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1)
레필리아 레소드-31화(31/398)
레필리아 레소드 31화
리에르와 유트(6)
챙, 채에엥!
쇠의 굉음이 두 차례 울려 퍼졌다.
유트와 엘빈은 시작부터 화려하게 검을 교환하였다.
유트는 순식간에 엘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대거가 어느새 엘빈의 목을 훔치기 위해 찔러 들어온다.
엘빈이 롱소드를 회수하여 유트의 대거를 막았다. 오른손의 검이 빠르게 허리를 향해 베어 들어갔다.
엘빈은 왼쪽 팔꿈치로 유트의 오른손을 쳐서 막아냈다. 밀착된 유트와 엘빈은 잠시 바인딩 상태로 힘겨루기를 했다.
결국,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발차기했다. 서로의 복부를 때리고 맞으며 둘 다 뒤로 밀려난다.
‘이거 봐라…….’
엘빈은 몇 수 겨루어 보진 않았지만, 예상 이상의 검격을 보고 당황했다.
분명 자신이 상대하는 것은 18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자신과 대등한 실력으로 검을 겨루고 있었다.
관중석에서도 유트와 엘빈의 공방전을 보면서 환호를 보냈다.
그들의 환호와는 다르게 리에르는 유트의 시합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심판이 점수를 말했다.
두 사람이 동률의 점수였다.
‘무조건 졌군, 졌어.’
엘빈이 음험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역인 자신이 학생에게 점수를 내줬으니 선언대로 패배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대로 내려가기는 너무나 아쉬웠다.
“조금 더 놀아도 되겠지? 꼬마 친구.”
“아직 시작도 안 한 걸요.”
우승을 위해서라면 패배 선언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유트는 궁금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현역 기사를 상대로 이긴다면…….’
유트는 그렇게 속으로 뇌까렸다.
엘빈과 유트는 동시에 자세를 가다듬었다.
첫 번째 공방과는 다르게 서로를 바라보며 원을 그리듯이 걸음을 움직였다.
순간 유트의 몸이 사라진다.
아니, 엘빈은 자신의 눈이 은회색 머리칼의 미소년을 놓친 것에 두 동공이 크게 열어졌다. 그러고는 본능적으로 뒤로 스텝을 밟으며 롱소드를 밑으로 내려찍었다.
채엥!
쇠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유트는 엘빈의 롱소드를 X자 형태로 받아내면서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어린 청년의 힘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운이었다.
거리가 짧으면 대거를 든 유트에게 말려든다.
엘빈은 긴 다리를 들어 유트의 복부를 가격했다.
하지만 둔탁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유트는 엘빈의 발차기가 날아올 줄 미리 알았다는 듯이 무릎을 들어 발차기를 막아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돌진을 시도했다.
유트는 교차 상태로 막아내던 쌍수를 비틀어 엘빈의 롱소드를 튕겨냈다. 그리고 상대의 가슴팍을 향해 어깨로 부딪혔다.
“헙!”
헛숨을 들이켠 엘빈은 숄더 어택을 당하고는 급하게 손을 바닥에 댔다.
엘빈은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자세를 갖췄다. 하지만 유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검을 들어 오른쪽 허리를 베어 들어간다.
엘빈은 급하게 검을 들어 상대를 쳐내려는 순간이었다.
유트의 검은 각도를 비틀며 허리에서 머리를 향해 베어 들어온다.
허를 찔린 엘빈이 급하게 머리를 젖혔을 때 유트의 대거가 뒤쫓아 왔다.
엘빈은 다시 급하게 목을 비틀며 대거를 피했을 때 뒤통수에 큰 충격이 전해져왔다.
뻐억!
큰 소리를 내며 엘빈이 유트의 검에 가격을 당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엘빈의 머리 보호대는 유트의 공격에 부서져 버렸다.
보호대 덕에 치명상은 면했지만, 바닥에 부딪힌 그의 이마에선 선혈이 눈을 타고 볼에 흘러내려 턱을 적셨다.
