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36)
레필리아 레소드-337화(336/398)
레필리아 레소드 337화
반 코스모스 연합(9)
물론 거기에는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한 자신의 마음도 이유 중 하나로 존재했다.
“바보야.”
유이는 리에르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함을 느꼈다.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아 괴로웠다. 눈가에 전해지는 고통보다, 슬픔이 더 괴롭게 느껴졌다.
“네가 말만 하면 오로지 너만 편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잖아. 그런데 왜 굳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 하는 거야?”
리에르는 분명 돌이킬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
“네가 한마디만 하면 나나 오빠는 그 어떤 적이라도 함께 싸워줬을 거야.”
누군가에게 이용당해서, 가혹한 힘에 저울질당해서.
“그런데 왜 그런 결정을 하는 거야?”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였다.
“널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서 하고 싶은 게 겨우 그딴 거야?”
유이의 힐난. 그녀의 초점 없는 동공이 리에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투명하게 일렁이는 슬픔이 맺힌다. 그것은 금세 바람에 씻겨져 나갔다.
리에르는 굳이 그녀의 말에 답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침실에서 힘을 사용한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시간 동안에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얼마나 깊은 심연을 들여다봤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네가 찾아낸 방법이 겨우 죽는 거니?”
유이는 눈가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이었으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막을 수 없었으니까.
리에르는 적혈의 악마로 강림했다. 역사 속에서는 피의 향연을 주도한, 페이서스를 초토화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검은 숲에 의한 살육이었다. 이 과정에 있어 리에르는 자아를 잃고서 각성을 하게 되어 스스로의 힘에 폭주했다.
그 결과 리에르는 명백한 살인을 했다.
전쟁에 나가면 자신이 속한 세력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 신념을 갖고 싸우게 된다. 그 신념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살인을 한다.
아니,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다지고, 살인할 각오를 다지고 무기를 든 자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죽어야 할 이유도, 죽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살인을 한 것은 살육이나 다른 바 없었다.
그 뒤로 리에르는 아르미안을 따라 교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교단의 이득에 따라 뒤에서 암약하는 암살자가 되었다.
암살자로 사는 삶을 끝내고서 리에르는 새로운 삶을 영위하려 했다. 그리고 그는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교단의 횡포에 맞서서 싸우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적혈의 악마에서 흑사자라는 칭호를 얻고, 페리안의 새로운 근위 기사로 등극하여 사람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나라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짧은 그 시간 이후에 찾아온 것은 황실 만행 사건이었다. 함정에 빠진 리에르는 유트 남매를 지키기 위해 힘을 개방하고 많은 사람을 살육했다.
그 과정 덕분에 이름뿐이던 황실은 완벽하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더 이상 황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 대륙의 강국들은 서로 앞다투어 세력을 이루었다.
전국시대로 바뀌어 서로 이권을 위해 수 없는 싸움이 발생했다. 그때 흑사자에서 집정관으로 칭호가 바뀐 리에르의 교단 군이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압도적인 무력을 발휘한 교단 군은 강국들을 차례대로 꺾었다.
삽시간에 교단은 신성제국 선포를 하기까지 했다.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방법이 겨우 이런 거야?”
유이가 묻는다. 리에르는 답하지 않았다.
교단이 압도적인 강함을 발휘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위압감을 심어준다.
그 결과 교단은 지금껏 소유하지 못한 압도적인 신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지배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갑자기 팽배하게 된 힘과 권력 앞에 기존 지배세력들은 눈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교단 세력에 대한 견제 세력들이 다수 생성되기 시작했다.
가장 강력한 신성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선 다른 힘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하나로 합쳐져야만 했다.
현재의 대륙은 두 개의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다.
코스모스 신성제국 세력과 반 코스모스 연합 세력.
흑과 백으로 나뉜 전쟁은 끝없는 굴레를 멈출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승자는 지배자가 되고, 패자는 지배 당한다. 굉장히 단순하고, 굉장히 설득력 있는 방법이었다.
리에르는 유이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유이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람이 칼날처럼 몸을 스쳤다. 유이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 추가 달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리에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고, 묻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은 더 이상 그녀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힘없이 허공에 떨어뜨린 유이의 팔을 보며 리에르의 동공이 격앙되었다.
갑자기 칠흑의 마왕이 여성을 품에 안고 달려가는 모습은 모두에게 의아함을 불러왔다. 수상쩍은 그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경비병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문답 무용으로 말 위에 올라탄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신 차려, 유이!”
리에르는 유이의 어깨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힘없이 늘어진 그녀의 모습은 마지 실 끊어진 인형과도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호흡이 멎어 드는 그녀의 차가운 체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리에르는 그대로 엘의 숙소를 향해 내달렸다.
서로 적이지만, 더 강한 적을 위해 손을 잡은 두 사람.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를 적대하지 않는 적.
“엘!”
순백의 남성은 자신의 숙소로 들어오는 손님을 맞아 일어섰다.
“유이 페브리안, 은의 태녀가 여기에 있을 줄 몰랐군요.”
