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98)
레필리아 레소드-299화(298/398)
레필리아 레소드 299화
패도[覇道](1)
“루나레이크에서 군대가 왕성을 회복했다 합니다!”
칠흑의 마왕은 보고를 들으며 무표정한 채로 턱을 괴고 있었다.
“카를레야 엘 베르텐드가 새로운 여왕으로 즉위식을 진행 중입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10, 11, 12장로들이 직접 교단의 용사를 이끌고 출정을 했습니다!”
이번에 세 명의 장로가 힘을 합쳤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4, 6, 9장로도 교단의 성기사를 이끌고 연합 작전에 들어갑니다.”
“현재 루나레이크에는 배신한 두 번째 적혈의 악마 아일 하사드가 있습니다.”
칠흑의 마왕은 아일 하사드가 생존해 있단 말을 듣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의 뛰어난 재생 능력이라면 분명히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의외인 것은 그가 다른 왕국의 누군가를 위해 전투를 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역시 정상 각성자는 아니었기에 맹목적인 살육만을 위해 살아야 정상이었다.
“아울러 지금 루나레이크의 지휘관은 장미의 기사로 유명한 프란츠라 합니다!”
“어? 걔 실존 인물이었어?”
보고를 듣던 칠흑의 마왕이 순간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알현실은 엄숙한 침묵이 감돌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마왕의 입에서 설마 로맨스 소설 이야기가 나오리란 것을 누구도 예상할 리 없었다.
그저 마왕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그들은 침묵만을 지키며 눈치를 보았다.
리에르는 손짓하며 계속하라는 표현을 해 보였다.
스스로도 다소 민망함이 찾아들었다.
장미의 기사 프란츠. 예전에 에레사와 유이가 한창 설전을 벌일 정도로 빠져 있었던 로맨스 소설이었다.
설마 그 소설 속의 인물이 실존 인물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리에르는 왠지 예전의 일이 떠오르자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칠흑의 마왕이 되어 교단을 이끄는 자신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
가족들은 많이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버지 로이스타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유트와 유이 남매는 아직도 자신을 편들어 줄지도 확실치 않다.
그 두 남매는 매우 특별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옆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그런 힘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마치 속마음을 읽는 듯이 행동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했었지만.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전장에서겠지.’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했다. 어차피 확실하게 마음먹은 길이었다.
수라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이상 자신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에레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리에르는 그녀가 편안히 살고 있는지 걱정된 적이 있었다.
멀리서나마 그녀가 평안하기를 기도했었다.
그녀는 소꿉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가졌다. 아울러 리에르에 대한 오해도 깨달았다.
리에르는 에레사가 혼자가 되어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낭만이 가득했을지도 몰랐다. 행복했을지도 몰랐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리에르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척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과 같은 전국시대에 이름뿐인 제국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주변 제후 중 누구도 제국에 위해를 가하는 이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위명에 악명을 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이름이 계속 남아 있는 이상 대륙은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지 못할 터였다.
계속 끝도 없는 전란만 가중되고, 누군가의 허영과 욕심만 채우게 될 것이 분명했다.
테헤라자드를 막기 위해선 시스템의 힘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 세상을 단 하나의 생각으로 묶어 놓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리에르는 어떤 악명도 뒤집어쓸 자신이 있었다.
페이서스에서 벌어진 피의 축제.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칠흑의 괴물이 전생을 반복하며 해왔던 악행의 나선을 끊기 위해선 단 하나의 방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을 단 하나의 나선으로 묶는다.’
지금 전국시대가 이루어진 이유는 힘이 균등하게 분포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면 힘이 약한 쪽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하나는 강한 힘에게 굴복한다. 또 하나는 다른 힘과 힘을 합친다.
하지만 대다수는 편한 방식을 선호한다.
즉 자신에게 피해가 덜 갈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하여 전자를 선택하여 굴복하는 것이 당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선택지를 단 하나로 압축시켜 버린다면?
리에르는 정복한 식민지들에게 공포만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학살을 자행하도록 명령했다.
그렇기에 지금 식민지에선 전부 반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 반란을 일으키는 이들과 힘없는 이들은 신을 찾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테헤라자드는 많은 점유율을 얻게 된다.
신이라는 것을 주체로 하는 집단에서 신을 부정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점유율은 손상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또 다른 희망을 찾게 된다.
“현재 로빈타에서도 마리엔느가 순혈의 기사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순혈의 기사단은 전 보 기사단장인 맥크웰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에 7장로가 샬렛 찬 크리네스의 마탄 기병에게 대패한 상태입니다. 로빈타의 기세를 막기 위해 지금 3장로가 군을 이끌고 이동 중입니다.”
계속되는 보고에 리에르는 턱을 괴고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식민지에 대한 반란 제압은 어디까지나 장로들이 할 일이었다.
리에르는 집정관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국가를 굴복시키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병력은?”
교단의 책사이자 5장로인 핀란드는 톱니 같은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현재 출정 가능한 군은 5만입니다.”
