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42)
레필리아 레소드-343화(342/398)
레필리아 레소드 343화
어둠 속으로(5)
폭룡 네버 에이지와 와이번들은 다시 한 차례 브레스를 뿜어내기 위해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곧 내릴 폭격은 다시 한번 지옥을 만들어 낼 태세였다.
하지만 그 순간 로이스타와 리에르의 위쪽에서 푸른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파지직, 하는 기류와 함께 푸른 섬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섬광들 때문에 폭룡과 와이번들은 다급하게 공중에서 회피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폭룡의 와이번 몇 마리가 광선을 그대로 얻어맞고서 폭사했다.
시퍼렇게 타들어 가는 와이번들이 허공에서 추락했다.
폭룡은 자신의 세로줄 눈을 열면서 푸른 공간에서 나오는 존재들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네버 에이지와 같은 드래곤들이 나타났다.
크기는 폭룡보다 작았지만, 와이번보다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진짜 드래곤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네버 에이지와는 정반대의 색을 가진 푸른색이었다.
레드드래곤인 폭룡 네버 에이지는 자신과 다른 그들의 존재를 보면서 분노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일찍이 다스리던 대지를 인간에게 빼앗기고, 오히려 비겁한 암습으로 레드드래곤은 숫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네버 에이지의 종족은 자긍심을 굽히지 않고서 모든 것들과 적대한 채로 자신들이 다스리던 대지를 꿈꿨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네버 에이지는 혼자 남게 되었다. 공존이라는 달콤한 말 아래 종족을 배신하고 인간과 손잡은 블루드래곤들은 살아남았다.
네버 에이지는 인간보다 블루드래곤들을 더 증오했다. 같은 족속이지만 배신하고 비열한 인간들에게 붙은 그들을 용서할 자신이 없었다.
블루드래곤들은 자그마치 네 마리였다.
레드드래곤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만 남았지만, 블루드래곤은 아직 개체 수를 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좋다, 이번 기회에 네놈들도 싹 굴복시켜 주겠다.]네버 에이지는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이 포효하며 파이어 브레스를 전방에 뿌려냈다.
쐐기형으로 뿌려지는 불꽃의 기둥은 화르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시뻘겋게 불태웠다.
아까만 해도 인간들을 상대로 영악하게 전투를 진행하던 네버 에이지였지만, 예상치 못한 블루드래곤을 보고서 냉정을 잃어버렸다.
리에르는 아르카를 들어 올리며 검기를 날카롭게 갈고 닦았다.
아르카는 주인의 마력을 듬뿍 받아 시커먼 검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 무엇도 베지 못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폭룡은 제 쪽에서 처리할게요. 그러기 위해서 준비된 자리예요.”
“그런 것 같구나.”
로이스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로이스타를 비롯한 연합군들도 갑자기 블루드래곤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전투에 난입한 블루드래곤을 보고 연합군은 절망적인 기색을 비췄으나, 곧 그들이 네버 에이지를 집중 공격하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
드래곤의 거대한 공포를 맛보던 와중에 또 다른 드래곤이 아군으로 합류했으니 자연스럽게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본진 지원은 취소한다. 현 시간부로 총공세를 펼쳐져 적을 섬멸한다. 현재 본 군에 있는 예비군도 전부 출전시킨다.”
로이스타의 명에 기사들이 예를 갖추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로이스타뿐만이 아니라 각 국가의 지휘관들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떨어지던 사기는 다시 치켜 올라갔고, 군기의 흐름이 완벽하게 넘어오고 있었다.
“흑기사는 현 시간부로 부대장 빈센트의 지휘 아래 움직인다.”
리에르의 명을 기다리던 흑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빈센트는 유격대로서 밀리는 전선을 뒤집어라. 모든 판단은 위임한다.”
“명을 받듭니다.”
비밀리에 애쉬문이 조직되고, 흑기사가 창설될 때부터 있었던 빈센트는 누구보다 리에르의 전투법을 알고 있었다.
