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40)
레필리아 레소드-341화(340/398)
레필리아 레소드 341화
어둠 속으로(3)
“어딜 가려고?”
“놔!”
유이는 레이루나에게 손목을 붙들리자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단단한 족쇄처럼 붙들린 손목은 시뻘건 자국만을 남기고 있었다.
“정말 네 어리석음은 한도 끝도 없구나.”
레이루나는 광인처럼 낄낄거리는 웃음을 뱉어냈다.
“엘 파실드가 널 지켜줄 거라고 상상하지 마. 그 녀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 지금 그 녀석의 눈에는 모든 존재가 인형에 불과할 뿐이니까.”
“누군가를 지적할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유이는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리며 레이루나에게 빈정거렸다.
초점은 없지만,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보니 레이루나는 왠지 모를 유쾌함을 느꼈다.
레이루나는 천천히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넘어지려는 그녀를 붙잡아주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던 탓인지 흰 살이 붉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레이루나는 기분이 유쾌해지고 있었다.
지금 굉장히 무섭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가지는 매력이었고, 살아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레이루나는 애초에 자신이 갖지 못하는 생동감을 가진 이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리에르 아르빈트도 믿지 마라. 그 녀석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얼마나 큰일들을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지금 이따위 전쟁이 문제가 아니야. 그 녀석은 모든 악의 근본이다.”
“그래서 널 믿으라고?”
유이의 말에 레이루나가 핏, 실소를 품어 보였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야말로 정말 믿지 못할 존재 중의 하나지. 애초에 내 생명 자체가 거짓이고, 내 삶 자체가 거짓이다. 우리 수호신장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유일하게 남은 거짓된 삶이라 할 수 있겠지.”
유이는 수호신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멈칫했다.
등에서부터 전해지는 한기는 지금의 상황이 거짓이 아님을 의미하고 있었다.
역사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수호신장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
절대 유일신 테헤라자드의 사냥개.
그, 아니, 그녀가 지시하는 것은 그 어떤 행위도 망설이지 않는 괴물들.
“날 어쩔 셈이야?”
빛을 잃은 눈을 감고서 당당하게 묻는 유이의 모습에 레이루나는 유쾌함을 느꼈다.
근래 보기 힘든 처녀였다.
“글쎄다.”
레이루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를 드러내 보였다.
“좀 굶주렸거든. 그동안 먹이를 두고도 내색하지 않으려니 힘들단 말이지. 네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놈이 어떤 얼굴을 할지도 궁금하고.”
레이루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유이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정말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우윳빛 피부였다. 그 살결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곡선들은 뭇 남성들의 시선을 고정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나도 일단은 반신(頒神)이다 보니 유일신인 테헤라자드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지. 우리 대장의 명령은 널 다진 고기로 만들어서 그놈에게 보여주란 것이지만, 그냥 멀쩡한 방법으로 죽여줄게.”
레이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유이에게 다가갔다.
보이지 않는 눈가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이의 표정은 어딘가 묘했다.
실제 보이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다. 시선이 마주하진 않았지만 묘하게 레이루나는 거슬리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가짜였다고?”
유이는 레이루나에게 물었다.
레이루나는 유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오자 잠시 멈칫했다.
욕이나 살려달라는 말이 먼저 나올 줄 알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절망의 목소리가 어떤 곡조를 그릴지 기대하고 있었다.
“설마 그깟 정 때문에 너에게 아무 짓도 못할 거라는 소녀 같은 생각을 하진 않겠지?”
레이루나는 그렇게 실소하며 바지의 가죽끈을 풀었다.
“네 곁에 있으면서 그동안 널 범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참아온 나에게 상을 줄 시간이 된 것 같아.”
레이루나는 광기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어냈다.
유이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기에 그녀의 행동은 제한적이었다.
아니, 설령 눈이 멀쩡했다 해도 수호신장인 레이루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이는 이 자리를 피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역시나 그녀는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레이루나에게 양팔을 붙잡혔다.
“놔!”
