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05)
레필리아 레소드-306화(305/398)
레필리아 레소드 306화
출사표(2)
오트리아 제국은 수도에서 교단과 공성전을 펼치고 있었다.
공성에서 수성으로, 수성에서 국지전으로 벌어지는 전투는 의외로 팽팽했다.
물론 이실렌과 프레이야가 손을 잡았으니 쉽게 정복될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교단의 공세가 예상 밖으로 저조하기도 하였다.
제국은 교단이 언제 총공격을 해올지 몰랐기에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며 예리한 칼날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 페리안도 그동안의 노고를 축하하는 연회가 끝나자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에 리즈가 예언한 대로 페리안에는 잠들어 있던 인재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재들은 대다수 적재적소에 등용되었다.
유트의 근위 기사는 셋밖에 없었으나, 이제 열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 열 명의 근위 기사들은 서로 공을 다투듯이 병력을 끌고 출정하였다.
이번에 출정 목표가 된 곳은 그동안 페리안에 흡수되지 않고 남아 있던 잔여 세력들이었다.
말만 토벌이지, 사실상 페리안의 군대를 본 영지들은 전부 항복의 예를 갖추었다.
한 달. 잠시간의 시간 동안 페리안은 내정을 다스렸고, 우려했던 리즈도 다시 복귀했다.
곧 페리안과 아렌은 연합 동맹을 맺었음을 정식으로 공표했다.
“페리안은 이제 코스모스를 이 땅에서 몰아낼 것입니다.”
모든 신하가 모인 자리에서 유트는 자신의 검을 들어 책상에 꽂았다.
날카로운 도검은 마치 종이를 베어 들어가듯이 움직였다.
결국, 검을 뽑은 이상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유트의 생각이었다.
이 결정에 반대한 이는 물론 존재했다.
하지만 유트의 핵심 전력들. 왕의 기사들과 왕의 오른팔들은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다.
“아로운 킴.”
신궁의 아로운은 왕의 부름에 거만한 턱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왕의 품위를 손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거친 성향을 지니고, 거만함을 품격처럼 갖고 있었다.
유트는 처음 그와 만났을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북방 대륙에서 누구의 통제에도 따르지 않고 야생 그대로 살아가던 남성. 약자에겐 약하고, 강자에겐 강한 남자.
“그대를 이번 토벌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우리 북방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 대륙에 알려주길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베리타스. 이 아저씨가 다 쓸어버릴 테니”
아로운은 다시 한번 콧방귀를 뀌면서 으스댔다.
유트는 페리안 집정관의 검을 들어 올렸다.
옆에 있던 신하는 집정관의 검을 두 손으로 받아 아로운에게 전달하였다.
“빅스터 나이브만. 전략 사령관으로서 총사령관을 보좌해 주시오.”
“네, 베리타스.”
전략, 전술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빅스터였다.
두 명의 영웅이 힘을 하나로 한다는 것은 타국에게는 굉장히 두려운 요인이었다.
“이번 출정의 군대를 3군단으로 나눕니다. 상급 근위 기사 셋을 각 군단의 군단장으로 임명합니다.”
“명을 받듭니다.”
이번에 근위 기사가 열 명으로 늘어나면서 페리안의 기존 근위 기사였던 레온, 텟사, 프세는 상급 근위 기사로 임명되었다.
“리즈 지센라이드는 현 시간부로 재상의 자리에 다시 앉아 전투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네, 그리하지요.”
유트의 말에 리즈는 별다른 반론 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유트는 리즈라는 존재가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의 그에게 있어 리즈라는 존재 없이 국가가 운영될 리 만무했다.
한때 유트가 본 리즈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기 자신의 힘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다.
“이번 코스모스의 성전은 전 대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십여 년간 계속된 코스모스의 위협에 스스로 거부하고자, 정벌에 나서려 합니다.”
아버지 지크 페브리안. 그 역시 코스모스에 대항하던 영웅이었다.
