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74)
레필리아 레소드-374화(374/398)
레필리아 레소드 374화
마왕의 최후(6)
“네, 제가 주도했어요. 안 될 것 뭐 있나요? 이미 시체인데?”
“당신……!”
유트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눈가를 불로 지진 듯이 뜨거웠다. 안구가 고장 난 듯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유트는 그대로 엘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결국, 유트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단 하나뿐인 혈육을 잃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에 더해, 단 하나뿐인 친구를 잃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을 위해 검을 들었고, 무엇을 위해 왕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리에르의 목을 취하세요, 유트 왕.”
엘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조와 다르게, 그것은 유트에게 있어 굉장히 잔인한 말이었다.
“그래야만 아리아의 무구의 사용권을 받아올 수 있습니다.”
“엘 파실드……!”
유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명백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일개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지독한 살기였다.
엘은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괴물 중의 괴물인 포스를 상대로도 굴하지 않는 모습. 충분히 패왕으로서 이 재앙을 끝낼 수 있을 위인이었다.
“유트, 이미 눈동자의 힘으로 봤겠지만.”
리에르는 천천히 유트에게 걸어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장도는 어느새 큐브 형태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에겐 시간이 없어. 이미 하루의 대다수는 나로서의 기억이 없어.”
“빌어먹을…… 자식아!”
유트가 이를 사리물었다. 초췌한 리에르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의 리에르는 온갖 마법과 과학기술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명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점점 시체로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즉, 완벽한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트, 날 도와줘.”
리에르가 웃어 보였다. 유트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넌 정말 부담스러워.”
유트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리에르는 어릴 적부터 유트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검술이 대단하다고 했다. 페이서스 유년생 중 가장 강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유트는 아니라고 겸양했다. 그리고 친구의 기대를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리에르는 그냥 스쳐 지나가 듯했던 말이라도, 유트는 그것을 기억하고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알고 있어.”
리에르는 유트의 노력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북방의 패왕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한때는 페이서스에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던 고아 남매에 불과했다.
자신은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근사하게 성장하는 친구를 보며 위안을 느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유트는 거부했다.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은 없어.”
리에르는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주저앉아 있는 유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실 거의 한계였어.”
“…….”
유트는 리에르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죽어 있다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정확히 말해서, 이제 리에르 아르빈트라는 인간은 없었다.
“짐을 지우는 것은 미안하지만.”
누구나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죽음을 거부하고 있을 수 없었다.
시한부의 목숨이라면, 그것도 한 달도 버티지 못할 몸이라면, 죽는 방식은 직접 택하고 싶었다.
“적어도 네가 날 쉬게 해줬으면 좋겠어.”
“미친놈.”
유트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리에르는 유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에는 개천도가 쥐어져 있었다.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전쟁의 끝을 말하는 외침이었다.
람세스 성이 함락당했다는 것은 교단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리고 연합군은 대륙의 평화를 위해 앞장설 것이다.
연합군의 중심은 유트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울러 아렌과 손잡은 페리안은 대륙을 통일할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거기에 강력한 힘을 보탠다. 거기에 칠흑의 마왕을 죽였다는 명예를 준다.
리에르가 유트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그 선물은 대륙을 평화롭게 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유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유트.”
대답하지 않는다.
“유트.”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유트!”
유트는 리에르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유트의 동공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유트의 손을 잡아당겨 그대로 칼날에 몸을 맡겼다. 유트는 다급하게 손을 뒤로하며 리에르와 거리를 벌렸다.
하마터면 개천도의 날카로운 칼날이 친우의 가슴을 꿰뚫을 뻔했다.
“다른 방법을 찾겠어.”
유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리에르의 표정은 처연하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친구의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그러나 의미는 없었다.
유트는 리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유트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데도 그는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최선의 방법은 이거야, 유트 페브리안.”
리에르는 다시 유트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리고 이 저주받은 운명에서 벗어난다.
죽어서도 안식을 허락받지 못하는 괴물에게 심판을.
“그 말이 맞다, 유트.”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실을 보려 하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거다. 그것은 이미 부패한 고기에 불과하다, 유트 페브리안.”
유트는 갑자기 나타난 인물의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들어본 목소리였다.
리에르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분명히 자신이 일 년 전에 죽였던 사람이었다.
“이야, 리엘 군. 오랜만이네?”
티미 아크우드.
짧은 스포츠 머리카락의 남성은 유들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걸어 나왔다. 이미 죽은 인물이 분명했다.
리에르가 직접 그의 몸을 도려내고 지옥행 급행열차를 끊어주었었다.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거야?”
티미는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등 뒤로 흰색의 날개가 펼쳐졌다.
환하게 빛을 뿜는 깃털은 마력으로 이루어졌다. 그것들이 한데 모여 날개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포스를 의미하는 날개였다.
