다.
일찍이 루나레이크를 다스리던 베로니카 여왕이 리에르에게 살해당한 뒤로 왕국은 내분이 발생했다.
베로니카 여왕의 수양아들이자 연인이었던 피터 엘 베르텐드는 왕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전대 여왕의 사생아인 카를레야 엘 베르텐드 역시 왕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루나레이크는 힘을 하나로 하지 못하고 상반된 주장 속에 서로 힘을 소비했다.
그 결과 거대한 해류를 이끌고 나타난 마왕 군에 의해 순식간에 대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교단의 점령 이후 피터는 교단에게 직급을 받고 루나레이크를 통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한 여왕의 어린 사생아는 반란을 일으켰다.
정통성이란 땔감에 불이 붙고 불어나더니 그것은 곧 왕국 전역의 반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 부탁드려요.”
붉은 머리카락의 10대 소녀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키가 큰 남성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누굴 죽이면 되는 거냐. 벌레들이 너무 많잖아.”
긴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남성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뇨, 굳이 죽이지는…….”
소녀의 말에 갈색 머리칼의 남성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그 눈동자를 보고 소녀는 볼을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내가 무슨 택배원도 아니고. 대충 높은 놈 반쯤 죽여서 데려오면 되겠지.”
“부탁드려요.”
소녀의 말에 갈색 머리칼의 남성은 천천히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 순간 남성의 등 뒤로 진갈색의 빛들이 뿜어지며 날개 형태를 갖췄다.
네 번째 포스, 아일 하사드.
그는 아렌 왕국 침공으로 인해 로이스타에게 치명타를 입었다.
거의 소멸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하류로 버려져 떠내려온 그는 재생을 시작했다.
그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거의 불로 지져진 상태에서 재생하리라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강가에 떠돌아다니고 힘도 찾지 못하는 그는 루나레이크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교단의 군대에 의해 도주하는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아일이 자신의 원래 기억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포스라는 것도, 교단에 속해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다.
아일이 자신에 대한 것이 기억났을 때 떠올린 것은 아르미안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면 너무나 강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미 리에르가 복귀한 교단은 두 사람 위주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돌아갈 생각도 사라졌다.
아일은 포스로서 잃었던 힘을 거의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는 갈 곳이 없었기에 어린 공주의 곁에서 있었다.
아일도 사실 저주받은 아이로 태어났기에 빈민가의 골목에 버려졌었다.
거기서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살아왔던 그로서는 뒷골목은 익숙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향은 어둡게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카를레야도 사생아였기에 유모와 함께 빈민가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구김살 없는 성격으로 자라났다.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어려워도 소녀는 잡초처럼 일어나고 버텨냈다.
그리고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여왕이 되려 했다.
아직 전력이 부족한 공주 소속에서 아일 하사드라는 포스의 힘은 막강했다.
“공주님은 아마 대륙 최강의 검을 얻으신 걸 겁니다.”
공주의 옆을 지키는 장미의 기사는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차밍하게 웃어 보였다.
카를레야는 금발 머리카락의 기사를 보면서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고의 기사라 불리는 경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에요.”
“별말씀을. 전 그저 사랑과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을 뿐입니다.”
장미의 기사 순정 소설시리즈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프란츠. 그는 국경지대를 지키다가 공주가 겪은 비극을 듣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장미의 기사 프란츠가 갖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그의 이름이 공주의 곁에 포함되었을 뿐인데 기사 작위 가문들 대다수는 공주의 편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프란츠를 비롯한 정예 귀족들의 합류로 인해 교단의 십자가가 박힌 왕성은 함락 직전에 서 있었다.
공성 사다리가 놓이고, 투척차가 발포한다.
불로 타오르는 화살은 비처럼 쏟아지고 뜨거운 기름이 퍼부어졌다.
비명과 비명이 낳는 끔찍한 교향곡을 보니 공주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공주.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희생은 불가피한 겁니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을 잘 지켜보세요. 잊지 마세요. 그들의 단말마의 비명조차도 기억하세요. 그들은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만들어 낼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위해 죽는 겁니다.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마세요. 베로니카 여왕도, 피터 경도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에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 겁니다.”
장미의 기사 프란츠는 짙은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우수와 같은 눈동자로 말했다.
공주는 그의 아름다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차피 수도에 있는 병력은 얼마 없는 상태였다.