유이의 부르짖음은 오히려 레이루나에게 묘한 정복감을 전달시켰다.
레이루나는 그대로 유이의 양 손목을 붙잡고서 침대 위에 눕혔다.
그녀의 나약한 몸부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레이루나의 욕정을 더욱 샘솟게만 했다.
레이루나는 자기 것이 아닌 그녀를 몇 번이나 강제로 범하고, 강제로 갖는 상상을 해냈다. 그리고 그 상상이 지금 현실로 이뤄지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레이루나는 유이가 입은 셔츠의 목 언저리를 짚었다. 그리고 별 힘을 주지 않고 쭉 잡아당겼다.
찌이익.
셔츠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찢겨 나갔다. 반으로 갈라진 옷가지 사이로 유이의 눈부신 나체가 레이루나에게 들어왔다.
녹아들 것처럼 아름다운 뽀얀 살결이었다.
레이루나는 이런 아름다운 육체를 리에르가 먼저 가져갔을 것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분노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입맛만 다시고 있을 것이 아니었다.
북. 찌이익!
옷이 찢겨 나갈 때마다 눈부신 나신이 드러났다.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가슴을 가린 나시. 그 밑으로 굴곡진 허리에 곡선을 그리듯 붓칠 된 골반.
레이루나는 마치 도자기를 빚어내는 장인처럼 그 굴곡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유이는 그것을 거부하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레이루나는 유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서 혀로 핥았다.
유이가 자신을 들이박든 무엇을 하든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간지러운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수없이 긴 세월 동안 전투로 단련된 몸은 이미 단단한 갑옷과도 같았다. 물론 그런 몸이 여자를 강간하는 데에 쓰이는 것은 매우 유감인 부분이었다.
“더욱 발버둥쳐도 좋아. 어차피 널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레이루나는 세로줄로 바뀐 눈동자를 번뜩이며 광소를 터트렸다.
인간의 군대는 살육을 위해 집단으로 훈련된 정예였다.
몬스터의 군대는 그저 배고픔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인간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위계질서가 없었고,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인간의 개개인은 한없이 약했다.
몬스터 개개인은 압도적으로 강했다.
인간 연합군은 태어난 곳도, 생각도 다르지만 지금 이 순간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로 움직였다.
보병들이 방패를 양손으로 붙잡고서 정면을 향했다. 다음 열에 있는 보병들이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다음 열에 있는 보병들은 5m 이상 되는 창을 정면에 가시처럼 뻗어냈다.
그들의 뒤편으로 궁수들의 화살이 전장을 뒤덮었다.
인간이 유리한 점은 머릿수가 많다는 것과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 연합군은 몬스터들에게 접근전보다는 체계적인 전술로서 효과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대형 몬스터들은 인간 연합군의 포진을 신경 쓰지 않고서 밀어닥쳤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에 고슴도치 같은 신세가 되었다.
몬스터들도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녀석들이 있었다. 온갖 독소를 뱉어내고, 온갖 가시를 투척하는 괴물들이 존재하나, 연합의 기병들은 양옆으로 들이닥쳤다.
몬스터들은 제대로 된 통솔이 없었다. 그들 개체가 하나같이 다를뿐더러, 하나같이 생존 방식도 다양했다.
통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오크나 고블린 같은 유사인종들이었다.
그들은 인간과 흡사하게 군대를 이루었으나, 대규모 전쟁의 경험은 부족했다.
대형 몬스터들이 전면에 나서서 화살 받아가 되는 동안, 뒤에서 소형 몬스터들이 마음껏 질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열을 맞추지 않고 돌진해 오는 몬스터들은 연합군에게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앙군의 돌파력은 무시무시했다.
중앙군으로 있는 아렌은 밀집대형으로 적과 맞섰다. 그리고 그들의 최정예인 십일검 기사들이 양 날개가 되어 적 몬스터들을 분단시키고 도륙했다.
모루와 망치가 되어 펼치는 파상공세는 인간뿐 아니라 몬스터들에게도 유효했다.
