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34)
레필리아 레소드-335화(334/398)
레필리아 레소드 335화
반 코스모스 연합(7)
리에르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방금의 반응을 보아서는 유이는 처녀가 분명했다.
남자의 손길도 느껴보지 못했으니 정신도 없을 텐데, 저런 말을 내뱉는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조루라는 단어는 여기서 쓰일 단어가 아니었다.
분명히 유이는 조루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직 삽입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많이 커졌지?”
“뭐?”
리에르는 유이의 생뚱맞은 질문에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로서는 오랜만에 보이는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유이에게 있어서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쉽게 보던 얼굴이었다. 그립고, 그리웠던.
“예전과 비교하면 말이야.”
유이는 부끄러운 듯이 가슴을 손으로 가렸다.
그제야 리에르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에레사 언니랑 매번 비교했었잖아.”
리에르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만, 유이는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 첫사랑인지도 몰랐던 남자아이.
그는 항상 다른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환경이 바뀌어도 항상 변함없이 하나를 바라봤다.
리에르는 유이에게는 절벽 바보, 혹은 앞뒤가 똑같다고 자주 놀렸었다.
그 대가로 꼭 머리에 혹을 한 대씩 달기도 하였다.
유이는 에레사와 자신의 가슴을 비교하며 분통해야 했다.
화가 나지만 리에르의 말처럼 에레사와 자신의 성숙도는 달랐다.
‘커지면 나도 봐줄까?’
유이는 짜증이 나서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자신을 왜 봐주길 바라는지, 왜 그런 생각을 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유이는 금방 성숙했다. 청초한 외모에 볼륨 있는 몸매까지 갖춘 그녀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그 어디든 한 폭의 화풍이 되었다.
유이는 주변 사람들이 반응을 보고 스스로 아름답단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정작 보여줄 수 있는 남자는 만날 수 없었다.
그럴 때 유이는 유트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유트와 리즈는 리에르의 소식을 들었고, 그를 구하기 위한 밀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유이는 너무나 기뻐했다. 그리고 엄청난 생떼와 협박으로 자신도 쫓아가게 되었다.
“난 이렇게 달라졌어.”
유이는 부드러운 입가를 열어 속삭였다. 올려다본 리에르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상태였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는 이제 만인의 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같아.”
유이는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는 마치 여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몸은 성숙되고, 환경은 바뀌었지만, 유이 페브리안은 여전히 리에르를 좋아했다.
유이는 리에르가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과 같이 리에르 아르빈트라고 믿고 있었다.
“난 너를 믿어.”
다시 반복된 그녀의 말.
리에르는 아까와는 달리 유이의 말에 무게가 실린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리에르는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악독한 마왕이었다.
그런 그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도 믿는다고 말하는 유트 남매. 망가질 만큼 망가진 리에르에게 있어서 그것은 차라리 구원이었다.
“그러니 널 알아야겠어.”
유이의 눈이 감겼다. 리에르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순간적으로 못 알아 들었다.
그 순간 유이의 여며진 눈동자가 천천히 열리는 것이 보였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광휘. 그저 마주치는 순간 존엄과 근엄을 보여주는 왕의 눈동자가 보였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
황금빛으로 이채를 띄는 유이의 눈동자를 거부하듯이 리에르는 장막을 펼쳤다.
유이의 손은 이미 리에르의 양 볼을 감싸 안고 있었다.
슬픈 듯이 빛나는 눈동자는 장막에 차단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실을 관통하는 빛은 리에르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만해, 유이 페브리안!”
리에르는 불쾌함이 물밀 듯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저 일반인에 불과한 유이가 자신을 상대로 동술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상상치는 않았다.
“미안해.”
유이는 리에르가 정말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눈물이 맺혔다. 슬픔이 감돌았다.
“당장 멈춰!”
리에르가 허공에 손을 흩뿌렸다. 그대로 칠흑의 도신이 형성되었다.
“조금만 훔쳐볼 테니까.”
유이는 리에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리에르는 그랬다.
정말 힘든 일은, 자신 혼자 끙끙 앓으며 해결하려 노력했다.
유이는 리에르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리에르는 유이를 막기 위해 아르카를 소환해서 목을 겨누었다. 당장에라도 조금만 힘을 준다면 그녀의 여린 목은 종이 베듯이 잘려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유이는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려서는 안 된다.
지금 리에르가 품고 있는 생각과 이상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리고 그의 과거는 일반인이 품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리에르는 유이의 눈동자가 눈물을 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잎사귀에 맺힌 이슬처럼 적셔지는 아름다운 눈동자에 모든 의지가 상실되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과 동조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펼쳐 낸 장막은 압도적인 신념의 결집에는 나약하기만 했다.
칠흑의 장막이 펼쳐졌다.
누구의 발길도 거부하는 듯이 펼쳐진 장막.
그것을 관통하는 찬란한 빛줄기.
그것은 모든 진실을 깨달을 자격이 있었고,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었다.
당하는 처지에서는 강간이나 다른 바 없는 치욕적인 행위였다.
