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29)
레필리아 레소드-330화(329/398)
레필리아 레소드 330화
반 코스모스 연합(2)
사방에서 붉은색과 녹색의 체액들이 서로에게 경쟁하듯이 피워 올랐다.
순식간에 흑기사들은 돌 골렘 장벽을 돌파하며 좌군을 깊숙이 관통했다.
좌군의 중심인 오크 부족은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들고서 흑기사들을 맞이했다.
천부적인 투사인 그들은 흑기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맞부딪혔다.
전면에서는 로빈타의 마병단이 쏘아내는 탄환이 쏟아졌다.
옆에서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학살하는 절대적인 무력이 꽃피우고 있었다.
용맹한 오크의 투사들은 흑기사들의 발목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선두에 선 칠흑의 마왕을 상대로 누구 하나 버텨내질 못했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의 창날이 찔러 들어왔다.
리에르는 한 번 검을 그어 내렸다. 창날과 함께 몬스터의 손목이 혈액으로 뒤덮여 허공에 굴러떨어졌다.
우수수.
칠흑의 마왕이 한 번 검격을 그어 내릴 때마다 수 없는 생명이 고깃덩어리로 뒤바뀌었다.
“뭐야, 저것들.”
로빈타의 마탄기단은 순조롭게 전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이 쏘아내는 마탄의 숫자는 효과적으로 적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마탄의 강력함도 있겠지만, 흑기사들의 압도적인 무력 덕분에 손쉽게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 로빈타가 대패당했을 만하군.”
마탄기병의 지휘관인 샬롯 찬 크리네스는 흑기사들의 전진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의 옆에 있던 부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상관에게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저 끔찍한 흑기사 무리를 이끄는 칠흑의 마왕 때문에 로빈타는 온갖 수치를 겪어야만 했다.
애초에 저 리에르 아르빈트가 아니었다면 교단에게 그리 쉽게 정복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지금 연합의 모든 지휘관은 마왕의 진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속내로 서슬 퍼런 감정을 싣고 있었다.
지금은 모종의 조건으로 인해서 임시 협정을 한 상태였다.
적일 때에는 정말로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웠지만, 한편이 되니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작전은 매우 간단했다.
연합군은 몬스터 대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총진격을 시작한다. 그리고 리에르 아르빈트의 흑기사들이 적군의 심장을 꿰뚫는다.
리에르는 멈추지 않고 몬스터 좌군을 가로질렀다.
추행 돌파에서 중요한 점은 멈추면 그대로 적의 협곡에 둘러싸인다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는 흑기사들의 기세를 막기 위해 거대한 용기사들이 차원 문을 뚫고서 나타났다.
네버 에이지의 정예 중의 정예인 그것들은 일당백, 일당천이 되는 괴물들이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인간을 위협하려는 듯 검은 피막을 길게 뻗어냈다.
그들의 양손 쪽에선 보랏빛으로 빛나는 발톱이 예리한 빛을 번뜩여 보였다.
리에르는 그래도 일직선으로 그들을 향해 칠흑의 검날을 베어냈다.
이번만은 적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리에르의 도신을 피해낸 용기사들이 즉각적으로 반격을 해왔다.
용기사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리에르의 머리 위에서 보랏빛 발톱들을 할퀴었다.
리에르는 상반신을 뒤로 젖히며 말 위에 누웠다.
그와 동시에 발을 들어 용기사의 배를 걷어찼다.
갑자기 강타를 당한 용기사 하나는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리에르는 재빠르게 검을 회수하며 양옆에서 발톱을 찔러 들어오는 것을 받아쳤다.
정면으로 다른 용기사의 브레스가 날아들었다.
비록 위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인간 하나는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화력이었다.
리에르는 가볍게 손을 저어 적의 브레스를 무위로 돌렸다. 그리고는 재차 옆에서 반격을 해오는 용기사의 목을 향해 도신을 그어 내렸다.
핏!
용기사의 두꺼운 목에 붉은 실선이 그려졌다.