관중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현 유격 기사단, 게다가 대장급인 엘빈 트위아를 상대로 우월한 전투를 보였다.
유트는 페이서스의 자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엘빈은 보지 못했지만, 유트는 대거를 찌르고 들어가면서 그와 동시에 몸을 반 회전 하였다.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무방비한 머리를 공격한 것은 쉽지 않은 수였다.
피할 수 없는 완벽한 공격이었다.
엘빈은 내려다보고 있는 유트의 차가운 눈빛과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치욕감에 몸이 떨렸다.
엘빈은 상대를 토막 내고 싶다는 살욕이 불끈불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제이미는 지금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보고 품위도 잊고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대륙 최강의 기사단. 그중에서도 열한 명의 대장급 중 한 명인 엘빈이 무릎을 땅에 댔다.
십일검 기사라는 호칭은 카드 따먹기 따위로 얻는 자리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그 한마디를 떨어뜨리며 제이미는 놀라운 눈빛으로 은회색 머리칼의 미소년을 바라보았다.
리에르가 아닌 유트가 파에트의 친동생이라고 하면 아무 거부감 없이 믿었을지도 모른다. 실력도 외모도 어느 하나 파에트에게 밀리지 않는 사내이므로.
“다운 3점, 머리 5점 총 8점!”
주심은 자신의 본분을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 서둘러 포인트를 말해주었다. 이미 분위기는 유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다. 엘빈의 기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부턴 위험하겠는걸.
리에르는 자신의 불안감이 헛고생으로 돌아가자 매우 기뻐하며 손을 들어 유트를 응원하다가 그녀의 말을 듣곤 의아하게 물었다.
“어째서요?”
-잘 보렴. 저 남자는 지금 상대를 어린 소년으로만 보았지만, 이제부턴 사냥감으로 보기 시작했어.
그녀의 말마따나 엘빈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큰 충격을 입었어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롱소드를 들어 보였다.
“그냥 실력만 보려 했더니……. 반쯤은 죽여 놔야겠군.”
엘빈은 남은 왼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혀로 핥았다. 장내는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이 고요해졌다.
유트는 달라진 기세의 적을 향해 쌍수를 들어 언제든 맞붙을 준비를 하였다.
엘빈은 조금 전과는 이질적으로 다른 눈빛으로 유트를 노려보았다.
유트는 여전히 무표정한 눈빛으로 양손의 무기를 들어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잠시간의 침묵.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엘빈이었다.
그는 롱소드를 머리 위로 들고서 무방비하게 달려들었다.
유트는 막무가내 같은 돌진에 도를 들어 반응하였다. 유트의 검이 엘빈의 머리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갔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유트의 검은 엘빈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유트의 대거가 엘빈의 허리춤을 향해 찌르고 들어온다.
턱,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트의 대거가 명중했다. 아무리 보호대를 착용했다곤 하지만 통증은 전해진다.
그런데도 엘빈은 유트에게 내려찍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유트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피했고 엘빈의 검은 상대의 어깨를 강하게 내려쳤다.
퍼억!
엘빈의 공격에 쉽게 부서지지도, 깨질 리도 없는 보호대가 새하얀 파편을 날리며 허공에 뿌려졌다.
유트는 크윽,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스텝을 밟고서 엘빈과 거리를 두었다.
“살을 주고 뼈를 치면 될 일.”
엘빈은 롱소드를 양손으로 말아 쥐고서 목까지 들어 올려 자세를 갖췄다.
유트는 조금 전의 공격으로 왼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음을 느꼈다.
자신은 최소한의 피해를 보면서 상대에겐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이다.
엘빈은 독사처럼 빠르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쉬리릭, 뱀의 독니처럼 달려드는 엘빈의 찌르기를 유트는 몸을 옆으로 틀며 피해낸다. 그 순간 엘빈의 검은 찌르기에서 베기로 바뀌며 유트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유트는 서둘러 검을 들어 엘빈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막아낸 충격으로 유트는 뒤로 쭉 밀렸다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유트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팬인 듯한 소녀들은 눈을 질끈 감고서 비명을 질렀다.