그 군대를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칠흑의 마왕이었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광기와 불패로 목숨을 내던진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반란 같은 등불은 무시하면 꺼진다. 우리는 이제 제국을 부술 것이다.”
리에르의 명이 떨어지자 안에 있던 간부들은 예를 취해 보였다.
집정관 리에르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더는 기다릴 것은 없었다.
겨울이 지나가자마자 코스모스 교단은 대군을 일으켜 제국의 수도를 향하기 시작했다.
칠흑의 마왕이 다시 군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각지의 제후들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다시 모든 대륙인의 시선은 단 하나의 존재를 향하고 있었다.
유일신의 은혜로움에 감사하기 위한 교단의 신도들. 그들은 지금 이날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포교하기 위해, 신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철퇴를 가하기 위해.
신념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신의 병사들은 모든 분란을 종식하기 위해 창과 검을 쥐었다.
코스모스 교단 10개 군단으로 이루어진 마왕의 군대를 막아서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교단의 행진을 보는 이들은 알아서 복종했다.
그들에게 쥐어진 포교를 거부하는 이들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코스모스 교단에게 복종만 한다면 그들은 매우 친절한 이들이었다.
제국은 현재 두 개의 파벌로 이루어져 있었다.
희대의 카사노바인 앤 루드비히 오트리아.
소심한 학자 성향의 렘 루드비히 오트리아.
두 파벌은 서로를 적대하고, 황좌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교전에 들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교단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한다는 것을 듣자 그대로 전투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두 파벌은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하였다.
물론 손을 잡았어도 원활하게 협조가 되지는 않았다. 전투를 진행해도 최대한 공은 자신이 차지하고, 피해는 최소한으로 입어야 했다. 적의 군대를 몰아낸다면 다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눠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어려운 전투였고, 불가능한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제국의 마지막 대원수(Generalissimo) 프레이야는 1만 2천의 군대를 이끌고 월 크로스로 진출했다.
그녀가 마지막 전투를 불사르려 하자 제국 수도에 자리 잡은 길드 로드 연합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전투를 경험한 정예 용병 500, 그리고 강철의 대공을 따르는 패잔병이 2천이다.
교단에게 점령당한 도시의 말로를 알고 있는 시민들로 자원 입대를 시작했다. 덕분에 프레이야는 순식간에 몸을 부풀려서 약 1만 5천의 군대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칠흑의 마왕보다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집정관, 눈앞에 있는 거대 장벽 월 크로스는 지금까지 돌파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성지입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공성 전차로는 돌파는 꿈도 못 꿀지도 모릅니다.”
교단의 책사, 핀란드는 전차에 앉아 있는 리에르를 향해 보고를 올렸다.
리에르는 거대한 전차에 앉아 전장을 굽어 살펴보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친구들과 구경했던 거대 장벽.
처음 볼 때는 그 장관에 시선을 빼앗긴 듯이 바라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넘어서야만 하는 장벽이었고, 깨부숴야만 하는 장애물이었다.
“간부들을 전원 소집해라. 장벽을 넘을 방법을 강구하겠다.”
리에르의 명령에 코스모스 군대는 막사를 짓고 전투 준비를 했다.
아무리 신의 군대라 하여도 사람인 이상 휴식과 식사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리에르는 간부들과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제국의 군대는 멍하니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밤의 어둠을 틈타 제국의 야습이 시작되었다.
행군해 온 상대에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전법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효과가 좋은 방법이기에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대가 알고 있어도 효과적인 것이 야습이었다.
그것도 야습을 해오는 상대가 대륙 오제 중 한 명인 프레이야라면 사정은 달랐다.
무엇보다 프레이야가 직접 이끄는 염화 기사단, 즉 적기사단은 대륙의 정예 중의 정예였다.
직접 여제가 검술을 사사한 그들의 능력은 능히 용사라 불릴 수 있었다.
삽시간에 불꽃을 머금은 살이 막사에 달라붙었다. 코스모스 군은 혼란스러워했다.
사방에서 물을 찾고, 불을 끄라는 명령들이 오고 갔다.
불꽃의 여제라는 이명에 걸맞은 화려한 기습전이었다.
선두에 선 프레이야는 직접 친히 기마를 몰고서 자신의 정예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적의 목을 치는 데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적의 막사를 하나라도 더 태우고, 목책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갑작스러운 야습 덕분에 코스모스의 작전 회의는 중단되었다.
리에르는 군의 정면으로 화마가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녀오겠다.”
리에르는 노골적으로 무력을 자랑하기 위해 나섰다.
“각하께서 직접 행차하실 일이 아닌 듯합니다.”
이번에 새로 리에르에게 편입된 10군단장인 뮐런이었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직접 선두에 나서서 적을 돌파하는 무력형 기사였다.
즉,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거니와, 리에르의 전술에 잘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실력을 보겠다.”
첫 출전이니만큼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싶은 것은 지당했다.
무엇보다 함께 있는 것은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칠흑의 마왕 리에르였다.
기사라면 누구나 최강이라는 사내에게 무를 평가받고 싶은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