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60)
레필리아 레소드-361화(360/398)
레필리아 레소드 361화
아리아 합중국(8)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혔다. 전격과 흑광이 서로 한데 뒤엉켜서 마찰했다.
그 순간 사복검의 끝이 늘어나며 상대의 팔을 노렸다.
리에르는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사복검의 칼날을 받아쳤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리에르의 손끝을 타고 올라갔다.
리에르도 유영하듯 손날을 움직이며 사복검을 튕겨내 피스에게 되돌려 주었다.
사복검의 끝이 자신을 향하자 피스는 고개를 젖히며 피해냈다. 스쳐 지나가는 칼날에 코끝의 붕대가 잘려 나갔다.
회피와 동시에 피스의 뒤편에서 황금빛이 꿈틀거리더니 나선 포를 쏘아 올렸다.
리에르의 앞으로 칠흑의 커튼이 펼쳐졌다. 황금빛 나선 포가 칠흑의 커튼과 부딪히자 허공에서 일렁임이 일어나며 흡수되었다.
이미 그럴 것을 예상하던 피스는 그대로 리에르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리에르도 웃으면서 한 발 앞으로 접근했다.
“사복검을 쓰는 이가 근접전을 원해?”
“크르르……!”
피스의 보디 블로우가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팔꿈치로 피스의 팔을 막아냈다. 첫 타가 막힌 정도로 피스는 멈추지 않았다.
피스는 보디와 헤드를 연속적으로 가격했다. 하지만 리에르는 짧은 풋워크만으로 가볍게 피해내더니 입을 놀렸다.
“예의는 차렸다.”
리에르는 그대로 초근접 로우킥을 날렸다.
피스의 다리는 그대로 부러져서 옆으로 반 바퀴 돌아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리에르는 그대로 상대를 밟기 위해 다리를 들었다. 그 순간 번쩍하면서 황금빛 가시들이 밑에서 솟아올랐다.
리에르는 그대로 몸을 틀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서 황금빛 가시들이 잔뜩 튀어 올랐다.
피스는 기습이 무위로 돌아가자 재빨리 가시들을 회수하고서 리에르를 향해 사복검을 휘둘렀다.
“그래, 확실히 인간을 포기한 이점이 있군.”
리에르는 그렇게 빈정거렸다. 피스는 빈정거리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굉음을 터뜨리며 사정없이 공격했다.
리에르는 피스의 몸에 감긴 붕대를 잡아서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펑, 펑!
초근접에서 좌우 연타로 보디 블로우가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피스의 몸에서 황금빛 가시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가시는 리에르의 몸을 뚫지 못했다. 그것들은 그대로 칠흑의 장막에 막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흡수되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라.”
리에르는 그대로 피스의 팔을 붙잡아 관절기를 걸어버렸다.
우두둑. 둔탁한 소리와 함께 피스의 팔이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넘어 꺾였다.
피스는 앞차기를 시도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리에르는 그의 다리를 양팔로 붙잡고서 꺾어버렸다.
다시 한번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피스는 비명 없이 사복검을 들어 올렸다.
리에르는 그대로 피스의 팔을 붙잡고서 허공에 집어 던졌다. 날카로운 사복검이 뱀의 혓바닥처럼 춤을 추면서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가볍게 진각을 밟으면서 피스의 공격을 튕겨냈다.
피스의 등 뒤로 황금빛 나선들이 일렁거리며 사슬처럼 날아들었다.
사라락!
닿기만 해도 꼼짝없이 살점을 녹이고 찢어버릴 수 있을 공격들이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해냈다.
서걱!
상대의 공격은 전부 회피하거나 흡수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흑도로는 상대의 살점을 계속해서 도려냈다.
피스의 손가락이 날아갔다. 뒤를 이어 오른발이 날아갔다.
“크워어!”
피스, 아니, 피스였던 망자는 포효를 내지르면서 추락했다.
추락하면서도 그는 모든 것을 쏟아붓듯이 황금빛 나선을 어지럽게 쏟아냈다.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하면서 손을 뻗어 칠흑의 장막을 펼쳐냈다. 장막에 튕겨 나간 황금빛 나선은 잘게 부서져서 사방으로 불똥을 터뜨리며 날아갔다.
“이제 영원히 쉬게 해줄게.”
리에르의 장도가 피스의 목을 향해 곡선을 그렸다.
서걱!
칠흑의 장도를 타고 핏물이 흘렀다. 몸과 머리가 분리된 시체가 힘없이 추락하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부들거리던 피스의 시체에서 천천히 영체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편안하기를.”
리에르는 볼을 훑으면서 중얼거렸다. 칠흑의 장막을 뚫고 들어온 가시 하나가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가며 혈선을 만들었다.
이런 생채기 하나가 났다고 해서 큰일 날 것은 없었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손을 뻗어 주인 잃은 무구의 기운을 회수했다.
황금빛 아지랑이는 그 자리에서 잠시 일렁이더니 마치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무구는 단 하나.”
리에르는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를 들어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사기를 잃은 부흥군은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하고 있었다.
명백한 승전이었다.
피스였던 망령은 천천히 시야가 닫히는 것을 느꼈다.
* * *
이실렌과 프레이야는 이번 부흥군 진군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번 연합은 대륙 역사상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의 대규모였다.
아마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 대전이었다. 하지만 이실렌과 프레이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리에르 아르빈트, 칠흑의 마왕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강함은 말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일신의 강함만이라면 철저하게 고립시켜서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군을 통솔하는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직접 친위대인 흑기사를 이끌고 진격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을 군대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모든 세력이 하나로 규합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아렌의 여왕과 페리안의 왕도 정략결혼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힘들었다. 그것은 단지 이득과 실리를 꾀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대륙의 사람들은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어야지만 마왕의 군대를 무찌를 수 있었다.
