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32)
레필리아 레소드-333화(332/398)
레필리아 레소드 333화
반 코스모스 연합(5)
“나, 집정관의 교단은 현 시간부로 연합과 휴전을 제의하는 바이다.”
이미 이 안에 모인 사람들은 로이스타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리에르의 입에서 확정적인 발언이 나오자 새삼 다르게 들려왔다.
“아직 그에 대한 이유는 모른다. 목적이 무엇인가?”
이번에 질문한 것은 루나레이크의 장미 기사단장인 소로한이란 인물이었다.
이전에 리에르에게 주군이 죽고 나서 새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전임자처럼 강한 카리스마가 있지는 않았지만, 기사와 병사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다.
“간단하다.”
리에르는 픽, 가볍게 실소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불신과 의심만이 가득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지 않은가?”
의미불명의 말이었다.
네버 에이지의 몬스터 군단은 어디까지나 교단과 연계된 존재였다.
즉, 폭룡을 쳐서 교단이 이득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다소 당황스러운 발언의 시작이었다.
“교단도 둘로 갈라졌는가?”
로이스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서로 적과 적으로 만났지만,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부자 관계였다.
최강의 기사와 최강의 검사.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리에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새삼스럽게 덧셈 뺄셈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지금의 선택에 따라 적이 하나가 추가되느냐, 적이 하나 줄어드냐는 결정적일 테니 말이야.”
분명히 리에르의 말은 옳았다.
속셈은 둘째 치더라도 오늘과 같은 전공을 보여준다면 연합에는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냥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이는 방법도 있겠지.”
그 말 한마디에 막사 안은 냉한 기류가 흘렀다.
대륙에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인 막사 안이었다.
이 안에서 누군가를 죽이고자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특히나 삼검 대장인 밀피유는 자신의 실책으로 동료 대장급들을 잃었다고 분개하고 있었다.
충혈된 눈동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꽉 쥔 주먹.
지금의 그는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고 있었다.
“죽인다는 말을 약자가 강자에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밀피유의 말에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 순간 밀피유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리에르는 지휘관들을 둘러보며 입가에 비아냥을 걸었다.
“손을 잡아달라는 게 아니야.”
리에르는 밀피유와 시선을 마주했다.
“손을 잡아주겠다는 거지.”
밀피유뿐만 아니라, 에텐베르그의 지휘관도 당장에 노성을 지르며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실히 이 아저씨가 젊을 때랑 꼭 닮은 놈이로구나!”
지금껏 말하지 않던 인물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젖혔다.
대륙의 오제중 한 명이자, 최강의 궁신이라는 이름으로 페리안을 수호하는 아로운 킴이었다.
난데없는 상황 때문에 분노로 이성을 잃기 일보 직전이었던 밀피유마저도 멍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머리를 뒤로 젖히며 기운차게 내뱉던 아로운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탁자를 탁탁, 두들겼다.
“좋지 않은가? 젊은이의 패기로는 딱 어울리니!”
아로운의 말에 갑자기 싸늘해졌던 공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영웅이 가진 발언의 힘. 리에르는 포스 각성자로서 압도적인 무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영웅들처럼 무수한 전공이 있지는 않았다.
리에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에게 으르렁거리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밀피유와 에텐베르그 지휘관들은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팔짱을 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리에르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막사 안의 대다수 인원은 교단의 집정관, 칠흑의 마왕을 상대로 우호적인 감정을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적의만 팽팽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기본적인 산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적일 때는 정말로 이가 갈리지만, 아군일 때는 이만큼 든든한 인물이 없었다.
아주 예전에. 리에르가 카에르에 들어가기도 전의 일이었다.
* * *
그 당시엔 리에르도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폭룡?’
리에르는 자신의 로이스타 아르빈트에게 되물었다.
