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55)
레필리아 레소드-356화(355/398)
레필리아 레소드 356화
아리아 합중국(3)
사방에서 핏물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미 전투의 승기는 기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광신도들로 이루어진 기사단, 특히나 마왕의 카리스마에 반한 기사들은 상상 이상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보병의 속을 전차처럼 파고들어 박살 냈다. 그리고 들고 있는 칼날을 휘둘러 사정없이 적들을 베어냈다.
장창병들은 삽시간에 전열이 무너지며 피바다를 이뤘다. 예상 이상의 호투였다.
어마어마한 무력으로 두꺼운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기사들의 공격력은 그들이 마왕의 기사라고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흑십자 기사단의 예상 이상의 공격력에 놀란 탓인지, 3군단장 프세가 병력을 움직였다.
기병 돌격 이후 흑십자의 보병들이 진형을 갖추며 진격해 왔다.
프세는 명예롭게 전면전을 펼치는 적들을 예우하기 위해 어린진을 펼쳤다.
마치 맹수의 입처럼 벌려지는 진형은 돌파해 오는 적들을 집어삼키기에 적합했다.
흑십자 기사단의 투지는 순식간에 꺾였다.
그들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마왕과 애쉬문의 이름을 외치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경험 많은 프세에게는 전부 먹잇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주 노련하고, 아주 뛰어난 유트의 삼 기사 중 하나. 평소에는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고, 방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실제 빅스터도 유트의 삼총사인 레온, 텟사, 프세 중에서 프세를 가장 걱정 없는 지휘관으로 추천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대륙 최고의 경기병이 무서운 속도로 우회하는 것을 포착하지 못했다.
아주 찰나의 방심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사샤의 사막 여우대가 적의 좌군 지휘부를 급습했다.
중앙군을 맡은 하프만 위너는 노년의 대장군답게 적의 1군단을 슬기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1군단장은 근위 기사인 레온 폴 하르츠였다. 그는 매우 균형적인 능력치를 지닌 인물로 부족함이 없었다.
좌군은 거의 일방적인 전투로 바뀔 정도로 참패를 당하고 있었다.
중앙군도 루카스 쪽이 밀리지만, 큰 피해 없이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스가 맡은 우군은 적의 2군단을 맞이하고 있었다. 적들은 중보병들을 앞장세우며 기병대가 날개처럼 호위하고 있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적은, 유트의 근위 기사 중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지녔다고 일컬어지는 테스타롯사였다.
그는 평소의 행동은 기괴해도, 전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물이었다.
나스는 방진과 목책을 세우고서 양 익에 경기병을 운용했다. 적들과 근접해지자 나스의 지휘 아래 일제사격이 쏟아졌다. 하지만 2군단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방패를 머리 위에 두르며 진격해 왔다.
그와 동시에 무식할 정도로 강력한 텟사의 기병대가 측면을 찌르고 들어왔다.
공수 전환이 빠른 루카스의 경기병들도 텟사의 기병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아주 강력한 대머리 기사가 선두에 서서 창을 휘두르니, 감히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빌어먹을 게이 자식들!”
루카스의 병사들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근육질 대머리가 여성스러운 핑크빛 갑주를 걸치고서 돌격해 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삽시간에 대열 몇 줄이 갈려 나갔다. 나스는 공격받는 대열을 뒤로 물리며 분리시켰다.
각 열은 세 개의 횡으로 갈라지며 방향이 틀어졌다.
포위 섬멸진. 삽시간에 적을 에워싸고 화살을 쏘아대자, 적의 2군단이 일방적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시간을 끌거나, 뒤로 후퇴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텟사는 자신들의 강력한 무력과 돌파력을 믿고 있었기에 전진을 계속했다.
“자기들, 우리 스타일대로 가는 거얌!”
테스타롯사는 상큼하게 웃으면서 거대한 헬버드를 휘두르며 앞장섰다.
그의 뒤를 따르는 핑크빛 기병들은 테스타롯사에게 질세라 거침없이 진격하며 막아서는 적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후퇴.”
나스는 간단하게 명령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나스의 능력에 대해서는 루카스 왕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우군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했다. 양옆에서 포위 사격을 하고 있던 부대들 역시 후퇴를 진행했다.
“어머, 얘들 뭐야?”
테스타롯사는 어이가 없어서 이마에 힘줄이 올라왔다.
그는 이제 조금만 돌파하면 우군 사령부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령부와 함께 전군이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테스타롯사는 추격했다. 병력은 아군이 적군보다 훨씬 적었으나 이 시점에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나스가 뛰어난 전략안을 갖추고 있어도 실제 전쟁에서 벌어지는 칼날의 전술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테스타롯사는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함정을 파놓아도, 어떤 전략을 준비했어도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더는 도망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나스가 이끄는 우군은 더는 도망치지 않고서 진형을 갖추고 섰다.
처음부터 그곳에서 진형을 갖췄던 것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꼬마 도령에게 몸이 뜨거워지면 자존심 상하는데 말양.”
텟사는 혀로 입술을 핥아 보였다.
어떤 음모를 꾸며놓았는지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싹함.
무언가 말도 안 되는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본능적으로 텟사는 위험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함정을 깨부수고, 적국의 왕을 붙잡고 싶었다.
“좋아, 자기들! 우리는 힘세고 강하게 밀고 나갈 거야. 우리를 막아 세울 수 있는 것은 없을 거양!”