교단 덕분에 왕의 자리에 앉은 피터는 자신을 지켜줄 군대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교단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마하니 공주파가 이렇게 세력을 일으키리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공주파는 이제 갓 열한 살이 된 어린 소녀.
정통성이 없다면 아무 힘도 없는 세력도 미천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습게 봤던 존재는 순식간에 루나레이크를 하나로 끌어모아 교단의 전 병력을 격파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일 하사드에 의해 적의 수뇌부가 격파되고 있었다.
결국, 버티지 못한 왕성에서는 항복을 의미하는 백기의 깃발이 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그들이 올 거예요.”
카를레야는 코스모스 교단의 다시 출정하게 되면 국토 전반이 쑥대밭이 될 것을 걱정했다.
아니, 실제로 그들은 일이 잘못되었단 것을 알게 되면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많은 곳에 손을 써두었습니다. 지금쯤 로빈타도 봉기에 나섰을 거예요.”
이제 패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는 로빈타 왕국. 한때는 오대 강국 중의 하나였으며, 강철의 대제 이실렌이 있는 불굴의 왕국이었다.
“정의는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공주.”
프란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긴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말처럼 로빈타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로빈타를 대패시킨 칠흑의 마왕은 이제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을 편성하고 있었다.
재편성을 위한 기간 때문에 마침 로빈타에는 칠흑의 마왕이 떠나고 없었다.
대신 교단의 고위급 간부인 12장로 중의 1인. 파괴의 필란드가 통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였다.
반란자들을 제보하면 그들의 인원대로 보상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단의 이름으로 부귀영화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무겁군.’
보랏빛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는 도시의 분위기를 보고 중얼거렸다.
로빈타의 수도 빌헨. 로빈타 국왕은 패전 이후 교단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수도를 시작으로 로빈타는 공포정치로 다스려지고 있었다.
심판기사.
교단의 속국이 된 곳에서는 무기를 착용하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무기 착용이 허용된 이들을 심판기사라고 불렀다.
그들은 교단 청에서 허가받은 심판의 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또한, 그 검을 소지 받은 자들은 즉결심판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오열하며 아이를 끌어안은 여성은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것도 수도의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절대 그것에 관여되지 않았다.
지금 여성이 목숨을 구걸하는 상대는 심판의 검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를 방해했다간 여성과 똑같이 벌을 받아야만 했다.
보랏빛 청년은 대략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여성은 어떤 이유에서든 교단의 임프에게 고발당한 사람 일터였다.
임프라는 것은 고발자를 의미했다.
고발은 자신의 가족이 될 수도 있었고, 친구, 혹은 이웃, 아니면 전혀 모르는 이도 될 수가 있었다.
이럴 땐 관련 기관으로 호송되어 죄를 문다면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심판 기사에게 즉결심판을 당하게 된다면 목숨을 구제받을 수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촤악!
심판기사의 검은 그대로 여성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목뼈에 걸렸는지 검날이 빠지지 않자 짜증 부리는 모습이 보였다.
목이 잘려 꺾인 여성의 품에서 아이는 하염없이 울었다.
심판기사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모두 눈을 피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괜히 시선을 두었다가는 공범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어차피 나만 아니면 되니까.’
보랏빛 청년은 천천히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청년은 로빈타 귀족 신분이었다. 이런 참변이 벌어져도 그에게 피해 생길 일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빌헨의 아카데미에도 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청년은 먹고 자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성향이 있었다.
지금 다니는 아카데미도 부친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었다.
그때였다.
“순혈의 기사단이다!”
외침과 동시에 검과 검의 굉음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붉은 제복을 걸친 남성들은 심판 사제들을 향해 살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심판기사를 위시한 교단의 병사들은 서둘러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급습한 붉은 제복의 남성들은 순식간에 병사들을 베어버렸다.
챙, 채엥!
긴 검의 굉음.
그 뒤에 들려오는 것은 끊어질 듯한 비명이었다.
심판기사는 자신이 벤 여성처럼 목이 잘려 나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귀찮은 광경을 봤군.’
보랏빛 청년은 걸음을 좀 더 빨리해서 그 자리를 최대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저런 광경을 봐서는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순혈의 기사들. 이전 로빈타를 지키고 있던 순백의 기사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해체된 기사 중 뜻 있는 사람들이 이실렌의 손녀인 마리엔느의 밑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순백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붉은 제복을 걸쳤다. 그리고 붉은 피로 얼굴에 짙은 선혈 표시를 하면서 무참히 적을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