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14)
레필리아 레소드-315화(314/398)
레필리아 레소드 315화
아르빈트의 남자들(5)
검의 간격이 생기자 파에트의 검기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초신속의 검.
미티어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은 폭발하듯이 리에르에게 쏟아져 내렸다.
리에르의 머리카락이 마력에 찢겨 나갔다.
하지만 정통으로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형, 이제 끝낼게.”
반사 신경만으로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한 리에르는 천천히 눈동자가 붉은 이채를 띄었다.
“그래, 이제 널 멈춰줄게.”
파에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만으로 리에르를 막아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최강이기 위해 태어난 동생.
스스로의 힘을 각성한 괴물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제압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파에트는 검을 검집에 넣었다. 전형적인 신검의 발검 자세였다.
일찍이 제이미가 선보였던 일격필살의 검. 하지만 그런 건 리에르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리에르는 마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로 칠흑의 날개를 형성하기 위한 빛의 깃털이 몰려들었다.
리에르는 포스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마력 검술로만 싸웠다.
자신이 포스를 사용했다간 자칫 잘못하면 형을 죽이게 될지도 모를까 두려웠다.
아무리 리에르가 광기에 도취되어 있더라도 가족마저 해칠 수는 없었다.
팟!
그 순간 붉은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보고 리에르는 옆으로 피해냈다.
가까스로 피해낸 리에르의 검은 망토가 찢겨 나간다.
포스를 의미하는 칠흑빛의 깃털은 붉은 구멍을 허공에 피워 올리며 사그라졌다.
하지만 발검에 맞은 거로 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잘려 나간 빛의 깃털은 다시 하나둘씩 달라붙으며 제 모습을 찾았다.
리에르는 그대로 칠흑의 검 아르카를 들어 파에트의 허리춤을 베어 들어갔다.
파에트는 몸을 숙이며 검집을 위로 올렸다. 그는 리에르의 검을 위로 쳐내는 것과 동시에 반 회전하며 발검을 터뜨렸다.
파핫!
붉은 섬광이 터져 나가며 사방에서 칠흑의 커튼이 깨져 나갔다.
타격을 입은 리에르는 그대로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주르륵.
리에르는 왼쪽 시야가 갑자기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리에르는 파에트가 반격하는 것을 느끼고서 회피 대신 보호막을 쳤다.
하지만 파에트의 발검은 리에르의 보호막을 간단하게 뚫고서 타격을 주었다.
리에르는 찢겨 나간 이마를 훑으면서 조소를 머금었다.
형을 상대로 봐줬다가는 오히려 땅바닥을 나뒹구는 것은 자신이 될지도 몰랐다.
리에르는 파에트와 대하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힘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 운용을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리엘을 멈춰야 해.’
파에트는 모든 정신을 검 끝에 쏟아 내렸다.
검 한 번의 휘두름. 단 하나의 검격에도 힘을 낭비할 수 없었다.
파에트 아르빈트식 발검술.
유성(流星).
붉은 섬광이 모든 것을 찢어낼 듯이 뻗어져 나갔다.
리에르는 아르카이제를 말아 쥐고서 검을 맞받아쳤다.
리에르는 제법 시큰함이 손목에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막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에트는 이미 또 다른 연계 동작을 갖추고 있었다.
리에르는 엘보 블로우로 날아드는 공격을 엘보 블록으로 막아냈다.
리에르와 파에트는 서로의 검을 다시 한번 맞대면서 힘과 힘으로 밀어붙였다.
리에르의 뒤편으로 꾸물꾸물 칠흑의 연기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포효하는 듯한 검은 연기의 늑대가 거대한 입을 벌린다.
파에트는 그대로 리에르를 밀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발검했다.
눈에 비치지도 않는 신속의 검은 그대로 칠흑의 늑대를 관통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포스로 이루어진 연기는 그대로 허공중에 흩어졌다.
“뭐야, 형?”
보통의 발검술이 아니란 것은 리에르도 알고 있었다.
“널 막기 위해 준비한 기술.”
