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73)
레필리아 레소드-373화(373/398)
레필리아 레소드 373화
마왕의 최후(5)
유이의 이야기가 나오자 유트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직도 깊은 가시처럼 박힌 상처였다.
“내가 악마가 된 이유를 아나?”
리에르는 장도를 들어 유트의 머리를 겨누었다.
“최강의 아버지, 천재인 형이 지긋지긋했다. 잘난 친구가 옆에 붙어 다니면서 항상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항상 네 녀석의 존재를 증오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
리에르의 등 뒤로 칠흑으로 빚어진 홀 블레이드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마치 먹물을 끼얹은 듯이 주변이 어두워졌다.
“유일한 혈육도 지키지 못해 고기 조각이 되도록 방치한 네 책임이다.”
리에르의 비아냥에 유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이었다. 항상 같이 있었고, 항상 함께했었다. 그런 여동생이 조각난 시체로 돌아왔을 때는 현실을 부정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동생의 시체는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잔혹할지언정, 현실을 직시하라고.
죽기 전까지 온갖 능욕을 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냥 완자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넌 옆에 있으면서 지키지 못했잖냐!”
유트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지킬 이유가 없었다.”
리에르는 냉랭한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래서 죽였다. 감히 왕을 능멸한 죄로.”
“리엘, 너 정말…….”
유트의 눈에서 금빛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닥치고 오기나 해.”
리에르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그래, 일단 널 제압하고서 대화하겠다.”
“솔직하게 분노해도 된다. 네 여동생의 복수를 해.”
유트는 더 이상 리에르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튕기듯이 움직인 유트는 쌍도를 들고서 검기를 끌어모았다.
리즈의 등 뒤에서 붉은 날개가 펼쳐졌다. 엘의 등 뒤로도 백색의 날개가 펼쳐졌다.
한 명의 천재, 두 명의 포스.
분명히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넉 장의 날개를 여유롭고 힘있게 펼쳐내며 흑도를 높이 들었다.
유트의 선공이었다.
번개처럼 번뜩이는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유트의 장기인 쌍수 공격이었다. 장도를 막으면 단도로 괴롭힌다. 단도를 신경 쓰면 날카로운 장도가 목을 노린다.
하지만, 리에르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뭐?”
유트는 리에르의 왼팔이 자신의 오른팔을 잡는 걸 보았다. 그리고 턱 밑으로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유트는 반사적으로 단도를 들어서 공격을 막아냈다.
키이잉!
검과 검의 마찰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너무 강한 일격 때문에 유트는 그대로 밀려났다.
펑!
리에르의 호쾌한 뒤돌려차기가 유트의 배를 가격했다. 그대로 유트는 땅바닥에 물수제비처럼 수차례 튕겨 나갔다.
유트가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사이, 리에르는 홀 블레이드 몇 개를 추격하듯이 던졌다.
칠흑의 검날은 이내, 붉은 창날과 맞부딪히며 폭발했다.
리즈는 리에르를 향해 수백 개의 빛을 한꺼번에 뿌려냈다. 그것 하나하나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만한 마력이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진각을 밟으며 가볍게 모든 것을 흡수해 냈다.
엘은 유트의 몸에 회복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불시에 일격을 먹은 유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입가를 훑었다.
손등으로 핏물이 묻어 나온다.
유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번에 검을 맞댄 리에르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지금 리에르는 전심전력으로 칼을 뽑았습니다. 어중간하면 당합니다.”
“……충고 고맙군요.”
유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무기를 말아쥐었다.
“좀 싸우기 편하게 만들어드리죠.”
엘은 그렇게 말하며 유트에게 자신이 가진 마력을 아낌없이 사용해 버프를 중첩시켰다.
유트는 삽시간에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컨디션이 최고가 된 듯한 상태였다.
“저 리에르는 저희 셋이 덤벼도 힘들 겁니다.”
엘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도 마력을 혼용하며 버프를 만들어냈다.
