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95)
레필리아 레소드-296화(295/398)
레필리아 레소드 296화
웰던 시가전(3)
“뭐, 뭐야 이것들……!”
갈테오의 기사들은 눈앞에서 급습해 오는 기병대를 보면서 당혹감을 지우지 못했다.
그들은 웰던으로 가서 유트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행군하던 중에 급습을 박 되었다.
노쇠한 대장군인 헬리온은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적은 연합군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었다.
“모두 적을 맞아라! 용감한 갈테오의 전사들이여 스스로 맹수의 아가리로 들어온 적들을 싹 베어라!”
실제 병력은 갈테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강력한 기병, 그것도 기습으로 이루어진 공격은 진형을 크게 흐트러뜨렸다.
애초에 갈테오가 쾌속 행군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당하진 않았을 터였다.
헬리온의 시야 안으로 외팔이 금발 기사가 보였다.
북방 귀족의 품격을 한 몸에 보여주는 레온 폴 하르츠.
헬리온은 유트의 퍼스트 기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마를 찌푸려 보였다.
경험 많고 용맹한 기사이니만큼 손쉬운 전투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 편 다른 진형도 마찬가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유트의 근위 기사인 프세는 피리네오를 급습하고 있었다.
피리네오는 갑자기 급습해 온 것이 페리안이란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적장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프세는 말수가 없고 굉장히 평범하고 소탈한 생김을 지니고 있었다.
갑옷을 벗으면 그가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아니, 그의 실제 무술 능력은 일반 기사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세를 읽는 눈이 워낙에 뛰어나서 적재적소에 병력 배분하는 것을 잘했다.
그 능력이 워낙에 뛰어나서 그는 수성의 달인이라는 호칭까지 부여받았다.
그러니 기사라기보단 장군의 위치에 서는 것을 자주 했다.
모든 것은 빅스터의 예상대로였다.
빅스터는 지원을 오던 레온과 프세의 기병대를 적 기습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정확히 들어맞아 적은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리즈의 본 군이 오기에는 아직 이틀은 부족했다.
덕분에 갈라파고스는 아무런 제지 없이 웰던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하다.’
빅스터의 철벽 진형 앞에 루카스는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병력도 적 타격을 마치고 곧바로 웰던으로 향할 터였다.
웰던이 수성하기에는 쉽지 못한 곳이긴 하나, 일단 정비를 한 페리안을 상대로 연합군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리즈의 본 군이 오기까지 시간은 충분히 벌고도 남았다.
‘하지만……. 아직도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빅스터는 아직도 뭔가가 수가 맞지 않는다 생각되었다.
알게 모르게 찜찜한 그 기분은 그를 독촉시켰다.
사실 천하의 빅스터도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연합군에서 조금씩 덜어낸 병력들. 그것을 지휘하는 자가 따로 존재했다.
“갈테오 군대는 교전 중. 피리네오 교전 중. 루카스 교전 중.”
보랏빛 소년은 조그만 크로스 가방을 뒤적거렸다.
“갈라파고스 진격 중. 유일하게 막지 못한 것은 완벽주의자에게 신경 쓰여. 신경이 자꾸 그쪽으로 쏠려.”
보랏빛 소년은 가방에서 꺼낸 초콜릿 포장을 벗겼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입안에서 깨물어 보였다.
“유트 형아가 가진 병력 오백.”
성벽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붙고 칼부림이 일어났다.
“우리 잠복은 5백.”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밤하늘을 수놓는 불화살들이 피워 올랐다.
“루카스의 기병은 대륙 최고의 속도.”
보랏빛 꼬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초콜릿을 오도독거렸다.
그리고 같은 순간 빅스터도 웰던 시에서 불화살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불쾌했던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사샤의 루카스 기병대는 갑자기 그대로 진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철벽과도 같은 진형을 구사하는 빅스터가 아닌 웰던의 성문을 향해서였다.
“전원 웰던으로 진격하라!”
빅스터는 입술을 깨물며 군의 방진을 풀고서 루카스 기병을 뒤쫓았다.
하지만 무장한 보병이 기병의 속도를 따라잡을 리가 없었다.
“체크 메이트(Checkmate).”
나스의 옆에는 갈테오 대장군의 손자인 헥타르가 서 있었다.
연합군은 처음에는 그대로 와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스는 다시 한번 헬리온을 만났다.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헬리온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아무도 어린 꼬마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백전노장의 존경받는 대장군이라면 상황은 달랐다.
결국, 헬리온은 자신의 목까지 거는 무리수를 두면서 이 작전을 실행하였다.
갑자기 도시에 화재가 번지면서 환해지자 내성에서도 큰 소란이 벌어졌다.
분명히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던 전쟁은 다시 한번 불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전하, 적습입니다! 성문이 열리고 적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도시 안에 들어와 있던 적의 군대가 내성으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적은 대군입니다!”
유트는 소란스러운 보고를 받으며 갑옷을 걸쳤다.
심상치 않은 기세가 굉장히 위험함을 예고하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영웅이라도, 뛰어난 천재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유트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그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은 불세출의 영웅이라 칭송받아도 단 한 번의 전투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헤헷, 텟사는 밤의 연회가 좋다니까요.”
