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90)
레필리아 레소드-291화(290/398)
레필리아 레소드 291화
시스터(1)
대륙 인들은 신생왕국 페리안이 끝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정반대로 페리안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페리안의 승전 소식은 반 교단 국가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 되어 있었다.
이제 대륙은 교단의 강력한 종교 통치 아래 세력을 크게 부풀리고 있었다.
덕분에 대륙은 굉장히 빨리 전국 시대의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금 대륙은 세 가지 성향의 세력이 있었다.
첫 번째는 중립 세력. 이들은 너무 약한 세력 때문에 그저 현 상황에서 눈치를 보기만 하는 약자들이었다.
혹은 어중간한 힘을 갖고 있기에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물론 자신들의 이익이 어느 쪽의 저울에 실려 있는지 생각하는 곳도 많았다.
두 번째는 교단과 적대하는 세력이었다.
코스모스 교단의 독선적인 행각에 반감을 품은 세력들, 그들의 포악한 행위에 굳은 의지를 가진 이들이 무력으로 맞서고 있었다.
반 코스모스 세력으로 대표적인 것은 페리안이었다.
일찍이 북방의 패왕으로 이름 높던 지크 페브리안이 교단에게 암살당했다. 신생왕국의 힘을 크게 경계한 덕분이었다.
교단에게 온갖 핍박을 받아온 페리안은 원수 중의 원수였다.
또 다른 세력은 아렌 왕국이었다.
그들은 오대 강국 중에 가장 강한 왕국이었고, 최고의 기사단과 군사력을 지닌 대국이었다.
교단은 그런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몇 차례 성전을 펼쳤으나 단 한 번의 승리도 가져가지 못했다.
신검의 로이스타가 이끄는 십일검 기사단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많은 전력 차를 가져가도 똑같이 패배를 당한다.
교단에게 있어서는 아렌 왕국은 트라우마가 되어 있었다.
지금 봉기하고 있는 루나레이크와 로빈타는 교단과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사이였다.
망국으로 끝날 줄 알았던 두 왕국은 연합을 한 상태에서 동시 봉기를 시작했다.
교단으로서는 굉장히 불편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오대 강국 중 네 곳이나 교단의 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옹호 세력 중에는 오대 강국 중 하나인 용병왕의 루카스가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대륙의 작고 큰 영지도 전부 교단의 세력에 속해 있었다.
세 번째는 교단의 영향력이다. 대륙에 있는 대다수의 세력은 이미 교단의 소속으로 편입된 지 오래였다.
즉 대륙은 지금 흑과 백. 백과 흑으로 나뉘었다.
특히나 교단의 구제 신앙과 만민 평등은 민간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했다.
교단에 귀의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박해는 심각했다.
교단의 증표를 소유하지 않은 이는 성문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반항하면 마을 광장에서 화형을 당해야 했다.
즉 떠나는 것은 죽어야만 가능했다.
교단의 신앙에 대해 의심하는 자는 죄를 깎아내는 심판을 받았다.
말하자면 살점을 잘라내고 도려내어 뼈만 남을 때까지 죄 사함을 해야 했다. 즉 죽게 되었다.
교단에게 헌납하지 않는 자는 의심을 사서 죄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마귀, 악마, 마녀, 귀신. 여러 가지 단어로 지칭되는 비신앙자에 대한 탄압. 심판 기사는 신앙 없는 이들에 대해 즉결 심판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신앙 없는 이들에 대해 고발할 수 있는 고발자들도 성행하고 있었다.
교단의 세력에 이르는 곳은 선혈이 낭자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대륙의 사람들이 예상하는 교단의 행보는 하나였다.
지금 봉기를 일으킨 두 개의 왕국을 완벽한 신민(神民)으로 삼는 것.
정복한 국가에는 코스모스 교단의 장로가 손길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봉기가 예사롭지 않기에 장로회는 고생하고 있었다.
교단의 마왕이자 집행관인 리에르는 다음 목표인 제국의 수도를 치기 위해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즉 마왕은 정복과 전쟁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도,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륙 인들의 시선이 모이는 교단의 다음 행보는 이제 긴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짹짹짹.
아침을 알리는 새의 지저귐.
하루가 시작되는 축복 받은 햇볕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온다.
나지막한 신음을 내면서 부드러운 눈꺼풀을 여는 여성은 잠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듯 보였다.
반복적으로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는 눈동자.
긴 속눈썹 사이로 자리 잡던 그것은 천천히 현실이 투영하는 아침을 눈 안으로 담아낸다.
“리엘…….”
여성의 떨리던 눈가가 적셔졌다.
조금 전까지 옛 기억 속에서 헤매던 자신은 답답한 현실에 고개를 들게 되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행복한 꿈이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고향, 페이서스 카에르의 교사가 된 자신. 그리고 평범하게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꿉친구.
연인이라는 호칭과 달콤한 사랑을 키워 나가는 꿈.
그것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하룻밤의 꿈이었다.
그녀의 고운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맺혀서 흘러내린다.
굴곡을 따라 적셔오던 눈물은 이내 귓가로 추락하듯 떨어져, 뜨거운 귓불 안으로 스며들었다.
강한 햇빛이 눈이 부셨는지 여성은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려 보였다.
