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37)
레필리아 레소드-338화(337/398)
레필리아 레소드 338화
반 코스모스 연합(10)
“그렇지만도 않을 거야.”
리에르의 말에 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 사람은 애초에 서로가 서로에게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관계를 갖는 것도 사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과 같은 날은 매우 이례적인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온 데에는 이유가 존재했다.
“이상은 없는 건가?”
리에르는 마력 스캔을 하는 엘을 계속해서 보챘다.
그도 그럴 듯이 테헤라자드의 저주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이상,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목숨에는 이상이 없어요.”
엘의 말에 리에르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의 말끝이 불안한 것을 듣고는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시력을 잃었어요.”
엘의 말에 리에르의 표정이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리에르는 유이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기억했다.
부드러운 붉은빛 눈동자는 루비 알같이 아름다웠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이의 모습을 더 볼 수 없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던 주제에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와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진 않겠지.”
리에르의 눈에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이미 극도로 머리까지 피가 몰린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바로 태도가 돌변하는 리에르를 보며 엘은 눈썹을 찌푸렸다.
“아주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만.”
“뭔데?”
엘은 고개를 까딱이며 대답했다.
“그녀가 갖고 있던 눈동자는 이미 빛을 잃었습니다. 그 안구 대신에 다른 안구를 넣는 것도 가능하겠죠. 뭣하면 당신 눈알이라도 파서 그녀에게 주면 되겠군요. 나름대로 낭만 있지 않나요? 어차피 눈은 두 개니까요.”
리에르는 대답 대신 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천하의 엘도 리에르의 빠르기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우리가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친한 사이였나?”
“그 말 그대로 돌려 드리죠.”
리에르의 날카로운 말에 엘도 날카롭게 되받아쳤다.
“까먹은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말하죠. 테헤라자드의 힘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힘도 사용하지 못하는 반푼이 신세죠.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신의 그 계획이 저를 완전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엘 역시 테헤라자드의 저주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그 저주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해제되지 않고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리에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신이 걸어놓은 저주를, 신이 만든 세계에서 해제 가능할 리 없었다.
“빌어먹을.”
리에르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끌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지 못해서 몸 곳곳에 표출되었다. 다가가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살기. 그것은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느껴질 만큼 분명했다.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딴 짓을 해서 놈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야.!”
리에르는 분노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엘은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서 한심하다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바보 같군요. 테헤라자드에게 애초에 의미란 것 자체가 없습니다. 녀석은 항상 이성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유희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신. 그 신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저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정도겠죠.”
테헤라자드가 직접 리에르나 엘을 죽이고자 노력한다면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압도적인 전력을 지니고,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질투라도 한 것이겠죠.”
엘의 말에 리에르는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리에르는 엘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엘은 리에르의 표정을 보고는 겸연쩍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설마 지금 누구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신다는 표정인가요?”
엘은 리에르의 반응을 보고 오히려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리에르의 말에 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헤라자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만.”
리에르는 엘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의 말을 듣자면 테헤라자드는 성별이 여성이란 것을 의미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대단한 사실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미치광이 신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리에르 자신이 기억하는 테헤라자드는 분명히 남성이었다.
자신처럼 환생을 반복한다면 성별이 뒤바뀌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인위적인 성별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는 어디까지나 절대적이자 유일한 신이었다.
리에르는 무언가 꺼림칙한 것들이 실타래처럼 엉키는 것을 느꼈다.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를 않았다.
“으…….”
리에르는 뭔가 치밀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마 언저리를 짚자, 저절로 고통과 함께 불쾌감이 찾아들었다.
“리에르?”
엘은 갑자기 머리를 감싸 안는 리에르를 보면서 당황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리에르는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안았다. 날카로운 단도로 뇌 속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었다.
닿을 수 없는 고통이 머릿속을 휘젓자 모든 것이 새하얗고 아찔했다.
“영원한 사랑을 믿어?”
칠흑 장발의 아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이는 만사가 다 귀찮은 표정을 짓고서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적어도 나의 자드는 언제나 교단의 인간들에게 행복함을 주셨지요.”
중년의 인자한 부인은 칠흑의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빗질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칠흑의 아이는 지저분한 앞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빛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의 우리는 깊은 동굴 속에 살았던 것과도 같아요. 우리의 어둠을 걷어준 것은 당신이에요. 테헤라자드 당신은 우리에게 광명과도 같아요.”
칠흑의 아이, 테헤라자드는 부인의 말에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태가 항상 불안정했던 그로서는 오랜만에 보여주는 밝은 미소였다.
“근데 말이지, 답답하단 말이지.”
테헤라자드는 금세 시무룩하게 바뀌었다.
“절대로 잊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단 말이지. 하지만 항상 태어날 때마다 잊고 있단 말이지.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단 말이지. 그건 거짓말이잖아. 거짓말은 정말 나쁜 거잖아.”
테헤라자드의 투덜거림에 부인은 부드럽고도 온화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교단의 숭배를 한 몸에 받는 유일신.
