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00)
레필리아 레소드-301화(300/398)
레필리아 레소드 301화
패도[覇道](3)
그 순간 리에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느꼈다.
마치 불꽃을 쏘아내는 듯한 기류의 흐름을 느끼고 리에르는 고개를 돌렸다.
화르륵!
볼에서 덴 듯한 느낌이 찾아들었다. 불꽃과 함께 스쳐 지나간 것은 화살촉이었다.
화살 따위가 방어막을 뚫고 들어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방어막의 사용자보다 강하거나, 마력이 담긴 물건이거나.
리에르의 볼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적기사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는 칠흑의 마왕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처럼 피가 흘렀다.
그것을 보고 적기사의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다. 그들의 공격이 사방에서 리에르를 향하여 찌르고 들어온다.
리에르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창날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향해 재차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륙 오제인 프레이야의 수제자.
그녀의 화영 검법을 궁법으로 바꾼 천재는 오만한 표정으로 칠흑의 마왕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대륙의 차세대 영웅이란 의미로 십걸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 명단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는 이가 프렌이라는 인물이었다.
“우연히 갖게 된 힘 따위로 최강이란 얼굴을 하고 있지 마라.”
프렌은 리에르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렇게 씹듯이 중얼거렸다.
리에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프렌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흑마를 달렸다.
“내가 아는 최강이란 네놈 같은 미치광이가 아니다.”
프렌은 어릴 적부터 프레이야 곁에 있던 종자였다.
그저 하잘것없는 가문인 그에게 대영웅의 종자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행운과 행운이 반복되어 주어진 변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레이야가 프렌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존재했다.
프레이야의 눈에는 재능을 가진 이는 빛을 뿜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프렌이란 소년은 누구보다 밝은 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절대로 틀리는 법이 없었다.
화르륵!
프렌의 영시가 허공을 찔러 들어가며 불꽃을 피워냈다.
소름끼치는 불꽃 소리와 함께 리에르의 흑마가 투레질을 하며 쓰러졌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리에르는 낙마하기 전에 스스로 떨어졌다. 가까스로 바닥에 섰으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기병들이 에워쌌다.
귀찮아진 리에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긴 검신에 마력을 듬뿍 담아서 추어올렸다.
그때 기병들 사이로 불꽃의 면류관을 쓴 여기사가 적도를 높이 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정도 영웅이 가진 무기라면 예사 무기는 아닌 것이 당연했다.
리에르는 주변의 적기사들을 향해 휘두르려던 검을 들어 올렸다.
챙!
긴 철과 철의 굉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일렁거렸다.
리에르는 손목에 시큰함이 전해지자 입술을 비죽여 보였다.
확실히 대륙 오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한 검술이었다.
리에르는 검신을 들어 아래에서 위로 프레이야를 밀어냈다.
아무리 강해도 리에르의 마력이 실린 공격은 버텨내기 힘들었다.
프레이야는 뒤로 물러섰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불꽃의 화살이 리에르의 심장으로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프렌의 저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창날이 다시 찔러 들어왔다.
리에르는 공격을 무시하고서 프레이야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그 순간 창날은 방어막을 뚫고서 들어왔다.
리에르는 다급하게 검을 선회하여 머리 위로 올렸다.
믿어지지 않지만, 검에 닿는 적의 공격은 진짜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하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리에르는 발을 들어 적기사가 탄 말의 앞발을 후려갈겼다.
말이 투레질을 하면서 쓰러진다. 낙마하는 적기사가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 순간 리에르는 구해주려는 것처럼 상대의 손을 낚아채서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붙들려온 적기사는 그대로 리에르에게 집어 던져졌다. 적기사는 아군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리에르는 칠흑의 도신을 양손으로 말아 쥐면서 몸을 낮췄다.
리에르는 칠흑의 검으로 붉은 원을 그려냈다.
그를 중심으로 붉은 검광이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 넘겼다. 말의 다리가 전부 잘려나가 수많은 적기사가 동시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리에르는 땅에 떨어진 창 손잡이 끝을 차올렸다. 창이 튕기듯이 세로로 서자 그대로 손으로 잡고 투창했다.
리에르가 던진 창은 프렌이 쏜 화살을 튕겨냈다.
창은 멈추지 않고서 프렌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프렌이 움찔하는 순간 리에르는 검을 고쳐잡고서 순식간에 간격을 줄였다.
프렌은 이를 악물고 말고삐를 틀며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리에르의 검격은 프렌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리에르의 검은 그대로 자세만 취한 채 몸을 회전했다.
그의 시야 안으로 프레이야가 적도 히아신스를 내리찍고 있었다.
적과 흑의 교차가 이루어졌다.
프레이야가 타고 있던 말의 목에서 흥건한 피보라가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프레이야의 검격은 리에르에게 크게 밀려났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프레이야는 낙마했다. 그녀는 겨우 땅에서 균형을 잡았다.
“프레이야 님!”
프렌이 이를 악물고 활시위를 쏘았다.
리에르는 프렌의 화살이 날아들든 말든 무시한 채로 흉검을 내리 베었다.
분명히 길쭉한 피보라가 솟구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리에르는 둔탁한 느낌을 받았다.
후르륵!
리에르는 등을 향해 날아드는 프렌의 화살을 가볍게 튕겨냈다.
