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59)
레필리아 레소드-360화(359/398)
레필리아 레소드 360화
아리아 합중국(7)
“인간의 전쟁은 인간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네놈은 그 저주받은 힘으로 인간의 전쟁을 능멸하는 것이냐!”
이실렌은 리에르의 순수한 무용과 전술을 인정하고 있었다. 포스의 힘을 사용하여 지휘부의 암살을 시도할지도 모른단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전략도 뭣도 없는 특공을 감행할 줄이야.
“강철!”
프레이야는 시커먼 검광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이실렌을 잡아당겼다.
이실렌의 중후한 수염이 썩둑 잘려 나갔다. 하마터면 수염이 아니라, 이실렌의 머리가 반 토막 나서 땅바닥을 뒹굴뻔했다.
“사람 목을 잘 벨 수 있는 칼이 있는데, 굳이 나뭇가지로 싸워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리에르는 그렇게 말하며 칠흑의 장도를 고쳐 잡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좋다. 어차피 네 녀석의 목을 치려 했으니.”
이실렌은 대로하면서 망령들을 끌어내어 리에르에게 날아들게 했다.
수십 개로 이루어진 시커먼 영체들이 서로의 몸을 지나치면서 오로지 단 하나의 존재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리에르는 그대로 장도를 횡으로 한 번 그어냈다. 달려들던 망령들은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시커먼 연기처럼 사그라졌다.
그사이 이실렌은 탁자의 물컵을 허공에 부으며 주문을 읊조렸다.
푸른 물결이 오오라처럼 사방을 휘감았다.
끼야아앗. 기괴한 비명을 지르면서 반인 반어의 삼지창을 든 정령이 자신이 사냥해야 할 대상을 포착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까짓 것으로는 날 막을 수 없다. 강철.”
리에르는 사정없이 이실렌의 앞에 놓인 정령을 베어 넘겼다. 하지만 그것은 없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삼지창으로 번번이 공격을 막더니 하늘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실렌은 그사이 손끝을 털며 다시 한 마리의 정령을 소환해 냈다. 폭풍의 거인이 나타나서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정령을 바라보았다.
정령은 아마도 이전에 이름있던 영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리에르에게 있어서 대단한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리에르는 그대로 손을 뻗어서 창을 튕겨냈다. 그러고는 정령의 팔목을 잡고서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정령이 기괴한 비명을 흘렸다. 그사이 리에르의 측면으로 불꽃을 흩날리는 검영이 튀어나왔다.
리에르는 반보 뒤로 물러서며 정령을 집어삼켰다. 삼지창을 들었던 정령은 삽시간에 리에르에게 흡수되었다.
그 빈자리를 메우고자 폭풍의 거인이 달려들었다. 리에르는 그보다 앞서 자신의 빈틈을 찌르고 들어왔던 여성에게 반격했다.
적도(赤刀) 히아신스 (Hyacinth).
화영(火影)검법.
불꽃의 그림자가 허공을 태우고, 적을 현혹한다. 마치 붉은 꽃을 수놓는듯한 아름다운 검의 궤적이었다.
유려하고 화려한 검격. 분명 불꽃의 면류관을 쓴 여제가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강력했을 수법이었다.
“그 몸으로 내 목을 취하려 하다니.”
불꽃의 여제, 프레이야 비 미드니는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리에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검은 분명 칠흑의 잔영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리에르가 없었다.
대신에 프레이야는 자신의 복부에서 시커먼 검날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사이로 핏물이 비집고 나왔다. 삽시간에 복부에서 하반신으로 핏물이 번져갔다.
“프레이야!”
강철의 대공이 분노하는 포효가 들려왔다. 프레이야는 흐려지는 시야로 자신의 염화대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오면…….”
자신이 열심히 키워낸 아이들이었다. 고아였던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프레이야는 오로지 검만 수련했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다른 것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들을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만 가르쳤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모여 기사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모인 아이들은 새로운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프레이야는 오지 말라고, 오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목젖을 타고 올라오지 못했다.
시커먼 선이 그녀의 목에 그려졌다. 잠시 후 그 선에서 핏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방울, 방울.
혈화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염화 대원들은 이성을 잃고서 마왕에게 돌격했다.
리에르는 폭소했다. 진각을 밟으며 거미줄 안으로 들어오는 먹잇감들을 전부 쥐어 터뜨렸다. 그 와중에 자신을 공격하는 정령들을 집어삼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철의 대공 이실렌은 이를 갈았다.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정령들로는 생채기 하나 내질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이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철은 자신의 품에서 대검을 하나 꺼냈다. 그사이에도 염화 대원들이 전부 붉은 핏물로 적셔지며 도륙당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목숨을 아까워하는 이가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잘려 나간 주군의 목에만 눈길이 가 있었다.
“내 한 몸을 악귀에게 먹혀 부를지니.”
강철의 대공은 주저하지 않고 탁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도려냈다.
지독한 통증은 마술로 마비를 시켰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함과 분노는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실렌의 잘려 나간 손에서 시커먼 불꽃이 피어올랐다. 삽시간에 재로 화한 그의 손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렁였다.
거대한 뿔을 양쪽에 달고서 톱니 같은 어금니를 드러낸 괴물. 긴 꼬리는 마치 화살촉처럼 날카로웠다. 검붉은 피막을 펼치는 괴물은 그 위용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이실렌은 자신의 모든 마력을 악귀에게 실었다. 악귀는 강력한 마력을 버팀목 삼아서 포효를 내질러 보였다.
