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19)
레필리아 레소드-320화(319/398)
레필리아 레소드 320화
아르빈트의 남자들(10)
저벅, 저벅.
횃불 덕분에 어스름한 밤이 밝혀졌다.
아무도 없는 듯 인기척은 없었으나, 리에르는 알 수 있었다.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사내. 자신의 아버지 로이스타 아르빈트가 있었다.
“아버지.”
리에르는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를 불렀다.
마치 우람한 곰의 체구를 연상시키는 중년인.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중년의 기사는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잘도 그 입으로 아비라 부르는군.”
“아버지를 엄마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리에르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로이스타의 얼굴은 어두웠다. 온정을 품지 않은 그의 얼굴을 보니 리에르는 새삼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적혈의 악마로서 살다가 돌아왔던 자신에게 온정을 보여주던 아버지.
이전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부정은 살아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시 만난 가족들에 한없이 마음이 부풀었다.
아버지에게 가문의 검술을 사사받고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겨우 배운 검술로 학살하고 있었다.
분명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리에르는 너스레를 떨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를 죽이겠다.”
서슬 퍼런 살기가 느껴졌다.
이건 분명히 달빛 아래, 밤의 공기가 차가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기사가 명백한 적에게 적의를 품는다.
처음 느껴보는 아버지의 살기.
리에르는 전신에 쩌릿쩌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광풍을 상대로 서 있는 나약한 인간의 체험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에게 죽이겠단 말을 먼저 하는 건 너무하잖아.”
생각 이상으로 로이스타의 분노는 대단했다.
리에르는 아버지가 항상 올곧고 기사도에 충실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것이 자신의 자식이라 해도 선택할 수 있는 인물임을 모를 리 없었다.
“난 아버지의 성검만을 원해. 그거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어.”
알고는 있어도 막상 겪어보는 아버지의 냉대에 슬픔이 밀려들었다.
지금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고 있는 에레사.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배고 있단 것을 알면 어떤 얼굴일까?
사실은 당신이 이제 할아버지가 된단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말을 하실까?
비록 만나 볼 수 없는 아이지만.
“그래, 말 잘했구나.”
로이스타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린다.
차갑기만 한 공기. 냉소적인 시선.
“내 아들들이 영웅이 된다면, 내 검을 받을 그릇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딴 검은 내어 줄 수 있다. 성검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면, 바로 잡힌 마음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내어 줄 수 있다.”
로이스타의 말에 리에르는 크흥, 코웃음을 쳤다. 물론 그로서는 별수 없는 설교에 불과했다.
“목적을 위해선 가족이라도, 형을 죽여서라도 가지려 하는 괴물을 아들로 두지 않았다.”
“뭐……?”
로이스타의 말에 리에르는 입가에 미소가 천천히 사그라졌다.
“한때 아비였던 정으로 네 비루한 삶을 내가 거둬가겠다.”
로이스타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날이 재가 되어 사라진다. 갈라진 재를 양분 삼아 폭발하듯 빛이 솟구치더니 성검으로 화하였다.
“아버지 방금 뭐라고……?”
리에르는 아버지가 성검을 뽑아 들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왔다.
리에르는 요사이 몸도 안 좋은데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전투와 치료. 그리고 치료와 전투.
몇 줌 되지도 않는 생명력을 소모한 덕분에 청력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꼈다.
“검을 뽑아라, 마왕.”
“하하…….”
리에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아버지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다.
형이 죽을 리가 없었다. 아니, 자신은 형을 죽일 수 없다.
“뭘 잘못 본 걸 거야.”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설명이 되지 못했다.
“서로 변명은 그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친족 살해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가족도 묻어버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리에르에게 있어 아버지와 형은 남달랐다.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자신과는 다르게 그들은 빛이었다.
희망이었다. 가고 싶었던 길이었다.
“거짓말하지 마!”
리에르의 오른손이 수평으로 올라갔다.
그의 손아귀에서 칠흑의 조각들이 한데 모여들며 어둠의 도신이 서려지기 시작했다.
“네놈과 전투한 흔적들. 네놈을 목격한 이들. 무엇하나 너를 보호하지 않는다.”
