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24)
레필리아 레소드-325화(324/398)
레필리아 레소드 325화
검은 동화 이야기(4)
리에르와 로이스타가 전투를 벌일 때였다.
리에르는 왠지 모르게 불길함을 느꼈다.
그는 본연의 힘을 끌어내며 아버지 로이스타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로이스타의 검에 살기가 깃들지 못했다.
진짜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어떤 무시무시한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었다.
굳이 로이스타 스스로가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들을 벨 수 없는 마음이 서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심정을 리에르는 느끼고 있었다.
그때 주변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타들어 가던 횃불도, 사방에서 뿌옇게 피어나던 흙먼지도.
모든 것이 멈추고 경직된 세상 속에서 순백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가운데에 섰다.
“밖에 미카엘이 잠복해 있어요.”
엘의 말에 리에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의 예상대로.”
리에르는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에게 합류한 미카엘을 의심했다.
그의 변태적인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리에르는 차라리 이번 기회를 이용하고자 했다.
리에르는 동맹 관계에 있는 엘을 몰래 잠복시켜서 미카엘을 탐색시켰다. 그리고 그 덫에 걸려든 미카엘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 그랬군.”
리에르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증오와 살육으로 적셔진 눈은 살기로 번뜩였다.
“미카엘을 죽이면 곤란해요.”
엘이 단호하게 입가를 열었다. 그의 말에 리에르가 살기등등한 눈빛을 들어 보였다.
“미카엘이 죽게 되면 다른 수호신장들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 개인 플레이하던 그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곤란할 수밖에 없어요.”
수호신장 하나하나가 포스를 웃도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테헤라자드 이외엔 없었다.
“아울러 광폭화도 문제가 되지요.”
단계별로 변화하는 수호신장의 무력은 엘이 잘 알고 있었다.
신에게 봉기했던 포스로서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았지만, 결국 패배한 것은 엘이었다.
거기에는 그의 생각을 한껏 벗어난 수호신장들의 광폭 변신이 존재했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변신에 엘을 지원했던 인류의 영웅들이 수없이 죽어 나갔다.
그 죽음의 위기에서 엘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패배한 엘은 그들에게 붙잡혀 영원한 고통을 얻게 되었다.
“그런 거 생각하면서 움직이면 늦어.”
“당신이 목숨 하나에 감정이 움직이는 괴물이라고는 생각 못 했군요. 가족 놀이를 하다 보니 진짜 가족이라고 착각되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만.”
리에르도 자신이 감정적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파에트의 죽음으로 인해 분노하고 있었다. 형을 죽인 철천지원수가 있는데 그 앞에서 웃을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우리 같은 신의 장난감들에겐 인간은 그저 폴리곤 덩어리, 혹은 대체 가능한 애완용에 불과할 텐데요?”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해서 지난 대전 때 그 추태를 부리셨나? 순백의 영웅 씨?”
리에르의 힐난에 엘의 표정이 온화함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엘이 모두를 위해 일어서고, 모두를 위해 신에게 대적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서 오열했다.
“다른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군.”
그때 잠자코 있던 로이스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엘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로이스타를 보고 역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천하의 대영웅이니만큼 겨우 이런 정도의 상황에 별다른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내 손으로 아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
“부자가 똑같군요. 미카엘을 살해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지금 하고 있어요.”
로이스타의 말에 엘은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계획이 빨라질 뿐이다. 달라질 건 없어.”
리에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수호신장을 죽인다. 누구보다 네가 원하던 일 아닌가?”
“…….”
리에르의 강경한 말에 엘은 잠시 입을 닫았다.
지난 대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엘은 왜 패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자신의 계산대로 움직이고 싶어 했다.
그래야지만 피해는 최소화하고 최대의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자신의 계산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럼 미카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결계를 형성하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당신의 아버지, 로이스타가 미끼가 되겠군요.”
아무리 최강의 사내라 해도 그저 인간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수도 없는 세월을 살육으로 살아온 괴물이었다.
위험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궁금한 이야기는 나중에 묻도록 하겠다. 일단은 파에트의 원한부터 갚도록 하지.”
로이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절대로 미끼만이 아닌, 자신이 원한을 직접 갚으려는 모습이었다.
리에르는 아버지에게 성검을 받는 척, 하면서 다시 무기를 건넸다. 숨겨진 무기는 이후 기습적으로 나타난 미카엘을 상대로 활약했다.
“수호신장 중 하나가 죽었습니다.”
“아니.”
엘의 말에 리에르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바로 라파엘을 죽인다.”
리에르의 말에 엘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일도 상정 내에 있었다.
“너무 계획이 서둘러지는 것 아닌가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리에르의 말에 엘이 고개를 주옥였다.
“저는 모든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자격이 있지요. 하지만 코스모스의 교리를 따르는 이들을 상대로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단, 지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리에르는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과정으로 가기 위한 힘이 없습니다.”
엘은 새삼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우린 잘 어울리는 파트너일지도 모르겠군요.”
엘의 말에 리에르는 마른 조소를 머금었다.
“싱거운 소리 하지 말고, 다음 좌표로 간다.”
* * *
“집정관 각하를 뵙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칠흑의 마왕을 상대로 교단의 기사들은 예를 취했다.
그들은 늦은 시간에 갑자기 집정관이 직접 찾아오자 다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지금 집정관 리에르가 있는 곳은 오트리아 제국의 수도인 임펠란드였다.
