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66)
레필리아 레소드-367화(366/398)
레필리아 레소드 367화
마왕 진격(3)
리즈는 붉은 입술을 열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언뜻 보면 여성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검격을 계속 막아내고 있었다.
리에르는 같은 포스가 상대하니 도통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아무리 상성상으로는 우위라지만, 자꾸 타이밍 좋게 들어오는 적의 원격 지원이 성가셨다.
“설마하니 예전의 저처럼 바보 같은 실수를 하고 계신 것은 아닐는지 걱정이 되는군요.”
“뭐?”
리즈의 말에 리에르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서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했었지요.”
“그렇다면 우린 서로 다를 거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할 수밖에 없도록 도와드릴게요.”
리즈는 자신의 언월도를 든 채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핏빛의 날개가 순간적으로 거대하게 펼쳐지는 듯이 보였다.
주변의 마력들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포스의 초월기.
핏빛의 안개들이 뭉치면서 단 하나 구체를 이루었다. 그 구체는 천천히 거대한 눈의 형태가 되었다.
리에르도 리즈와 맞서서 초월기를 시전했다. 그의 발밑에서부터 룬어로 새겨진 마법진들이 생성되었다.
리에르를 중심으로 칠흑의 검들이 생성되었다. 그것들은 잔상을 남기며 시전자의 주변을 원 형태로 돌았다.
점점 마멸되는 마력의 흐름은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폭발시킬 듯 꿈틀거렸다.
“정말 달라진 것 같긴 하군요.”
리즈는 유유히 검지를 들어 허공에 룬어를 그려 넣었다.
“예전 같으면 유트나 유이의 안부를 물어 왔을 건데요.”
“유이는 죽었지.”
리에르는 아직도 유이의 처참한 죽음을 기억했다.
그녀의 작은 머리통을 안으면서 오열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슬프지 않았다.
이미 그것은 과거였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예전의 리에르 군이 아니므로 오늘의 전투는 큰 손실이 발생할 겁니다.”
“초월기 유지할 힘도 부족할 텐데 너무 떠드는 거 아니야?”
리에르는 리즈를 향해 빈정거렸다가 움찔했다.
“자, 굳이 당신을 상대하는데 전부 있을 필요가 있나요?”
리즈는 허공을 휘젓던 자신의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마치 연지를 바르듯이 검지를 문지르더니 실소를 터뜨렸다.
“여기서 문제. 광신도로 이루어진 신도병들은 교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싸웁니다. 현재 교단에서 당신을 제외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얼마나 되죠?”
“유트는 산을 내려갔나?”
리에르의 질문에 리즈는 빙긋 웃어 보였다.
“지금쯤 우리 유트 폐하가 당신의 보금자리를 전부 다 찢어놨을 겁니다.”
“무리다.”
아무리 유트가 군주로서 강력하다 해도 숫자가 달랐다.
하지만 그 유트가 아무런 대책 없이 본대를 습격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루카스!”
리에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로빈타와 아렌은 지원 오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 해서 페리안만 전투에 나섰다간 크게 낭패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파고스 산은 완벽한 요새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파고스 산 아래에는 완벽한 포위진이 구성되어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라 해도 기세 좋게 내려왔다가 사방이 둘러싸인 상태에서 포위 공격을 받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답입니다.”
리즈는 학생이 답을 맞힌 것을 기뻐하는 교사처럼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포위진 밖에서 적의 또 다른 공격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포위진은 더 이상 포위진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포스로서의 강력함은 당신이 우위일지 모르지만, 저는 혼자가 아니지요.”
리즈의 어깨너머로 아로운의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만큼은 뭔가가 달랐다.
리에르는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끼고 몸을 낮췄다.
화살은 정확히 리에르의 머리가 있던 쪽에 박혀 들어갔다. 이번에도 장막을 뚫지는 못했지만, 간담이 서늘했다.
화살 뒤에 또 다른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정확히 앞의 화살과 같은 궤도로 날아들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장막 안으로 화살이 진입했다.
어쨌든 데미지를 주지 못하면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 행동을 한 것을 후회했다.
“천국의 눈(Heaven’s Eye).”
리즈는 가볍게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눈이 열리며 번쩍하고 붉은 자장이 일어났다.
콰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위가 부서져 나갔고, 나무가 갈라졌다.
리에르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지만, 자신이 있던 자리가 두부 살처럼 으깨진 것을 보았다.
리에르는 리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주변으로 회전하고 있던 검들은 전부 검집에서 나와 목표를 향해 쏟아졌다.
삽시간에 리즈의 초월기가 깨져 나갔다. 리에르는 다시 손끝을 아래로 내리면서 리즈를 노렸다.
리즈는 여유롭게 언월도를 들어 날아드는 칼날을 쳐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이 폭파했다.
리즈는 예상보다 강력한 마력 폭발 때문에 제대로 피해를 입고서 핏물을 토해냈다.
그 순간 리에르는 리즈의 코앞까지 와서 장도를 높이 올려 베었다.
리즈는 바로 순간이동으로 몸을 회피했다. 하지만 리에르는 마치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튕기듯이 움직였다.
리즈는 순간이동으로 회피하자마자 눈앞에 와 있는 리에르를 보고 움찔했다.
리에르의 장도가 서슬 퍼런빛을 뿜으며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서걱!
