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69)
레필리아 레소드-370화(369/398)
레필리아 레소드 370화
마왕의 최후(2)
펑!
유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휘청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다리가 잘려 나간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몸의 균형이 깨진 유트의 목을 향해 리에르의 장도가 쇄도했다.
유트는 그대로 상반신을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리에르의 턱을 걷어찼다.
타격을 입은 리에르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유트는 겨우 거리를 벌려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제대로 된 포스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무섭게 강했다.
유트는 리에르가 일부러 검술만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리엘이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릴 수밖에 없어.’
유트는 정면으로 맞붙어 싸워서는 리에르를 제압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기회는 오로지 지금뿐이었다.
‘순수하게 검술만 따진다면 내가 질 요소는 없다.’
유트는 쌍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간격을 재기 시작했다.
‘절대 질 리가 없겠다고 생각하겠지. 난 그저 포스를 얻어서 강해진 애송이에 불과하니까.’
리에르는 유트의 생각을 읽어내면서 조소했다. 그는 장도를 높이 들어 유트의 머리를 겨누었다. 유트는 가문의 검술 초식으로 공격해 올 게 분명했다.
“하압!”
유트의 장도가 먼저 허공에 백광을 흩뿌렸다. 리에르는 그의 도를 쳐내는 것과 동시에 한 발 앞으로 전진했다.
초근접전.
빙글빙글 돌아가며 찔러 들어오는 유트의 단도.
리에르는 그것을 셔빙으로 쳐냈다. 그리고 다시 로우킥을 가격하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는 순간이었다.
피쉭!
리에르의 허리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허초(虛式).
공격이되, 공격하지 아니한 것.
리에르가 몸을 틀면서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연환(聯換).
첫수의 공격은 다음 수를 예상하고 그림을 그리듯 이어진다.
유트의 발이 리에르의 발을 밟았다. 더 이상 몸을 뒤로 뺄 수 없었다.
유트식, 테네 엑소르(Tenebrous exorcizo).
악귀를 베어내기 위한 우아한 검광이 붓칠하듯이 사방을 도려내고, 베어냈다.
리에르식, 템페스트(Tempest) 월광(月光).
검격은 폭풍과도 같고, 만들어진 검광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두 사람 사이에 몇 차례의 검격이 교차했다.
유트는 뒤로 물러서며 거칠게 숨을 몰아붙였다. 순식간에 많은 호흡을 낭비해서 집중했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리에르는 겨우 치명상을 면한 채로 뒤로 물러섰다. 자신이 만들어낸 물리 방어벽은 쓸모가 없었다.
유트가 가진 무구는 그의 방어벽을 우습게 뚫고 들어왔다.
주르륵.
리에르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그것을 대충 훑어내면서 리에르는 힘을 갈무리했다.
“나에겐 오로지 이 검밖에 없어. 이 힘 저 힘에 손댄 너에게 질 만큼 허투루 익혀둔 게 없어.”
“자신만만하군그래.”
유트의 말에 리에르가 크큭, 웃으면서 대꾸했다.
“무엇보다 전쟁에서도 패배했어.”
흑기사들은 최정예였기에 주변의 적들을 계속해서 죽였다. 하지만 점점 몰려드는 적들 때문에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각하, 더 이상은 시간이!”
흑기사 부관 빈센트는 밀려드는 적들을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도망가지 마, 리엘!”
유트의 외침에 리에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은 흑기사들이 분투하고 있어서 적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좋겠지.”
리에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흑기사들이 가져온 말에 올라탔다.
“다음에 네가 상대할 것은 리에르 아르빈트가 아니라 애쉬문의 마왕일 거다. 최선을 다해서 와라.”
“멍청한……!”
리에르는 그대로 흑기사들을 이끌고 적진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마왕을 잡기 위해 병사들이 막아 세웠으나, 누구 하나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정예인 흑기사는 480여 명에서 이제 300명만 남게 되었다.
리에르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하지만 진짜 손실은 따로 있었다.
연합군의 갑작스러운 전략으로 인해서 애쉬문은 치명적인 손실을 보았다. 무엇보다 성전 지하드의 선포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연합군의 빅스터 나이브만은 이미 지하드 대책 전략을 세워두고 있었다. 지하드 선포 때문에 교단 세력권은 대다수 무방비 상태였다.
아주 소수의 결사대만으로 모든 도시와 마을은 점령 상태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청이 점령되었다?”
“네…….”
리에르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고서 아르미안을 바라보았다.
“본청이 점령되는 바람에 지하드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어.”
“그래, 이제는 진짜로 고립되었군. 병사는 얼마나 남았지?”
리에르의 말에 아르미안은 입술을 닫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그녀는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더니 겨우 입을 텄다.
“리엘, 차라리 우리…….”
짝!
정찰병은 갑자기 맞는 소리가 나자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사람처럼 고개를 조아리기만 했다.
“남은 병사를 물었다.”
아르미안은 리에르에게 뺨을 맞아 볼이 부어올랐다. 입술은 찢어져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5천 3백 명 정도.”
“그래.”
