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299)
레필리아 레소드-300화(299/398)
레필리아 레소드 300화
패도[覇道](2)
“네, 각하. 명을 받겠습니다.”
뮐런은 리에르의 허락이 감격스러운 듯 예를 취했다.
“괜찮겠습니까, 각하?”
핀란드는 리에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입을 열었다.
리에르는 그를 향해 시선도 주지 않고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턱을 괴었다.
“뭐를 말이지?”
리에르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핀란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대륙에 공포를 흩뿌리는 칠흑의 마왕이 이끄는 군대. 그 군대에 돌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제국의 대원수이자, 대륙 오제인 프레이야일 겁니다.”
실제 핀란드의 말처럼 프레이야는 몸소 군을 이끌고 기습했다.
전략가들이 들으면 팔짝 뛰고도 남을 일이다.
대장이 직접 검을 들고, 그것도 정면에 나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프레이야가 그런 사실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담했다.
영웅이 앞에 서서 달리면, 뒤따르는 사람들은 사기가 오른다.
그만큼 교단과의 싸움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었다.
“각하께서 원한다면 제가 가고요.”
금발의 미소년이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앙증맞게 웃어 보였다.
거대한 망치를 주 무기로 하는 테헤라자드의 수호신장, 미카엘이었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입가를 열어 보였다.
“너를 쓰는 건 지금이 아니다. 기다려라.”
“흐흣. 저를 너무 귀여워하셔서 아끼는 것은 좋지만 몸이 근질거린다고요.”
미카엘은 진득한 타액을 입가에 바르며 동공을 좁혀 보였다.
리에르는 더 이상 미카엘을 상대하지 않고서 지그시 눈을 감아 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불길이 잦아들고 소란스러운 소리도 그나마 사그라졌다.
잠시 후 리에르에게 보고가 들어온 것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프레이야 비 미드니에게 10군단장 뮐런 사망. 적 야습을 마치고 장벽으로 복귀.
그 말을 들은 간부진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뮐런은 코스모스 교단에서 자랑하는 차세대 군단장이었다.
리에르는 천천히 여민 눈가를 뜨면서 입가에 미소를 그려 넣었다.
“제법이잖아.”
리에르는 무가 약한 군단장 따윈 인정도 하지 않았다.
물론 뮐런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 대륙 오제의 이름은 카드 따먹기 해서 먹은 것이 아니었다.
‘대륙 오제, 확실히 보통 존재는 아니겠지.’
리에르는 아버지 로이스타 아르빈트를 떠올렸다.
누가 뭐라 해도 대륙 제일 검으로 위명을 날리고 있는 그는 신검이란 호칭을 받은 후 불패(不敗)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가정하의 이야기였다.
리에르는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오로지 리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양 군은 전투를 시작했다.
제국은 높다란 장벽의 위에서 화살과 돌을 쏘아 적의 진입을 방해했다.
교단 군은 감히 높다란 장벽을 넘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정란차나 공성 사다리로는 닿지도 않을 정도의 장벽이었다.
아무리 쇠퇴했어도 제국이 한창 시기였을 때 만들어진 장벽이다 보니 그 위엄은 보통이 아니었다.
하여 교단 군은 충차를 만들어 성문을 파괴하려 했다.
일반 장벽 높이의 두 배.
대륙에서 가장 높은 관문을 가진 월 크로스는 단단했다.
불로는 타지 않도록 만들어진 쇠문. 보통의 충차로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을 만큼 단단한 강도를 자랑했다.
첫 전투는 교단 군의 막대한 피해로 끝이 났다.
안전한 장벽 위에서 공격만 하는 제국 군.
무방비한 상태에서 쇠로 만들어진 철문을 부수기 위해 충차를 움직이는 교단 군.
당연히 제국 쪽은 단 하나의 손해도 입지 않았다.
다음 날도 다시 한번 똑같은 방식으로 전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똑같은 방식의 공, 수성전이 전개되었다.
여전히 제국 군의 월 크로스는 열릴 기미가 없었고, 교단 군만 계속 피해를 보고 있었다.
“따분하군.”
리에르의 말에 핀란드는 흥 하는 코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각하께선 전략에 대해서 모르시는군요. 지금 우리가 입는 피해만큼 적도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겁니다. 상대는 지금 대륙에서 가장 높은 장벽입니다. 손쉽게 진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건 어디까지나 너희들의 기준에서겠지.”
리에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핀란드는 또 리에르가 무슨 짓을 하는가 싶어서 올려다보았다.
리에르는 자신의 흑마를 몰고서 전장의 최전선에 나섰다.
각 군단장은 방패를 든 충차 병들을 계속해서 철문을 공략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장벽을 부수지.”
리에르는 그렇게 말하며 철문을 향해 흑마를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정관이 혼자서 관문을 향하자 지휘관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핀란드만이 한숨을 내쉬면서 으르렁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인간의 전쟁은 인간의 힘으로 해야 하는 건데, 그런 식이면 전쟁의 당위성이 사라집니다.”
핀란드의 말처럼 리에르는 혼자 성문 앞에 서서 있었다.
화살 따위가 포스의 몸에 스치고 지나갈 리도 없었다.
리에르는 천천히 손을 뻗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등 뒤로 칠흑의 날개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홀 블레이드(Whole Blade).”
리에르의 주변으로 칠흑으로 그려진 검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자아를 가진 듯이 꿈틀거렸다.
펑, 퍼퍼펑!
칠흑의 검들이 쇠문을 향해 맞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수도 없이 칠흑의 기운이 쇠문을 갈기자 소름 끼치는 굉음들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제국 군과 교단 군도 압도적인 위압감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몇 차례 리에르의 홀 블레이드가 집중적으로 쏟아지자 결국 쇠문은 더 버티지 못하고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절대 사람의 힘으로 부술 수 없는 철의 문이었다.