“이제 페리안은 아렌과 굳은 동맹을 맺을 것입니다. 아울러…….”
얼마 전에 빅스터와 리즈를 통해 들은 이야기. 연합의 당위성을 더욱 크게 부가시켜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아렌의 여왕과는 곧 성혼할 겁니다.”
정치적 결혼. 두 개의 파벌이 정말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건 중, 하나였다.
서로 이어지는 것으로 굳건한 동맹을 외부에 알릴 수 있었다.
현재 아렌은 몬스터 대군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코스모스의 위협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렌으로서는 주변 국가와의 연합, 아울러 다른 강국과의 혈맹은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물론 정치적 조약과 동맹은 언제든지 손 뒤집듯이 바뀔 수 있었다.
전쟁에 있어서 명분은 중요했다. 그 허울뿐인 명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저 겉으로 보일 뿐인 조약에, 혼인 동맹까지 얹는 것으로 굳건한 명분을 만든다.
예상치 못한 왕의 선언에 페리안의 신하들은 웅성거렸다.
“현 시간부로 우리 페리안은 반 코스모스 연합의 장으로서 대륙을 평정할 것입니다.”
페리안, 아렌, 로빈타, 루나레이크. 이 네 개의 강국이 손을 잡았고 기타 도시 국가들이 그들의 해방 전선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나 베리타스는 지금 이상으로 귀관들을 더욱 부려먹을 겁니다. 원망하려면 오늘 마지막 연회에서 실컷 해두시기 바랍니다.”
유트의 농에 신하들은 예를 표하며 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도 지금 대륙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서 자신들이 무엇 하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젊은 청년은 달랐다. 그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나하나 기적처럼 보여주었다.
이미 유트는 완벽한 왕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전쟁이라고 투덜거리는 인물은 없었다.
유트의 선언 이후로 신하들은 바빠졌다. 물자를 위한 준비, 군사 훈련을 위한 준비 등, 각종 회의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이것 참……. 꼬맹이 유트가 결혼이라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나의 베리타스.”
“놀리지 마세요, 리즈. 어차피 정략적인 결혼일 뿐이니까.”
선언 이후로 오히려 한가해진 것은 왕이었다.
열심히 데이터를 모으고, 계획 수립과 인적 자원을 계산하는 것은 신하가 할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리즈, 미혼이었군요.”
유트는 새삼스럽게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유트의 발언에 리즈의 미간이 한순간 씰룩였다.
“천하의 머더러 포스를 상대로 그런 도발을 하다니. 확실히 패왕의 자질이란 대단하군요.”
리즈는 코를 찡긋거리며 포도주를 잔에 담았다. 투명한 유리잔에 검붉은 포도액이 칠해지기 시작한다.
곧바로 그 알갱이들이 피워내는 달콤한 향은 방안에 가득 피워 올리는 듯 느껴졌다.
“제가 놀리는 것은 머더러가 아니라, 친구이자 스승인 사람이니까요.”
“잘도 빠져나가는군요.”
리즈는 먼저 따른 잔을 유트에게 넘겼다. 자신은 또 다른 유리잔을 붉게 칠해 보였다.
새삼스러운 그의 말에 리즈는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평소에 그가 짓는 것과 같은 살기 어린 섬뜩함은 전혀 없었다.
“오래 살다 보니 핏덩이 같은 꼬맹이에게 놀림도 받는 예도 있군요.”
핏빛 머더러.
살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대량 학살에는 그만큼 강력한 폭군이 없었다.
지금껏 태어난 네 명의 포스 중에 가장 학살 능력이 뛰어난 존재는 리즈였다.
“네, 그러니 오래 살아야 합니다.”
유트의 말에 리즈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트는 마른 입가에 포도액을 적시며 다시금 중얼거렸다.
“당신같이 뛰어난 스승은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제 자식에게도, 제 손주에게도 그 가르침을 받게 해주고 싶어요.”