아렌 지역에는 예전부터 거대한 폭룡이 자신의 둥지를 만들어놓고 인간을 지배하려 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폭룡 네버 에이지의 군대는 끊임없이 주인을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렌을 비롯한 제국의 대규모 토벌군이 움직여왔다.
실제로도 십여 년 전에 벌어진 전쟁에서도 많은 희생이 이루어진 이후로 폭룡 네버 에이지의 둥지를 봉인시킬 수 있었다.
생명체 중에 가장 강력하다는 용을 죽이지 못하니, 그의 동굴을 봉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은 로이스타의 오랜 친구이자, 라일라의 사제인 라에룬이었다.
하지만 라에룬은 리에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했다.
라에룬에서 리에르로 옮겨진 봉인의 마력은 서서히 약해지고, 다시금 거대한 마왕이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래, 조만간 다시 놈의 피막이 세상을 뒤엎겠지. 예전엔 네 삼촌이 있었다만, 지금은 없으니.’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말을 해도 리에르는 알아들을 말도 아니었다.
로이스타는 부활하는 폭룡의 이변을 눈치채고서 불길함을 떠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많아진 적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리에르는 아버지가 하는 말들을 듣고서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내가 꼭 아버지를 도와줄게!’
호기롭게 소리치는 리에르를 보며 로이스타는 허허, 웃어 보였다.
‘놈이 한 번 날면 수많은 재앙이 흩뿌려진다. 놈이 불길을 뿜으면 도시가 불탄다. 놈이 포효하면 괴물들이 군대를 이루고 진격한다. 무섭지 않겠느냐?’
리에르는 로이스타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이윽고 리에르는 배시시 웃으면서 허리춤에 손을 짚으며 턱을 들어 올렸다.
‘내가 그만큼 강해지면 되지!’
꼬마다운 호기로운 선언이었다.
로이스타는 리에르의 말을 듣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거대한 솥뚜껑 같은 손이 머리를 문지르자 리에르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기대하마.’
아버지의 생각지도 않은 다정한 말에 리에르는 거만하게 턱 끝을 올리며 소리쳤다.
‘응!’
* * *
아르빈트의 바보 차남. 혹은 아르빈트의 둔재로서 온갖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소년.
비극적인 일을 경험하고, 비극적인 힘의 대가를 받은 소년은 청년이 되어 자리에 섰다.
“교단 집정관 리에르를 현 시간부로 연합으로 임시 인정한다.”
어디까지나 본 연합의 중심은 아렌이었다. 그리고 아렌의 중심은 로이스타 아르빈트였다.
로이스타의 말에 더는 이견을 달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 교단 애쉬문(Ashes Moon)에서도 본 임시 연합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로이스타와 리에르의 선언에 이의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첫날의 대전으로 연합군은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고, 곧 전쟁의 승기를 흔들 수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큰 변수가 남아 있었다.
거대한 폭룡이 의지를 갖는 순간 모든 전황은 뒤바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큰 변수는 다시 변수로 잡게 되었다.
“내가 직접 폭룡을 치겠다.”
모두는 리에르의 충격적인 발언에 다시금 놀라고 있었다.
아무리 최강의 인간이라고 일컬어지는 괴물 중의 괴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부류 안에 들어간 것에 포함되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오늘 증명했을 거다.”
리에르의 말처럼 소수의 정예만을 이끌고서, 아니, 소수의 정예이기에 가능한 효과적인 전술을 선보였다.
마치 하나의 쐐기처럼 쏘아진 창은 적의 심장을 관통하고 돌아왔다.
연합 입장에선 반대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리에르가 폭룡을 죽이지 못한다 해도, 연합 입장에선 손해 볼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첫 대전을 벌이고 난 뒤였기에 이후의 회의는 금방 정리되었다.
이후 같은 군단에 소속된 지휘관들끼리 몇몇 기초 작전을 수정하는 정도였다.
리에르는 오늘 자신이 지원했던 군단에 편승하여 단독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네.”