스스로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든, 알리고 싶은 이야기든 상관없었다. 일단 타인의 의지에 침범된 공간은 마음껏 유린당하고, 능욕당했다.
단단하게 문을 닫는다. 강력한 거부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힘은 맞지 않는 열쇠 구멍을 비틀어 문을 열어젖혔다.
막아서는 의지를 억지로 밀어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 행위를 겪음으로써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페브리안 남매는 한 번도 자신에게 이 힘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
이 세상 모두가 배신해도, 죽음을 목전에 둔 설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려왔을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정말 비루한 자신이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모든 진실을 감추고 감춰야만 했다.
“멈춰……. 유이…… 페브…….”
리에르는 점점 들어오는 유이의 의지에 저항을 시도했다.
차라리 오열하며 울부짖고 싶었다.
하지만 막으면 막을수록 유이는 더 파고들었다.
그 광휘는 자신이 지켜주고 싶기에, 자신이 함께 있고 싶기에 상대의 의지를 분쇄하고 있었다.
유이는 에레사의 소식에 놀라워했다.
그녀가 리에르의 아이를 배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면 에레사의 목숨도 위험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리에르가 생각하는 아픔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들.
그것을 지켜보는 리에르의 심경은 찢기고, 찢겨 넝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리에르가 지금 하는 행위들을 본다.
자신의 형을 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리에르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형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이 없이 그는 목적을 위해 달려갔다.
아버지의 유일무이한 정을 느끼고 리에르는 아주 조금의 치유를 느꼈다.
형의 원수도 갚았다. 하지만 이미 넝마조각이 되어가는 그는 살아 있음이 괴로움이었다.
리에르는 한때 주적이었던 이들과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다.
‘이 동맹의 대가로 널 신으로 만들어주겠다.’
리에르의 말에 순백의 남성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조건이 뭡니까?’
리에르는 상대 남성의 말에 미소를 머금었다. 처연하고도 슬픈 미소였다.
그의 소꿉친구인 유이는 리에르가 굉장히 슬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그런 얼굴이었다.
‘황금의 샘은……. ……으로 이루어진다.’
유이는 리에르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굉장히 중요한 말인 듯했으나 분명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
침착해 보였던 상대 남성은 리에르의 말에 놀라는 듯 보였다.
‘-네가 신이 된다면, 내가 그것을 이룩하게 해준다면 네가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뭡니까?’
순백의 남성이 묻자 리에르는 자신의 잔에 물을 채웠다.
나무로 만들어진 잔에 깨끗하고 투명한 물이 차기 시작한다.
‘나의 존재를 지워줘.’
‘네?’
유이는 리에르가 하는 말을 듣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신이니 뭐니 하는 말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가 하는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어. 날 아는 사람들이 날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어. 내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증거를 지워. 내 존재가 증발함으로써 모든 이치는 원래대로 돌아온다. 더 이상 슬픔의 굴레는 끊어지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유이의 생각과는 다르게 순백의 남성은 대답했다.
‘괜찮겠습니까?’
유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순백의 남성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게 내 죗값이다.’
처연하게 말하는 리에르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그를 안고 싶었다.
‘너도 너의 죄를 갚아라.’
유이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 양대 세력을 만든다. 흑과 백으로 나뉜 세력은 더 이상 산발적인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일반인들의 피해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하여 교단의 괴물들과 싸웠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러나 넝마가 되어 고통을 짊어져야만 했다.
리에르는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있었다.
본래 그는 악독하기보단 순진무구했던 소년에 불과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둔하고 착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매일같이 죽은 자들이 기어 올라오는 꿈은 달가울 리 없었다.
아니, 제대로 된 숙면도 취하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마와 싸웠다.
그 나락의 끝에 남겨진 것은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말하는 사람 같았다.
유이는 리에르의 진실들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저절로 바보 원숭이가 따로 없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때 그녀는 이제 리에르가 자신의 자각몽을 꾸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전생의 꿈으로 표현되는 그것.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이 살았던 삶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오열했다.
슬퍼했다.
깊고 깊은 죄의 늪에 빠져 리에르는 허우적거렸다. 무언가라도 짚고 일어서고 싶었으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있었다.
유이의 눈동자에만 보이는 검은 실이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것은 리에르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리에르조차도 그것의 존재를 전혀 인지 못하고 있었다.
유이는 그것이 궁금해서 한 걸음 걸어나갔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언가까지 이어진 그 불길한 실.
유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갔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기에 더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솟아났다.
리에르가 과거에 대 학살자였던 것들이 나왔다. 왕이었던 적도, 장군이었던 적도 있었다.
몬스터였던 적도 있었고, 신학자인 경우도 있었다.
모든 삶이 달랐지만 단 하나는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잔혹하며, 모두가 세상을 절망하게 한 존재였다.
‘아니야!’
유이는 리에르의 생각을 거부했다. 실제 그가 지금은 마왕으로 불리고, 전생에는 어떤 존재인지는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유이에게 있어서는 단 하나의 세상이었고, 단 하나의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