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21)
레필리아 레소드-322화(321/398)
레필리아 레소드 322화
검은 동화 이야기(1)
아니, 아무리 이 세상에 가장 강한 남자라 하여도 자식의 죽음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된 전투를 치러야 했으니 피곤함이 지워질 일이 없었다.
리에르는 로이스타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천하를 호령하는 칠흑의 마왕이 울보라는 소문이 날까 두려웠을까.
리에르는 자신의 눈가를 가리며 큭, 웃어 보였다.
“바보 같아.”
“그게 아비란 존재다.”
여전히 로이스타의 표정과 말투는 무덤덤했다.
리에르는 마른 웃음을 지으면서 돌아섰다.
리에르는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형을 죽인 미카엘을 그냥 두고 싶지 않았다.
그를 죽인다고 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이성은 알지만, 감정은 그리하지 못했다.
아니, 감히 마왕의 뜻에 거역한 증거로 그의 팔, 다리를 뜯어내고 영원한 고통을 주어도 시원찮았다.
‘놈을 죽인다.’
애초에 리에르가 생각한 그림은 아니었다. 대전략을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원하는 바를 위해선 자신의 희생도 참아내야만 했다.
‘놈을 죽인다.’
스스로 피를 볼 각오도 했다. 단 한 줌만 남은 목숨도 언제든지 던질 각오를 해왔다.
그러기 위한 전생과 환생이었다.
테헤라자드를 부순다. 모든 것을 시작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린 근본적인 것을.
‘비록 계획이 바뀐다 해도.’
리에르는 자신의 형이 억울하게 죽은 것을 기리기 위해 미카엘을 죽인다는 무리수를 선택하기로 했다.
현재 엘 파실드는 반 코스모스의 연합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신에게 대적하는 인물로서 엘 만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였고, 스스로 신을 거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엘은 신의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신의 오른팔로서 움직이던 아르미안조차 모르던 정보들. 모든 것은 리에르의 대전략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 파실드가 만드는 반 코스모스 연합을 계획한 장본인은 리에르였다.
그 사실은 엘과 리에르, 아르미안 셋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리에르는 인류를 하나로 뭉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의 전국시대를 끝내야 했다.
그리고 그 전국시대를 마감하려면 몇 개의 나라가 힘을 합쳐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있어야 했다.
리에르의 붉은 눈동자가 살기로만 감돌았다.
그가 초소에서 나가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횃불이 갑자기 혼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불꽃은 사람의 형체를 이루어냈다.
“풉, 아직 절 넘어서려면 멀었다고요, 리에르.”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
챙 없는 모자를 푹 눌러쓴 미소년은 리에르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불사의 존재인 미카엘은 지금의 마왕이 어리석은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혈육의 정. 그딴 것은 무의미했다.
영원불멸의 삶을 사는 존재로서 일개 풀 한 포기에 정을 주고 마음을 주었다가는 진짜 큰일을 해낼 수 없었다.
“나 참, 마왕님은 내가 이렇게 생각해 주는 줄도 모르고. 왜 나만 미워하시나 몰라?”
미카엘은 새빨간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핥았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초소 안에 있는 로이스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리에르의 검술에서 풀려난 로이스타지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역시 내가 도와줘야 한다니까요.”
미카엘은 천천히 손을 들어 붉은 거대 망치를 소환해냈다.
아무리 로이스타가 강하다지만 리에르와 한바탕 대결을 펼치면서 기력 소모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지금의 로이스타는 빈손이었다.
“잘 먹겠습니닷.”
미카엘은 그대로 초소에 침입해 들어갔다.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는 이제 로이스타를 향하고 있었다.
“자, 안녕하세요! 그리고 잘 가세요!”
미카엘은 삽시간에 돌진하여 로이스타를 향해 거대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 일어난 듯이 초소가 흔들렸다.
“과연 이래야 마왕의 아버님 답지요!”
미카엘은 자신의 기습을 피해낸 로이스타를 칭찬했다.
희번덕거리는 미카엘의 눈동자 속으로 로이스타의 주먹이 보였다.
제법 빠른 속도였지만 인간인 이상 수호신장에 상대할 수 없었다.
그것도 절대무기가 없는 로이스타로서는 미카엘을 해칠 방법이 없었다.
“하핫, 무리예요!”
미카엘은 이를 드러내며 폭소했다.
로이스타의 강철같은 주먹이 미카엘을 내려쳤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강펀치를 얻어맞고 미카엘은 바닥이 꼽히듯이 나가떨어졌다.
붉은 핏물이 튀었다. 하지만 육체가 느끼는 상처에는 상관없이 미카엘은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로이스타의 복부를 동시에 걷어찼다.
로이스타는 조그만 체구 아이의 힘이 범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당혹감을 느끼는 듯했다.
‘제가 딱히 변태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만.’
미카엘은 오랜만에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닌 마왕의 아버지였다.
리에르는 형의 죽음을 알게 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 그의 눈물을 보며 미카엘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신의 육봉에 첫 유린을 당할 때뿐이라고 여겼었다.
그 기회를 빼앗은 로이스타에게 분노했다.
그 분노에 대한 대가로 명백한 죽음을 내리려 했다.
“내 앙증맞은 모습만 보고, 제 압도적인 무력을 예상치 못하죠. 그 순간의 방심을 후회하며 죽어가도록 하세요!”
거대한 망치가 불 폭풍을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로이스타가 뒤로 후퇴하면서 최대한 대미지를 줄이려고 애썼다.
미카엘은 자신이 최강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던 인간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보자 매우 유쾌해졌다.