좌군인 페리안, 중앙군인 아렌과 마찬가지로 우군 로빈타도 마탄기병들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도살하고 있었다.
마탄기병의 지휘관인 샬렛은 이번 전투에 모든 승부를 걸었는지 탄알을 전부 쏟아내게 지시했다.
전투는 연합군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창공에서 거대한 고성처럼 있던 폭룡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고성이 날갯짓을 시작하자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던 이들은 있었다.
예비군으로 있었던 강국 이외의 연합군들은 미리 장전했던 투석기를 쏘아냈다.
그동안 마력을 모으고 있던 마법사들도 캐스팅을 마치고서 드래곤을 향해 주문을 발사했다.
폭룡 네버 에이지는 화염 브레스를 쏘지 않고서 유유히 적당한 거리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고만 반복했다.
예상치 못한 폭룡의 행위에 연합군의 무수한 공격들은 전부 낭비만 되고 있었다.
연합군은 폭룡이 자신들의 공격에 위험을 느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매우 잘못된 행위였다.
폭룡은 단순한 날갯짓 몇 번만으로 모든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사이 상급 용기사들은 몬스터들을 전력 질주를 시켰다.
아주 잠깐의 틈으로 거리는 굉장히 좁혀졌다.
일방적이던 전투는 거대 몬스터들에 의해 난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때 폭룡의 곁으로 불꽃의 그을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십 기의 비행체가 생성되더니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토해냈다.
용과 꼭 닮은 듯한 모습. 하지만 용에 비해서 작은 형태를 한 몬스터였다.
폭룡에게 귀속된 와이번들은 독성을 잔뜩 머금은 채로 지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브레스를 뿜어냈다.
와이번들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마음껏 창공을 활주하였다. 그들이 뿜어내는 애시드 브레스가 연합군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애시드 브레스에 맞은 연합 군인들은 피부가 기포가 일어나며 순식간에 괴사되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터이기 때문에 죽음은 바로 코앞에서 손짓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잔혹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면 냉정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실제 브레스에 의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군중 심리를 자극하여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은 피해가 극심했다.
군은 사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아로운의 파천대와 샬렛의 마탄기병에게 지원을 요청해라.”
로이스타는 총사령관으로서 현재의 전장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지금 좌군과 우군의 병력을 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네버 에이지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군대는 파천대와 마탄대뿐이었다.
급한 대로 연합군내 다른 국가의 예비 부대로 빈 구멍을 메움으로써 최대한 버티는 것 이외에 답이 없었다.
그로서는 폭룡과 마주하는 것은 두 번째였다.
이전에 제국이 융성했을 무렵, 토벌대가 운영되어 부활하려던 네버 에이지를 다시 봉인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그 당시에는 폭룡의 봉인이 완벽하게 풀리지 않았기에 용기사들과만 싸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기사를 비롯하여 건재한 폭룡을 상대해야 했다.
성검이 있었다면 로이스타가 직접 싸우면 됐다. 아니, 실제 성검이 있어도 그만의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지금은 한 사람의 기사로서가 아닌, 지휘관으로서의 입장이 컸다.
그때였다.
네버 에이지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불꽃이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로이스타는 등골의 오싹함을 느꼈다.
후우우우우우!
거대한 불벼락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끄아아아아!”
사방에서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삽시간에 지상을 불태우는 불꽃의 홍수는 차라리 재앙과도 같았다.
산산이 불타며 폭발하는 광경을 보고 천하의 로이스타마저 미간을 찌푸렸다.
소중한 아렌의 장병들이, 오랜 시간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시간을 훈련으로 보냈던 장병들이 개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죽음에 너무나도 허망했다.
로이스타의 눈에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지금 총사령관이라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당장 전투를 하러 갔을 터였다.
“놈이 다시 선회합니다!”
로이스타에게 부관이 소리쳤다.
폭룡 네버 에이지는 거대하고 강력한 몬스터 주제에 굉장히 영악했다. 인간들의 심리를 꿰뚫고, 공포를 극대화 시키는 데에 발군의 능력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