이내 미끄러지듯이 잘려 나가는 용기사의 머리통을 밀어뜨리며 흑기사들이 주군의 뒤를 지켰다.
흑기사들은 용기사들을 상대로 거창을 비집어 넣었다.
용기사를 상대로 인간이 감히 싸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상 최강의 인간이 전면에서 모든 용기사들을 상대로 무참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 공격을 회피한 이들은 뒤따라오는 흑기사들의 연계 공격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검이 그어졌다. 용기사의 보랏빛 발톱은 검을 잘라낼 생각으로 휘둘러졌다.
하지만 검은 잘려 나가지 않았다.
마왕의 친위대이니만큼 일반적인 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마스쿠스라는 무기로 이루어진 고가의 마검.
리에르의 친위대들은 전부 다마스쿠스 무기를 장비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기의 강도를 뛰어넘는 금속. 그러면서도 예리함으로는 최고를 자부하는 마검.
인간과 싸울 때는 적의 무기를 파괴하면서 절망을 안겼다.
인간 규격 이외의 존재와 싸울 때는 최고의 예리함을 선사했다.
최고에게는 최고로 대우한다.
용기사들은 어디까지나 눈앞에 있는 칠흑의 마왕에게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피부를 찢을 수 있는 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껏해야 마법이 깃든 검이 아닌 이상은 생채기 하나조차 나지 않았다.
리에르에 지지 않을 만큼 쾌속을 자랑하는 검날과 창날이 용기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리에르의 발을 멈추는 데에만 급급했던 몬스터들은 예상외로 강력한 흑기사들의 공격력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다시 리에르에게서 흑기사로 시선이 돌아가는 찰나의 순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왕은 자유롭게 자신의 마력을 뽑아냈다.
광활한 칠흑의 반원들이 사방에서 펼쳐졌다.
리에르의 의지 아래 주변의 모든 지형이 엉망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검은 파도가 몰아쳤다.
애초에 몬스터들에게는 능수능란한 통솔력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인간보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그들은 소수로 움직여도 강력함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인간들의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없어도 몬스터들은 직감적으로 벽을 쌓았다.
거대한 골렘류 몬스터들이 앞에 섰고, 사이사이 오크들이 투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들을 향해 시커먼 암흑이 덮쳐들었다.
짙은 질감을 가진 진흙처럼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칠흑은 살아 있는 몬스터들을 마음껏 포획했다.
“놈을 죽여라.”
좌군의 상급 용기사가 긴 검지를 들어 칠흑의 마왕을 가리켰다.
군단의 지휘관이 직접 지시를 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만 했다.
몬스터 군단 중 정예병사인 불멸의 기사들이 유령마를 타고서 흑기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살아생전에 뛰어난 기사들만 골라서 언데드로 만든 기사들은 평생 검 하나에 모든 걸 바친 존재였다.
그것들은 군주의 명에 따라 적을 섬멸하기 위해 움직였다.
몬스터들의 군대는 제대로 된 포진 없이 오로지 앞의 적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물론 개개인의 무력이 인간을 압도하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개체별로 특징도, 크기도, 전투법도 다르기에 인간처럼 정형화해도 좋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군대로서 싸우는 것이 익숙하고, 강력한 검술로 무장된 몬스터인 불멸의 기사는 다른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리에르는 칠흑의 도신을 높이 들어 대각선으로 베어 넘겼다. 불멸의 기사들은 능숙한 솜씨로 말을 몰아 회피했다.
두 갈래로 나뉜 불멸의 기사들은 좌에서, 우로 리에르를 에워싸며 검과 창을 번뜩였다.
리에르는 왼손을 들어 칠흑의 장벽을 세웠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 들은 도신을 번뜩였다.
섬광처럼 울려 퍼지는 칠흑이 허공부터 대지를 갈랐다.
불멸의 기사들은 칠흑의 마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검격을 전부 회피하면서 상대를 옥죄였다.
흑기사들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면을 날아다니는 불멸의 기사들을 향해 흑기사들은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무용을 뽐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흑기사와 죽음을 초월한 불멸의 기사들이 공격을 흩뿌렸다.