다시 인간 세상에 현신한 신은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이라 그런지 한없이 순수하게만 느껴졌다.
테헤라자드가 가진 감정의 답은 단 하나였다.
사랑이란 표현은 매우 다양했다. 굉장히 넓은 범위에서 사용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영생을 떠올리는 존재라면 그것은 분명히 운명적이었을 터였다.
“자드가 조금만 가꾸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일 거예요. 제가 모든 남자의 눈을 사로잡는 미인이 되도록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뭐래?”
테헤라자드는 부인의 칭찬에 수줍은 듯이 몸을 비비 꼬아 보였다.
그의 반응에 부인은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서 쿡쿡, 웃음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못생겼단 거네?”
뾰로통한 테헤라자드의 말에 부인은 웃음 지으며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불의 선으로 그어진 듯이 목이 뜨거웠다.
눈앞에 피로 이루어진 화염과도 같은 혈화가 피어올랐다.
푸쉬식!
중년의 부인은 자신의 목에서 핏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은 어느새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모든 사태를 파악했을 때에는 이미 죽음이 덮치고 난 뒤였다.
“아, 엿 같네. 엄마 바꿔, 얘 더럽게 말 많아.”
테헤라자드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주변에서 그림자 시종이 나타났다. 그것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최대한의 예를 표해 보였다.
테헤라자드는 흥, 코웃음을 쳤다. 그림자 시종은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체 자국을 말끔하게 치웠다.
테헤라자드는 청소하는 광경에서 시선을 떼고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코끝까지 가리는 앞 머리카락과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긴 장발.
테헤라자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보였다.
지저분한 앞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음울한 눈동자는 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짙은 광기로 인해 순수는 이미 말라붙어진 지 오래였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테헤라자드는 크큭, 비웃음을 내뱉었다.
“반면에 우리 검둥이는 항상 순수를 품고 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
테헤라자드는 조금 전의 짜증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리에르 아르빈트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찾아들었다.
어떤 때는 밑도 끝도 없이 기뻐서 만나러 가고 싶었다.
또 어떤 때는 심장을 후벼 파는 듯이 고통스러웠다. 그 덕분에 그 자리에서 심장을 뽑아내서 만 이틀 동안 죽어 있던 적도 있었다.
“이번 턴에도 꽝이려나.”
테헤라자드는 킥킥 웃음을 터트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득실거리는 광기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들었다.
“뭐 한없이 발버둥쳐. 그게 죄를 깨닫는 길이라면.”
테헤라자드는 자신에게 반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위로를 표했다. 눈동자는 광기와 연민이 뒤섞여서 오묘한 분위기를 그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림자 시종이 데려온 것은 새로운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방의 냄새를 맡고는 공포에 젖어들었다.
최대한 드러내려 하지 않았지만, 손발이 떨려오고 목소리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떨기만 하고 인사를 하지 못하는 중년 여성을 보고 테헤라자드는 눈가를 샐쭉하게 떠보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손끝을 가로로 그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떨던 중년 여성의 목이 깨끗하게 도려 나가며 핏물을 흩뿌렸다.
그 광경을 본 그림자 시종은 침울한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쁜 딸렘보고 떠는 엄마가 어디 있어? 다시 데려와, 이 미친놈아!”
그림자 시종은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테헤라자드는 해맑게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지금쯤 우리 검둥이는 나만 생각하고 있겠구나.”
녹색의 여성을 괴물로 만들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왜 배신당하고, 자신이 왜 평생을 저주로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금발의 여성은 지금 가진 아이를 축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테헤라자드는 그녀를 시한부로 만들었다.
은발의 여성은 감히 자신과 검둥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결과 큰 고통을 줌과 함께 빛을 잃게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모른다면 모든 것은 검둥이의 잘못이었다.
“재미나게 놀자, 검둥아.”
테헤라자드는 귀 끝까지 찢어질 듯이 초승달 미소를 그려냈다.
“아니지.”
테헤라자드는 나름 조신하게 입술을 가다듬으며 미소했다.
“사랑하는 나의 자드.”
광기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추악한 과거와 괴로운 미래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증오로 물들이고, 모든 것을 찢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이제 멀지 않았다.
저주 같은 감정은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모든 것을 끝냈다.
“가브리엘.”
테헤라자드는 오랜만에 잊혔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네.]가브리엘. 현재는 레이루나라고 불리는 금발의 청년은 자신을 만들어낸 주인에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정신만은 이어져 있었다.
테헤라자드는 자신이 만들어낸 수호신장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영생을 주었고, 마음껏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유이 페브리안을 죽여.”
테헤라자드는 레이루나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수호신장에게 있어서 테헤라자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검둥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 재미있게 놀아주지 않으면 안 돼. 제대로 각오해 주지 않으면 안 돼.”
테헤라자드의 광기 섞인 목소리에 레이루나는 비소(費笑)를 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