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93)
레필리아 레소드-294화(293/398)
레필리아 레소드 294화
웰던 시가전(1)
서 연합군은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지거나 항복했다.
리즈는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왕이 스스로 미끼가 된다.
이 대담무쌍한 전략은 리즈와 빅스터였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무모한 전략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린 동 연합은 마지막 역전승을 위하여 유트를 뒤쫓았다.
서 페리안 군은 레온과 프세를 앞세웠다. 은기사를 중심으로 한 기병대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서 지원을 오고 있었다.
연합의 단점은 하나였다.
여러 개의 국가가 서로의 이권을 위해서 모였기에 통솔이 잘되지 않았다.
아무리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라곤 하나 상대를 위해 자신들이 손해 볼 리 없었다.
하지만 장점으론 여러 인재로 이루어진 대규모 병력이 상대에게 큰 압박감을 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아울러 피해를 보아도 서로 분산되기 때문에 정신적인 대미지가 감소하였다.
즉 서 연합군이 크게 패전했어도 동 연합 쪽에서 유트를 잡는다면 대승이나 다름없는 전과였다.
하지만 유트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재빨리 병력을 빼서 레온과 프세의 은기병과 합류할 수 있는 포인트로 이동했다.
루카스는 그 과정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아 대패했다. 더군다나 루카스는 오대 강국 중 하나인 곳이었기에 패전의 의미는 컸다.
만약 나스의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아니었다면 루카스 군대는 전멸을 했을지도 몰랐다.
빅스터가 애초에 공헌한 대로 먹기만 하면 끝나는 전쟁이었다.
유트 쪽이 뒤로 물러설수록 시간에 쫓기는 것은 연합군이었다. 연합군은 적진의 한복판이었기에 병참도 격파당했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선택은 어떻게 무사히 돌아가느냐였다.
대륙은 이번 연합 공격에 페리안이 사라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페리안은 대승을 거뒀다.
“동 연합이 왔던 길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페리안의 중심. 수도 펠튼에 있는 은발의 공주는 기쁜 소식을 듣고서 꽃처럼 밝게 웃어 보였다.
원래부터 웃음이 별로 없었지만, 근래 힘든 일만 있었기에 더더욱 수척해져 있던 그녀였다.
페리안의 꽃.
눈밭의 설화와도 같은 은발의 유이는 겨우겨우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즈와 유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다.
“이야, 페리안도 꽤 하잖아?”
금발 머리의 남성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당연하다는 듯이 있는 녀석은 일전에 빅스터와 함께 페리안에 투항한 인물이었다.
스스로 빙제(氷帝)라고 칭하는 청년은 원래 페리안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힘이 강해서 배만 고프면 창살을 비틀고 나왔다.
결국, 그는 반강제로 방면(?)되었고, 지금은 페리안의 병사가 되어 있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유이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금발의 청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유이의 눈동자는 금발의 청년을 향해 있었다.
“너 말이야, 너!”
“나 말하는 거였어?”
금발의 청년, 레이루나는 설마 자신을 말하는지 몰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이루나는 페리안에 투항하긴 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단의 용병이었던 인물이었다.
페리안에서 중용되고 있는 빅스터의 적극적인 추천도 있었고, 페브리안 남매가 가진 진실의 힘은 상대가 위험인물이 아니란 것을 확인했다.
“취업했으면 일을 해야지, 일을.”
“여기 성 지켜주잖아.”
유이의 말에 레이루나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현재 전쟁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수도에서 레이루나가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어서 페리안의 예비 기사들의 스승을 자처하고 나섰었다.
하지만 남을 가르치는 재능은 없었다.
“좌 베기. 하압!”
“우 베기, 합!”
“그리고 이어서 에네르X 파!”
평범함과는 다른 기술을 선보이니,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기사들에게 온갖 불만들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검술 훈련 교관에서도 잘리고 지금은 성에서 밥이나 축내는 신세가 되었다.
“자, 공주. 그다지 손해는 아니라고. 잘 생각해 봐. 나 같은 인재가 적은 보수와 식비만으로 수도를 지켜주는 거야. 얼마나 남는 장사인 줄 알겠어?”
유이는 나중에나 안 사실이 있었다.
레이루나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놀랍게도 대륙 십걸 중 한 명이었다.
대륙 오제와 마찬가지로 다음 세대의 영웅들, 혹은 인지도가 높은 유력자들을 의미하는 칭호였다.
전국 시대다 보니 그 이름이 빠지고 들어가는 부분은 많았다.
그 명단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고 있는 인물은 유트와 리에르였다.
유트는 명실상부 다음 세대의 대륙 오제로서 걸맞은 인물이었다.
홀로 어린 여동생과 함께 숨어 살면서 패왕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가면서 출중한 인재들과 함께 거대한 왕국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행운이 함께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행운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뒤따라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찾아온 행운을 붙잡을 수 없다.
‘리엘…….’
유이는 리에르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그 멍청하고 약했던 소꿉친구가 대륙 십걸로 지칭되는 것이 자랑스러울지도 몰랐다.
학살자는 어디 가서나 지탄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학살이라는 호칭을 전쟁터에서 얻으면 영웅으로 불린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죄를 쌓는 행위였다.
유트 역시 지금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대륙의 한 가운데서 전쟁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에 빠진 유이를 보고 레이루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정 걱정되고, 보고 싶으면 찾아가면 되지 않겠어?”
“어차피 곧 돌아올 건데 굳이 성까지 비울 필요도 없지.”
생뚱맞은 레이루나의 말에 유이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녀의 말에 레이루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다시 말했다.
“아니, 유트 말고 리에르 말이야. 걔 지금 코스모스 교단의 집정관이라며?”
“…….”