로빈타의 지휘관인 샬렛은 리에르에게 서슴없이 질문했다.
어찌 보면 황당한 상황이었다.
“왜 로빈타를 배신했는가?”
리에르는 루나레이크를 짓밟았고, 로빈타를 깨부쉈다.
“로빈타를 치는 것보단, 교단으로 끌어들이는 편이 더 좋지 않았는가?”
“지금은 이유보단 폭룡을 제거하기 위한 지원책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가 아닌가?”
다른 군단과 마찬가지로 리에르와 샬렛도 같은 군단으로 움직이기에 서로의 작전 안에 대해 수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샬렛은 작전보다는 다른 것에 관해 묻고 있었다. 아니, 로빈타의 사람으로서, 로빈타의 영웅으로서 당연한 질문일지도 몰랐다.
샬렛은 로빈타의 국왕이 직위를 내려도 학업을 핑계 삼아 거부했던 인물이었다.
무려 강철의 대공 이실렌이 직접 찾아와 재능을 꽃피우기를 기도하기도 했던 존재였다.
그런데도 샬렛은 마음껏 놀고 자는 생활에 대한 꿈을 꺾지 않았다.
남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출세하고, 중앙에 진출하려 했다.
그는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원했다.
하지만 그에 역설적으로, 샬렛은 가장 빠른 출세를 하고 있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강철의 대공이 날개가 꺾이자 로빈타는 급격하게 국운이 쇠퇴하려 하고 있었다.
결국, 특유의 게으름뱅이는 더는 게으름만 피우고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한눈에 반한 마리엔느의 설득도 한몫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로빈타의 군단은 전군 출격할 걸세.”
샬렛의 말에 리에르는 관심을 보였다.
군단에 있어서 전군 출격은 100퍼센트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보여주지 않는 전술이었다.
단 한 번에 역전을 하는가 하면,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잃고 대패할 수도 있는 것이 전군 출격이었다.
“마탄기단이 모든 공세를 전면에 퍼부어서 길을 열어주겠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아무리 마왕이라도 폭룡을 만나러 가기 전에 지칠 수도 있으니.”
“로빈타는 큰 피해를 볼 건데?”
리에르는 샬렛에게 조소하며 되물었다.
“폭룡을 상대로 피해가 없을 수는 없지. 오히려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려면 화살이 과녁에 맞을 수 있을 확률을 높여야겠지.”
샬렛의 말처럼 몬스터 군대는 만만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다수 앞으로 발을 뻗기보단, 제자리에서 지금의 고지를 지키는 데 주력했다.
즉, 지금처럼 과감하게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강철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겠지.”
리에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입가를 열어 보였다.
“아까 물어본 것에 대한 답이다.”
“아니, 부족한데.”
샬렛은 수수께끼를 받은 것처럼 헷갈린 표정이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지. 썩은 기둥을 뽑아줬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옳겠군.”
“아니, 내 집 앞마당의 썩은 뿌리는 우리가 뽑을 일이지. 적국에서 뽑아주기를 원한 적은 없네만.”
샬렛의 말에 리에르가 건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흙탕물에 깨끗한 물을 한 바가지 넣는다고 깨끗해지진 않겠지. 무엇보다 붓는 물이 깨끗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말이야.”
“나는 호적수로 어떠한가?”
리에르의 말에 샬렛은 엉뚱한 말로 답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자 리에르는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안중에도 없다.”
리에르의 태연자약한 말에 샬렛은 픽, 웃음을 지어 보였다.
리에르의 입장에서는 샬렛은 그저 진흙 덩어리에서 올라온 구더기에 불과했다.
“내일 전투에서 그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게 해주지.”
샬렛은 리에르의 도발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지.”
리에르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아버지가 연합장으로 있기에 예의상 참가한 것에 불과하고, 예의상 형식에 맞춰준 것에 불과했다.
지금의 리에르에게 있어 모든 것은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