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68)
레필리아 레소드-369화(368/398)
레필리아 레소드 369화
마왕의 최후(1)
“저 부대가 살아서 왕에게 도착하게 하지 마라! 그 전에 모두 죽여!”
빅스터의 명령과 함께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적들의 일제사격에 흑기사들이 무너져 내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앞만을 향해 달려갔다.
예상 이상으로 빠른 돌격 속도였다. 마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밀어닥치는 흑기사들 때문에 빅스터는 예비대를 투입했다.
흑기사들은 앞을 가로막는 적 기병들을 보면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랜스를 부여잡았다.
“적과 충돌한다.”
리에르의 말을 부관인 빈센트가 받아서 전달했다.
리에르는 칠흑의 장도를 옆으로 비껴들며 달려들었다.
3초 뒤.
서걱!
마왕이 정면을 향해 검격을 그어 내렸다. 삽시간에 말과 함께 잘려 나간 몸뚱이들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와 함께 흑기사들의 랜스가 적 기병의 가슴을 짓이겼다.
리에르와 흑기사들의 무용은 압도적이었다.
핏빛 안개를 뚫고서 돌격하는 리에르는 눈앞에 은의 전사들이 곧 있을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창을 비껴든 모습이, 방패와 칼날을 쥔 모습이 하나같이 남달랐다. 이런 정예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지킬 인물이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지금 간다.”
리에르는 핏기 서린 장도를 허공에 털어내며 이를 드러내어 소리쳤다.
“유트!”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리에르의 거침없는 돌격을 막기 위해 중보병들이 방패를 들고 장창을 겨드랑이에 붙였다.
하지만 리에르는 그것들을 가볍게 짓밟으면서 날아올랐다.
서걱! 푸쉭!
사방에서 병사들이 난도질당했다. 유트 페브리안, 은발의 패왕도 말 고삐를 돌려 흑기사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자, 날 죽여줘.’
리에르는 저주받은 생에 구원을 기도했다.
‘널 멈춰줄게.’
유트는 두 자루의 도를 말아쥐고서 정면으로 진격했다.
백과 흑이 서로를 겨냥하고 쏘아졌다. 둘은 서로를 마멸할 듯이 부딪혔다.
유트는 거의 동시에 도를 뻗었다. 하지만 곧바로 튕겨 나갔다. 순간적으로 손목이 부러지지 않았는지 의심되는 느낌이었다.
손가락과 손목이 마비되어 하마터면 도를 놓칠 뻔했다. 유트는 억지로 손의 감각을 일깨우며 버텨냈다. 두 부대는 서로에게 창과 검날을 휘둘렀다.
흑이 깎여 나갔다. 백이 잘려 나갔다. 두 개의 극단적인 색채가 서로서로 뒤엉켜서 조각조각 났다.
흑과 백의 조화롭게 무너지는 모습은 마치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회색으로 어지럽게 조각나는 색채.
두 집단은 서로의 색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양 베고, 또 베었다.
“자!”
리에르는 선회하여 다시 유트를 향해 돌격했다. 유트도 다시 리에르와 맞부딪히려는 듯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조금 전의 충돌로 유트는 확신했다. 리에르는 자신에게 살기를 갖고서 공격했다.
한 번도 리에르와 살의를 갖고 싸워본 적이 없었다. 서로를 친구로 생각했기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채엥!
둔탁하고 날카로운 철의 비명이 울렸다.
“베리타스!”
유트는 그대로 리에르의 일격을 받고 밀려났다. 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유트는 낙마해서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기병전에서 낙마한다는 것은 패배, 즉 죽음을 의미했다.
은의 기병들이 자신들의 주군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흑의 기병들은 적의 주군을 죽이기 위해 밀려들었다.
다시 한번 흑과 백의 기병들이 맞부딪혔다. 서로 마멸하듯이 산화하는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주군!”
“베리타스!”
사방에서 유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트는 쿨럭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 흙먼지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입안에서 배어 나오는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유트는 생각했다. 곧 교단은 전쟁에 패할 것이다. 그리고 대륙은 평화로워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유트는 왜 리에르와 싸워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단은 리에르에게 있어서도 원수였다. 유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이가 리에르에게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유트는 믿지 않았다.
친구가 동생을 죽였다는 말보다도 믿지 않은 것은 유이가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페리안에 유이의 시체를 담은 관이 도착했다.
잘려 나간 팔과 다리는 최대한 원위치로 붙여주었다. 페리안에 가는 동안 썩지 않도록 방부 마법도 걸려 있었다.
매우 유감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전달되었다.
유트는 유이가 자는 것처럼 편안한 것을 보고 깨우려 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였다.
유트는 리에르에게 물어봐야 했다. 정말로 동생을 죽였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
유트가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친구가 유이의 죽음에 관여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정말로 막을 수 없었는지를.
만약에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지 못한 것이라면. 죽음을 방치한 것이라면, 유이를 포기한 것이라면, 막을 생각이 없었던 거라면.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이미 유죄였다.
유트의 쌍도가 빛을 머금었다.
서걱, 서걱!
날카로운 은광이 허공을 그었다. 리에르가 내려친 장도를 막음과 동시에 유트의 검은 흑마를 베었다.
리에르가 탄 흑마는 균형을 잃고서 고꾸라졌다. 덕분에 리에르도 낙마하여 바닥에 균형을 잡고 섰다.
유트는 리에르가 높은 곳에 있었기에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같은 눈높이에 서 있었다.
“리엘.”
유트는 천천히 입가를 열었다.
“오랜만이다.”
“아아, 그래.”
유트와 리에르의 주변으로 주인을 지키기 위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대지 위에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절친한 친구. 서로가 서로에게 세계였던 존재.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물어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대화치고는 차가운 분위기였다.