저, 하찮은 존재에게 단 하나뿐인 목숨은 빼앗는 일은 손쉬운 일이다.
“네 녀석이 파에트를 죽였느냐.”
불꽃의 세례를 받고서도 로이스타는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그의 튼튼한 육체 곳곳에 그을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눈빛만은 전혀 죽지 않은 로이스타가 차갑게 중얼거렸다.
“하하?”
미카엘은 로이스타가 정답을 맞히자 유쾌한 듯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검지로 입가에 지퍼를 채우며 소곤거렸다.
“당신 때문에 마왕님에게 죽게 생겼잖아요. 자신의 형을 으깨 죽인 것이 들켰으니 당신이 책임지세요.”
로이스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요.”
미카엘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불꽃의 망치를 감싸 안으며 돌진했다.
로이스타는 씹듯이 분노를 삼키며 대답했다.
“그래, 이제부턴 말이 없어야 할 거다.”
서걱.
“에?”
서걱, 서걱.
스산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잘려져 나갔다.
미카엘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이 안 되는 그의 시야에 성검이 보였다.
로이스타 아르빈트. 성검의 주인이 찬란한 빛의 발락시아를 허공에 훑어냈다.
“여기서 죽을 테니까.”
미카엘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로이스타는 자기 아들에게 패했다. 그리고 성검을 주었다.
분명 빈손이어야 할 로이스타에게는 무기가 있었다. 그것도 그의 상징과도 같은 빛의 성검이.
“이, 이게 어찌 된 거지요?”
미카엘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아니, 물러서려고 했다.
한쪽 다리가 잘려나가 마음대로 걸어지지 않았다. 아니, 걷기는커녕 서서 균형을 잡기도 힘들었다.
아직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미카엘이 휘청거렸다.
“몇천 년을 살았다는 녀석이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느냐.”
로이스타는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말투는 무미건조했으나 눈빛만은 분노로 인해 이글거렸다.
그가 신검이라는 칭호를 받기 이전에 얻었던 별명. 성난 곰 로이스타는 노도와도 같이 백색의 검광을 흩날렸다.
미카엘의 손가락이 마디마디 잘려나갔다.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수호신장의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를 듯한 통증이 전달되었다.
미카엘은 생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포스의 마력 이외에도 자신에게 고통을 선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하악!”
미카엘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찢어질 듯한 고통이 혈액을 타고 넘실거렸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게 아들놈이 하나 더 있다는 의미지.”
로이스타의 검광이 좌로 우로 대각선을 그려 엑스자를 만들어 냈다. 그와 함께 뜨거운 핏물도 허공에 흩뿌려졌다.
“이것 참 오래 살다 보니 인간 버러지에게 당하는 때도 있군요.”
미카엘이 베실거리면서 웃음을 지었다. 로이스타는 점잖게 발을 들어 미카엘의 가슴을 짓밟았다.
“모습만 보자면 버러지에 가장 근접한 건 네놈이겠지.”
미카엘의 팔과 다리는 이미 잘려나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로이스타의 성검에는 핏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순백의 빛은 모든 것을 증발시키고 있었다.
“풉, 누가 마왕님의 아버님 아니랄까 봐 이빨 터는 건 수준급이군요.”
미카엘은 콧잔등까지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욧!”
미카엘의 다리 한쪽이 불쑥 튀어나왔다. 수호신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생력이 좋은 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재생력을 쏟아 놓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그런 비밀을 누구도 알 리 없었다. 미카엘의 다리 한쪽은 울퉁불퉁한 집게발처럼 형성되었다.
그것은 삽시간에 비어있는 로이스타의 등 뒤를 노렸다.
서걱.
하지만 날카로운 음률이 울려 퍼졌다. 미카엘의 집게다리는 깨끗하게 단면이 잘려 나갔다.
미카엘은 귀여운 눈가를 찡그리며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전승이 사실이라면 죽지 않겠군.”
로이스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빛나는 순백의 빛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혔다.
“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고통에 미카엘이 혀를 내밀고 부르르 떨어 보였다.
통각.
느낄 리 없는 감각이 몸 곳곳을 찾아 전해졌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이유는 단순했다.
피해를 주는 무언가의 마력이 육체의 마력을 확실하게 이겨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빌어먹을 개자식아! 이거 하나 알아두세요! 당신이 얼마나 멋진 방망이를 흔들어대던 그것은 날 해할 수 없어요! 당신이 주는 이 고통과 능욕을 저는 배로 갚아줄 것입니다! 당신의 하나 남은 아들을 잘게 잘라 살점으로 만들겠어요! 그 고기로 조림을 만들어 당신의 마누라에게 먹이겠습니다, 이 개자식아!”
“…….”
로이스타의 무미건조한 눈동자. 그것을 보면서 미카엘은 씩씩거리며 피와 타액으로 머금어진 혀로 윗입술을 핥았다.
“인제 와서 최강기사님도 얼어붙나요? 자, 당신이 날 아무리 도려내도 당신은 날 죽일 수 없지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못하죠. 조금만 기다리면 당신의 육봉을 잘라 소시지를 만들어서 당신 마누라에게 던져주겠습니다. 자, 지금이라도 도망치세요!”
미카엘은 희열에 찬 눈동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 느낌과 분노였다.
로이스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검 발락시아. 아리아의 다섯 무구이자, 신을 죽이는 빛.”
로이스타는 천천히 검을 들어 찌르기 자세를 취해 보였다.
“전승이 사실인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이 검집을 빼지 않았다.”
“네?”
로이스타의 말에 미카엘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력으로 보호받는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잘라냈던 검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