한때 절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던 최초의 성지이자, 대륙을 지배한 천년 제국의 기틀이 서려진 위치였다.
리에르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장소였다. 하지만 그는 감회에 빠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기사들은 집정관의 옆에 이상한 남성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우 잘생긴 미남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온화함과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할 것 같은 외모였다.
그런 얼굴과 잘 어울리는 순백의 로브는 매우 고귀함이 서려진 듯 보였다.
흑과 백. 마왕과 용사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백의 인물을 보고 기사들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순백의 마법사. 첫 번째 포스 엘 파실드. 신의 대적자이자 교단의 복수자.
“혹시나 해 여쭈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기사 중 한 명이 예를 취하며 길을 가로막았다.
집정관, 아니, 칠흑의 마왕이라 불리는 사내를 막아설 수 있는 강단을 가진 인물이 많지는 않았다.
마왕을 상대로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마왕보다 강하거나, 마왕의 반대 성향에 선 세력이 가능했다.
“허락한다.”
리에르는 불경을 취한 기사를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검은 왕의 위엄을 보였다.
그의 하문에 감동하였을까. 기사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재차 황공한 질문을 하였다.
“옆에 계신 손님은 혹 누구신지요?”
기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순백으로 아로진 남성은 그의 질문에 온화하게 웃음을 머금어 보였다.
“손님은 아닐 거예요.”
엘의 말에 기사는 긴장감이 서렸다.
“사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걸맞을 거예요.”
갑작스러운 말에 기사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 순간 검은 섬광이 허공에 뿌려졌다.
기사의 동공은 그대로 격앙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목에서 미끄러져 하얀 뼈를 드러냈다.
기사들은 숙련된 훈련으로 이미 반격 자세를 취했다.
상대가 최강의 마왕, 교단의 집정관이라는 것은 상관없었다.
어디까지나 수도 임펠란드에 있는 성기사들은 전부 원로회 소속의 기사들이었다.
즉, 리에르를 중심으로 한 신진 기사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인원들이었다.
세력이 다르다 해서 의미 있는 것은 없었다.
서걱!
한 번의 검격으로 다수의 팔목이 피를 흩뿌리며 허공에 흩날렸다. 땅바닥에 떨어진 그것들은 아직 온기를 찾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고통에 찬 비명들이 삽시간에 울려 퍼졌다. 대항을 할 새도 없었다. 마왕이 휘두른 검에 그대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핏빛 카펫이 칠해졌다. 그것을 보면서 엘은 온화함을 지우면서 중얼거렸다.
“이 자들은 기사가 되기 위해 수많은 고행을 했겠죠. 누군가에게는 저 기사들이 소중한 가족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 될 연인이겠지요. 당신이 하는 수라의 길은 이미 시작되었겠죠.”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지.”
리에르는 천천히 마른 입가를 열어 보였다.
“나 역시 당신을 증오하는 자 중의 하나이지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관계지.”
정말 증오스러운 상대지만, 아군으로 했을 때의 이점이 너무나 컸다. 적으로 돌린다면 무섭지만, 아군일 때는 든든했다.
“어차피 계획만 완성되면 됩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생명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마왕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패도를 선택했다면 어설픈 감성팔이 따윈 집어치우세요.”
“경험자의 조언이라는 건가.”
리에르가 조소했다.
“네.”
엘은 리에르의 힐난에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즉답했다.
“새겨듣지.”
두 사람은 계속해서 황실의 복도를 걸었다.
힘이 쇠퇴할 대로 쇠퇴한 황실은 코스모스 교단에 항복 선언을 했다.
마지막 대원수인 프레이야는 결국 큰 전력 차를 메우지 못하고 수도를 지키지 못했다.
그녀는 마지막 목숨을 다해서 수도를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같은 대륙 오제인 이실렌의 설득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분루를 삼켰다.
제국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알력다툼을 하던 황자들은 둘 다 교단에 붙잡혀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남은 황실의 잔류 기사들은 전부 프레이야의 뒤를 따르며 훗날을 기약했다.
아무도 없는 황실을 코스모스가 점령함으로써 전 대륙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대륙 초유의 신성 제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천년 제국의 몰락과 함께 들어선 신성 제국의 등장. 하지만 코스모스 내에서도 반목 세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기존의 코스모스 장로들을 중심으로 원로파와 아르미안, 리에르를 중심으로 한 제국파가 생겨났다.
구 세력과 신 세력은 서로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리에르 아르빈트라는 절대 강자의 존재로 인해 원로회의 이목이 모여졌다.
원로파와 제국파가 공통되는 의견이 하나 존재했다. 그것은 신성 제국의 선포였다. 그리고 응당 신성 제국이 선포되면 교리를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다.
두 세력은 교황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교황이 자신들 세력에서 나오길 원했다.
이런 세력의 대립도 리에르가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오늘 수호 신장들을 죽임으로써 원로파와는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모든 결계의 연결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안에 있는 존재는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긋날 겁니다.”
엘은 리에르가 거침없는 칼부림을 하는 동안 뒤를 따르며 마법을 완성했다. 사방에서 순백의 마력이 모든 것을 굴절시키고, 모든 것을 부정시켰다.
그동안에 이 안에서 통칭하던 모든 법칙은 증발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