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63)
레필리아 레소드-364화(363/398)
레필리아 레소드 364화
아리아 합중국(11)
지금 대패하지 않은 것은 리에르 군단뿐이었다. 애쉬문은 전 방향에서 대패를 당해서 위기 상태에 봉착해 있었다.
“현재 마왕의 흑기사 470명과 8천2백의 중보병들이 움직이는 중.”
“역시 마왕의 군대가 핵심이군요.”
빅스터는 연속된 전투에도 불구하고 마왕의 군대가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
일개 한 명의 무력과 전술로 이만한 성과를 낸다면 그건 없어져야 할 무공이었다. 그런 것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요구하는 가치와 효과를 깡그리 무시하는 행위였다.
빅스터의 감상과는 별개로, 나스는 계속해서 교단의 병력 상황을 읊어나갔다.
“본교에 대기 중인 애쉬문의 군대는 5만. 그리고…….”
분명 대군이긴 했으나, 페리안 측에서는 단독으로도 싸울 수 있을 병력이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그다음에 있었다.
“신성 왕국, 애쉬문의 예비 병력 50만.”
“뭐?”
빅스터는 나스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하대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금껏 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군이 기껏해야 22만이거늘!”
빅스터는 허무맹랑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것마저도 전 황제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하지만 나스는 지금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성전(聖戰) 지하드(Jihad).”
나스는 천천히 입가를 열었다.
“이미 선포되었어.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그 수는 70만에서 100만.”
교리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무기를 손에 쥔다. 그리고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현실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
교리를 위해 죽는다면 대대손손 번영하고 행복할 거라는 맹목적인 신앙 아래 벌어지는 전투.
“그딴 것은 이미 전쟁이 아니다.”
빅스터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밭을 갈고, 물건을 팔던 일반인들이 최면에 걸린 듯이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선다. 그것은 절대 유쾌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을 것이고, 부녀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수명이 다해가는 노년들도 자신의 목숨을 신께 바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루나레이크는 대패하고 본국으로 귀환 중, 황실 부흥군도 대패하고 각자 병력이 흩어진 상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렌 왕국의 3만, 로빈타 2만 5천, 페리안의 3만5천. 대략적인 수치상으로는 9만과 60만의 싸움이 될 거야.”
빅스터는 식은땀을 흘렸다. 불가능한 수치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무조건 말이 안 된다고 치부하기에는 광신도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역사적으로도 광신도가 일으킨 전쟁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굉장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하지만 성전의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해.”
“식량이겠죠.”
빅스터의 대답에 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뭔가 불안한지 손가락을 조물조물하고 있었다. 유트는 자신 쪽에 놓여 있던 초콜릿 쟁반을 들어 나스에게 걸어갔다.
나스는 유트가 들고 온 초콜릿을 보고 대번에 얼굴이 환해졌다.
방금 전만 해도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있던 꼬마 같지 않은 행동이었다.
“충분하군요.”
빅스터는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눈가를 찌푸렸다.
“그 정보는 사막 여우단의 목숨값 이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턴 당신의 목숨값을 갚아야 할 겁니다.”
빅스터는 나스가 위험인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에야 그들의 힘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유트 왕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 분명했다.
“응, 이제부터는 정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팔 거야.”
나스는 그렇게 말하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빅스터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도를 찾나요?”
“응!”
“지도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나스는 눈만 깜박거렸다. 그러자 빅스터는 불쾌한 듯이 말했다.
“화공(火攻)을 쓸 수 있는 장소는 단 하나뿐이니까요.”
“응.”
나스는 빅스터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나스는 자기 생각을 빅스터가 꿰뚫어 봤다는 것을 알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빅스터는 자신보다 한발 앞섰던 나스의 전략 때문에 불쾌했다.
어차피 정보를 준 상대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었다. 목숨값을 운운한 것도 그냥 장난스러운 협박에 불과했다.
만일에 나스가 이런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페리안의 입장에서는, 아니, 연합군으로서는 크나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나스는 자신의 품에 있던 책자를 하나 건넸다. 초콜릿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책자에는 교단의 지하드 관련 자료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실질적인 인원과 지휘체계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 정보는 충분히 전략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내용이었다.
“갈라파고스 협곡에서 적의 지하드를 깨부숩니다.”
빅스터는 지도를 펼쳐 보이며 중얼거렸다. 아마 적들이 연합군을 맞아들일 곳도 이 장소였다. 백만이나 되는 대군이 숨어들 만한 엄폐물은 흔하지 않았다.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적의 후미를 치기 위한 장소로 적격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교단 측이 모를 리 없었다.
“교단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진입로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그곳에 진출하지요.”
유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빅스터에게 말했다. 그렇게 한다면 피해가 막심할 수도 있었다.
교단에서 대규모 병력을 먼저 퍼부어 버리면 아무리 페리안이라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럼 이곳을 점령하시지요.”
빅스터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갈라파고스 협곡에 있는 파고스 산이었다.
“자살 행위.”
나스는 눈가를 파르르 떨어 보였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는 최적의 방법일지도 몰랐다. 낮은 지대의 적이 높은 지대의 적을 공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하지만 다수의 적이 포위진을 펼친다면 결국 굶어 죽는 것은 정상에 포진한 군대였다.
지혜롭게 보이지만 굉장히 멍청한 술책이었다.
하지만, 빅스터에겐 확신이 있었다.
“첫 번째. 마왕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는 기다리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리에르는 모든 전투를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두 번째. 계곡이 있기에 식수에 문제가 없는 지형입니다.”
식수의 여부는 컸다. 배고픔은 괴롭지만 목마름은 고문이었다.