허공에 붉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피하긴 피했지만, 워낙 검격이 빨랐기에 리즈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제법 오래 길렀던 머리카락이기에 아까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느낄 새도 없었다.
펑!
강렬한 뒤돌려차기가 리즈의 허리를 강타했다. 검격과 거의 동시에 들어온 뒤돌려차기라 반응하기조차 힘들었다.
“큽!”
리즈는 긴급하게 마력을 끌어모았지만, 충격을 전부 완화하지 못했다. 워낙 강한 타격 때문에 리즈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드디어 드러난 허점을 노리고 리에르는 리즈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그사이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단 한발이었다. 하지만 소리가 범상치 않은 것을 보아 아로운 킴의 화살이 분명했다.
리에르는 아주 찰나의 시간을 망설였다. 그의 화살이 위력이 있긴 하나,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그대로 리즈의 허리를 깊게 베어 들어갔다. 손끝에 느낌이 있었다.
그때였다.
리에르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예전에 광전사와 싸우기 위해서 유이의 화살에 마력을 실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리즈가 하지 못한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의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리즈였다. 그리고 그 리즈가 너무 쉽게 허리를 내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다.
리에르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팔을 들어 올렸다. 화살이 날아들자 장막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리가 깨지듯이 금이 가면서 마력이 쏟아졌다.
뜨거웠다.
리에르는 자신의 팔목으로 무언가가 꿰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불로 만든 칼로 살을 도려내고 찢어내는 기분이었다.
파앙!
리에르는 그대로 땅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바로 코앞에서 흘러들어 왔다. 흙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풀잎이 뺨을 긁었다.
리에르가 다급하게 눈을 뜨자 사방에서 창날이 찔러 들어왔다.
리에르는 다급하게 장막을 펼쳤다. 병사들의 창은 전부 튕겨 나갔다. 하지만 재차 다른 병사들의 창날이 찔러 들어왔다.
의미 없는 행위였다. 몇만 명이 찔러대도 결과는 같았다. 유일하게 흡수할 권리를 가진 포스의 절대 방어막은 여전히 강력했다.
하지만 방어막의 눈을 속이는 것쯤은 가능했다.
푸욱!
핏빛의 창이 다른 창들 사이에서 찌르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리에르의 어깨에 창이 박혀 들어갔다.
“큽!”
리에르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어깨에 박힌 창을 붙잡고 부쉈다.
그때 갑자기 병사들이 길을 비켰다. 그곳으로 공기를 찢어내며 날아드는 화살이 보였다.
리에르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냈다. 칠흑의 장막이 화살의 방향으로 집중되어 방어벽을 펼쳤다.
치지직!
물리력과 마력이 공존하는 공격은 방어하기 까다로웠다.
리에르의 방어는 크게 물리력과 마법력으로 나뉘었다.
물리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물리력에 관련된 타일이 배치되었고, 마법력은 새로운 타일을 배치해야만 했다.
방어막의 종류는 그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었지만, 마법사가 아닌 리에르가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계산하며 처리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렇기에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 타일을 배치하고 있었다.
아로운 킴의 공격 같은 경우엔 리즈의 마법력과 아로운의 물리력이 합쳐졌으므로, 두 개의 타일을 덧대어 막아야만 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이 소홀해지게 되었다.
“세상에 무적이란 것은 없죠.”
리즈의 온화한 중얼거림. 그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리에르는 바닥을 뒹굴면서 회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의 지면이 두부처럼 으깨졌다. 사방에서 방어막을 긁어내는 창칼의 움직임들이 느껴졌다.
리에르는 입술을 깨물며 힘을 실었다. 그가 있는 자리를 시작으로 시커먼 반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웜홀(WormHole)!”
마왕의 또 다른 초월기가 발동하자, 주변의 병사들이 다급하게 물러섰다. 하지만 제때 피하지 못한 이들은 시커먼 공간에 침식되어 비명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미 발동된 힘 때문에 리즈도 아로운도 리에르를 뒤쫓을 수 없었다. 시커먼 공간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자 그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곧 시커먼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더니,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병사도, 리에르도 존재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마왕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마왕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는 자긍심도 얻게 되었다.
“무패의 마왕은 우리 페리안이 패배시켰다!”
그때 페리안의 한 지휘관이 소리쳤다. 그에 따라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마왕에 대해 욕지기를 내뱉었다.
실제로 리에르가 데리고 온 산악병 2,000은 전멸했다. 1인 군단이나 다름없는 마왕마저도 대패당하고 도망쳤다.
이 사실에 고무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왕인 유트 페브리안은 포위하고 있는 애쉬문의 군대를 상대로 압승을 하고 돌아왔다.
완벽한 포위망을 구사했다고 믿었지만, 루카스 왕국이 배신하고 돌아섰다는 것을 몰랐던 애쉬문의 실수였다.
갑자기 후미에서 공격하는 루카스의 공격에 애쉬문은 진형을 다시 짜기 위해 물러섰다.
결국, 페리안은 포위에서 벗어났고, 연합군이 도착할 시간을 충분히 벌게 되었다.
“푸…….”
리에르는 상처투성이로 본진에 돌아와서는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리에르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기꺼웠다. 그래, 지금까지는 너무 쉬웠지.
압도적인 숫자를 가지고도 오히려 대패를 당한 애쉬문은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믿고 있던 마왕마저도 산악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부상까지 입고 돌아왔다.
협곡 전투의 첫날은 페리안과 루카스 연합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