“유이, 누가 죽였어?”
유트는 정말로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유트는 빛의 왕이라고 칭송받고, 모든 이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영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유트에게 있어서 유이는 단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그녀가 없다면 지금껏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리에르는 유트의 질문에 가슴이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이미 유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마음이 정리되었다. 하지만 유트가 유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니 리에르의 가슴속에는 다시금 슬픔이 차올랐다.
“내가.”
리에르의 말에 유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왜?”
정말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믿지 않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대단한 이유라도 대주고 싶지만.”
리에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에레사는 왜 죽였어?”
“…….”
에레사가 죽을 리 없었다. 그녀의 기억을 없애달라고는 했지만, 죽여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아이까지 죽였다. 아니, 자신의 생명력을 어떻게 해서든 늘리기 위해서 잡아먹었다.
“그런 것도 말해야 하나? 나는 지금 신성 왕국의 첫 번째 왕. 너의 나약한 벌레들을 내쫓으면 이제 황제의 관을 쓰겠지.”
“거추장스러웠다?”
“좋을 대로 해석해.”
리에르의 말에 유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누구보다 권력에 관심 없는 인물이 리에르였다. 이 바보 같은 녀석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녀석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우연히 에레사를 만났어. 잘살고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이상하게 너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라.”
“…….”
유트의 말에 리에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아니, 생을 끊어내는 잔혹한 단말마만 울려 퍼졌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뭐냐?”
애초에 에레사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도 리에르는 자신이 죽였다고 말했다.
“명줄 한번 질긴 년이네.”
리에르는 웃으면서 장도를 들어 올렸다.
“그래, 그렇다면 필사적으로 베리타스의 힘을 막고 있는 장막은 뭐냐?”
유트는 진실의 눈동자를 가동하고 있었다. 오래 사용하면 눈의 피로가 커졌지만,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는 거짓말쟁이와 대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리에르의 주변에 쳐진 방어벽은 진실의 눈동자를 무효화시키고 있었다.
“네 힘은 성가시다고 들었으니까.”
“내게 거짓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유는 뭐냐?”
리에르의 등 뒤로 칠흑의 날개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네 자유다만.”
“패배를 당해야만 솔직해질 수 있다면 거절하지 않을게.”
유트는 두 자루의 도를 말아쥐고서 자세를 갖췄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페브리안식 이도류. 리에르의 입장에서는 항상 무적으로 보였던 검식이었다.
“지금 대륙에서 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천재 아가씨.”
“넌 지금까지 날 이겨본 적이 없어. 낙제생.”
유트의 말에 리에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잔영만 남기고 사라졌다.
유트는 재빨리 몸을 회전시키며 도를 그어 내렸다. 바로 옆에는 리에르가 웃음을 지으며 공격을 막아냈다.
“반응이 좋은걸.”
“최강을 말하기엔 일러.”
유트의 왼손에 있는 개문도가 마치 버터 플라이처럼 손안에서 회전했다. 갑자기 들어오는 개문도를 보고 리에르는 뒤로 한 발 빠졌다.
은빛의 검광이 둘 사이를 스쳤다.
리에르는 그대로 반회전하며 검격을 횡으로 그어 내렸다.
유트도 반회전하며 똑같은 궤도로 검격을 그어 내렸다.
둘 사이에서 검광이 일으키는 불똥이 튀겼다. 두 자루의 도가 만들어내는 백광은 리에르의 전신을 찔러 들어갔다.
리에르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그것들을 튕겨내며 반격했다.
유트는 장도인 개천도로 리에르의 흑도를 튕겨내고, 밀어냈다. 그러면서 단도인 개문도로 예리한 반격을 계속했다.
하지만 리에르는 그런 공격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마치 유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스텝을 다시 밟으며 흐름을 바꿨다.
서로가 몇 번이나 자리를 바꿨다. 서로가 몇 차례나 검을 부딪치고, 피해냈다.
리에르는 유트를 제압하기 위해 레필리아 레소드의 검식을 운용하며 공격했다. 하지만 유트는 마치 레필리아 레소드를 전부 아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리즈에게 공략법이라도 전수받았나?”
“어느 정도는.”
리에르는 유트가 자신의 변칙적인 검무에도 대응하는 것을 보고 조소했다. 역시 유트는 잔인할 정도로 천재였다.
“그래, 그럼 이건 어떨까?”
아르빈트 가문의 신검술은 일곱 가지 식이 있었다. 보통 아르빈트 가문의 사람들은 정도를 추구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식을 연마했다.
형 파에트 아르빈트의 절기는 4식 스톰 브링거였다. 아버지 로이스타 아르빈트는 6식 승천이었다.
그리고 리에르에게 가장 알맞은 것은 1식 템페스트였다.
장도를 상대를 반 토막 낼 생각으로 베어낸다. 유트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지 않고 흘려냈다. 그와 동시에 단도를 들어 빈틈을 찔러 들어갔다.
리에르는 유트의 단도 쪽으로 손을 뻗었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행동이었다. 유트는 갑자기 뻗어 나온 리에르의 손에 손목을 잡혔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이 허공에 내쳐진 것이 느껴졌다.
유트는 가까스로 몸을 회전하여 낙법에 성공했다. 착지하는 순간 리에르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유트는 최대한 팔을 들어 발차기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힘이 전달되고 있었다.
“큽.”
유트는 하마터면 바닥을 뒹굴 뻔했다. 옆으로 몇 걸음 물러선 유트는 곧바로 리에르의 장도가 찔러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유트는 그것을 다시 한번 장도로 쳐내고, 단도로 견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에르는 셔빙(Shoving)으로 유트의 공격을 쳐냈다.
그 뒤에 오는 것은 로우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