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07)
레필리아 레소드-308화(307/398)
레필리아 레소드 308화
출사표(4)
유트는 뒤로 세 걸음 물러나며 위협적으로 횡 베기를 했다.
라파엘은 회피와 동시에 칼날을 쏟아냈다. 그의 귀 하나가 핏물을 뿌리며 허공중에 회전했다.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을 상대했을 때 이야기야.”
유트는 공격과 동시에 수비까지 했지만, 미처 쳐내지 못한 칼날 하나가 허벅지에 박혀 들어갔다.
붉게 물들어가는 바지. 유트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억눌렀다.
“참고로 자네의 보호자는 오지 못할 거야.”
라파엘은 전신이 베여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는 듯이 보였다.
“자네 친구인 리에르가 말하더군. 나 혼자 가면 리즈 때문에 계획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내 친구를 데려가라고.”
유트는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람은 나선을 그리며 살을 천천히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상처는 점점 커지고, 고통은 물밀 듯이 커져만 갔다.
“리에르 아르빈트. 원래 그 녀석은 네가 생각하는 이상의 미친놈이다. 전생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지. 지금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나?”
“글쎄요. 하지만 내가 기저귀 차고 있는 어린애라 생각하는 건 불쾌해지는군요.”
비록 상대에게 준 피해가 훨씬 컸지만, 라파엘은 아무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거스름돈이 남지 않는 손해 보는 장사였다.
유트는 이제 최단 시간에 적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이대로 출혈이 계속되면 좋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네 친구는 전생을 반복해 온 괴물이다. 녀석의 눈에는 인간이 인형으로 보이지. 어떻게 아냐고? 나 또한 마찬가지의 괴물이기 때문이지. 다시 태어났을 때 만나는 가족과 친구들 따위는 그저 한때 지나가는 것에 불과해. 아, 첫사랑? 이딴 걸로 설명하면 되려나? 한때는 사랑했겠지. 근데 잊혀져. 응 정말 기억도 안 나. 내 첫사랑은 몇 천 년 전이었거든.”
라파엘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통증이었다.
아니, 수호신장들은 전부 재생력이 뛰어났고, 불사의 몸을 갖고 있었다.
“당신의 고약한 첫사랑 이야기 따윈 듣기도 싫습니다.”
유트는 그렇게 빈정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짧게, 모든 힘을 쏟아부어 상대를 베어내야만 했다.
상대가 불사신이든,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든 상관없었다.
유트는 자신의 검이 포스마저도 베어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난 무려 걱정해 주는 거라고.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여야 우리‘들’도 질린다고.”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상대가 하는 말에 일일이 반응하고, 일일이 자극받을 필요 없었다.
“말이 너무 많아.”
유트는 자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라파엘의 코앞에서 몸을 회전했다.
라파엘은 이를 드러내며 손에서 수북하게 바람의 단검을 생성했다. 그리곤 품 안에 뛰어드는 유트를 양손으로 끌어안듯이 공격했다.
유트는 튀듯이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장도에서 은색 섬광이 솟아올랐다.
촤악!
공중으로 치솟는 라파엘의 팔이 혈화를 꽃피우며 춤을 추었다.
유트는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반회전 하며 왼쪽에 들은 단도를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오른손에 쥔 장도는 공격을 담당했고, 왼손에 쥔 단도는 방어를 담당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유트는 모든 힘을 공격에만 쏟아부었다.
황금빛의 검호. 은빛의 선율. 허공에 수놓이는 검광은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받아쳤다.
“이야, 자네 정말 인간 맞나?”
라파엘은 양쪽 팔이 전부 절단되어 쉴 새 없이 핏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20대 꼬맹이가 신을 썰어댈 수 있다니.”
유트가 들고 있는 투 헤븐은 분명히 최고의 도검이었다.
무엇보다 사지를 뚫고서 익힌 가문의 검술은 유트를 너무나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다.
“확실히 스스로의 힘에 자신이 있군. 아니, 실제로 불세출의 영웅이라 불릴 만한 실력이야. 자네는 강해. 하지만 그 강함이 자네의 발목을 붙잡을 걸세.”
