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33)
레필리아 레소드-334화(333/398)
레필리아 레소드 334화
반 코스모스 연합(6)
‘유트.’
리에르는 굉장히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이름을 떠올렸다.
지금의 리에르는 예전의 그와는 명백히 다른 인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실 만행사건에서 스스로 흉검을 들은 이상 이제 예전의 인연과는 모두 끊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왜인인지는 몰랐다.
리에르는 호적수라는 단어를 듣자 자신의 친우였던 유트를 떠올렸다.
리에르는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어떤 위험에 처해도 항상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사람을 기억했다.
유트와 리에르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서로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았었다.
리에르가 페브리안 남매를 만난 것은 아주 어릴 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는 동갑내기 남매들을 만나면서 운명을 느꼈다.
리에르는 남매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 그리고 진실을 보는 두 남매는 적의 없는 소년의 유일함을 믿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대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유트와 함께라면 리에르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었다.
너무나 강하기에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던 유트. 그런 그를 위해서 자신은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예쁘지만 새침한 유이. 친여동생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아름답게 성장한 그녀에게 약해진 마음들이 뒤흔들렸다.
절대로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적이 되어가는 상황. 그것은 누구도 등을 떠밀은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선택한 길.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길. 수라가 되어 수많은 생명을 취하게 되는 잔혹한 길.
“기다렸어.”
리에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아니, 그녀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 않다면 유이 페브리안이 아니었다.
“이 바보 원숭아.”
은빛 물결과도 같은 긴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감싸 안은 청초한 소녀.
안으면 으스러질 것처럼, 감싸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처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모래알.
일 년 만에 만나는 유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리에르는 지극히 냉랭한 모습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리에르의 차가운 말에도 유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후우, 하는 한숨을 쉬어 보이더니 침착하게 눈가를 열어 보였다.
“뭐가 불만인지 확실히 말해.”
유이의 말에 리에르는 코웃음을 쳐 보였다.
“의미 없는 대화다. 더 용건이 없다면 비켜주길 바라는데.”
리에르는 유이의 앞에 섰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이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리에르는 일부러 그녀가 상처받을 만한 단어들만 골랐다.
그런데도 유이의 붉은 눈동자는 똑바로 단 하나의 대답만을 원하고 있었다.
“고집부리지 마, 이 바보 원숭이.”
유이는 당당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리에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마음 한쪽에 버려두었던 감정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잘못된 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고통스러웠다.
지금껏 수없이 만들어진 죄업들을 조금이나마 갚아내는 단 하나의 방법.
그 위로만이 유일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이미 수라의 길을 향해가는 그에게 있어 페브리안 남매는 버거운 짐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빛이었다.
수렁에 빠진 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광명이자, 구원자여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더러운 구덩이에서 잔혹한 망자들의 길 안내를 도와야만 했다.
“난 널 믿으니까.”
유이의 조그만 입술이 그렇게 말했다.
꼭 다물고 바라보는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푸…….”
리에르는 입 한쪽이 틀어 올라갔다.
“푸하하.”
건조한 웃음이 리에르의 입가를 움직였다.
차가운 눈동자는 분노를 품으며 유이를 내려다보았다.
“믿는 사람에게 잘도 그런 힘을 사용…….”
“사용한 적 없어.”
유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화가 난 듯한 눈동자. 힘을 주고 있지만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흔들렸다.
“너도 알고 있잖아.”
유이는 리에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리에르도 절대 본심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면 보는 순간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은 네 자유지만.”
리에르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는 유이의 옆으로 지나가면서 갑갑하게 조여오는 제복 목 언저리를 풀어 젖혔다.
“전쟁을 치렀으니 내일을 위해서 휴식을 해야겠군. 더 이야기해야 한다면 내 방에 들어가서 해도 될까?”
리에르는 턱 끝으로 자신의 숙소를 가리켰다.
유이도 이미 리에르가 잘 곳이 어딘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를 막아설 수 있었다.
“그래.”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에르를 뒤따랐다.
리에르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 유이를 보며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리에르는 유이가 따라오든지 말든지 숙소의 문을 열었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유이는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예전부터 그녀는 고집불통이었다.
에레사는 상대의 의견을 더 중요시해 주고, 자기 뜻을 굽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유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굽히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리에르와 자주 다투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쟁을 마치고 흥분된 전사들은 밤에 여자를 안는 것으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
리에르는 걸쳤던 망토를 풀고, 제복의 단추를 풀었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소리겠지?”
리에르는 차갑게 비아냥을 품어 보였다.
“친구 동생보고도 성욕이 생기나 봐?”
“친구였다면 말이겠지.”
유이의 빈정거림에 리에르가 메마른 대답을 해 보였다.
리에르도 알고 있었다. 페브리안 남매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움직였을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이 그런 부류였다면 유년시절의 자신과 어울릴 필요도 없었다.
“이제 다 그만둬.”
유이는 돌아보지도 않는 리에르에게 말했다.
“뭘?”
리에르의 질문에 유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려 보였다.
“이딴 미친 짓.”
유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리에르가 하는 잔혹한 행위를 전부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것을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유이는 미친 짓으로 함축했다.
“미친 짓이라…….”
리에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무집정관을 상징하는 칠흑의 로브를 바닥에 떨어낸다.
그리고 흑기사들만이 입는 칠흑의 제복을 벗어 침대 위에 던져 놓는다.
“이제 배려는 끝났어.”
리에르는 잰걸음으로 유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붙들었다.
조금만 힘을 저도 부러질 것 같은 가냘픈 손목. 녹아들 것 같은 부드럽고 흰 살결.
