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30)
레필리아 레소드-331화(330/398)
레필리아 레소드 331화
반 코스모스 연합(3)
용기사 대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할 것을 느꼈다.
수하들에게 맡겨서는 무뢰한 인간을 제압할 수 없어 보였다.
용창이 보랏빛 칼날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용기사 대장의 용창과 마왕의 흑도가 교차했다.
서걱.
스산한 소음과 함께 용기사 대장의 목이 공중에 회전하였다. 잘려 나간 목의 단면으로 녹색 체액이 흩뿌려졌다.
몬스터 좌군은 삽시간에 벌어진 전투의 종결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들은 바로 앞에 벌어진 일이 현실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회군한다.”
리에르는 방금 거물을 잡아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명령을 내렸다.
흑기사들은 주군의 명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되밟았다. 그리고 이 돌파구의 선두는 이번에도 리에르였다.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대장을 죽인 존재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칠흑의 마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흑기사가 전투 지역에 벗어나고 나서도 전투는 지속하였다. 중앙과 중앙은 힘과 힘의 대결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로이스타를 필두로 한 십일검 기사단은 대륙 최고의 용맹함을 보이며 몬스터의 공세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로이스타 아르빈트는 최강의 기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능력을 선보이며 압도적인 전투를 선보였다.
주인을 잃은 칠검 기사단과 팔검 기사단은 하나의 기사단으로 연합하여 행동하게 되었다.
두 연합 기사단의 지휘는 파에트의 부관이었던 모리스가 맡았다. 그리고 이 기사단은 마치, 죽은 주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것처럼 맹렬한 기세를 선보였다.
치열한 하루.
그 결과 흑기사들의 급습으로 인해 좌군은 대장급이 죽었다.
그 이후 로빈타는 전면 횡 돌파를 하면서 적을 몰살시키기에 이르렀다.
중앙군 역시 부관급 넷이 사망하면서 지휘체계에 큰 혼란이 파생되었다.
우군에서 활약한 페리안도 압승을 거둠으로써 연합 첫 전투는 전체적으로 우세하게 끝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과 몬스터의 전력은 많이 남은 상태였다.
몬스터는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인간은 몬스터를 이 땅에 서지 못하게 하려 했다.
연합군은 첫날의 대승으로 기쁨에 취해 있었다.
각 진영은 마음껏 포식하였고, 약간의 술도 주어졌다.
하지만 연합군의 지휘관급들은 중앙 막사에 모여 다음 날의 전투를 위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굳이 약속된 회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말하지 않지만, 다음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은 아렌 왕국과 몬스터 군대가 서로 밀리고 밀리는 전투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이미 인간 연합이 구성된 이후로 대패를 맛보게 되었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드디어 네버 에이지가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의미였다.
폭룡 네버 에이지는 이미 지상 최강의 생명체였고, 혼자서도 군대를 쓸어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 군이, 아니, 인류 전체가 덤벼들어도 이길지, 이기지 못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즉, 폭룡 네버 에이지를 섬멸하지 않는 이상은 이 전쟁에 승리란 의미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각국의 지휘관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첫 대전의 날, 지휘관들이 전부 모인 것은 폭룡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탁자 위에 준비된 희석된 포도주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리안의 공주, 유이 페브리안은 중앙 막사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왕녀이기는 하나, 부외자나 다름없었기에 회의에 참석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무엇보다 그녀가 지금 관심 있는 것은 전략 회의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지만, 그가 곧 올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얌전히 막사 앞에 서 있는 유이를 보며 레이루나는 길게 하품을 해 보였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쳐들어가지그래?”
레이루나는 기지개를 피면서 중얼거렸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지만 역시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덕분에 레이루나의 미간이 한 번 씰룩거렸다. 좀 더 재미있는 여자이길 바랐지만, 다소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뛰어난 미인이었다. 특별한 왕의 힘을 갖고 있었다.
누구나 선망의 대상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만 정신이 팔려서 스스로를 망각하는 여성에게 점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이루나는 짜증이 났다.
자신과 같은 존재가 옆에 있음에도, 다른 것을 쫓는 여성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왔군, 내 연적이.”
레이루나는 미간을 좁히며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연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유이는 뒤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직접, 대놓고 관심을 표해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아. 남자든, 여자든.’
레이루나의 시야 안으로 칠흑의 망토를 펄럭이는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흑기사 부대의 부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이외엔 전부 아렌, 페리안, 로빈타 연합의 병사들이 인솔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감시를 위해 따라붙고 있었다.
유이는 맑은 눈동자를 들어 정면을 직시했다.
그녀의 시야 안으로 오랜만에 보이는 리에르의 얼굴이 보였다.
유이는 부모님을 어린 나이에 잃은 고아였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친오빠인 유트의 존재가 항상 위로되고,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항상 당연하다는 듯이 옆에 있는 멍청한 남자애가 있었다.