“이번에는 당신의 혀를 베어야겠군요.”
유트가 장도를 들어 올리며 라파엘의 입을 겨눴다.
유트는 상대가 양팔을 다 잃었어도 여유로운 것을 보고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살아온 교단의 괴물들이니만큼 순식간에 팔이 재생할 수도 있었다.
“상대가 양팔을 잃어도 방심하지 않고 냉정하게 판세를 읽다니. 훌륭해.”
유트는 라파엘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등 뒤로 칼날의 비틀림이 느껴졌다.
푹.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찾아드는 고통.
유트는 애써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서 도검을 등 뒤로 베어냈다.
하지만 뒤에서 다시 칼날의 느낌이 전해졌다. 유트는 마치 구멍 난 풍선처럼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 느껴졌다.
유트는 온 힘을 다해 뒤로 재빨리 백스텝을 했다. 하지만 황금의 눈동자 안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재라는 거 엄청 편리해.”
음침한 라파엘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유트의 허벅지로 칼날이 한 방 더 꼽혔다.
유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허물어져 가는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억지로 칼날을 바닥에 박았다.
그제야 라파엘은 유트의 코앞에서 다시 두 자루의 칼날을 빙글빙글 돌려 보였다.
“그거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잖아. 그치?”
유트의 양어깨에 단검이 박혀 들어갔다.
유트는 눈동자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보이는 것은 전부 거짓이고, 전부 허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무력감이 순식간에 전신을 감싸 안았다.
몸에 박힌 단검은 마치 스포이드처럼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삽시간에 붉게 물든 바닥과 벽. 그 물감을 분비시키는 유트는 휘청거리며 침대에 쓰러졌다.
“이젠 좀 말이 많아도 괜찮겠지?”
라파엘은 피투성이인 유트를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표정은 이게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때?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는커녕, 원수에게 도리어 당하는 기분이.”
“크윽.”
유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삽시간에 출혈량이 많아진 유트는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는 상태였다.
믿어지지 않지만, 순식간에 전세는 역전되어 목숨이 달랑달랑한 상황이었다.
“아버지 대에서 있었던 억울한 죽음. 그 죽음에 대한 원한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어서 혼자 암살자들을 해치우고 싶었던 모양이지? 그런데 그 허세 덕분에 지금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목숨이 달랑거리는 상황이라니. 이거 참 재미있지 않아? 자신이 천재고 잘났으니까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을 거 아냐. 근데 그게 막상 깨지니 두렵고 도망치고 싶지? 지금 죽을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 이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널 도와주러 올 거로 생각하잖아. 그치? 넌 주인공이니까.”
“말…… 많아…….”
유트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베리타스의 눈동자는 효력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의미가 없었다.
눈에 비치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이는 상대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 꼴이 되어서도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니 훌륭해.”
라파엘은 비아냥이 아닌,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트의 귓가로 몇 차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파엘은 그 소리를 듣고서 입가에 낄낄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쳐보였다.
“확실히 자네의 수호자는 강하군그래. 내 친구가 지금 열심히 두들겨 맞는 걸 보니 금방이라도 여기 오겠어.”
유트는 움직일 여력이 남지 않았다.
순식간에 급소를 찔리고 피를 많이 흘렸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급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있네. 우리 친애하는 수호자가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이겠지. 그동안 난 자네를 몇 번이나 죽일 수 있을까?”
라파엘은 그렇게 말하며 바람의 칼날을 들어 올렸다.
* * *
북방 왕국인 페리안에서 정식적으로 반 코스모스임을 선포했다.
그리고 곧바로 아렌 왕국과 페리안 왕국의 왕들이 서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말 그대로 혈연으로서 서로 굳건함을 강조하는 의미였다.