핑크색 팬티만 걸친 테스타롯사는 거대한 헬버드를 들고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괴기스러운 테스타롯사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심각한 안구 통증을 느꼈다.
테스타롯사는 여유롭게 변태 행위를 하고 있었으나 사실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유트 쪽도 미리 병력을 결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루카스의 3천 기병.
그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성문을 통과하여 유트가 있는 내성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전하를 지켜라!”
“베리타스의 영광을 위하여!”
구름처럼 몰려드는 적의 기병들을 보면서도 유트의 군대는 사기를 잃지 않고 포효했다.
그들은 연승으로 인하여 사기가 극대화되어 있었다.
전쟁에 있어 사기는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만능이지는 않았다.
적이 준비해 두었던 기름통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내성에 설치되었던 함정이었다.
순식간에 성은 불꽃을 뿌리며 타들어 갔다.
시커먼 재는 어둠에 녹아 달빛을 향해 손끝을 피워 올린다.
비명. 철의 굉음. 그것은 곡조가 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힌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불똥은 한순간만 피워 올랐다.
칠흑을 더욱 짙게 만드는 핏빛 물감이 성에 칠해진다.
바닥이고 벽이고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사방에 물감을 칠해댄다.
불이 만들어낸 연기 속에서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유트는 직접 선두에 서서 적의 포위를 뚫었다.
그 옆에선 용맹한 테스타롯사가 헬버드를 휘두르며 왕을 지원했다.
용맹한 패왕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결사대처럼 고결하고 강건했다.
마치 강하게 쏘아 올려진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그들을 쐐기 돌파를 했다.
실제 유트 왕이 쏘아 올린 정면 돌파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돌파에 성공했다고 생각되었다.
“전원 사격!”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양쪽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헥타르는 적들이 바쁘게 방패를 추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화살을 피하는 데 급급한 적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올렸다.
“어떻게 해서든 버텨라! 조금만 버티면 우리의……!”
유트의 군대에 있던 장군은 소리치다가 입을 닫고 말았다.
그의 시야 안으로 루카스의 깃발을 높이 들은 경기병들이 보였다.
마치 폭풍처럼 들이닥치는 루카스의 기병들을 보는 순간 페리안 군의 사기는 추락하고 있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유트는 이도를 말아 쥐면서 벼락같이 소리쳤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지금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패배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페리안은 최강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힘으로 활로를 뚫을 것이다!”
좀처럼 큰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유트는 직접 격문을 읊으며 앞장섰다.
왕이 직접 선두에 나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아무리 스스로의 무(武)에 자신이 있다 하여도 앞장서면 화살 받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믿음의 힘이었다.
유트가 직접 나서자 테스타롯사는 포효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페리안의 군대는 일순간 지지 않을 함성을 토해내며 교전을 펼쳐냈다.
턱, 투닥!
테스타롯사가 휘두르는 헬버드가 깨끗하게 가로 혈선(血線)을 그렸다.
그 혈선에 있던 적들은 그대로 두 동강 나며 쓰러져갔다.
유트는 그저 붉은 체액에 적셔진 것처럼 다가오는 것들을 베고, 또 베었다.
온갖 소음으로 무장된 아수라장이지만 청각은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목 언저리로 다가오는 칼날의 파공음을 느꼈다.
유트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칼날을 횡으로 그었다.
허공에 핏물로 만들어진 포물선이 그려졌다.
적군의 머리는 무슨 일이 있었던지 모르는 듯이 동공이 커져 있었다.
예리함을 잊지 않는 날카로운 도검은 점점 탁한 핏물이 말라붙었다. 어느새 들리는 것은 이제 자신의 호흡 소리뿐.
“너의 패배다, 유트 왕.”
연합군의 총대장.
헬리온의 손자이자 장군인 헥타르는 검을 들어 올렸다.
유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핏빛 바닷속에 서 있는 아군은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유트는 오늘따라 손에 든 쌍수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믿어지지 않지만 혼자였다.
“후우…….”
유트는 스스로의 능력을 너무 과잉한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했다.
아니, 실제 유트의 능력은 과할 정도로 완벽했다.
무력과 전술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력들은 군신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아무리 빅스터가 방심했어도 전술로 한 방 먹인 인물은 유트가 유일할 정도였다.
유트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도 있었다.
유트는 실제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 굉장히 빠른 선택을 해놓는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논제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다방향에서 바라본 뒤에 결정을 내렸다.
상대는 유트라는 존재를 알지만, 유트는 나스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다.
“아직 나아가야 할 일이,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유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검을 들고 전장에 섰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군을 이끌었다.
아무리 왕의 핏줄이라고는 하나 새파란 어린놈을 따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유트는 스스로 무명을 드높이기 위해서 전면에 나섰다.
덕분에 은사자의 위명은 순식간에 대륙에 퍼졌다.
언뜻 보면 왕이라는 직분에 어울리지 않는 무모함이라 비아냥거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용맹하고, 그 누구보다 기사다운 그에 대해 존경심을 품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무의미한 저항은 하지 마라!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헥타르는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싱글 웃으며 소리쳤다.
제대로 전투도 못 해보고 물러서야만 했을 땐 짜증이 머릿속을 지배했었다.
연합군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