단, 포스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포스 오브 그리드. 전 개체명 티미 아크우드.”
티미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천천히 손에서 황금의 검을 소환해 냈다.
유트는 분명 죽었다고 알고 있던 티미가 등장하자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리에르를 비롯한 다른 포스들은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본디 포스란 존재는 한 시대에 한 명만이 존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아니, 그 원칙조차 사실은 전해진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것을 만들어내고 설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창조주였다.
“우정 놀이가 끝났으면 이제 사업 이야기로 들어가도 될까?”
티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황금의 검을 흔들며 유트와 리에르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리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칠흑의 날개를 사방으로 펼쳐내 보였다. 명백한 살기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티미뿐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갑자기 강력한 마력들이 느껴졌다. 안에서 하나둘씩 소환되어 나타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등 뒤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소개할게. 포스 오브 글러트니.”
마치 아귀의 이빨을 가진 것 같은 거대한 뚱땡이가 군침을 삼켜대고 있었다.
“포스 오브 러스트.”
기괴한 손톱을 가진 난쟁이는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사냥감들을 바라보았다.
“포스 오브 프라이드.”
금발 머리카락의 잘생긴 남성은 리에르들을 향해 윙크를 선보였다.
“포스 오브 앤비.”
“아니, 소개할 것 없어.”
리에르는 그대로 손을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칠흑의 장도가 소환되자 그것을 움켜쥔다.
“다 뒤질 건데, 뭐.”
탁!
리에르는 그대로 튕기듯이 사라졌다. 소개를 받기 위해 포즈를 잡고 있던 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성은 몸을 움찔했다.
리에르는 그대로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의 머리끄덩이를 붙들었다. 그와 동시에 가볍게 목에다 흑도를 그어 보였다.
주륵.
붉은 혈선이 여성의 목에 그어졌다. 소개도 받지 못한 여성의 목을 잃은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졌다.
포스를 상징하는 날개가 산화하여 사라졌다. 흰 깃털들이 흩날리는 속에서 머리를 잃은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티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다들 잘 봤지? 방심하면 오히려 잡아먹힌다.”
“흐응, 그런 것 같네에~?”
리에르의 손에 붙들린 보랏빛 여성의 머리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리에르는 재빨리 머리통을 던졌다.
하지만 머리통은 그대로 돌아 긴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리에르의 전면으로 칠흑의 장막이 펼쳐졌다. 여성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방어벽에서는 지글지글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 개자식아!”
근육질의 험상궂은 남성이 거대한 헬버드를 들고서 횡으로 그어 내렸다.
호쾌한 창격은 그대로 창공을 찢어냈다. 리에르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흑도로 공격을 튕겨냈다.
“얼굴 까먹지는 않았겠지, 이 애송이 자식아?”
리에르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전에 로빈타에 암살을 나섰을 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장로 중의 한 명인 라스였다.
그는 분명히 죽었었다. 아니, 티미도 죽은 것이 분명했다.
시커먼 그물이 촤라락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펼쳐졌다.
리에르는 재빠르게 뒤로 회피했다. 이것도 낯익은 기술이었다.
“여전히 빠르구먼, 자네는.”
끌끌거리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깊게 눌러쓴 후드를 들어 보이며 노쇠한 얼굴을 드러냈다. 긴 흰 수염을 가진 마른 노인은 이전에 코스모스 교단에서 대장로를 하고 있던 헬이었다.
그 역시 리에르에게 죽었었다.
“죽은 놈들 반상회라도 있는 거냐?”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하며 흑도를 어깨에 둘러멨다. 전부 다 포스의 힘을 흩뿌리고 있었다.
인간일 때도 강자였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포스로 변했으니, 분명 막강한 이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예로 목이 잘려 나갔던 보랏빛 여성도 어느새 자신의 목을 갖다 대고서 열심히 꿰매고 앉아 있었다.
여성을 제외한 여섯 명의 흰 포스들은 리에르를 에워싸고 있었다.
리에르는 여유로웠다. 그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거 참…….”
붉은 창들이 어지럽게 솟아올랐다.
붉은 마도사, 리즈는 대놓고 리에르만 공략하고 있는 흰 포스들을 보며 조소하고 있었다.
“대놓고 이쪽은 무시인 건가요? 감히, 저를?”
리즈의 살기가 마치 안개처럼 사방을 감싸기 시작했다.
유트도 갑자기 나타난 적들을 베기 위해 쌍도를 고쳐 잡으며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리에르, 유트, 리즈, 엘 vs 흰 포스 일곱.
리에르를 흰 포스들이 둘러싸고, 그 둘러싼 포스들을 리즈, 유트, 엘이 둘러싼 형국이 되었다.
“너희들은 좀 나중에 상대해 줄 테니, 기다려 주겠어?”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이군요, 티미.”
유트의 냉랭한 말에 티미는 여유롭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기다리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