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67)
레필리아 레소드-368화(367/398)
레필리아 레소드 368화
마왕 진격(4)
포위진은 분명 완벽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포위진도 외부에서 오는 침입에는 무방비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슬슬 도착이겠습니다.”
리즈는 웃으면서 일어섰다. 산 아래로 보이는 적의 빼곡한 병사들. 끝을 모르는 그들의 진군이 곧 주춤하게 될 것을 리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핀란드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군대가 있었다.
* * *
“신원 불명의 군대가 뒤에서 기습을 해오고 있습니다!”
“뭐?”
핀란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감을 내비쳤다.
“말도 안 된다! 아렌과 로빈타는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을 터!”
핀란드는 정찰에 무던히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이변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 부대 루나레이크입니다!”
“루나레이크는 대패하고서 본국으로 도망쳤을 텐데!”
핀란드는 그렇게 말하더니 리에르를 돌아보았다.
리에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어 보였다.
“적 지휘관들은 다 죽었다. 네놈도 정보로 확인했을 텐데.”
“네, 압니다. 알고 있지요. 각하.”
핀란드도 리에르의 업적을 잘 알고 있었다. 루나레이크에 있던 포스와 치열한 싸움을 반나절이나 벌였다. 그 덕분에 리에르도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복귀했었다.
“또 다른 적습 부대가 나타났습니다!”
“뭐?”
핀란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리에르는 보고를 위해 연이어 달려오는 전령들의 모습을 보면서 차갑게 조소했다. 그러고는 깁스를 풀어헤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적습 부대는 부흥군입니다!”
“부흥군은 사분오열했을 텐데……!”
핀란드는 이를 갈았다. 분명히 적의 지휘관들은 전멸했다. 그리고 그 지휘관들을 대신해서 군을 통솔할 만한 인재는 전무했다.
즉, 현재의 정세를 판단하고 도박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없었다.
“세계가 빛의 왕을 택한 거지.”
리에르는 아르카를 꺼내 들며 즐겁게 웃어 보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투용 흑마가 준비되었다.
빅스터는 패망한 부흥군과 루나레이크를 설득했다. 그들은 본국으로 후퇴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나타난 유트 왕에 의해 마음을 바꿨다.
지금 연합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페리안의 왕인 유트. 그가 직접 부흥군과 루나레이크를 찾아가서 설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트가 직접 부흥군과 루나레이크에 새로운 지휘관을 임명시키고, 새로운 전술을 지시했다.
“발칸 장군에게 루나레이크 쪽을 맡겨라! 하비 장군은 부흥군 쪽 전투 지휘를!”
핀란드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때 더 안 좋은 보고가 도착했다.
“산맥 아래에서 로빈타 왕국의 깃발이 세워졌습니다!”
“로빈타라고?”
핀란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렌 왕국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현재 돌격 대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렌? 아렌이 여기 있을 리 없다!”
핀란드의 눈가에서 핏발이 섰다. 그는 높은 단상 아래에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로빈타와 아렌 전군이 몰려온 것은 아니었다. 다급하게 선발대가 온 것뿐이었다. 하지만 군대에 있어서 사기란 것은 너무나 중요했다.
지금 지원군이 여기저기서 도착해서 교전 중이란 사실이 알려진다면.
“와라, 유트.”
리에르는 자신의 친위대인 흑기사들을 집합시켰다.
흑기사들은 그동안 전투를 하지 못해 좀이 쑤셨는지 하나같이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파고스에서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페리안 본대의 진격이었다. 가장 위험한 선두에는 항상 패왕, 유트 페브리안이 앞장서 있었다.
“로크 단장을 불러라! 수호기사 테리슈아 경도 불러!”
핀란드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만반의 준비를 거친 산맥 포위진은 허망하게 분열되었다.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쇄도하는 군세는 누구도 막지 못하고 있었다.
분열되고, 갈라진 포위진은 그것이 두 겹이든 세 겹이든 의미가 없었다.
“리엘, 전쟁은 이제 끝났어.”
아르미안은 출정 준비를 하는 리에르에게 다가갔다. 말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마왕은 선지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촉촉해져 있었다. 슬픔으로 이루어진 액체가 볼을 타고 턱을 적신다.
리에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차갑게 조소했다.
“아니, 이제 시작이겠지.”
리에르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열어 보였다.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나와 도망…….”
아르미안은 자신의 목에 닿는 칠흑의 장도를 보고서 입을 닫았다.
뚝뚝,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 그것을 바라보며 리에르는 비릿한 조소와 함께 말했다.
“도망? 하!”
“고집부리지 마. 이대로면 죽을지도 몰라!”
아르미안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리에르는 그녀의 말을 듣고 웃는 낯을 거두면서 증오를 뿜어냈다.
“죽은 놈이 또 죽을 리가 있는가?”
“…….”
아르미안은 입을 닫았다.
리에르는 제복을 걷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서 배를 드러냈다. 그곳에는 시커먼 암흑이 자리하고 있었다.
핏물을 제거하고, 곪은 상처를 소독했지만, 안에서 끝도 없이 진물이 흘러나왔다. 썩어가기 시작한 몸뚱이에는 자꾸만 구더기들이 달라붙었다.
그것을 보자 아르미안은 눈을 내리깔았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쏘아붙였다.
“아, 인간으로서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군. 언데드로서의 죽음을 말하나? 하! 그것참 감격스럽군.”
“그땐 그 방법밖에 없었어……. 널 죽인 것은 에레사잖니?”
아르미안은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는 듯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랑을 구걸하는 저주.
그녀는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올려다봤다. 하지만 이미 차가운 살기만 가득한 마왕은 빈정거림 이외의 것을 주지 않았다.