엘의 시야에 리즈의 붉은 마력이 리에르를 향해 폭격하듯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리에르의 손길 한 번, 눈길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의 움직임을 벗어난 섬광 같은 몸놀림으로 장도를 그어 내렸다.
천하의 리즈마저도 리에르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다.
“리엘!”
유트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이도를 휘둘렀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유트의 칼날을 전부 가볍게 받아쳤다.
원에서 원으로, 호에서 호로.
레필리아 레소드의 방어 검술이 매끄럽게 유트의 공격을 흘려 내버렸다.
리에르는 그대로 칼날을 바꿔 들며 유트의 품을 찔러 들어갔다.
유트는 다급하게 뒤로 후퇴하면서 흑도를 쳐냈다.
리즈의 언월도가 리에르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리에르는 신검술 템페스트를 운용해서 언월도를 피해 공중에서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였다.
펑!
리에르의 발차기가 리즈의 가슴을 가격했다. 리즈는 뒤로 한 보 물러났기에 큰 타격은 피했다. 하지만 연달아 들어오는 리에르의 흑도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탁!
리즈를 향해 리에르가 폭풍처럼 돌입하자, 중간에 엘이 개입했다. 하단, 중단, 상단 차기가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리에르는 뒤로 한 보 빼면서 회피했다. 그러고는 아르카를 그대로 찔러 들어갔다.
엘은 뒤로 고개를 젖히며 뒷걸음질해서 피했다. 하지만 갑자기 흑도가 날아들었다.
엘은 다급하게 손을 들어 흑도를 마력으로 막아냈다.
텅!
흑도가 튕겨 나가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 사이 리에르는 엘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퍽!
리에르의 보디 블로우가 엘의 허리를 가격했다. 엘은 손끝을 털어내며 백색의 섬광을 흩뿌렸다. 리에르는 가볍게 흑도로 마력을 갈라버렸다.
“아직은 버틸 만한가요?”
“포스를 되찾았군, 축하해.”
리에르는 무미건조하게 말하며 흑도를 고쳐 잡았다.
그때 심상치 않은 마력이 꿈틀거렸다. 리에르는 그대로 뒤로 회피했다.
피하기 직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로 붉은 창이 쇄도했다. 그와 동시에 리즈의 웨이브 캐스팅이 이어지고 있었다.
리에르는 아예 그의 주문을 무시하고서 엘에게 달려들었다.
엘은 이미 전신에 버프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상태였다. 운동능력은 리에르에게 부족하지만, 이미 초일류의 몸놀림을 갖게 되었다.
불꽃의 구체가 허공을 태우며 날아들었다. 하지만 리에르의 앞에 펼쳐지는 장막은 그것을 말끔하게 흡수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의 손길은 리에르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다만 더욱 날카롭게 장도를 베고, 찌르고 들어왔다.
엘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리에르의 공격 하나하나가 무거웠다. 이런 공격을 유트가 막아내고 있었다는 것이 대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리에르는 엘의 허리를 확실하게 노리고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하지만 갑자기 찔러 들어온 칼날이 막아섰다.
챙!
칼날의 울부짖음. 살의를 품지 못하는 슬픈 날붙이가 춤을 추듯이 움직인다.
리에르는 유트의 도격을 막아내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대륙에서 마왕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유트는 패왕으로서가 아닌, 초일류 기사로서 리에르와 검무를 추고 있었다.
Tenebris(테네브리스) 어둠 몰아내기.
황금의 그림자가 은광의 선율을 그려낸다. 두 개의 곡선이 허공에 붓칠하듯이 수 놓였다.
유트가 보여주는 가문의 비검은 리에르가 쓰는 가문의 비검과 닮아 있었다.
리에르의 템페스트는 격투기와 검술의 혼용이지만, 유트의 비검은 날카로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삭풍처럼 찌르고 들어왔다.
허초(虛招)와 실초(實招). 변초(變招)와 살초(殺招). 이것을 연계하는 연환(聯換).
백색의 검광이 흑색을 지워내듯이 베어내고 찔러 들어온다.