이미 지하드가 풀린 병사들은 전부 살길을 찾아 도망쳤다. 전투에서 지지 않았다면 그들이 이렇게 탈영하기 쉽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교단군은 대패를 당했고,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상황이었다.
“람세스 성에서 수성을 준비한다.”
“무리야.”
람세스는 본청 인근에 있는 작은 성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화공을 당해 많은 물자가 손실된 상황이었다.
본청을 잃은 애쉬문은 더 이상 결집할 구심점이 없었다.
“거기서 최후를 기다린다.”
“…….”
리에르는 조소하면서 말했다.
리에르가 없던 동안에 군을 지휘하던 핀란드는 어딘가로 도주를 한 상태였다. 군의 지휘부도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리에르가 수성한다 해서 그들이 구원을 올 리도 없었다.
‘차라리 내가…….’
아르미안의 눈가가 독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었다.
이제는 리에르의 과거가 어떠니, 생각이 어떠니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신권을 되찾을 수 있고, 리에르를 구원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참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리에르는 명백하게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 아니, 몇백 년 뒤에 다시 환생한다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독이라는 병에 시달려서 머릿속의 나사 하나가 나가버린 그녀였다.
‘차라리 시체만이라도 내가.’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주면 된다. 의식이 없어도 좋았다. 그저 그가 자신의 것이 되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시체 애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아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리에르는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현재 인간들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았다.
신보다는 눈앞의 현실에 집중했다. 눈앞에 있는 영웅이 주는 구원에 귀를 기울였다.
인지도, 점유율이 떨어진 신은 교체되게 된다. 새로운 신이 선출되는 곳은 황금의 샘이었다. 거기에 아리아의 무구를 가져가면 시스템 변경에 대한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리에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자신이 어째서 황금의 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의아해졌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의 선출과 모든 비밀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와라는 존재였기에? 아리아였기에?
아니었다.
리에르는 뭔가 갑작스럽게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기억해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정확한 단어로 떠오르지 않고서 머릿속에서 일그러졌다.
-나의 자드.
순수함으로 물든 검은색 머리카락의 소녀.
소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에게 뛰어들었다. 그에게 그런 식으로 안기면 항상 크고 다정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위험하잖아요.”와 같은 핀잔을 줄 것이다.
소녀는 이 세상에서 그가 가장 좋았다. 그와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소녀가 사랑하는 자드는 항상 다른 세계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불공평했다.
그래서 소녀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나의 자드. 직접 그들을 구원해 봐.
소녀의 말에 자드는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소녀는 기대했다. 자신을 택해주기를. 하지만 자드는 소녀의 제안대로 지상으로 내려갔다.
소녀는 혼자 남겨졌다.
-그래, 나만을 바라보게 해줄게. 어차피 내기는 내가 이길 테니까.
소녀는 핏발이 선 눈동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수십 년이 지나고, 백 년이 지난다. 그렇게 까마득한 시간이 흐르고.
소녀는 미치고 말았다.
* * *
-우리는…….
이미 썩어버린 팔이 손가락이었던 막대를 펼친다.
-우리는……. 원한다…….
이제는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썩은 고깃덩어리들. 그것들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았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달라붙었다. 구역질 나는 썩은 냄새를 풍기면서도 그것들은 끝없이 말을 걸었다.
-우……. ……를 원한…….
뭘 원하는 건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적혈의 악마로서 각성한 이후로도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걱정 마. 곧 네놈들과 함께 있게 될 것 같으니.’
청년은 광기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잠만 들면 달라붙는 망자들. 이제는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곳에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있었다. 수 세기 이전의 썩은 시체들도 있었다.
-……리…… 엘.
청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리…… 엘.
다시 한번 들렸다. 거짓이 아니라는 듯이.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검푸른 머리카락의 청년이 서 있었다.
자신과 닮은 얼굴. 이제는 볼 수 없어야 하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아직 썩지 않은 채로.
-우리가……. 원…… 하는……. 그게 아니…… 다.
다시 망자들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수십, 수백 개의 팔이 청년의 발을 끌어당겼다.
자신들이 있는 지하로 와서 같이 썩어달라는 것이 저들의 염원이었을 터다.
청년의 그 생각에는 지금도 달라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는 슬픈 표정을 하는 파에트 형이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듯이 동생을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안타까운 듯이 쓰다듬으려 한다. 아니, 원망하는 걸지도 몰랐다.
무엇이 되었든 알고 싶지 않았다.
* * *
리에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루하루가 같은 일상이었다.
죽은 이들이 항상 자신의 곁을 맴돌았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은 특별한 꿈이었다.
파에트 형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형의 얼굴은 아직 썩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죽은 사람답게 창백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고, 너무나 음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쾅!
리에르는 맨손으로 벽면을 때렸다. 일반 사람 같으면 주먹을 걱정해야 했지만, 오히려 벽에 주먹 자국이 남았다.
이젠 지긋지긋했다. 지옥과도 같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도피하고 싶었다.
리에르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곳곳에서 악취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배에는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에선 하수구가 역류하는 것처럼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절대로 낫지 않는 죽음의 상처. 저주받은 칼날의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