어두운 탓에 로이스타의 얼굴이 자세히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리에르는 자신의 얼굴도 상대에게 그리 보인다 생각했다.
차라리 웃었다.
“아아, 빌어먹을. 마음대로 해보자고!”
리에르는 이를 사리물었다.
아버지의 행동과 말로 보아서는 사실일지도 몰랐다.
아니, 리에르는 믿지 않았다. 분명 아버지가 노망이라도 났을지도 모른다 생각되었다.
아니, 애초에 잘못된 보고를 받았을지도 몰랐다.
파발꾼이 누구인진 몰라도 사실 여부 확인이 되는 순간 엄중한 징계를 받을 거로 생각했다.
광활한 빛이 그어져 내린다. 눈으로 좇아서는 늦었다.
리에르는 반사 신경을 총동원하여 회피했다.
초소의 천장에서부터 벽까지. 눈부신 검광이 훑고 지난 것은 전부 절단되었다.
“그 정도론 어림없어.”
리에르의 입가에 광소가 머금어졌다.
아버지가 아무리 최강의 기사라고는 하나 힘의 차이는 달랐다.
리에르는 반신인 포스 중에서 최강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겨우 인간이라는 종족의 틀에 사로잡혀서는 마왕을 이길 수 없었다.
쩌적!
그 순간 리에르는 눈썹을 찌푸렸다.
세로의 절단면만이 아닌, 가로의 절단면도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본 것은 세로로 내려치는 번개 같은 검술뿐이었다.
피잇.
리에르의 가슴 앞섬이 잘려 나갔다.
붉은 선이 가로로 그려지며 통증을 전달했다.
만약 반사적으로 만들어지는 보호막이 아니었다면 이미 몸이 절단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검술 5식 승천(昇天).
상대를 향해 걷는다. 검을 뻗는다.
점을 찌른다.
한 점을 향해 전심전력을 쏟아붓는다.
그것은 바로 검의 진리였다.
그 점에서 파생되고 시작되는 무수한 변칙과 검격은 예술성마저 보여주었다.
단순히 한 번 찔러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리에르는 뒤로 물러서며 아르카를 횡으로 그어 내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스치지 않았다. 대신 스산한 바람과 함께 옆을 베어온다.
피했다고 생각하며 반격한다.
하지만 정강이에서 핏물이 튀었다.
통증을 느끼는 것은 한참이나 뒤의 일이었다.
신검술 1식 템페스트.
리에르는 아버지의 검술에 대항하여 똑같은 신검으로 대응했다.
가문의 검법 중 리에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검법이었다.
격투술과 검술이 잘 어우러지는 초식은 공격받는 이에게 대항할 수 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리에르의 검은 그대로 로이스타에게 찌르고 들어갔다.
가볍게 고개를 젖히자 파훼되었다.
리에르는 피할 줄 알았기에 그대로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숄더 어택을 가했다.
하지만 단단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무반응이었다.
리에르는 연계기가 이어지지 않자 황당했다.
상대의 기선을 한 번 빼앗고 들어가는 검격만이 희망이었다.
무엇보다 마력으로 강화된 리에르의 육체는 인간 따위를 초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로이스타는 일찍이 인간을 초월한 초영웅이었다.
승천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퀀거러.
리에르는 타이밍을 빼앗기자 미친 듯이 쏟아지는 검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눈이 사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땀이 흘렀다.
사방이 전부 대낮처럼 느껴졌다.
성검이 보여주는 섬광으로 인해 눈은 빛에 감염되기 시작했다.
뺨이 빛에 데인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핏물이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발목이 도려져서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팔이 무겁다 싶더라니, 어깨가 베여 출혈이 생겨났다.
“빌어먹을.”
리에르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등 뒤로 칠흑의 깃털들이 수북하게 피어오르며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맹수는 일격에 상대를 물어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어금니를 갖고 있었다.
아울러 상대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할 위력적인 발톱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움직임으로 먹이사슬 아래에 놓인 생명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인간은 맹수의 발톱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무기를 닮은 날붙이를 만들어 냈다.
인간은 맹수의 날렵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날렵함을 닮은 검술을 만들어 냈다.