터질 것 같은 근육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테스타롯사는 거대한 헬버드를 비껴들고서 이를 드러내 웃어 보였다.
테스타롯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그 어떤 장벽이 있어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테스타롯사는 갑자기 전장에 울려 퍼진 퇴각 신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 돌아가야 할 시각이야.”
테스타롯사 못지않게 근육질인 눈화장 남성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퇴각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군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고귀한 존재라 해도 군법을 어기면 중벌을 받을 터였다.
테스타롯사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 꼬마 임금의 성의가 고마웠다. 그래서 당당하게 그것을 부수고, 당당하게 왕의 몸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모두 물러나자, 언니들!”
결국, 테스타롯사의 부대는 어쩔 수 없이 회군했다. 덕분에 우군 격돌은 이뤄지지 않은 채, 루카스와 교단 연합도 회군했다.
나스의 예상대로 흑십자 기사단은 프세에게 제대로 말려 들은 상태였다. 의외로 큰 무용을 보여줬기에 피해가 줄었을 뿐, 자칫 잘못했으면 궤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중군은 서로 밀리고 밀리는 양상을 보여주며 전초전을 치렀다. 우군은 테스타롯사에게 돌파당했지만 운 좋게 치명타를 입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아군이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철수 나팔을 분 쪽은 페리안이었다.
나스에게 있어서 비장의 카드인 사샤의 사막 여우대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은 흑십자 기사단 때문에 프세는 주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 한 조각의 허점이 사막 여우단의 난입을 허용했다.
사샤는 실력과 운으로 기회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프세는 뒤늦게 사샤의 유격대에 대응했지만, 수습할 시기를 놓쳤다. 아울러 사샤는 겉모습과는 달리, 굉장한 무사였다.
프세는 몇 차례의 검격을 교환했지만, 삽시간에 목이 베여 버렸다.
사막 여우대는 주인 잃은 3군단이 반격해 오기 이전에 재빨리 탈출을 시도했다. 다소의 피해는 있었지만, 그들은 기대 이상의 큰 전과를 올렸다.
덕분에 흑십자 기사단과 루카스 군대는 승전의 기쁨에 흠뻑 취해 있었다.
나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사샤를 반겼다.
사샤가 무사히 돌아온 기쁨도 컸지만,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 기뻤다.
반대로 페리안 진영은 예상 밖의 패전으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3군단장의 사망은 크디큰 손실이었다.
“분명 큰 손실입니다.”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전략 판을 들여다보았다.
전략 판에는 현재 지형을 작게 축소해서 만든 지도 위에 조각 말이 놓여 있었다.
“프세…….”
회의실 안에는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머리의 근육질 남성, 테스타롯사는 생각지도 못한 동무의 사망 소식에 눈물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전투로 인해서 많은 정보가 확인되었습니다.”
빅스터 나이브만, 페리안의 총지휘관인 제장들을 모아놓고서 설명을 시작했다.
“역시나 루카스와 교단은 제대로 된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든지 서로가 갈라질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죠. 한 군단에 두 개의 머리는 필요 없습니다.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요. 매우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지휘관. 그 지휘관이 둘이라면 어느 한쪽의 결정만으로 전군을 움직일 수 없으니, 필연적으로 대응이 느려진다.
“적의 비장의 카드는 대륙 십웅 사샤가 이끄는 경기병 부대입니다. 그에 대한 파훼법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아울러 루카스 왕국은 지금 이 전투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생존이니까요.”
“흥, 군사까지 움직일 필요 없소. 루카스의 벌레들을 무찌르는 것은 주머니에서 손 빼는 것만큼 쉬운 일이오!”
제장 한 명이 콧방귀를 뀌면서 거만을 떨었다. 그의 말에 빅스터는 엄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카스 왕국은 오대 강국 중 한 곳입니다. 그 위명이 줄어들었을지언정, 아직 그들은 강국으로서의 저력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난 최대한 빨리 교단을 없애고 싶다.”
젊은 남성이 입을 열자, 빅스터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은발의 위대한 젊은 패왕. 아버지의 위업을 그대로 이어받은 북방의 혈족.
유트 페브리안은 그윽한 눈동자로 빅스터를 바라보았다.
“하루라도 빨리 말이지.”
유트 페브리안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항상 맑은 눈동자를 가졌던 유트는 유이의 사후 완전히 달라졌다.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에 가까워지긴 했으나, 예전의 그를 그리워하는 인물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 회의실 안에 있는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교단에 의해 부모를 잃은 젊은 왕. 이제는 사랑했던 유일한 혈육마저 교단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가장 믿고 있었고,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 사실은 항상 유트의 전신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의 베리타스.”
빅스터는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그가 짠 판이고, 빅스터는 완벽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3일 안으로 적은 대패합니다. 그리고 베리타스는 가장 먼저 교단에 들어서게 될 겁니다.”
빅스터는 자신 있게 발언했다. 그러고는 지휘관들에게 다음 작전에 관해서 설명하고 임무를 하달하기 시작했다.
분명 프세 같은 귀중한 인재를 잃은 것은 크나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빅스터는 그런 변수도 자신의 완벽한 승리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임무를 하달하는 빅스터를 보며, 유트는 생각에 잠겼다.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였다.
마찬가지로 우정과 증오는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네가 수라가 되어, 악귀가 되었다면.’
총사령관인 빅스터의 명령에 지휘관들이 부복했다.
‘내가 널 편하게 해주겠다, 리엘.’
은발의 미청년은 곧 다가올 운명의 결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