명을 받은 빈센트는 흑기사들을 이끌고 출정을 시작했다.
리에르는 아르카를 말아쥐고서 전체적인 전투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단 한 번의 섬광을 흩뿌리기 위해서 모든 기운을 갈무리해야만 했다.
리에르는 전투시간을 길게 갖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무한이라 생각했던 전투력이 이제는 한계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폭룡의 곁에서 지원 공격을 하던 와이번들은 이제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추락했다. 블루드래곤 다섯 마리는 네버 에이지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에워쌌다.
덩치가 큰 만큼 네버 에이지의 방어력은 대단했다.
순수한 마력이 깃들인 단단한 피부는 웬만한 마법은 미끄러졌고, 웬만한 창칼은 부러지고 말았다.
네버 에이지는 와이번이 전멸했어도 개의치 않았다. 대신 블루드래곤 하나의 목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으스러뜨렸다.
자신들의 소중한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고 블루드래곤은 괴성을 지르며 플라즈마 브레스를 쏘아 올렸다.
네버 에이지는 똑같이 파이어 브레스로 대응했다. 직선형과 쐐기형의 기운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하늘은 어지럽게 꿈틀거렸다.
“후우, 하아…….”
리에르는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고 순수한 기를 끌어 올려 정신과 몸을 맑게 만들어서 극상의 상태를 유도한다.
로이스타는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군에 과감한 출격을 명령했다.
밀리고 있던 아렌 왕국은 지원을 온 다른 기사단과 함께 다시 기병돌파로 몬스터를 짓밟았다.
아렌을 중심으로 연합군은 다시 한번 몬스터의 진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힘 대 힘.
세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기병 돌진에 몬스터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좌군에 있는 페리안은 미리 준비했던 트랩까지 몬스터를 유도했다. 온갖 함정들로 인해 이동속도가 느려진 몬스터는 파천대의 일제사격에 무수히 쓰러져 나갔다.
우군에 있는 로빈타는 기본적으로 거리를 벌리며 사격을 했다. 즉, 경기병의 장점을 살린 히트 앤드 런 방식이다.
원래 강철의 대공이 이끌던 로빈타는 중장기병의 거창 돌격이 으뜸인 왕국이었다.
마탄기병이 상대의 예기를 꺾고서 시간을 만드는 동안 중장기병들은 랜스를 장착하고서 기병 돌격을 시작했다.
블루드래곤의 합류로 연합군의 사기가 올라 다시 밀어붙이고는 있었지만, 전투는 아직도 백중지세(伯仲之勢)였다.
블루드래곤의 숫자는 현재 넷이었고, 폭룡은 혼자였다.
블루드래곤과 폭룡은 서로 교차 비행을 하며 강력한 브레스를 서로에게 쏘아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지상 위의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푸르게 바뀌었다 하였다.
고대 생물답게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마법력을 갖고 있었고, 온갖 고대 마법들을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비행을 하면서도 육중한 육체를 이용한 육탄전에도 능수능란했다.
또 하나의 블루드래곤이 불꽃으로 만들어진 그물에 에워싸인 채 추락했다.
블루드래곤들의 리더, 엘의 반려자인 카르샤는 동료들을 둘이나 잃자 이성을 잃고서 막무가내로 폭룡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두 드래곤도 카르샤의 위험을 느끼고 보조하기 위해 양쪽에서 날아들었다.
지금 남아 있는 블루드래곤 세 마리는 어느 정도의 마력을 소진하고, 체력을 소모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폭룡 네버 에이지는 아무런 대미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크워어어어!
폭룡은 제왕으로서의 위풍당당한 외침으로 도전자들을 노려보았다.
시간문제였다. 블루드래곤들의 패배는.
* * *
리에르는 천천히 아르카를 어깨와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렸다. 최대한 아무런 기척도, 최대한 아무런 마력도, 최대한 아무런 살기도 내지 않았다.