“세포 하나까지도 부려먹고 싶어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요? 사디스트 선언인 건가요?”
리즈의 말에 유트가 픽, 실소를 터뜨렸다.
“유능한 사람은 손에 넣고 놓치지 말아야죠.”
포스는 태어났을 때 선과 악이 결정된다.
각성 시, 환경 요건에 따라 정상 각성을 할지, 폭주를 할지 결정된다.
미쳐 버린 포스 사용자는 영원히 살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포스에 대한 정설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리즈는 그 정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분명 비정상 각성으로 인해 리즈는 폭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는 제정신을 차리고서 스스로의 살육을 억제할 수 있었다.
“이제 리즈는 전투에 나서지 마세요. 그 누구의 위험이라 해도 말이죠. 당신의 힘이 폭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유트의 말에 리즈는 입을 다물었다. 달빛 창가 아래 길게 늘어진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
마치 여성처럼 보이는 흰 도화지 위에 그려진 매혹적인 붉은 입술.
그것이 빙긋이 온화하게 웃음을 그려 보였다.
“애송이 유트 주제에 걱정이 많군요. 요새 패왕이다 베리타스다 불리니 간덩이가 부은 것 같군요.”
“그 간덩이 부은 것은 저번으로 족합니다. 만약 당신이 무리해서라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 대패하고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웰던의 시가전. 그 전투에서 유트는 대패를 당했다.
분명 유트는 천재였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패웅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었다.
노력을 곁들이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 노력에 찬란하게 빛나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주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적의 노림수.
그 한 번의 패배는 그동안 유트가 쌓아온 모든 것은 한순간에 뒤엎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리즈 지센라이드라는 머더러 포스의 강력한 힘.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다른 바 없는 그 압도적인 힘이 없었다면 결과는 명명백백(明明白白)했다.
“남 걱정하지 마세요, 유트.”
리즈는 달빛 창가에 걸터앉아 포도주를 음미했다.
달빛에 흠뻑 적셔진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하얗고 투명하게 느껴졌다.
“오늘 밤, 당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테니까요.”
“그럴 테지요.”
북방의 패왕 지크 페브리안도 코스모스 교단의 암살 기습을 받고 비명횡사했다.
왕성은 그대로 불탔으며 중심점을 잃은 북방은 그대로 무법천지로 바뀌었다.
북 대륙은 유별날 정도로 지도자에 의한 세력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그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면 순식간에 사분오열(四分五裂)한다는 의미였다.
“이번에도 날 걱정시키지 말아요, 유트.”
리즈는 붉은 입술을 빙긋 웃으면서 화사하게 말했다.
* * *
페리안의 마지막 연회도 이제 끝을 맞이했다.
베리타스의 폭탄선언 덕분에 저녁 연회는 굉장히 들뜬 분위기였다.
이번 전쟁의 승패, 그리고 앞으로의 대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새벽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유트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 시기군요.’
유트는 자신이 원하는 상대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인연이 없었다.
그동안 왕국을 만들겠다고 정신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제이미와 혼인 동맹을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알게 된 원인도 리에르 때문이었고.
‘저는 오히려 리즈가 반려를 구했으면 좋겠군요.’
유트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리즈는 조소를 머금었다.
리즈도 영원불멸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봉인되어 있던 시기 때문에 젊을 뿐, 그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고 언젠간 죽게 될 터였다.
하지만 리즈는 가정을 꾸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한때에는 그럴 생각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존재했다.
한 여성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또 한 여성은 적이 되어 칼날을 겨누었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불행의 나락으로 끌어당긴 자신이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이미 죽은 이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유트.”
천하의 머더러 포스가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걱정을 받는다.
그것은 정말 희극과도 같았다.
하지만 리즈는 이런 것이 인간 취급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기쁘기만 했다.
“약한 아이로 키우지 않았으니 갚을 것은 확실히 갚길 바랍니다.”
리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커먼 구름으로 가려지는 달빛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