균열의 건너편으로 보이는 제국 군의 모습은 딱 보기에도 겁을 먹은 듯한 분위기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귀가 있다면 칠흑의 마왕에 대한 소문은 듣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가 지나간 곳에는 거대한 살육이 벌어지고,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다 하였다.
문의 균열로 보이는 칠흑의 마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로 떨게 했다.
“자, 가라.”
리에르는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충차를 기다렸다.
이미 균열이 발생한 철문은 충차로 몇 번 공격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장벽 위에서 수 없는 화살 비와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하지만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콰아앙!
철문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울어져 가는 철의 문은 사방으로 부서지듯이 추락했다.
리에르는 천천히 정면으로 보이는 붉은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자, 가볼까.”
리에르는 혼자서 흑마를 끌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교단 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핀란드는 제멋대로 날뛰는 리에르를 보면서 눈가를 찌푸려 보였다.
아무리 최강의 힘을 지녔다고 하지만 혼자서 모든 전쟁을 책임질 수 있을 리 없었다.
실제 리에르 이전의 포스들도 그러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소유했어도 다수의 힘과 다수의 지혜에는 감당할 수 없었다.
방패와 창을 쥔 제국의 보병들은 칠흑의 마왕을 막아섰다.
그들은 칠흑의 마왕에 대한 소문이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자, 막아봐라.”
리에르는 앞을 가로막는 보병들을 베었다.
아르카는 약 3m는 됨직한 날카로운 도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칠흑의 밤처럼 보이는 칼날은 닿는 것은 모두 두부 자르듯이 잘라내고 있었다.
감히 칠흑의 마왕 앞을 가로막을 것은 없었다.
순식간에 보병 대열을 뚫어버린 리에르의 앞을 막는 것은 적기사였다.
그들은 말을 몰고서 창을 높이 들었다. 마왕의 힘을 시험하려는 듯이 달려드는 적기사를 보고 리에르는 아르카를 크게 휘둘렀다.
붉은 혈선이 그어졌다. 핏빛 향연은 비릿한 향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떠올리는 영혼들. 잘려 나간 창자를 주워 담으려는 사람들.
도려진 팔을 잡고서 울부짖는 사람들.
다양한 반응들이 핏빛 향수를 피워냈다.
리에르는 달려드는 적기사를 향해 긴 도신을 세로로 그어 내렸다.
염화(炎火) 기사는 리에르에게 창을 휘둘렀다.
서걱!
하지만 창은 그대로 잘려 나가 버리고 말았다.
염화 기사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을 때는 이미 잘려 나간 상반신이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리에르는 자신의 검 속에 반응을 보인 염화 기사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칭찬받아야 할 인물은 바닥에 미끄러져 절명해 있었다.
대화할 상대를 잃어버린 리에르는 섭섭함을 느꼈지만 별수 없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리에르는 최강자로서 군림해 왔다.
버러지 같은 생명들이 아무리 단합하고 힘을 합쳐도 자신에게 대등할 수 없었다.
적기사들은 리에르의 검격을 주의하면서 사방으로 산개해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창끝이 리에르의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그 공격은 무언가에 막혀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리에르는 공격해 오는 창날을 힐끗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막아낼 수가 있었다.
포스로서의 방어막. 그것을 생성해낸 리에르는 그냥 가볍게 손목을 움직여 칠흑의 도신으로 모든 것을 베어 넘겼다.
순식간에 유혈로 만들어진 꽃이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흑마를 타고 나오는 리에르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최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도다.”
붉은 면류관을 쓴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
머더러 포스 리즈를 연상시키는 듯한 붉은 색 일색을 보고 리에르는 입을 열었다.
“네가 프레이야냐.”
“그대가 칠흑의 마왕 리에르로군.”
리에르는 프레이야의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부터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리에르의 광오(狂傲)한 말에 누구도 웃지 못했다.
실제 칠흑의 마왕은 혼자서도 일개 군단은 우습게 상대할 수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네.”
프레이야는 자신의 적도(赤刀) 히아신스(Hyacinth)를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며 칠흑의 검, 아르카를 들어 올렸다.
“모두 덤벼라. 한 마리씩 덤비는 것은 귀찮다.”
“뜻한 바는 아니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겠네. 칠흑의 마왕.”
프레이야는 빙긋 웃으면서 적도를 들어 올렸다.
그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이 염화 기사대는 리에르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리에르는 자신에게 몇이 덤비든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보통의 무기로는 리에르의 방어막을 뚫을 수도 없었다.
리에르가 흑마를 끌고서 질주를 시작했다.
창보다 더 긴 도신을 휘두르는 마왕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대륙 최고의 기사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기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앞을 향해 달리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뒤로는 그들이 목숨을 바칠 사람이 존재했다.
용맹한 적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창과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쏟아지는 그들의 공격은 칠흑의 커튼이 여미자 무위로 돌아갔다.
리에르가 마음만 먹는다면 원거리 공격들은 전부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근거리 공격들은 전부 차단을 걸어 놓을 수 있었다.
공격을 원하고자 한다면 살아 움직이는 검이 원격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아울러 마왕의 저돌적인 공격은 그 누구도 막기 어려웠다.
말 그대로 공수가 완벽한 존재였다.
리에르는 달려드는 적기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가볍게 손목에 스냅을 주어 긴 도신을 가로로 그어 내렸다.
적기사 한 명이 갑주와 함께 종이 자르듯이 잘려 나갔다.
단단한 갑주를 입어도 칠흑의 검, 아르카의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리에르는 겨우 한 명만 잘려 나가자 내심 실망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