빛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과거의 아픔이 눈 녹듯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것을 자신도 아는 듯, 금발 머리의 여성은 입술을 꾹, 깨물고서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원망에 마음 아파하던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똑똑똑.
아침을 깨우는 노크 소리에 금발 머리 여성은 적셔진 눈가를 닦아 내렸다.
가리던 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집에 찾아올 만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항상 자상한 얼굴로, 친부모처럼 대해주는 아줌마를 떠올리지만, 그녀가 찾아오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옷깃으로 눈물 자국을 찍어 누를 때,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잠시만요.”
금발 머리 여성은 바깥에서 기다리는 이를 생각해서 대답부터 해 보였다.
잠옷 차림을 가릴 만한 겉옷 하나를 꺼내어 걸치고는 헝클어진 머릿결을 다듬어 보인다.
은연중에 조금 전의 목소리가 쉰 소리는 나지 않았을까, 마음 한 켠으로 걱정이 찾아왔다.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친절한 아줌마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라도.
다행히도 금발 여성이 옷을 챙겨 입을 때까지 노크 소리는 독촉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녀의 집을 자주 찾는 손님은 아니란 의미였다.
금발 머리 여성은 옷가지를 입은 뒤에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본의 아니게 오래 기다리게 만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금발의 여성은 끼이익, 문의 손잡이를 열어 보였다.
그곳에는 예상대로 아줌마가 있었다.
옆집 아줌마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혼자 사는 금발 여성을 항상 걱정해 줬다.
이었고 혼자서는 그녀의 염려를 많이 하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같은 코스모스 교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금방 친숙해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잘 잤어요, 레이나드 양?”
“신의 뜻은 은혜와 같아서.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금발의 여성은 미소하면서 대답했다.
그 순간 친절한 아줌마의 뒤편으로 낯익은 인영이 보였다.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백의 로브. 그 옷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백발의 남성.
“호호. 오늘 이렇게 레이나드 양에게 손님이 와서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오랜만이네요, 에레사.”
온화하고 다정함을 가진 얼굴로 미소하는 남성을 보고 에레사는 뒷걸음질하였다.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그녀는 표정 관리도 못 하고 당황스러워했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남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리에르에게 뒤집어씌운 남자.
주변의 모든 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체스 말처럼 다룰 수 있는 무서운 사람.
웃는 얼굴 뒤에 차가운 광기의 조소를 가진 이를 에레사는 기억했다.
“레이나드 양. 오늘 기도회는 쉬어도 돼요! 어차피 요새 행사도 줄었으니까.”
아줌마는 눈을 찡긋거리며 은근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엘은 그녀의 배려에 고개를 숙여 보이며 고마워했다. 다만 에레사만은 불필요한 그녀의 배려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엘은 예전과 다름없는 얼굴로 맑게 웃어 보였다.
에레사는 엘을 계속 막고 있을 수 없어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러고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경황이 없어 미리 연락도 못 드렸는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 몰랐네요.”
엘은 부드럽게 미소했다. 그의 긴 다리가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 혼자 살기에는 이만한 집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네, 저도 찾기 힘들었어요. 설마 코스모스 교단에 입단해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엘의 말처럼 에레사는 지금 코스모스에 소속해 있었다.
교단에 가입된 그녀는 시스터로서 교단의 일을 도맡아서 활동 중이었다.
“마치 제가 찾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말이에요.”
엘의 말에 에레사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엘은 코스모스의 교리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포스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즉 코스모스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에게 간섭할 힘은 한계가 존재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요.”
에레사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엘과 함께 여행을 몇 년 동안 다녔었다.
정말이지 따뜻한 여행이었고, 마음의 안정을 갖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의 에레사는 엘을 단 한 톨도 의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을 깨닫고 보니 엘에게 미심쩍은 부분들은 많았다.
항상 온화하고 따뜻해 보였던 그의 눈빛은 냉랭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차 한 잔 주시겠어요?”
“네, 물론이에요. 대마법사의 입맛에 맞을지 의문이지만.”
에레사는 엘에게 자리를 권하며 온기를 잃은 벽난로에 불을 다시 지피기 시작했다.
엘에게서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에레사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엘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얼굴을 보러왔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아, 카르샤 언니는 같이 안 왔어요?”
에레사는 짐짓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의 그녀는 카르샤도 엘과 한패일지 모른다고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워낙 꾸밈없고 단순한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엘은 부드럽고 온화하게 웃으면서 답변했다.
“네, 저랑 같이 안 왔어요.”
에레사는 왠지 모르게 카르샤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카르샤와는 제법 친해진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엘과 단둘만 있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당신을 죽이는 데 방해가 될 테니까요.”
예상치도 못한 엘의 말에 에레사는 불을 지피던 손길을 멈췄다.
그냥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의심이 되었다.
하지만 설마 엘이 정말로 이럴 거라곤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드럽고, 그렇게 온화하고, 그렇게 자상한 사람이 잔인한 말을 내뱉을 리 없었다.
에레사는 감히 엘을 돌아보지 못했다.
차마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 에레사의 귀로 엘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듯이 다시금 들려왔다.
“설마 제 앞에서 연기라도 해볼 요량은 아니겠죠?”
“엘,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