유이조차 유트가 뒹구는 모습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후우, 숨을 내쉬면서 유트는 검을 쥔 손으로 바닥을 짚고서 일어섰다.
일어선 그의 이마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검술대회에 들어서서 그가 피를 흘리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엘빈은 다시 검을 목까지 끌어올리고서 찌르기로 달려들었다.
포인트 상으로는 유트 9점, 엘빈 12점으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포인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게 다치지 않고 끝나는 데에 있다.
엘빈의 뱀 같은 찌르기 공격은 유트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오른손의 검을 들어 막아내자 검의 비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엘빈의 찌르기는 막혔으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엘빈은 검과 다리에 힘을 주며 그대로 유트를 밀어붙였다. 힘에서 밀리는 유트는 뒤로 쭉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엘빈은 머리를 들어 보이더니 그대로 박치기를 해온다.
검을 막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던 유트는 엘빈의 박치기를 맞고서 짧은 비명을 내뱉었다.
그대로 엘빈의 무차별한 검이 유트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오, 오빠……!”
유이는 입을 막으며 부르르 떨었다.
리에르는 저절로 이를 사리물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퍽, 퍼억, 퍽.
연달아 날아드는 공격을 유트는 한 차례는 검을 들어 막아 보였지만, 나머지는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뒤로 넘어간 유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헐떡였다.
엘빈은 그제야 성이 찬지 피 묻은 롱소드를 어깨에 대고서 유트를 내려다보았다.
“시, 시합 중…….”
주심이 나서서 시합을 중지시키려고 하자 엘빈은 손을 저어 보였다.
“이봐, 당신 검술을 볼 줄이나 아는 거야? 이 상황이 시합을 중지시킬 상황이라고 생각하나, 크큭.”
엘빈은 즐거운 듯이 웃었고 주심은 영문을 몰라 하며 중지를 시켜야 할지 재개를 시켜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저 녀석을 만신창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괴물로 만든 것 같군.’
엘빈의 생각처럼 유트는 계속 누워 있지 않았다.
유트는 다운된 상태에서 당장 울음을 터트릴 듯한 유이의 얼굴, 그리고 당장에라도 뛰어 올라올 것 같은 리에르를 보았다.
유트는 숨을 최대한 고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지면 리에르가 부담스럽게 된다.’
리에르가 실력이 늘었고, 어제의 시합에서는 알 수 없는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불안정한 실력으로는 상대에게 먹잇감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난 상대가 누구든 지지 않는다.’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목숨을 걸지 않는 결투라 하여도.
유트의 기억 한 칸에 차지하고 있는 강박관념이 불이 붙기 시작했다.
유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움직여지지 않던 왼손을 억지로 들어 보이며 처음과 같은 쌍수 자세를 취하였다.
얼음의 귀공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감정이 없는 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엘빈을 노려보았다.
엘빈은 세 번째 찌르기 자세를 취한다.
목까지 끌어 올린 롱소드를 뱀의 이빨처럼, 그리고 뱀의 눈빛으로 먹잇감을 노려본다.
잠시간의 대치.
먼저 움직인 것은 이번에도 엘빈이었다. 긴 리치를 이용하며 유트의 턱을 향해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다.
순간 엘빈의 시야에서 유트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빠르게 옆으로 피해낸 유트를 보고 찌르기에서 베기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유트의 오른쪽 다리가 옆으로 크게 움직였다.
유트는 왼발을 바닥에서 떼고서 몸을 반 회전 하면서 카운터 공격에 들어섰다.
“쳇.”
혀를 차며 엘빈은 최대한 피해를 적게 받기 위해 등에 힘을 주고서 고스란히 공격을 받아냈다.
그리고 롱소드를 다시 유트의 몸을 강하게 내려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또다시 은회색 머리칼의 소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엘빈은 빠르게 뱀 같은 눈동자를 양옆으로 그리고 밑으로 돌려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유트는 보이질 않았다.
엘빈은 순간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트는 제자리에서 뛴 것만으로 엘빈의 머리 위를 돌면서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