페리안의 유트 왕이 아렌 왕국의 여왕에게 마음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이로써 대륙은 이제 흑과 백의 싸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백의 상징으로 있는 인물은 유트 페브리안이었다. 그리고 흑의 상징으로 있는 인물은 리에르 아르빈트였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어릴 적부터 함께해 온 두 사람이 서로가 적으로서 대립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페리안이 선언한 당일에 코스모스에게 기습적인 암살 공격을 받게 되었다.
왕성에 몰래 침입한 암살자에 의해 유트 왕은 중상을 입었다.
왕의 암살 위협에 분노한 페리안은 곧바로 코스모스에 대한 해방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3만이나 되는 페리안의 대군은 순식간에 주변 열국들을 붕괴시켰다.
코스모스의 깃발을 내걸고 있던 영지는 그대로 페리안에게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
실제 코스모스의 종교인들은 개종은커녕 교를 위해선 언제든 목숨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결국, 그들 종교인은 영지에서 추방하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확실히 유트 페브리안은 자네 말처럼 강하더군. 그거 정말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야. 아니, 실제 자신의 힘을 좀 더 깨닫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면 정말 무섭게 자라겠어.”
긴 성게 머리카락의 남성은 손뼉을 치면서 이를 드러내 보였다.
이번에 페리안의 왕성을 기습해서 치명타를 입혔던 인물인 테헤라자드의 수호신장, 라파엘이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칠흑으로 조각된 것 같은 잘생긴 청년이었다.
라파엘은 일부러 유트의 이야기를 하면서 청년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칠흑의 청년은 별다른 반응도,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투 헤븐은?”
칠흑의 청년이 한 말에 라파엘은 빙긋 웃으며 손뼉을 쳤다.
“하하, 실패했다네. 방심했어, 방심했어. 그 괴물 같은 리즈 지센라이드가 벽을 뚫고 나타나서 자네 친구를 공주님 안기로 구하더군.”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칠흑의 청년, 리에르 아르빈트는 힐난하는 눈동자로 차갑게 중얼거렸다.
“아니, 알다시피 이번 전투에 수호신장이 둘이나 갔지 않은가. 나는 투 헤븐의 회수팀으로, 가브는 리즈 지센라이드 막는 팀으로. 근데 오, 맙소사. 리즈 지센라이드가 유트 페브리안이 위기에 빠지자 벽을 부수고 나타나서 나랑 가브 둘을 상대로 대활약을 했지 뭔가. 맹렬히 전투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매혹적이었지. 자신의 아기새를 지키려고 발악하는 포스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불사신의 몸뚱어리로 할 수 있는 것이 겨우 몇 대 얻어맞고 돌아오는 거라면 수호신장이란 이름을 버리는 것이 좋겠군.”
리에르의 힐난에 라파엘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뭐, 그래도 자네의 부탁대로 유트 페브리안은 죽이지 않았네만?”
라파엘의 말에 리에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라파엘은 이를 드러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마 이번 전투로 유트 페브리안이라는 희대의 천재는 몇 겹이나 자신의 한계를 벗어내겠지. 그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인간과의 전투만 존재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치를 깨닫게 되었으니 다음번엔 나라도 쉽게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거야. 그뿐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전사들은 하나같이 영웅이더군. 그의 근위 기사 덕분에 우리 암살조들은 전멸했다네. 더군다나 희대의 살인마라는 머더러 리즈까지도 자네의 친구를 수호하지 않나? 자네의 친구는 정말 골치 아픈 적이로군?”
“그래, 그 골치 아픈 적을 상대로 검 하나 회수 못 하는 불사신 씨. 어차피 금방 자라나는 손가락이 아까워서 검을 못 들겠던가? 불사신이 둘씩이나 가서 기습하고서 검 하나 못 챙겨온 게 자랑인가?”
리에르의 차가운 힐난에 라파엘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쳐 보였다.
“하하, 미안하게 되었네. 다음에 자네가 직접 회수하면 되지 않나? 듣자 하니 조만간 전장에서 만나게 될 것 같던데 말이지.”
라파엘의 말에 리에르의 붉은 눈이 살기를 띄었다.
그의 오싹오싹한 눈동자를 보고 라파엘은 자신도 모르게 설렘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