갈무리된 마력은 맑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만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검둥아, 우리 검둥이~”
그때 리에르의 앞으로 긴 검은 머리카락의 아이가 나타났다.
콧잔등 아래까지 내려온 앞 머리카락 사이로 흉흉하고 일그러진 흑요석 눈동자가 웃음을 그리고 있었다.
“설마 우리 용용이 죽이려는 거야~?”
항상 이랬다.
모든 것이 가능한 만물의 신. 그 어떤 것도 알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부조리 가득한 유일신의 등장은 놀랍지도 않았다.
“정말 나한테 왜 이럴까나, 죽여 버리고 싶게~?”
검은 아이, 테헤라자드는 뒷짐을 지고서 리에르의 주변을 콩콩 뛰어다녔다. 개구진 아이처럼 보이기만 하는 테헤라자드의 눈동자는 일그러진 증오와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리에르는 마치 자신을 보는듯한 착각에 젖어들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는 행위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려 하는 것인지,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니가 무슨 짓을 하든지 아무 의미 없다는 것 알잖아?”
테헤라자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깨닫지 못하길래 일부러 저주의 검으로 형벌을 줬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려 하지 않는 너를 위해서 말이지.”
테헤라자드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서` 아랫입술을 오물오물했다.
“어차피 저주 때문에 넌 오래 살 수 없어. 지금 억지로 버티고 있지만, 자고 나면 다음 날 일어날지 못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몸이잖아.”
테헤라자드는 가슴 아프다는 연기를 해 보이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너랑 흰둥이랑 손잡는다고 뭐 달라질 거 있어? 흰둥이는 힘도 못 쓰는 X신이지! 아, 미안. X신 보고 X신이라고 하는 것도 실례인데 말이지. 아, 어쨌든 시한부 X신이랑 힘 못 쓰는 X신이랑 쌍 X신이 손잡고서 뭘 해보시겠다고?”
테헤라자드는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즐거워서 배를 감싸 안고 깔깔 웃어댔다.
“넌 허상이야.”
리에르는 테헤라자드의 도발에 결국 입을 열었다.
테헤라자드는 리에르가 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 상큼 발랄한 X발새끼가 눈앞에서 지랄하는데도 장님 흉내 내고 자빠졌네……. 허상은 개뿔.”
테헤라자드는 흰 이를 드러내며 킥킥거렸다.
리에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테헤라자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무언가 바라는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환영이잖아.”
“X발 내가 원하면 환영이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실체야.”
리에르의 말에 테헤라자드는 대번 웃던 낯을 바꾸고 손을 휘저으며 짜증을 부렸다.
리에르는 테헤라자드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서 천천히 마력을 순환시켰다.
발밑에서부터 칠흑의 원이 그려지며 시커먼 마력 깃털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리에르의 등 뒤로 모여들어 쌍익을 이루어 보였다.
“좋아, 이렇게 하자. 검둥이 니가 내 시다바리가 된다면 니가 떡친년들 살려줄게. 이 X같은 세상도 그대로 유지해 줄게. 콜?”
테헤라자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허공에 돈을 마구마구 뿌려댔다.
리에르는 사방에 뿌려지는 지폐 다발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 세계에서 지폐를 화폐로 쓰는 일은 없었다.
“왜 나타난 거지?”
“뭐? 웬 항문에 오이 쑤셔 박는 소리야?”
테헤라자드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굳이 지금 날 말리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지.”
리에르는 입가에 마른 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흉내 냈다. 테헤라자드는 조용히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닥쳐.”
“유일하게 네 뜻대로 되지 않는 내가 거슬리나?”
“미친놈.”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어. 그게 죗값이라면 더욱더.”
리에르는 테헤라자드의 존재를 무시하고서 칠흑의 날개를 피워 올렸다.
테헤라자드는 리에르의 말에 이를 갈면서 위협적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거기서 멈춰. 네가 저 용용이를 죽이면 넌 나한테 전쟁을 선포하는 거야.”
“개전의 신호로는 더할 나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