“세 번째. 우리는 페리안입니다. 우리를 압박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번째. 적이 화공을 한다면 전멸당할 거야.”
빅스터의 말에 나스가 반박했다. 그러자 유트가 입을 열어 보였다.
“아렌 왕국과 로빈타 왕국이 올 테니 걱정할 것 없어요.”
“아무리 혈맹이지만 모르는 일이야. 그들이 교단에게 항복하고 배신하면 그대로 페리안은 끝이니까.”
나스의 말이 굉장히 옳았다. 사실은 빅스터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략가라는 인종은 모든 돌발상황을 예측하고, 실패할 가능성까지 계산해야지만 속이 시원한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의 주군인 유트 왕의 생각은 달랐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믿을 수 있으니까.”
유트의 눈동자는 황금빛 이채를 띄고 있었다. 모든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동자였다.
그는 각국 지휘관들의 가능성과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가능성의 가능성. 그리고 미약한 실패의 확률까지 들여다보았다.
“무엇보다 힘에서도 질 생각 따윈 전혀 없어.”
“…….”
나스는 유트의 막무가내식 판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빅스터는 유트에게 너무나 큰 신뢰를 받고 있었다. 마치 반역 따위는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 덕분에 빅스터도 자신의 군주인 유트를 털끝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나스 왕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응?”
유트는 철부지 어린아이 같기만 한 나스를 바라보았다. 그저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유트는 어린아이의 외견 너머에 있는 무수한 생각들과 판단들을 알고 있었다.
‘나도 저 나이대에는 저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복수라는 일념으로 살아왔던 유트조차도 나스처럼 깊은 혜안을 갖지 못했었다.
나스는 어린아이의 몸을 하고 있을 뿐이지, 완벽한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아이는 괴수로 자라나 자신의 목덜미를 물지도 몰랐다.
“군량과 금화를 이번 원정 동안 지원한다는 조건, 그저 전쟁에 패배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겠지.”
사람이 한둘도 아니다. 수십만이었다. 지금 루카스 왕국의 병력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인원이었다.
루카스 왕국군이 한 달 치 식량을 갖고 있어도 연합군에게는 겨우 일주일 치 식량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다.
“나스 왕이 사막 여우단을 내놓는 대신에 중요한 정보를 줬지. 분명 그 지하드라는 것을 몰랐다면 연합군은 큰 손실을 입었을 터.”
정말 중요한 카드는 깊숙이 가지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만약 연합이 이번 대전에서 승리하면, 아니, 연합이 승리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하지만, 루카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연합군에 합류해 전쟁을 치를 생각이 없어. 도대체 왜?”
유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빅스터도 유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스의 반응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스는 더 이상 해맑고 순수한 아이의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빅스터의 생각과 비슷한 방식의 전략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설마……!”
빅스터는 미간을 좁혔다.
빅스터는 교단의 대군과 싸우기 전에 그들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도려내려 하고 있었다.
교단은 어디까지나 광신도들을 주축으로 한 군단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적국이 국내까지 들어왔다면 자국에는 보급이나 지형이나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단점도 존재하고 있었다.
생산량에 영향을 끼치는, 자국의 도시나 마을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는 것.
빅스터는 별동대를 통해 산발적으로 교단의 영토를 전부 해방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리에르 아르빈트가 강력하다 해도 그 모든 곳을 혼자서 막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쪽에도 칠흑의 마왕과 대적 가능한 머더러가 있었다.
교단과 연합이 전면전을 치러낼 때, 힘을 온전히 보존한 루카스는 그대로 비어 있는 페리안을 비롯한 연합국의 국토를 유린한다.
5천에서 1만의 군단이 각 국가를 침범해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질 터였다.
빅스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틀림없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페리안에는 루카스의 배신을 대비한 대응책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보아야만 할 수도 있었다.
“괴물……!”
나스의 격앙된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트는 차갑게 웃으면서 나스의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어요.”
나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치 속마음을 전부 읽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말합니다. 연합은 루카스가 이번 전쟁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이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죠. 이에 대한 거부는 루카스에서 각 국가의 수도 점령 작전이 있다고 착각하게 될 것 같아요.”
“……보상은 연합과 같아?”
보상 이야기가 나왔다.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오지만, 사실상 땅따먹기 싸움을 보기 좋게 포장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했다.
이익이 없다면 왕국에서는 값비싼 비용을 감당하면서 군대를 출동시킬 이유가 없었다.
“절반은 삭감하겠어요.”
“심해.”
나스가 쏘아봤다. 유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이대로 깃발을 돌려 루카스를 치는 것도 좋겠군요.”
“모든 계획이 틀어질 건데 좋아?”
유트는 뒤를 돌아 빅스터에게 물었다.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은가요?”
“이 계획이 아니라도 서른아홉 가지의 책략이 더 남아 있습니다.”
빅스터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턱수염을 매만지며 단언했다.
유트는 다시 나스를 돌아보았다. 나스는 빅스터 정도 되는 인물이 허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8이 아니라면 아무도 설득당하지 않을 거야.”
나스의 말은 괜한 고집이 아니었다. 누구도 납득하지 않을 수지타산이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한판 붙어서 대패당하고 돌아가는 것이 설득력 있었다.
“좋아요.”
유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나스는 불편한 얼굴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사샤가 넣어줬던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손을 닦았다.
“무서운 형아.”
나스는 유트와 악수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유트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지만, 사실 진실의 눈동자라는 혈족의 강력한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이대로 그를 보냈다간 큰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무서운지 모르겠어요.”
유트는 나스가 성장하면 무서운 적이 되리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만큼 든든한 아군이 없었다.
교단이라는 강력한 적. 그것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