일 년 전. 리에르는 에레사에게 저주의 검으로 찔렸다. 아르미안은 리에르를 긴급하게 치료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리에르는 결국 숨을 거뒀다.
아르미안은 절망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교단밖에 없었다.
아르미안은 리에르를 되살리기 위해 언데드의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그의 검인 아르카와 협력하여 육체가 괴사하지 않도록 생명력 공급을 반복했다.
리에르는 저주로 인해 깨닫게 된 과거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결국 리에르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단 하나의 평화를 위해 다시 살아서 움직였다.
“이 전쟁을 위해서 나는 강제로 주어진 삶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저주받은 삶도 곧 끝나겠지. 그 뒤엔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갈 거야.”
리에르는 폭소했다.
스스로 어둠의 왕을 자처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빛의 왕이 나타났다.
유트 페브리안.
리에르는 자기 죽음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친우가, 자신에게 진정한 의미의 끝과 구원을 선사해 줄 것이었다.
‘유트, 넌 항상 나를 도와줬지.’
리에르는 붉은 이채가 흐르는 눈동자를 꿈틀거렸다.
‘이번에도 내 소망을 들어줘.’
아무리 억지스러운 말을 해도, 아무리 억지스러운 부탁을 해도 유트는 들어줬다.
친구이기에.
‘이 세상의 모든 악을 내가 가져가겠다.’
대륙을 반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대규모 전쟁. 이 전쟁의 승자가 앞으로 세계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면 안 된다. 오로지 유트 페브리안만이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날 죽여줘.’
진정한 의미로서의 죽음.
유트에게 죽는다면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도 자신이 죽인 이들이 계속해서 팔과 다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망령들이 나타나서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분명히 리에르의 죽음을 원하는 원망의 눈길과 말이었다.
유트 페브리안은 빛의 왕으로서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마왕을 죽인 남자로서, 대륙을 구원한 남자로서 명성을 떨칠 것이 분명했다.
“이제 시간이 없어요. 리에르, 약속의 때가 되었어요.”
부흥군과 루나레이크를 지휘하고 있는 은발의 미남자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명령에 따라 광신도들로 이루어진 애쉬문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은발의 미남자, 아니, 유트의 모습으로 변신한 엘 파실드는 황금의 샘이 부활할 시기에, 새로운 신이 선출되는 시기에, 세력도가 새롭게 짜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여태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 어떤 대륙의 역사에서도 두 갈래로 나누어진 세력이 빛과 어둠으로 나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신의 인지도를 올려주는 코스모스가 쇠퇴했다. 그리고 새로운 소망과 인지도는 한 인물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유트 페브리안.
신이 아닌 사람에게 모든 믿음이 집중되고 있었다. 진정한 인류의 구원자.
북방의 페리안일 때부터 리즈의 정책 아래 서민들을 구원했다. 그리고 전사들에게 싸울 수 있는, 명예로운 전장을 제공했다.
그 대가 또한 철저하게 지급했다.
“리에르, 이제 황금의 샘이 열릴 겁니다. 당신은 구원자를 각성시키는 제물이 될 겁니다.”
엘은 온화하게 웃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죗값을 갚는 방법입니다.”
칠흑으로 이뤄진 흑기사들이 움직였다. 그 선두에는 대륙을 공포로 물들게 한 칠흑의 마왕이 달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곧 제 죄를 갚기 위해 당신을 따라갈 것 같습니다.”
엘이 실소를 터뜨렸다. 곧 모든 것이 완성되면 테헤라자드가 급습할 예정이었다. 그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리에르였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어긋나면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애쉬문은 사방에서 공격받기 시작했다. 연합군이 공격이 매섭긴 하지만, 아직도 애쉬문의 병력이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무조건 막아라! 오늘만 넘기면 무조건 이긴다!”
핀란드의 외침과 지휘에도 불구하고 애쉬문의 진형은 점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날을 기다린 것처럼 연합은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핀란드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화공을 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기름통도 전부 불타고 말았다.
적의 공작으로 인해 진영 내부에서 불이 붙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애쉬문은 통솔이 되지 않았다.
핀란드는 이제 마왕의 힘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판단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 * *
“흑기사입니다!”
빅스터는 사령부에서 전장을 굽어 살펴보고 있었다. 모든 정세는 아군에게 유리했다.
그저 인원수만 많을 뿐인 애쉬문은 제대로 된 지휘 체계조차 성립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리에르 아르빈트의 공이 컸다. 교단에서 독재를 일삼고, 구 교단의 인재들을 전부 죽였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교단이 이렇게까지 손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마왕이 베리타스가 계신 방향으로……!”
“예비대를 베리타스께 보내라. 그리고 적의 추형진에 맞서서 어린진을 펼쳐라.”
예정되었던 수순이었다. 빅스터의 지시에 깃발이 움직였다.
아무리 유트를 믿고, 리즈라는 카드가 있어도 위험 요소는 최대한 줄여두는 것이 맞았다.
칠흑의 마왕이 선두에 서는 추행진처럼 무서운 것은 없었다. 대장이 선두에 서는 것만으로도 부대는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선두에 선 것이 대륙 최강의 영웅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악몽이었다.
시커먼 화살표가 질주했다. 페리안의 병사들이 방진 형태에서 호랑이의 입이 벌어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왕은 상대의 진형이 바뀌어도 무시했다. 그대로 돌파하면서 막아서는 것들을 전부 부서뜨리며 달렸다.
“쌍 안행진을 펼쳐라.”
갈라졌던 진형들이 다시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과 맞닿는 쪽은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단단히 막아섰다. 그 뒤로 궁병들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