‘보여주겠다.’
이실렌은 마왕의 강력함을 모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프레이야도 이실렌과 판단이 같았다. 지금처럼 연합이 임시로 손을 잡지만, 제대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전부 각개 격파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어느 한 세력이 손실을 보았다면 바로 물러설 것이 분명했다.
그 전투에서는 이미 이익보단 손해가 앞섰기에.
교단. 아니, 애쉬문은 칠흑의 마왕이라는 단 하나의 카리스마로 모든 것이 통일되어 있었다.
백여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생각이 있었다. 백 가지의 생각이 있다면 백 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혼란한 내부를 규합하기 위해선, 외부의 위협만큼 편리한 것이 없었다. 다만, 구성원 모두가 위기감을 느낄 만큼 강력한 적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대패하자.’
이실렌과 프레이야는 손을 잡고 마왕의 군대와 맞섰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왕은 일신의 무력을 한껏 전장에서 발휘했다.
지금 숱한 생명이 마왕군의 손 아래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각 국가에 전달되었다.
이실렌과 프레이야의 부흥 연합군이 마왕의 군대에 대패.
자그마치 5만, 그것도 대륙 오제 중 두 사람이 손을 잡았기에 누구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단은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승리를 거둔 마왕에게, 대륙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대륙은 새삼 깨달았다.
칠흑의 마왕은 무패였다.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모든 전쟁에서 상대를 압도적으로 학살했다.
* * *
“아일, 당신이 리에르 아르빈트를 상대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장미의 기사 프란츠는 자신의 자랑이자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아일 하사드는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이 머뭇거렸다.
“중요합니다. 우리도 부흥군의 꼬락서니가 돼서는 곤란하니까요.”
“그 녀석에게 아직 이겨본 적이 없다.”
프란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일은 정말 자존심 상했지만 씹어내듯 말을 이었다.
“일신의 무력으로도 졌다. 거기에, 난 놈과 달리 전쟁을 잘하지 못해. 놈이 제 힘만 믿고 무턱대고 날뛰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놈은 군을 통솔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순수한 전쟁에서 만나면 대패당하겠지.”
아일은 이번만은 리에르를 상대로 승리하고 싶었다. 당당하게 녀석을 쓰러뜨리고, 당당하게 아르미안을 찾아가고 싶었다.
아일은 아직도 아르미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도 사랑을 위해 싸우고, 저도 이 세상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싸웁니다. 부디 저에게 당신의 파워를 이용하게 해주세요.”
프란츠는 하얀 이를 반짝이면서 상큼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일은 프란츠가 재수 없었지만, 그의 능력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별말 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 관리는 전혀 하지 못했다.
프란츠는 그렇게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차갑고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지금 루나레이크는 대승을 거둔 채로 교단 중앙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아렌 왕국은 현재 언데드 군단과 전투를 진행 중이었고, 로빈타 왕국도 루나레이크처럼 진군을 하고 있었다.
‘지금 중앙에 간다면 그대로 각개 격파를 당한다.’
프란츠는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왕의 생각이 보였다.
“일찍이 보지 못한 적이군요.”
압도적으로 강력한 무력,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카리스마.
루나레이크의 프란츠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빈타의 두 핵심인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함정이다.”
“그렇군요.”
금빛 머리카락의 잘생긴 남성은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갈색 머리카락의 남성은 방금 들어온 보고서와 지도들을 들여다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실렌 대공, 마지막까지 진정한 전사셨군.”
맥크웰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한때 자신이 모셨던 상관이었고, 자신이 존경하던 위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맥크웰은 교단과 손을 잡고 자신이 권력을 등에 업으려 했다. 그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이실렌은 그를 처형하지 않았다.
‘언젠가 로빈타를 위해서 그 목숨을 바쳐라.’
이실렌 대공의 부고를 들은 맥크웰은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분이 남겨주신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군요.”
샬렛은 기물을 지도 위에 옮기면서 말했다.
모든 연합의 말들이 교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돌파를 시도했던 부흥군만은 말이 부러진 상태였다.
검은색 흑마는 부흥군을 제거하고 어딘가로 다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정면으로 막기 위해선 각 영웅이 전부 힘을 합쳐야만 가능했다.
“그래, 이실렌 대공께서 친히 만들어두신 그림이다.”
맥크웰의 말에 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지휘관이 부재중에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녀가 없는 것에 대해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마리엔느 폰 페를네아브.
할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번 부고는 견디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가꾸고 일궈낸 왕국이었다. 그리고 그 왕국을 찢어버린 것이 바로 리에르 아르빈트, 그녀에게 있어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이번에야말로 아제리엘의 꽃 앞에서 할아버지의 원수를…….”
마리엔느는 이를 깨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리에르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전장에 비료로 남길 것이었다.
원한에 사무쳐서 오열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로빈타의 새로운 두 영웅은 결단을 내렸다.
정면으로 리에르 아르빈트와 싸워서는 패배한다.
결국, 모든 연합은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서 대전을 펼쳐야 했다.
교단에 어둠의 왕이 있다면, 연합에는 빛의 왕이 존재했다.
유트 페브리안.
일찍이 리에르 아르빈트의 둘도 없는 친우였고, 전우였던 소년 왕.
그는 이제 소년에서 청년이 되었고, 청년에서 진정한 베리타스의 왕으로서 우뚝 서 있었다.
그가 가진 젊음과 패기, 카리스마는 많은 영웅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진정한 빛의 왕이란 유트 페브리안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실렌의 생각처럼 다른 연합의 군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진짜 힘을 하나로 합치지 않으면 부흥군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리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사냥하려는 칠흑의 마왕은 다음 타겟을 정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