생각지도 못한 레이루나의 말에 유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레이루나는 자신이 뭔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뒤통수만 긁적댔다.
“너 왕 이름 막 부른다?”
“어?”
레이루나가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다. 유이는 가벼운 손짓으로 위병(衛兵)을 불렀다.
“자, 잠깐만! 봐주라고! 콩밥은 엄청 맛없단 말이야! 특히 북방식 콩밥은 최악이야!”
이미 페리안의 콩밥을 몇 번 먹어본 경험 있는 레이루나는 발버둥을 쳤다.
그는 쫀득한 육질을 원했고, 페리안의 식사에 만족해 있던 상태였다.
유이는 레이루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래, 직접 가는 거야.’
체술이나 검술은 오빠와는 비교조차도 불가능했다.
타고난 성별의 근력 차이는 그녀가 궁술로 전향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타고난 재능은 대륙 오제, 신궁의 아로운의 수제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유이가 단 하나 유트보다 압도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 혈족이 가지는 유일무이한 동술(瞳術)이었다.
진실의 눈동자. 베리타스 혈족만 가지는 그 동술의 힘은 상대의 진심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나아가서는 그를 이용한 여러 가지의 파생 기술도 존재했다.
유이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리에르를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멍청한 바보가 어떤 거짓말을 해도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멍청한 바보 원숭이, 이제 죽었어.”
유이의 얼굴이 조금씩 화색을 되찾았다.
유트가 돌아오면 한동안은 승리의 기쁨으로 시끌시끌할 터였다.
그사이 유이는 리에르를 만나러 가면 되는 것이었다.
리에르를 막는다면 코스모스의 진격도 늦춰질 것이고, 회유만 성공한다면 서로에게 비극이 없는 일로 끝날 수 있었다.
유이가 야망 아닌 야망을 떠올렸다.
* * *
유트는 예비 막사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 그들에게도 동 연합군이 서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는 전보를 전달받았다.
그 소식에 이제 전쟁은 대승으로 끝났다고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곧바로 참담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웰던 시, 적의 패잔병들에게 공격 받다.
웰던 시라면 유트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도시였다.
약 5천 정도의 인구가 존재하는 도시는 기본적인 방비는 충분했다.
기존에 무법지대였던 페리안은 유트 왕의 집권이래. 치안이 강화되고, 각 도시를 중심으로 군사 네트워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적의 패잔병의 숫자는 어중간한 도적 떼나 몬스터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패잔병이라 해도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규군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패잔병들의 숫자는?”
유트의 물음에 파발병은 고개를 참담하게 숙이면서 대답했다.
“1천입니다.”
“많군.”
유트의 말마따나 예상했던 패잔병의 수는 많았다. 하지만 굳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화풀이 삼아 주변 도시를 약탈하면서 도주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병참을 당해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그들이었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베리타스, 시민들만으로는 그 병력을 막아내기 힘들 겁니다! 속히 지원하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요, 아직 승전의 깃발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요! 우리도 정비가 필요하오!”
“정비하자고 죄 없는 도시를 버리겠단 말인가?”
설왕설래(說往說來).
유트는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고심하던 유트는 빅스터를 바라보았다.
몇 일간 면도하지 않아 덥수룩한 빅스터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지금은 가시면 안 됩니다.”
빅스터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간부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대놓고 빅스터에게 욕을 하는 이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유트는 무법을 달리는 북에서 패도로 정의를 치세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기 덕분에 유트는 짧은 새에 큰 세력을 거느리게 되었다.
“주의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잃는 것이 많다면 설령 함정이라도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유트의 말처럼 인근에 있는 도시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적의 패잔병이 무서워서 꼬리를 말았다는 꼬리표가 달라붙는다.
무엇보다 유트는 함정이 존재해도 직접 파훼(破毁)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적의 연합이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는 것도 확인한 상태였다.
굳이 첩보가 아니라 해도 전장은 페리안의 안방이었다.
안방의 정보가 물색 틈 없이 전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빅스터는 유트의 말에 더 토 달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유트의 말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빅스터는 이번에 풍겨오는 느낌이 함정임을 예상하였다.
뿔뿔이 흩어지는 적의 연합군. 이상할 것은 없이 느껴지지만, 분명히 이상했다.
어디까지나 아직은 적진에 있는 연합군으로서는 실패했든 어쨌든 간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는 뭉쳐서 관문을 통과한 뒤에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오히려 이쪽의 의심을 없애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허장성세를 보였던 인물이었다.
연합군의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마치 앞일을 예측하던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났던 지원군.
그것 덕분에 루카스는 전멸을 피할 수 있었다.
별것 아니지만 그 타이밍에 보여준 찌르기는 일반인이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아군이 전멸당하고 있는데 구경만 하다가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아군의 전멸은 둘째 치고 그 인물은 두 번 다시 군사를 부릴 수 없는 몸이 될 수도 있었다.
빅스터는 이번 전략이 함정임을 예상하였기에 유트에게 가지 말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유트는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번만은 빅스터도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찾아 들었다.
이번에 무언가가 있었고, 그 무언가는 많은 곳에 덫을 치고 있었다.
완벽한 그림. 완벽한 승리. 그리고 이제 패권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한 걸음만 남은 상태였다.
이런 중요한 상황에 베리타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빅스터는 있을 수 없는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도 불안했다.
유트 페브리안.
이제 그는 대륙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인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은색의 사자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괴물이었다.
결국, 유트의 군대는 적의 패잔병에게 공격받고 있는 웰던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출정을 시작했다.
그 결정을 빅스터는 막아낼 수 없었다. 아군의 사기는 최고점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내 보잘것없는 목숨과는 비할 수 없는 목숨이다.’
빅스터는 덫의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