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23)
레필리아 레소드-324화(323/398)
레필리아 레소드 324화
검은 동화 이야기(3)
소년은 이 세상의 왕이 되었다.
소년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일무이한 신이 된 소년은 인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소녀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너무나 많았다.
신문명을 이룩하고, 모든 여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류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순조롭게 되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가 생기고, 실패를 반복했다. 결국, 실패한 피조물들은 인간과 짐승의 뒤섞인 기괴한 모습이 되었다.
훗날 몬스터라고 불리는 그것들은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에게 빛나는 문명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 있던 세계에 억지로 많은 것을 구겨 넣었다.
세계가 구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소녀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소년은 자신을 보좌할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원소의 이름과 특징을 부여한 이모탈은 창조주인 소년의 의지에 따라 인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소년은 인류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시스템 특유의 알고리즘을 활용한 생산은 원활하게 문명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인류는 너무나 나약했다. 창조에 실패한 피조물들이 지배되는 대륙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소년은 고민을 시작했다.
애초에 자신이 있던 세상에서도 공룡이 존재했던 것도 어쩌면 인류를 만들어내다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결국, 소년은 인류 보완 정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비극이 시작되게 되었다.
소녀는 소년이 만든 세상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그리고 소녀는 재미있는 세상에 손을 대고 싶어 했다.
소년은 자신이 만든 무대 위에 소녀가 주인공으로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겼다. 그렇게 소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직접 인간으로 변하여 대륙으로 내려갔다.
최초의 소녀. 하와는 죽음만이 만연한 인류를 보며 안타까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녀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외모로 자신을 변이시켰다. 그리고 어느 한 부족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족을 이끌었다. 그리고 부족과 부족을 하나로 만들었다.
몬스터에게 핍박받는 인류를 하나로 끌어모은 그녀는 영웅이 되었다.
아리아 오트리아 리제는 어느 날 진녹색 머리카락의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매우 잘생긴 아리아의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아리아는 그녀의 모습에 조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아리아는 그녀를 최대한 이용했다. 기왕 무대 위에 올라왔으니 완벽한 배우로서 활약하고 싶었다.
실제 아리아와 진녹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하나가 되자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녹색 머리카락의 여성, 자애로운 불꽃의 여신 아라미아는 아리아에게 사랑을 갈구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아라미아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질투심에 눈이 먼 소년, 아니, 테헤라자드에 의해서.
아리아로 분한 소녀, 하와는 살아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똑같은 하늘 공간에서 그저 움직이는 대로 지켜만 보는 것에는 이제 진력이 나 있었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보니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아리아는 인류 최초의 왕국을 세웠다. 테헤라자드를 통해 왕국, 제국에 대한 개념이 있던 그녀이기에 가능한 파격적 발전이었다.
결국, 오트리아 왕국은 그렇게 인류를 지키기 위한 성채를 세웠고, 그곳을 중심으로 인류는 번성의 길을 걸었다.
후에 죽음을 연기한 아리아는 무수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 앞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손뼉을 치고 있던 것은 테헤라자드였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단 하나의 세상인 그녀가 행복해하는 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뒤로 하와는 테헤라자드의 소망대로 곁에 남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안전하고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이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좀 달랐다. 항상 눈앞에서 목도하던 죽음을 떠올린다. 거칠게 호흡하던 때를 떠올린다.
하와는 온몸에 쾌감이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사타구니가 뜨겁게 미열을 품었다.
결국, 하와는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최초의 전문적인 종교를 창설한 검은 사제장 잉그리드가 되어 세상에서 뛰놀았다.
테헤라자드는 섭섭했지만, 그녀를 기다렸다.
검은 사제 잉그리드는 신들의 반란을 주도했다.
하와는 평소 자신에게 많은 족쇄를 거는 테헤라자드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유사 신들은 테헤라자드를 유폐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유사 신들의 반란은 금방 끝이 났다.
테헤라자드가 비밀리에 제작해 두었던 수호신장은 대활약했다. 그리고 유사 신들은 전부 처형당하게 되었다.
물론 하와만은 예외였다. 테헤라자드는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진심으로 믿어주었다.
하와는 그 뒤로도 여배우로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무대 위에 직접 서서 나약한 인형을 능욕하는 것은 묘한 쾌락이 일었다. 이제야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유희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테헤라자드는 빠르게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테헤라자드는 인격이 망가진 지 오래였다. 그는 하와라는 존재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와가 없는 테헤라자드는 그저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그녀는 테헤라자드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울러 테헤라자드가 자신에게 따로 말을 거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와는 마음껏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유희를 즐겼다. 어떤 때는 인류의 구원자로서, 어떤 때에는 인류의 학살자로서.
그마저도 재미없어지면 하와는 테헤라자드를 시켜서 또 다른 대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피의 군주가 되어 옆 대륙과의 대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하와는 제멋대로 전승을 반복했다.