엘은 갑자기 찾아온 리에르를 나무라지 않고 점잖게 입가를 열어 보였다. 그리고는 손님맞이용 차를 끓이기 위해 그릇에 물을 채워 넣었다.
“그딴 건 필요 없어. 당장 이 아이를 봐줘.”
리에르는 태평하게 차나 끊이려는 엘의 모습에 눈가에 불똥을 튀겼다.
그로선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모르는 척하는 너스레가 기분 나빴다.
엘 파실드는 최초의 포스로서 오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막대한 마력을 손에 넣어 이미 반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니요, 차는 필요할 겁니다.”
엘은 그렇게 말하며 주전자에 찻잎 몇 장을 넣어 뚜껑을 닫아 보였다.
“시간이 길어질 테니까요.”
리에르는 엘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엘은 리에르의 모습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웃음을 머금어 보였다.
대륙 최강이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칠흑의 마왕이 여자 하나 때문에 표정이 뒤바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르니까요.”
엘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 위에 시트를 다시 깔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자리를 안내해 보였다.
리에르는 유이를 침대 위에 눕혔다. 파리한 유이의 모습을 보며 리에르는 복잡한 심경에 빠져 있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의 울림은 다른 생각을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수없이 많은 생명을 벼랑 위로 내모는 사람이 겨우 한 명의 목숨에는 감정이 동요하는 겁니까?”
“…….”
리에르는 엘의 힐난에 대답하지 않았다.
유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의 말에 대꾸할 만한 변명도 없었다.
“수라의 길을 가기 위해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마저도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선택한 것은 그저 말뿐이었던 건가요?”
“입 닥치고 치료나 해. 갈궈대는 것은 나중으로도 좋다.”
리에르는 버럭 화를 내면서 엘에게 소리쳤다. 어차피 그가 말로 통하지 않는 상태인 것을 알고 엘은 순순히 손을 들어 보였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땀이 송골송골 맺힌 목.
엘은 리에르가 완벽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는 코웃음을 쳐 보였다.
리에르가 쌓은 죄악을 보자면 지금 이런 행동은 모두가 이율배반적인 행위였다.
누구에게도 지탄받아도 이상할 일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엘이 약자들의 심정을 대변할 필요는 없었다.
엘은 천천히 룬의 경어를 읊조렸다. 천천히 허공에 손을 저으자 백색의 빛 알갱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황금의 빛으로 물든 마력의 꽃봉오리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엘이 만들어내는 절대 마력의 공간 속에서 유이의 몸은 따뜻한 온기로 둘러싸였다.
“일단은 묻겠습니다만, 어떻게 된 건가요?”
리에르는 유이의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보였다.
“나에게…….”
리에르는 말을 하려다 잠시 끊었다.
만약 유이가 자신에게 진실의 눈동자를 사용하고, 그로 인해 대략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되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에레사도 목적에 따라 죽이려 드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검은 속을 들킨다면 절대 살려둘 리가 없었다.
아니, 지금도 치료를 하면서도 위험을 줄지도 몰랐다.
“이미 한배를 탔어요. 당신의 역린을 건드려서 일을 수포로 만들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아요.”
엘은 리에르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동자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주문을 읍했다.
“그래서 에레사도 죽이지 않았지요.”
엘은 리에르를 올려다보며 빙긋 온화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리에르가 엘의 마력을 느끼듯이, 엘도 리에르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에레사의 집에 찾아가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라도 엘은 에레사를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벌인다면 삼두동맹은 당연히 깨질 수밖에 없었다.
아르미안은 아직도 자신이 리에르를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엘보다는 리에르에게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리에르도 죽기 살기로 엘과 싸울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되면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적인 테헤라자드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테헤라자드의 저주군요.”
엘의 말에 리에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난데없이 여기서 테헤라자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곤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지금 유이 양은 테헤라자드의 저주로 인해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놈이 대체 왜……!”
리에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에라도 테헤라자드를 찢어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당신에게 진실의 눈동자를 사용했나요?”
“그래.”
엘의 말에 리에르는 수긍했다.
“그것참 흥미롭군요.”
엘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리에르는 자신과 달리 여유롭기만 한 엘에게 짜증이 나서 입을 열었다.
“네 흥미 따윈 관심 없어. 내게 중요한 것은 유이의 안위다.”
엘은 리에르의 말을 듣고 유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반문해 보였다.
“이렇게 소중하게 대해지고 있으니, 듣고 있다면 행복하겠군요.”
엘의 말에 리에르는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설혹 유이가 기뻐할 수도 있다. 유이의 마음은 리에르도 알고 있었고, 리에르의 마음은 유이도 알고 있었다.
리에르에게는 에레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핑계 삼아, 그녀를 짐짝 취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리에르가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은 이성은 에레사였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녀였다. 모든 것의 끝도 그녀 여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에게는 자신이 지켜주지 않는다면 부서질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이란 단어는 하나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상황과 환경이 겹쳐져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