그 남자는 남매만 있던 세상에 멋대로 끼어들고, 멋대로 함께했다.
유트와 유이는 리에르의 존재로 인해 구원을 얻었다. 세상은 남매에게 가혹했고, 냉정했다.
세상은 페브리안 남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세상은 페브리안 남매에게 존재를 부여하지 않았다.
두 남매는 세상에서 고립되었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려 했다.
하지만 세상과 연결고리가 되어준 소년은 스스로 매듭을 만들고 끊어지지 않았다.
유트에게는 처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유이에게는 처음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라는 이름으로.
유이는 항상 리에르와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유이는 타인에게 배척받는 리에르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단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리에르에게 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되돌리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유이는 리에르를 마중하려는 유트를 말리지 않았다.
이제 왕으로서 운명을 만들어야 할 중요한 시기였다.
누구나 유트를 만류했다. 하지만 가장 말려야 할 유이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오빠를 따라나서기까지 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그를 떠올린다.
어릴 적에 보고 다시 만나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 걱정되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몰라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본다.
오랜만에 재회한 리에르는 엉망진창이었다. 사지를 몇 차례나 겪고 견뎌온 모습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이었다.
유이는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초췌한 리에르를 힘이 나게 해줄 수 있는 선물.
생각은 오래 할 필요 없었다. 유이는 리에르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했다.
하지만 좋은 선택은 되지 못했다. 유이가 만든 음식 덕분에 리에르는 한동안 고생해야만 했다.
잠시간 함께하게 되었다.
위험한 일도 있고, 편안한 시간도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이는 리에르에게도 이곳이 마음에 들기를 원했다.
유이의 그런 바람은 잘 들어맞았다.
리에르에게 있어 페리안은 제2의 고향과도 같았다.
그는 새로운 호칭을 얻고서 마음껏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곧 끝났다.
황실에서 발생한 핏빛은 모든 것을 검게 물들게 했다.
그리고 리에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크게 다쳐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더더군다나 리에르는 시한부의 생이었기에, 지금 못 보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몰랐다.
소중한 이를 다시 보지 못한다. 그것은 끊어낼 수 없는 슬픔을 의미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았다.
“리엘…….”
유이는 부르고 싶었지만 부를 수 없었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일 년 만에 만나는 리에르의 모습은 예전과 다른 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리에르는 더 예전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리에르는 본부 막사를 향해 걸어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의 시야 안으로 낯익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밤의 어둠 속에 녹아 들은 은빛. 그 은빛의 물결을 가진 소녀가 촉촉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눈이 아릴 만큼 아름다운 소녀를 잘못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장이 자신도 모르게 두근거렸다.
리에르는 스스로 냉기를 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유이는 리에르의 얼굴이 계속 굳어진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히 반갑게 맞이해 주지 않으리란 것은 예상하였다.
예전에 황실에서 페리안을 지키기 위해 리에르가 감행했던 황실 학살 사건. 그것 때문에라도 리에르가 유이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도 곤란했다.
“바보 원숭이, 오랜만이야.”
유이는 억지로 미간에 힘을 주며 인사를 건넸다.
여러 가지 혼잡한 상황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있는 그대로 기뻐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날까 봐 억지로 표정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인사를 받은 리에르는 차가운 눈동자로 유이를 바라보았다.
유이는 그가 보여주는 시선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 우리는 적대 세력이다. 상황을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
유이의 동공이 크게 열어졌다.
리에르는 싸늘한 한마디만을 남기고 병사들과 함께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 이전처럼 농담하면서 대화를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냉랭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그녀는 리에르가 굉장히 반가워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가 자신을 보고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리에르의 반응은 무가치하고, 의미 없는 사람을 대하는 듯이 굴었다.
“무슨 말이야?”
유이는 그대로 등을 돌려 물었다. 칠흑의 검에 감긴 쌍두사 문양 망토.
코스모스 흑기사들을 상징하는 망토를 두른 리에르는 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한 번 흘겨보고 지나갔다.
재회의 기쁨 따윈 없었다.
유이는 갑자기 허탈함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리에르의 차가운 반응을 보고 레이루나는 휘이, 하는 휘파람을 부르며 흥미로워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유이에 대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마왕으로서 각성하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로 보였다.
‘그땐 울고 있었으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내 웃는 얼굴을 떠올려 놓고는.’
유이는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리에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유이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유이는 지그시 눈을 여미었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던 능력이었다.
하지만 안일하게 생각한 덕분에 모든 것은 뒤틀려가고 있었다.
사랑했던 소꿉친구. 단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주었던 남자는 이제 완전히 나락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를 불러세우기 위해서라면, 그를 다시 뒤돌아보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힘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개안(開眼).
유이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