테헤라자드는 급격하게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위해 만들었던 세상이, 그녀를 빼앗아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테헤라자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테헤라자드는 소망했다. 아무것도 없던, 하와와 단둘만이 존재하던 백지의 세계로 되돌아가기를.
하지만 하와는 이미 테헤라자드의 손에서 벗어나 있었다.
테헤라자드는 매번 자신을 배신하는 하와를 내버려 두었다.
지금 자신을 버려둔 하와는 더 이상 자신이 알던 하와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던 존재들이 전부 영원이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때 하와는 다시 한번 테헤라자드를 배신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 기분 내키는 대로만 전승을 반복했던 하와는 어느 순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인간을 장난감으로 보았다.
죽여도 얼마든지 다시 솟아나는 존재. 그저 유희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소모되어도 좋을 그런 인형들.
하지만 하와는 사랑하는 여성이 생겼다.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자애로운 여성이었다.
하와는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만 한 미인은 어디에도 널려 있었다. 그녀만한 성품은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와는 그녀에게 급속도로 빠졌다. 그녀의 따뜻한 자애는 하와가 인간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테헤라자드와 하와는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한쪽은 제멋대로 살기를 원했고, 한쪽은 자신에게 속박되기를 원했다.
결국, 분노한 테헤라자드는 하와의 마음을 빼앗은 여성을 잔혹하게 죽였다. 그 결과 하와는 아리아로 강림했을 때 받았던 다섯 무구를 각성시켰다.
이 세상을 이룩하는 절대 알고리즘. 오퍼레이션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을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만 했다.
이 세상의 제일 높은 지지율을 얻을 것.
테헤라자드는 혼자 살아남은 돌연변이였다. 그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신이 되었다.
즉 이 세상을 이루는 시스템에게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모든 지지율을 획득하였다. 그 덕에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다.
지지율을 얻은 뒤에 해야 할 것은 다섯 무구의 집합이었다.
다섯 무구는 이전 세계의 유물로서 시스템 운영을 위한 열쇠와도 같았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스템 영역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내용을 아는 것은 두 명뿐이었다.
테헤라자드와 유일하게 태초에 함께 했던 하와. 그는 테헤라자드의 가장 큰 이해자였으며, 가장 큰 적이었다.
태초부터 이어진 두 사람이 인연은 한도 끝도 없이 반복적으로 맞섰다.
이 와중에 테헤라자드가 유희를 위해 만들어 낸 포스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신을 죽일 수 있는 유사신 시스템.
테헤라자드는 이제 자극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미쳐가고 있었다.
하와를 잃은 슬픔 때문에 테헤라자드는 쇠퇴하고 있었다. 점점 수면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빈도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점유율이 분포되기 시작하자 테헤라자드라는 존재를 구성시키는 힘이 옅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테헤라자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위험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단어를 느끼고 싶어서 포스라는 시스템을 구성해 냈다.
자신을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생명체가 있어야 자신도 살아남았다는 감정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공기는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공기가 없는 질식된 장소에 갇히게 된다면 공기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죽음이라는 형태로써.
이름이 바뀌고, 성별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원초적인 것은 같았다.
시스템은 주기적으로 신을 정했다. 그리고 그 주기가 지금 다가왔다.
주기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은 테헤라자드와 하와뿐이었다. 현재 세계의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도 오로지 두 사람뿐이었다.
하와, 아니, 리에르 아르빈트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와 사건들을 기억해 냈다.
자신의 전생에 대해서 떠올린다는 것은 무척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실제 전생에서 어떻게 살았다 하더라도 지금의 리에르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아울러 그때 전생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꿈을 꾼다. 그 꿈에서 자신은 지금의 모습이 아닌 다른 무언가이다. 그 무언가가 자신이란 것을 인지하는 현실감만 있었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전생의 굴레 때문에 자신에게 악연이 반복된다면 그 굴레를 끊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리에르는 여미었던 눈가를 천천히 열어 보였다.
그의 뒤편에서 순백의 청년이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확실히 당신의 아버지는 강하더군요. 수호신장을 소멸시켰습니다.”
“원래 그런 분이시지.”
리에르는 마른 미소를 머금었다. 항상 자신이 바라보던 아버지의 등은 누구보다도 거대하고 튼튼했다.
“형의 일은 참으로 안됐습니다.”
“…….”
엘의 말에 리에르는 입가를 닫았다.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별수 없는 일이지. 계획만 앞당기면 될 일이다.”
리에르의 차가운 눈동자. 그것을 바라보며 엘이 온화하게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조금 전만 해도 육친의 죽음에 오열하던 사람의 얼굴은 아니군요.”
이미 리에르의 눈가는 말라붙어 있었다.
“계획만 완료되면 될 일이잖나.”
“당신과 손을 잡은 유일무이한 이유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