이것만으로 칠흑의 마왕을 무찌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생각이었다.
이실렌은 흐려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면서 집중했다. 하지만 리에르는 차가운 조소를 피우며 검을 쥐지 않은 손끝을 옆으로 뻗어 보였다.
그의 손을 타고서 시커먼 망령들이 바닥에서 피어올랐다. 삼지창을 든 푸른 정령은 비명과 함께 눈을 떠 보였다.
폭풍의 거인은 다시 모습을 갖추면서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자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망할 녀석…….”
이실렌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염화대는 목숨을 바쳐서 싸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실렌의 친위대들도 모여들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포스의 힘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잘못 생각했구나…….”
포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같은 포스를 이용해야 했다.
페리안이나 루나레이크는 각각 포스를 데리고 있었다. 그들이 없는 이상은 리에르와의 정면 대결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네놈의 앞길에 절망만이 가득하기를.”
이실렌은 핏물을 토해내며 이를 드러내 웃어 보였다.
“아마도 그럴 거다.”
리에르의 적색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웃음을 표현했다.
곧 칠흑의 장도가 이실렌의 목을 베어 넘겼다.
“자, 다음은 누구냐?”
리에르의 눈이 이채를 띠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이미 시체의 산이었다. 아니, 정상적인 시체도 아닌, 잘 썰어진 고깃덩어리들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기가 질려 있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이 있었다.
포스는 괴물이었다. 신의 사자였다.
“설마 다들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검붉은 제복 깃을 가다듬으며 리에르는 웃었다. 목에 매고 있던 흰색 크라바트는 아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일 아침에 또 보자.”
리에르는 마치 학교 친구들에게 인사하듯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빛의 날개를 펼치며 제자리에서 솟아올랐다.
가볍게 창공을 날아오르는 리에르를 보면서 병사들은 공포에 젖어 움직이지 못했다.
순식간에 총지휘관인 이실렌이 죽었다.
아울러 부흥군의 최강이었던 프레이야도 죽었다. 겨우 첫날에 대륙 오제중 두 명이 한 명에게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예였던 염화대도 모조리 전멸을 당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5만이나 되는 대군은 갑자기 총지휘관을 잃어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물론 총지휘관을 대신할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대한 두 영웅도 해내지 못한 일을 자신들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황실 부흥군은 최악의 수를 두었다.
압도적인 숫자를 이용해서 교단군을 완벽하게 박살 내는 것.
부흥군은 그대로 진격했다. 그리고 리에르가 이끄는 흑기사들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살육을 당했다. 그래도 부흥군은 진군했다.
애초에 리에르 같은 괴물을 박살 내기보단, 그들의 본대를 부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산이었다.
“드디어 와주셨군요.”
아르미안은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방을 포위하는 부흥군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설렘마저 느껴졌다.
살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생각과 각자의 인연으로 얽힌 인간들. 그들 모두가 잘게 다져진 고깃덩어리로 바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아르미안은 들고 있던 부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준비했던 술법진이 대지를 환하게 비추었다. 바닥에서부터 시커먼 손들이 올라왔다.
그것들은 병사들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과욕은 금물이니까.”
사람들의 비명과 당황스러움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시커먼 손에 붙잡힌 사람들은 발버둥을 쳤지만, 곧 몸에서 솟구치는 촉수 때문에 절명했다.
그리고 절명한 사람들의 몸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하고 말았다.
사방에서 찢긴 살점들이 피와 뒤엉켜 날아다녔다. 진형은 무너지고, 지휘는 먹혀들어 가지 않았다.
장창 보병들은 사방에 몰려온 적들을 향해 장창을 세워 보였다.
“에잇, 요사한 사술을 더 준비하진 못했을 터! 모두 죽은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라!”
군단장들은 재차 진격을 명령했다. 어차피 명령 위반은 죽음이기에, 병사들은 다시 적의 본진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아르미안은 피식 웃으면서 그들의 포위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여기는 우리들의 땅인데 왜 병력이 1만뿐이라고 생각할까.”
아르미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팔을 들어 붉은 부채를 펼쳐 보였다. 그 순간 산맥에서부터 평지까지 교단의 깃발이 잇따라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전장의 찬트가 천지를 진동시키듯이 울려 퍼졌다.
이때부터는 명백한 학살이었다. 제대로 된 지휘 체계가 무너진 황실 부흥군은 각자 살기 위해 탈영을 했고, 항복했다.
거침없는 칼날엔 아무런 자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삽시간에 결판이 난 전쟁터 속에서 리에르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가 가진 아리아의 무구들이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Master에게 보고. 룬 위시 발동합니다.
아르카의 기계음과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황금빛 나선이 용이 승천하듯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제대로 개방되었구나.”
리에르는 웃으면서 아르카를 고쳐 잡았다. 룬 위시의 황금빛 나선을 휘감은 인영이 순식간에 튕기듯이 날아 들어왔다.
리에르는 갑자기 나타난 인영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칼날을 고개를 살짝 젖히는 것만으로 여유롭게 피해냈다.
“오랜만이다, 피스 메이커.”
“그르르…….”
피스 메이커는 전신을 붕대로 감고 있었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지만, 그가 들고 있는 사복검과 황금의 빛이 이 인물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인간임을 포기한 것인가.”
-Master 역시 인간임을 포기했습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아르카의 딴지였다. 아니, 지금껏 계속 걸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에르는 그 말을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자, 와라!”
리에르의 장도가 지나간 곳은 칠흑의 검광이 일어났다.
피스 메이커의 사복검이 지나간 곳은 황금의 검광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