“사실 요새 좀 굶주린 상태거든.”
리에르는 어느새 유이를 침대에 강제로 눕히고 내려다보았다.
예상치 못한 리에르의 행동에 이번만은 유이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그래?”
유이의 눈동자는 처연함으로 가득했다.
리에르는 그녀의 안색이 슬픔으로 메워지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마치 달빛을 빚어낸 듯한 긴 은발이 침대의 하얀 시트에 녹아들듯이 흐트러졌다.
리에르의 손이 움직였다. 부드러운 은발이 핏빛이 메마른 손안에 부드럽게 흘러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내 몸을 훔쳐보곤 했었지.”
유이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리에르는 대번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레사에게 그런 생각을 품었던 적은 있었다.
다만 그 당시 절벽이나 다름없던 유이에게 혹심 같은 것은 가져 본 일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하게 해줄게.”
유이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리곤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리에르가 되려 주춤했다.
리에르는 귀찮게 달라붙는 유이를 내쫓기 위해서 침대에 던지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무섭게 돌변하여 그녀를 당장에라도 덮칠 듯이 올라탔다.
유이의 당황스러운 얼굴은 아주 잠시였다. 금방 체념한 듯이 중얼거리는 그녀는 스스로 옷을 풀었다.
만지면 녹아들 듯한 순백의 살결이 블라우스 안으로 비친다.
흰 나시 아래 드러난 가슴 굴곡은 어린 시절의 그녀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만지기만 해도 풍만함이 느껴질 듯했고, 바라만 봐도 눈이 부실 듯이 느껴졌다.
유이는 리에르가 반응이 없자 양손으로 나시의 끝을 잡고 머리 위로 잡아당겼다.
누구의 손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은 매끈한 배와 허리. 그 굴곡과 잘 어우러진 골반은 남자의 손을 닿게 하는 최면을 일으켰다.
리에르는 다급하게 유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유이의 루비 빛 눈동자가 자신의 손을 제지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뭐 하는 거냐?”
“왜? 당장에라도 강간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는데?”
리에르의 얼굴이 다시금 구겨졌다.
“당할 바엔 스스로 동조하겠다는데.”
“아, 그래?”
리에르는 그제야 유이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쪽에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리에르는 그대로 유이의 허리를 품에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그녀의 나시를 위로 젖혀 올렸다.
잘록한 허리 위에 자리 잡은 탐스러운 가슴.
그 위에 선명한 분홍빛이 감도는 그림으로 그린듯한 가슴 덩어리.
굳이 리에르가 아니라, 그 어떤 남성이 보아도 유혹하는 듯 느껴지는 투명한 몸매였다.
리에르는 그대로 유이의 가슴에 입을 가져다 댔다.
부드러운 살결 속에서 은은하게 전해지는 온기.
그것의 정체를 찾기 위해 타액을 품은 혀끝이 움직였다.
유이의 몸이 움찔했다.
리에르는 굳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얼굴인지 상상이 되었다.
리에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가냘픈 손목을 억지로 붙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껏 유린하듯 타액을 칠했다.
뜨거운 혀끝에 화상이라도 입는 듯이 그녀가 꿈틀거렸다.
리에르는 활처럼 휘어가는 그녀의 허리가 부러질까 두려운 것처럼 감싸 안았다.
리에르는 유이의 가슴에 입술을 대고서 천천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읍.”
리에르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만족스러운 듯이 거칠게 애무했다.
뜨거운 타액으로 녹일 듯이 핥았고, 입술로 물어뜯듯이 할퀴었다.
가슴 언저리와 허리를 전부 열기로 가득하게 하려 노력했다.
리에르는 어느새 유이가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음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홀린 나머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리에르는 유이를 그대로 밀어내듯이 침대에 눕혔다.
달빛이 새어 나오는 창가 사이로 유이의 얼굴이 홍조로 붉어진 것이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카락들과 차림새로 인해 리에르는 참기 힘든 욕정이 느껴졌다.
그 순간 유이는 눈을 떴다.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를 아래에서 위로 마주하고 있었다.
천천히 할딱이는 달콤한 숨소리와 몽환적인 눈빛.
사랑스러웠다.
그대로 안고 싶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뜨거워진 몸과는 달리 자신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여성을 떠올렸다.
리에르 그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여성.
리에르의 모든 시작과 근원은 그녀였다.
그녀 때문에 강해지고 싶었다. 그녀와 같은 곳에 가기 위해 검술을 익혔다.
그녀를 위해 많은 것을 바꿨고, 잃었고, 결심했다.
애초에 에레사가 없었다면 리에르는 포스의 힘을 깨우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없었다면, 아르미안을 만날 일도 없었고, 레필리아 레소드를 익혀 스스로 사슬을 끊어낼 일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폭주하여 각성한 포스는 이성을 잃게 하고 지독한 목마름을 전염병처럼 몸 곳곳을 지배했다.
하지만 사랑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그녀가 원한 불행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리에르라는 존재로 인해 에레사는 일생이 일그러지고 어지러워졌다.
학원 내에서 누구나의 사랑을 받고, 누구나의 아낌을 받았던 아름다운 소녀.
그녀는 자신의 소꿉친구를 위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분명 리에르는 유이에게 강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 감정은 어쩌면 에레사에게 느껴지는 운명이나 책임과는 또 다른 의미였을 지도 몰랐다.
리에르 아르빈트는 에레사를 사랑했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지 않는 이상 버리지 않는다.
아니, 그녀를 위한 삶만이 이제는 가치로 환원되고 있었다.
“조루 원숭이.”
유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