흑색의 검광이 영역을 지배하려는 듯이 공간을 넓히고, 위협한다.
이번에는 유트도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리에르는 유트를 베어버리려 했지만, 계속해서 엘이 얄미울 정도로 견제를 해 들어왔다.
유트를 제치고 가려니, 쉽게 제쳐지지도 않았다.
그 사이 리즈는 주문을 완성 시켰다. 기존에 리에르의 방어막을 꿰뚫었던 초월기 중의 하나였다. 거대한 눈동자가 열리자 붉은 광선이 번뜩였다.
쾅, 콰앙!
사정없이 쏟아지는 광선은 오로지 리에르에게만 쏟아져 내렸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진각을 밟아 연달아 마력 방어막을 쳐 보였다. 하지만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은 달랐다.
다시 옆에서 찔러 들어오는 유트의 칼날이 번뜩였다.
챙!
리에르의 흑도가 유트의 검을 가로막았다. 그와 동시에 로우킥을 가격했다. 하지만 유트는 가볍게 뒤로 점프했다.
“자, 받아보시죠.”
리즈는 요염하게 웃으면서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눈동자를 그대로 낙하시켰다.
비홀더의 눈동자는 그대로 큐브처럼 갈라지더니 거대한 그물 형태로 바뀌며 적을 감싸 안았다.
리에르는 후우, 숨을 내쉬면서 아르카를 붙잡은 손에 마력을 흩뿌렸다.
고통이 느껴지지만 리에르는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죽은 몸에 고통 따위는 사치일 뿐이었다.
아르카가 없다면, 회복 마력을 받지 못한다면 리에르는 몸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가 에레사의 아이와 아일 하사드를 흡수하지 않았다면 마력을 충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에르는 아르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발락시아 개방(開放).
순수한 백색의 거대한 광선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리에르는 그것을 그대로 베었다.
리즈의 핏빛 초월기는 광선에 녹아 들어가며 산화하였다. 주변의 공기가 뒤흔들릴 정도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엘이 근접해 왔다. 그의 등 뒤로 피어오르는 순백의 날개가 확 하고 불타오르는 듯이 빛을 발했다.
발경(發勁).
엘의 마력과 체술이 합쳐진 기술이었다. 리에르의 보호막은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우습게 부서졌다.
처음 보는 광경에 리에르도 방심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리에르는 뒤로 쭈우욱 밀려났다.
그 사이 유트의 개천과 개문이 마력으로 뒤엉켜진 채 번뜩였다.
리에르는 그것을 보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사라진다. 아르카의 흑광이 흩어져 내려간다.
유트의 검기가 정확히 리에르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무방비한 리에르를 보고 유트는 억지로 입술을 깨물고서 궤도를 틀었다.
무리한 기동으로 팔의 근육이 뒤틀리고,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칼날은 리에르의 가슴 대신에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유트는 공격을 회수하며 숨을 정리했다.
리에르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에워싼 세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래.”
유트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아무리 리에르 아르빈트가 강하다 해도 세 명이 공격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에게 죽을 생각이었냐?”
유트의 말에 리에르의 미간이 좁혀졌다. 방금 조금만 더 깊이 검이 찔러 들어왔으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트는 무리해서라도 검의 궤도를 바꿨다.
“나에게 그런 짐을 줘야만 하겠냐?”
유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리에르는 유트의 눈동자가 금빛 이채를 발하는 것을 보았다. 집중해서 싸우다 보니 이미 방어막이 공격으로 인해 찢어진 것을 깜박했었다.
유트는 다시 자신의 고유 기술인 진실의 눈동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리에르의 진실을 꿰뚫어 보게 되었다.
“빌어먹을!”
유트의 금빛 눈동자 안으로 리에르의 썩어가는 몸이 보였다. 이미 생명의 불꽃을 잃어버린 몸이었다.
감정조차 잃어가는 몸을 이끌고,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기 전에 자신의 죗값을 짊어지려 하고 있었다.
“리즈, 알고 있었어요?”
“아니요.”
리즈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붉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유트는 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