상대의 화살이 날카롭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똑같은 방식에 계속 당할 필욘 없었다.
촤라락!
마치 채찍처럼 움직이는 검의 끝. 익숙한 사복검의 살기.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 보이는 것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사내였다. 그의 눈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죽는 게 억울하더냐, 피스 메이커.”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해 보였다.
피스라고 불린 붕대의 사내는 회수된 사복검을 허공에 저으며 다시 검법을 펼쳐냈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사복검은 특유의 마찰음과 함께 포곡선을 그리며 리에르에게 날아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위로, 우에서 좌로. 사정없이 화려한 변화를 보이는 사복검법에 리에르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훔쳐간 룬 위시를 돌려주러 왔는가.”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피스는 그의 말에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등 뒤로 황금빛 나선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룬 위시 발동.
황금빛 나선포가 그대로 리에르의 몸을 찢어내기 위해 쏘아졌다.
번뜩이는 섬광의 기운을 보고 리에르도 진각을 밟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파지직!
칠흑과 황금의 빛들이 서로 뒤엉켜서 꿈틀거린다. 그 사이 프레이야는 리에르의 측면으로 검을 베어 들어갔다.
화르륵.
화염이 허공을 태운다.
마치 물결처럼 잔상을 일으키는 화염.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검 끝.
리에르는 프레이야의 손목을 보고서 검 끝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가 입은 옷자락은 화염으로 인해 검은 재로 변해 버렸다.
화영(火影)검법.
불꽃의 그림자가 검을 숨기고 적의 목숨을 위협한다.
막았다고 생각하면 측면으로 미끄러지듯 베어들고, 피했다고 생각하면 집요하게 쫓아왔다.
프레이야는 리에르가 사투 속에서 갈고 닦아온 검법을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흘려보내고, 반격해 왔다.
리에르는 자신의 검이 수차례 막히자 내심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대륙의 오제든 뭐든, 포스나 수호신장이 아닌 이상 자신에게 견줄 수 있는 인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외를 둔다면 대륙 오제 중 최강이라 불리는 아버지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겨우 이 정도로 멈춰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계획을 위해,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아버지와 적대가 될 수도 있었다.
겨우 이 정도에서 밀리면 아버지도 이길 수 없다. 어설프게 강하면 안 된다.
압도적으로 강해야지만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다.
갑자기 프레이야가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불꽃의 화살들이 리에르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리 쫓듯이 화살을 튕겨낸 리에르는 파지직거리는 굉음들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룬 위시 익스플로전(Rune Wish Explosion).
리에르의 위에서 황금빛 번개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멸하는 기류가 리에르를 감싸듯이 덮쳐온다.
사방에서 전류가 포효하듯이 굉음을 흩뿌렸다.
리에르는 진각을 밟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빗방울처럼 쏟아지는 번개는 방어막에 닿을 때마다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리에르는 두개골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분명히 이전보다 룬 위시의 위력이 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흡수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없이 쏟아지는 룬 위시의 황금빛은 전부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저격해 오는 프렌의 화살도 리에르의 칠흑 커튼 앞에서 녹아 없어졌다.
모든 것을 방어에 쏟자 그 공간은 물리적이든, 마법적이든 전부 권리 앞에 흡수만 되고 있었다.
‘원래 그랬었지.’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했다. 스스로의 강인함에 취해, 너무 약한 상대만을 만나 굳이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리에르 자신은 괴물이었다.
아무리 특별한 인간이라 해도 강력한 포스에게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리에르의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듯이 바뀌었다. 천천히 광기 어린 미소와 함께 차가운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어설프게 몸의 컨디션을 걱정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속절없이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피스는 리에르가 끈덕지게 룬 위시의 공격을 막아내자 잠시 마력량을 회전시키기 위해 포격을 중지했다. 그 순간 리에르는 튀어 나가듯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칠흑의 깃털이 허공에 흩날렸다.
빛으로 그려진 깃털이 땅바닥에 닿기도 전. 프렌의 목에서 붉은 선이 그어졌다.
“프렌!”
대륙 십걸. 올라운드 웨펀이라는 별명을 가진 프레이야의 수제자는 차세대 검성으로 주목받던 청년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동공을 확장했다.
그것을 끝으로 그는 대각선으로 꺾인 흰 목뼈를 보이며 핏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칠흑의 검날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리에르 아르빈트의 주특기인 오토 웨펀, 홀 블레이드였다.
리에르가 손가락을 튕겨내자 먹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홀 블레이드가 사방으로 번쩍였다.
푸쉭, 서걱!
소름 끼치는 난도질이 사방에서 벌어지며 핏물이 터져 나왔다.
리에르는 진각을 두르며 양손을 들어 펼쳐 보였다.
리에르의 두 번째 초월기 웜홀이었다.
삽시간에 모든 공간은 시커먼 암흑으로 변하며 모든 것을 그대로 녹이듯 사라지게 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하다.”
칠흑의 날개를 흩날리며 리에르의 붉은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앉아서 편히 죽던가, 버러지처럼 발버둥 치던가.”
굉장히 광오한 대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것이 리에르 아르빈트라면 허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리에르가 상대하는 이들도 대륙에서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겠느니라.”
프레이야는 마치 불타는 듯한 잔류를 일으키며 적도를 베어냈다. 허공마저 타들어 가는 붉은 화염은 사정없이 리에르를 향해 난도질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