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54)
레필리아 레소드-355화(354/398)
레필리아 레소드 355화
아리아 합중국(2)
교단은 간부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륙의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두 세력 간에 전쟁이 벌어질 것을. 그렇기에 이미 모든 안배는 끝난 상태였다.
폭룡 네버 에이지를 쓰러뜨린 동부 연합은 사기가 올라 있었다. 아울러 각국의 강자들이 손을 잡는 초유의 전투였기에 이미 승리한 것처럼 사기가 올라 있었다.
하지만 신생 교단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구 교단과의 전투 때문에 소모된 힘이 있었지만, 종교의 힘 아래 하나가 된 무력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두 세력의 전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은 동부 연합이 우세할 것으로 점치고 있었다.
주점에서는 매일 전해져 오는 전쟁 소식에 안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 * *
북방에서는 루카스의 군대와 페리안의 군대가 서로 전선을 가다듬고 있었다.
유트 왕에게 있어 첫 패배를 안겼던 인물. 하마터면 유트라는 인물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릴 뻔했던 인물이었다.
나스는 정식으로 루카스의 후계자가 되어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어린 그가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신을 지지했던 대장군 하프만 위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하프만은 루카스의 노장으로서 많은 전사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의 용병술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어린 나스의 의견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력 있는 인물이었다.
즉 현재의 나스는 자신의 천재적인 지략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아울러 원군으로 와 있는 흑십자 기사단을 이끄는 로크 그라디우스의 능력도 출중했다.
양 군이 전초전을 시작했다.
서부에서는 흑십자 기사단의 부관인 라이칸이 출정했고, 동부에서는 2군단의 부관인 히얄이 출정했다.
두 사람은 양 세력에 있어서 선봉장 같은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었고, 호전적인 성향답게 레퀴엠을 맞붙었다.
소수의 기병대가 어지럽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서로 다른 색의 기마들이 뒤엉켜 접전을 펼치고, 그 앞에는 선봉장들이 칼날을 주고받았다.
선봉대의 역할은 매우 컸다. 군대의 사기와 직결되는 일이기에 너무나 중요한 자리였다.
아울러 싸움터에서 보여주는 레퀴엠은 선봉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둘 다 강하고, 호기로운 전사였다. 치열한 전투였지만, 결국엔 한쪽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
흑십자 기사단의 부관은 페리안 2군단 부관의 목을 베고서 고함을 질러냈다. 자신들의 대장을 잃은 선봉대는 다급하게 기수를 돌려 회군했고, 흑십자 쪽에선 굳이 뒤쫓지 않았다.
“자신들의 주군의 머리통을 두고서 어디를 가는가! 하하하!”
“누가 북방의 사나이들은 늑대라고 했는가!”
“늑대가 아니라 더위에 약한 고양이 부대가 아니던가!”
비아냥과 조롱을 퍼뜨리던 선봉대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회군했다. 사기에는 타격을 입혔지만, 이것이 전장의 승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당했어.”
오도독.
어린 소년은 투명하리만큼 맑은 눈동자로 전장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초콜릿 과자들이 가득했다.
“뭐가요, 도련님?”
여전히 나스의 곁을 지키고 있는 루카스 왕국의 여무사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대장전에서는 희생양을 내보낸 것에 불과해. 일부러 첫 전투를 피하지 말라고.”
나스는 눈빛을 찡그렸다. 여전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수였다.
보통은 대장전에서 승리한 쪽은 사기가 크게 오르고, 패배한 쪽은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지만 지금 페리안 쪽에는 대륙을 호령하는 대영웅들이 여럿 존재했다. 겨우 레퀴엠 한 번으로 무너져 내릴 사기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기가 올라간 상황에서, 지휘관들은 곧바로 첫 전투를 시작할 것이다. 그 이유는 좋은 징후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레퀴엠에서 승리한 것이 문제였다. 달아오른 사기를 주체하지 못해 회군을 명령할 수 없었다.
아울러 레퀴엠에서 명예를 드높이고 싶어 하는 흑십자 기사단, 마왕의 친위대 역시 나설 것이 뻔했다.
“사샤, 사막 여우대를 이끌고 우회해서 우익을 지원해 줘.”
“네? 아무리 저라도…….”
사샤는 나스의 요청에 깜짝 놀라 말끝을 흐렸다. 사샤는 유트 왕에게 전술과 무력 전부 패배한 이후로 실력을 갈고닦았다.
덕분에 지금의 사샤는 대륙 십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여걸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쟁쟁한 영웅들이 가득한 페리안의 돌격을 소수로 돌파할 수는 없었다.
아니, 설령 돌파했어도 살아서 나올 리 없었다. 사샤는 나스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을 원하지는 않았다.
“적의 3군단 프세가 올 거야. 흑십자 기사단은 너무 통제되지 않는 사기를 가졌어.”
오도독, 오독.
나스의 초콜릿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투명한 눈망울은 이미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코끝을 찡그리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나쁜 패였다.
아니, 이미 나쁜 패를 뽑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놓은 판이었다.
진짜 전략가는 전투하기 이전에 이미 이기고 시작한다고 하였다.