목이 잘려 나간 불멸의 기사들은 죽음에서 소멸을 겪으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인을 잃은 유령마는 차가운 입김을 뿜으며 거친 투레질을 내뿜었다.
흑기사들은 죽음의 창에 몸이 꿰뚫리며 피 분수를 토해냈다. 투레질하는 유령마는 주인이 없어도 흑기사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리에르도 긴 도신으로 사방의 적들을 베어냈다.
도신에 닿은 것은 죽음의 불멸도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재로 돌아갔다.
아무리 불멸의 기사들이 강력한 존재라 해도, 대륙 최강의 인간에게는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나마 흑기사들의 병력을 갉아먹는 것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하지만 힘들게 키워낸 정예들을 잃는 것을 원할 리 없었다.
칠흑의 마왕, 리에르는 눈동자에서 붉은 이체를 그리면서 천천히 입가를 벌렸다.
“콜 블레이드.”
칠흑으로 이루어진 장검들이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검들이 수북하게 사방의 적들을 도륙하며 흑기사를 지원했다.
난전의 난전.
사방에서 혈화와 흑화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치열할 것 같은 그 싸움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흑기사들도 강력한 적들을 상대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륙 최강자의 병사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불패를 의심치 않는 칠흑의 마왕은 마치 광기에 지배된 듯이 주변의 적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흑기사들의 돌격이 잠시 멈춰지자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에르가 만들어낸 웜홀이 바닥에서 그림자를 피워올렸다.
덕분에 공격을 해오던 몬스터들은 전부 웜홀의 바닥 아래로 흡수되며 지독한 비명들을 토해냈다.
좌군을 지휘하는 용기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아무리 칠흑의 마왕이 포스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멸의 기사들은 몬스터 군단의 정예였다.
아니, 더 믿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포위를 재차 돌파한 마왕의 기사들은 그대로 좌군의 지휘관을 향했다.
용기사는 직접 용창을 들고서 자신의 수하들에게 벼락같은 지휘를 내렸다.
정면에서는 로빈타의 총지휘관인 샬렛이 마병기단을 이끌고 포위섬멸 작전을 시도하고 있었다.
측면에서는 흑기사들이 마음껏 좌군을 유린하고 있었다.
좌군의 용기사뿐만이 아니라, 전장에 있는 모든 지휘관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대공께서 당할 만해.”
샬렛은 로빈타의 총지휘관으로서 전장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그 자신은 유년시절부터 강철의 대공, 이실렌이 만들어낸 빛나는 업적을 몇 번이나 읽고 탐구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불패의 영웅인 이실렌이 패퇴 당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전장에 나와서 칠흑의 마왕을 보니 모든 의아함이 이해되고 있었다.
전략은 이기는 그림을 만들어 놓고서 구성된다.
전술은 이기는 그림 위에 붓칠함으로써 구성된다.
굉장히 강한 인물이 하나 있다고 해서 전쟁의 결말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식 밖으로 강한 영웅에게 절대적인 신념을 지닌 병사들이 존재한다면 상황은 달랐다.
흑기사들 무리는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좌군 용기사가 있는 진영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전략가에게도, 전술가에게도 최악의 체스 말이다.”
기존의 통념을 전부 뒤엎어버릴 수도 있는 존재는 질색일 수밖에 없었다.
1+1은 2가 답이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값을 5로 만들고, 그것을 정답으로 만드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굉장히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것은 굉장히 증오스러운 존재가 된다.
“모든 살아 있는 자의 왕이 굽어보신다. 우리는 불패하리라!”
좌군 용기사 대장의 용창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몬스터들은 하나로 무리가 화하며 달려드는 검은 쐐기들을 향해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용기사 대장은 다시 한번 자신의 세로줄 눈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몬스터들이 군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체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었다.
단합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결속이 이뤄져야지만 강해지는 특징을 지닌 인간들뿐이었다.
“놈을 찢어라, 놈을 죽여라!”
용기사 대장은 다시 반복해서 자신의 백성들을 호령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참하게 고깃 조각으로 변하는 백성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