말 그대로 더 효과적으로 살상하기 위해서,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원칙이었다.
포스가 개방되면 기본적으로 초월기를 제외하고 각종 버프가 생겨났다.
그중의 하나가 본래 육체에서 몇 곱절이나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져다주었다.
리에르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아버지의 검이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피해낸다.
명백한 살의를 담은 검 끝을 피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광검의 노선이 변경되었다.
점을 향해 찌른다. 점을 중심으로 선을 긋는다.
승천 검식은 매우 단순하지만, 검의 극치를 담고 있었다.
효율성을 위해 단순함을 버리고 점점 복잡한 법칙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서로에게 허초(虛式)와 실초(實式)를 섞어서 상대의 허점을 읽고 만들어서 승리한다.
이런 법칙이 애초에 사용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법칙을 갖고 싸우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런 것을 무시하는 존재에겐 의미 없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리에르는 로이스타가 베어오는 성검을 향해 자신의 아르카를 그어 내렸다.
검은색과 흰색의 불똥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로이스타가 자신의 검에 힘을 싣기 위해서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리에르도 지지 않고 자신의 검을 밀어 넣었다.
상단, 하단, 중단, 찌르기.
어둠 속에서 빛이 번뜩였다.
검의 극치가 서로에게 오고 간다.
리에르는 신검 초식(招式)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템페스트식을 운용했다.
말 그대로 폭풍처럼 공격을 퍼붓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 전부가 흉기가 되어야 하는 공격.
횡으로 베어 들어가는 검과 동시에 몸을 반 회전하며 엘보우 블로우를 가한다.
로이스타는 대각선으로 칠흑의 검을 비껴치고 두툼한 손을 들어 엘보 블로우를 막아낸다.
막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로이스타의 로우킥이 리에르의 다리를 부러뜨리기 위해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스스로 제자리에서 아크로바틱하며 회전차기를 했다.
로이스타는 가볍게 옆으로 반보 걸으며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와 동시에 검을 잡지 않은 손을 뻗어냈다.
삽시간에 붙들린 리에르의 손목.
로이스타는 그대로 성검을 찔러 들어왔다.
리에르의 앞으로 칠흑의 커튼이 열렸다. 하지만 아티팩트, 그것도 대륙 최강의 기사가 뻗어내는 찌르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리에르가 원한 것은 완벽한 방어가 아니었다.
아주 잠시간의 틈만을 원했다.
커튼은 그대로 찢겨 나갔다.
리에르는 그 틈을 타서 몸을 돌리며 로이스타의 가슴을 찼다.
하지만 로이스타는 리에르의 팔을 놓지 않았다.
리에르의 의지에 따라 주변에서 삽시간에 칠흑의 검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홀 블레이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검격들이 로이스타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로이스타는 성검 발락시아를 가로 베었다.
그를 향해 날아들던 홀 블레이드는 검풍에 휘말려서 산산이 흩어졌다.
포스가 만들어 내는 초월기는 막강한 살상력을 자랑했다.
피하기 어려운 궤도로 공격이 날아든다. 하지만 로이스타가 몇 번 검풍을 휘두르자 홀 블레이드는 전부 증발해 버렸다.
리에르는 넋 놓고 보지 않았다.
아주 찰나의 틈을 이용해서 아르카를 단검 크기로 변형시켰다.
로이스타의 아주 작은 방심.
그것을 이용한 리에르는 아버지의 손목을 베었다.
핏방울이 튀었다. 리에르는 재빨리 로이스타를 제압하기 위해 폭풍 같은 난타를 펼쳐 보였다.
마치 시커먼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공격.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유유히 피해내며 로이스타는 정면으로 앞차기를 했다.
리에르는 반사적으로 로이스타의 발차기를 맞서 찼다.
로이스타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리에르는 뒤로 나가떨어지며 공중 낙법을 했다.
‘뭐야, 이거.’
리에르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리에르는 포스 사용자로서 인간 위에 군림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능력이 로이스타에게 밀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순간 로이스타는 어느새 리에르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옆구리에 느껴지는 스산한 느낌.
리에르는 반사적으로 아르카를 비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