빅스터는 유트와 처음 대전에서 패배를 경험했다. 전략이 전술에 깨지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것이 대륙 최고의 군사라는 빅스터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그 이후 빅스터는 어린 천재 나스에게도 한 방 얻어맞았다. 항상 스스로 최고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빅스터는 불패라는 명예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아주 작은 오차도 놓치지 않는다. 적이 누구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오만을 버린다.
덕분에 나스가 본 빅스터의 전략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너무나 촘촘한 군의 진형. 너무나 완벽한 시나리오.
“하지만 그 때문에 틈이 생겨.”
나스는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을 핥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샤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나스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어차피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할 터였다.
사샤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나스를 믿었다. 그리고 나스는 이 세상 누구보다 사샤를 사랑했다.
가족애를 느끼지 못한 천재 소년.
자폐증에 걸려 밑바닥에서 나오지 못하던 소년은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위 기사가 생겼다.
루카스 왕의 수많은 왕자와 공주, 그리고 서자 중에서 출세를 위해 서약을 하는 무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서열이 낮은, 가장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자폐증 꼬마에게 서약을 하는 무사는 없었다.
하지만, 사샤는 나스를 선택했다.
이유는 있었다. 사샤는 여성 무사였고, 루카스에서 여성 무사라는 것은 믿음직하지 못한 존재였다.
밑바닥에서 성공하기 위한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길거리 왈패였던 사샤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무식하게 검을 배워 무사가 되는 방법뿐이었다.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사샤는 나스를 선택했다.
그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저 생계유지를 위해서, 그저 집에 있는 동생들이 떠올라서 연민의 감정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결과 사샤는 킹 메이커가 되었다. 그리고 루카스 역사상 가장 강한 권리를 가진 여무사가 되었다.
“나의 왕, 다녀올게요.”
사샤는 빙그레 웃으면서 헬름을 쓰고서 출정을 준비했다.
사막 여우단. 사샤와 같은 여무사들이 모인 신속의 경기병들이었다.
“나팔이 울리면 무조건 후퇴해야 해.”
“정말 그래도 돼요?”
사샤가 고개만 돌려서 물었다. 나스는 입술을 닫았다.
“3군단장 프세의 목을 베어야만 승산이 있는 거죠?”
페리안의 상급 근위기사 프세. 유트와 초창기부터 전장을 누볐던 기사이자, 수성전과 방어전이 주특기인 인물이었다.
전장에서 적의 군단장을, 그것도 수비가 강력하기로 유명한 지휘관의 목을 가져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역시나 나스는 사샤의 말을 부정했다.
“베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어.”
“…….”
사샤는 나스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나스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스 특유의 통찰력이나, 상황을 보는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그런 그가 승리가 아닌, 생존을 위해 작전을 짠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페리안의 프세 경도 남자라면, 저의 멋진 엉덩이를 보고 쫓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 거예요.”
사샤는 여유롭게 농담을 하며 깔깔거렸다.
검술로 잘 단련된 몸은 야생마처럼 단단하고 매혹적이었다.
나스는 정말 사샤의 농담처럼 일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페리안이 전면전을 펼친다면 대륙의 그 어떤 왕국도 대적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지금과 같은 여유를 보인다는 것은 병력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적의 군량이 풍족하다는 것. 두 번째로는 마왕과의 전면전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
‘그게 유일한 틈.’
나스는 가방에서 초콜릿 과자를 감싼 종이를 펼쳐 보였다. 다시금 달달한 향이 피어오르고,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생 루카스 군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줘야만 했다. 그래야만 페리안도 출혈을 줄일 생각을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예전에 싸워본 적이 있으므로 서로가 손쉬운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도독.
입안에서 단내가 떠나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면 끝도 없이 입안이 심심했다. 무언가를 계속 씹고 삼켜야만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니, 나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 대륙에서 중립이라는 세력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흑 아니면 백. 매우 명료한 답안만 있는 상태였다.
나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각 진형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흑십자 기사단은 당당하게 기병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최강의 패를 꺼내는 것은 옳지 못했다.
무엇보다 저 기병 돌격은 랜스 차지가 아닌, 그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한 검술의 향연이었다.
전술로선 굉장히 어리석었다. 하지만 흑십자 기사단은 광신도들이었고, 스스로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검술 대회가 아니었다. 그저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위한 수단과 방안을 얼마나 잘 마련했는지 보여주는 곳이었다.
좌군은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수비의 프세라면 그들의 기병 돌격은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저 실력만 있고, 경험이 부족한 머저리들의 바보짓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와라라라라라랏!”
용맹하고 자애로운 신을 지키는 사자들. 새로운 교단, 애쉬문의 이름을 걸은 흑십자 기사단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애쉬문의 이름으로!”
“리에르 아르빈트에 영광을!”
신의 이름을 뒤에 얹고, 자신들의 영웅에게 영예를 바치려는 무모한 돌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페리안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창 보병으로 진을 꾸리면서 기병대를 기다렸다.
페리안은 기병대의 돌격을 막기 위한 밧줄과 울타리를 포설하며 진형을 갖췄다.
삽시간에 갖춰진 적들의 준비 태세를 보고도 흑십자 기사단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 멈춰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였으니 옳은 판단일지도 몰랐다.
“마왕에게 영광을!”
“마왕의 치세를 위하여!”
콰앙!
기병들의 둔탁한 돌격이 이어졌다. 울타리에 걸려 기병들이 나자빠지고, 보병들의 창이 쓰러진 기사들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