리에르는 조소하며 팔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역시 동생 사랑이 지극한 우리 형.”
리에르의 눈동자가 붉은 이채로 번뜩였다.
사방에서 칠흑의 검들이 수북하게 생성되며 파에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파에트는 리에르의 초월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 회전하며 돌진했다.
파에트의 보디 어택. 그것을 손으로 막아내며 살짝 물러선 리에르는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파에트는 아래에서 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신속의 발검을 펼쳐 보였다.
붉은 선이 길게 허공에 그려졌다.
끼기긱.
파에트의 검이 마멸음을 일으키며 홀 블레이드에 막혔다.
그사이 또 다른 홀 블레이드들은 사방에서 파에트의 몸을 베어냈다.
붉은 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리에르의 손에 있는 아르카가 눈부신 칠흑의 검격을 그려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곡선의 춤이었다.
“안타깝…….”
파에트는 눈가를 찌푸렸다.
일부러 단발성의 발검만 보였었다.
리에르에게 보호막과 포스도 관통하는 기술을 일부러 보여주었다.
그래야만 경계하고, 그래야만 그 움직임만을 머릿속에 기억할 것이다.
거기서 발생하는 초신속의 삼단 발검은 파에트의 재능과 미티어 소드의 파괴력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이었다.
세 번 연달아 검에 실려진 폭발적인 발검은 모두 리에르의 홀 블레이드에 막혔다.
안타깝게도 리에르는 파에트의 생각처럼 단 하나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파에트가 삼단 발검 같은 기가 막힌 비기를 시전할 것을 예상하였다.
분명 리에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수호신장이 되었든 다른 포스가 되었든 위력적으로 먹혀들었을 공격이었다.
“대장!”
살아남은 전 칠검 기사대의 윌러는 파에트가 위험한 것을 보고 이를 악물며 말을 몰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흑기사는 아무런 의미가 있지 않았다.
시야를 가리는 흑기사의 목을 베었다. 옆에서 달려드는 창을 쳐내기보단 카운터 어택을 가했다.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공격은 그저 살을 잘라내 주었다.
윌러는 고통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서 오로지 단 하나의 인물을 향해 달렸다.
윌러의 가슴이 다시 한번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고 있었다.
그에게 모든 악몽을 만들어 줬던 페이서스의 악몽.
그때처럼 칠흑의 날개를 펄럭이는 마왕의 위용이 보였다.
그의 곁에서 충성을 맹세한 전사들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잘라낸다.
도려낸다.
베어낸다.
혈화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적혈의 악마아아아!”
페이서스의 비극 때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들었다.
지금은 나름대로의 이성을 가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마왕은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친형제를 잔인하게 칼질하고 있었다.
쿨럭.
파에트는 그대로 제자리에서 허물어졌다. 그가 놓지 않았던 미티어 소드는 손을 떠나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동생 앞에서 무릎 꿇은 파에트를 구하기 위해 윌러가 돌격했다.
지금 이 순간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리에르 아르빈트는 아르카를 높이 들어 올려서 그대로 내려찍었다.
칠흑의 공간이 대각선으로 모든 사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윌러는 위험함을 느끼고 급하게 말고삐를 당겨 옆으로 틀었다.
수상쩍은 공간을 피했다고 느낀 사이 윌러는 자신의 말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 빌어먹을 악마 자식.”
윌러는 어느새 리에르가 달려들어 말 다리를 잘라낸 것을 알게 되었다.
마상에서 추락한 윌러는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한 고통을 느꼈다.
정신으로는 당장에라도 일어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모든 신경이 마비된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명령을 거부한 몸뚱이만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리……엘…….”
파에트는 흐릿한 시선으로 리에르를 올려다보았다. 두 형제는 서로에게 눈을 마주했다.
리에르가 손만 까딱해도 파에트의 목숨은 끝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파에트를 죽이지 않았다.
“형,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리에르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왕님을 도주시키기 위한 시간 벌기론 충분했지?”
리에르는 파에트의 생각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파에트는 숨을 고르며 말없이 동생을 바라보았다.
리에르는 품에서 시약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붉은색 투명한 액체 속에서 금색 가루들이 흩날리는 포션이었다.
포션 자체도 고가이지만 리에르가 가진 것은 포션 중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하는 제품이었다.
“좀 움직일 만하면 복용해. 하지만 다시 내 뒤를 쫓아 오지 마. 그땐 이미 여왕은 다시 내게 붙들려 있을 테니까.”
“미안하다, 리엘…….”
파에트는 자신의 힘이 부족한 것을 한탄했다.
결국엔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 눈물을 흘린다.
리에르는 그런 파에트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돌렸다.
상처를 입어도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형.
리에르는 그런 형의 우애에 보답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이미 되돌아가기엔 너무나 늦어버렸다.
리에르는 파에트의 옆에 시약을 두고서 자신의 흑기사들을 전부 집합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칠검 기사대는 죽거나 빠져나간 상태였다.
애초에 파에트는 여왕을 되찾을 시간을 벌려 했다.
그러면서 리에르를 어떻게 해서든 되돌리기 위해 전투했다.
걱정하는 부대원들에게 파에트는 시간이 되면 바로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파에트는 자신이 절대 죽을 일이 없다고 장담했다.
확실히 파에트의 말처럼 리에르는 형을 죽일 수 없었다.
그는 악마가 되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는 끊어내지 못하는 한심한 악인이었다.
자기 나름의 개똥철학.
자기 나름의 계획.
자기 나름의 대의명분에 취한 일그러진 영웅.
파에트는 거친 숨을 천천히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여왕은 구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파에트는 리에르를 멈추지 못했다.
리에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여왕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단 하나는 확실했다.
‘날 죽이지 못했다.’
완벽하게 학살의 마왕이 되어버린 줄 알았던 리에르였다.
그렇다면 분명히 파에트도 죽여야만 마땅했다.
죽이긴커녕 오히려 회복제까지 두고 가는 리에르는 아직 괴물이 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다음에는 꼭 막아 보이겠어…….’
파에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직 죽지 않은 칠검 기사들이 있었다. 자신이 얼른 몸을 추슬러야 그들을 수습해서 다음 계획을 만들 수 있었다.
“룰룰루…….”
그때 누군가의 허밍이 들려왔다. 파에트는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랫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려오고 있었다.
파에트는 갑자기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 리에르가 두고 간 회복제를 집었다.
툭.
그때 누군가의 발이 회복제를 밟았다.
금빛 가루를 머금은 붉은 액체는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파에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콧노래를 부르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우리 마왕님은 곤란하다니까요.”
금발의 귀여운 미소년은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툴툴거렸다.
그는 평소에 입었던 갑옷을 훌훌 집어 던지고서 가벼운 티셔츠에 멜빵바지를 매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거대 불꽃 망치가 얹어져 있었다.
“혈육의 정을 끊어야 진짜 괴물이 될 수 있는데.”
귀엽게 생긴 미소년은 생긋 웃으면서 거대 망치를 들어 올렸다.
콰앙!
지축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깨져나간 회복제처럼 사방으로 인육이 파편이 되어 튕겨 나갔다.
대지가 파에트의 혈흔으로 적셔졌다.
전설적인 신검의 아들 파에트 아르빈트.
일찍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검의 길을 걸어 나간 천재.
리에르 아르빈트에게 있어 우상이기도 했던 형.
유트 페브리안에게는 따라잡아야 할 상대였던 존재.
젊은 나이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전장을 질주하던 아렌의 혜성은 칠검의 대장이었다.
범죄자로 만들어진 더미들은 칠검 기사가 되어 파에트를 보좌했다. 그리고 주군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다.
이후 칠검 기사단은 결번으로 남았다.
다시 복귀한 파에트는 새로운 칠검을 만들었다.
칠검은 남았으나 칠검의 주인은 사라지게 되었다.
주마등.
대륙의 십걸이자 차세대 아렌의 지휘관이었던 파에트 아르빈트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번도 보답해 주지 못한 그녀를 떠올렸다.
아리아력 801년. 또 한 명의 영웅이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