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75)
레필리아 레소드-375화(375/398)
레필리아 레소드 375화
마왕의 최후(7)
티미의 말과 함께 주변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병장기의 부딪힘, 그리고 비명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분명 전쟁은 끝난 상태였다.
연합군의 대승으로.
하지만 흰 갑주를 걸친 존재들이 사방의 창문과 문을 부수며 나타났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학살을 했는지 하나같이 피로 얼룩져 있는 상태였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등 뒤에 흰 날개를 달고, 머리 위에선 빛나는 고리가 어떤 상징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선배라고 불러.”
티미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너 같은 선배를 둔 적 없어.”
유트가 대꾸했다.
“그래, 나 같은 선배를 두기 힘들지. 넌 겨우 북방의 버려진 땅에 들어가서 왕 노릇을 하고 있지만, 난 이제 진정한 이 세계의 왕으로서 등극했거든.”
티미는 그렇게 말하며 손짓을 해보였다.
흰 갑주를 걸친 천사들은 각각 창, 검과 방패를 들고서 포위 전진을 시작했다.
“하!”
엘이 유쾌하다는 듯이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리즈도 미간을 찌푸린 채 사방을 경계하며 마력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아 설계하기 시작했다.
지금 주변에 다가오는 병사들은 약 백여 명 정도였다. 그리고 정말 끔찍하게도 하나하나가 포스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괴물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백 마리나 있었다면 아무리 대군이 있어도 막아내지 못할 터였다.
“하암.”
당장에라도 전투가 시작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누군가가 하품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모였다.
“기다리느라 지루한데, 이제 한판 붙으면 안 될까?”
“안 될 것 없지.”
리에르의 빈정거림에 티미는 턱을 들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흰 포스들은 일제히 리에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리엘!”
그 광경을 보고 유트가 이를 사리물며 도와주러 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창을 앞세운 천사들에 의해 진로가 막힌 상태였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글러트니라는 뚱땡이였다. 그는 거대한 몸집의 방어력을 믿고서 사정없이 돌격했다.
마치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품위 없는 돌진이었다.
리에르의 로우킥이 글러트니를 걷어찼다.
쾅!
덩치가 큰 만큼 소리도 요란했다.
쉬리릭!
그 사이 머리를 붙인 보랏빛 여성의 기다란 혀가 연기를 뿜으며 날아들었다. 마치 채찍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리에르는 옆으로 반걸음 물러선 뒤에 칼날을 내리쳤다. 열 덩어리와도 같은 혓바닥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핏방울을 사방에 뿌려댔다.
치이익!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했다. 핏방울은 마치 염산처럼 방어벽을 녹였다. 핏방울에 닿은 리에르의 옷이 연기를 피워올리며 녹아 들어갔다.
분노의 라스가 거대한 헬버드에 마력을 듬뿍 담아 휘둘렀다. 허공이 베이고, 대지가 찢겨 나가는 듯한 타격이었다.
리에르는 곧이곧대로 박지 않고 몸을 반회전하며 회피했다. 그 사이를 찌르고 들어오는 난쟁이는 양손에 긴 발톱을 생성시키며 마구잡이로 휘둘러왔다.
흑도와 맞부딪혀도 난쟁이의 손톱은 잘려 나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깊이 들어왔다.
그 사이 그물이 리에르의 발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그물을 향해 흑도를 내려찍었다.
서걱.
흑빛의 마멸음과 함께 그물망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사방에서 흰 포스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해 오고 있었다.
리즈는 핏빛 창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사방에서 쾅쾅거리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천사들은 능숙하게 방패로 공격을 막아내고 창을 찔러 들어왔다.
리즈는 천사들의 창을 언월도로 쳐내면서 밀어붙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적당히 방패로 공격을 막아 데미지를 완충시켰다.
엘도 사방으로 에너지 필드를 뿌리면서 활로를 만들고 있었다.
천사들은 방패로 막아내거나, 혹은 팔, 다리가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녀석들은 스스로의 몸에 치유 주문을 외웠다.
삽시간에 재생해 버리는 몸을 보며 엘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것을 감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놈들은 쉬지 않고 창을 찌르고 들어왔고, 이제는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도 주지 않고 있었다.
“리엘……!”
유트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엘이 걸어준 버프의 힘 덕분에 유트는 천사들에게 밀리지 않고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단 한 마리의 천사도 죽이지 못했다. 천사들은 매우 능숙하게 집단으로 전투를 걸어왔다.
방심도 없었고, 감정도 없었다. 그것들은 투명한 눈동자로 유트의 앞길을 계속 가로막으며 반격해 왔다.
덕분에 일행들의 몸에 점점 상처가 생기고, 데미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유트는 답답한 전투 현황 때문에 계속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리에르도 마찬가지로 일곱 마리의 포스들을 상대로 공격받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갖고 있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리에르는 에너지를 낭비할수록 더 빨리 소멸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 그를 돕지 않는다면 그대로 끝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티미의 눈동자가 격앙되었다.
문 리버(Moon River) 각성(覺醒).
달빛으로 이루어진 강이 리에르를 몰아붙였다. 그것은 푸른 달밤과 같은 색을 지닌 물보라를 일으키며 주변 일대를 마비시켰다.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 강림(降臨).
리에르의 붉은 눈동자에 십자가 형태의 성흔이 새겨졌다. 주변을 몰아붙이던 백색 포스들은 전부 알 수 없는 힘에 밀려났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가름하려 할 때, 리에르의 회축이 뚱땡이 포스의 턱을 걷어찼다.
제대로 얻어맞은 뚱땡이는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바닥을 구르며 먹었던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흥!”
가시가 돋친 혀가 개구리의 그것처럼 길게 늘어나서 적의 다리를 휘감는다. 하지만 어느새 리에르의 주변을 호위하듯 생성된 홀 블레이드가 번뜩였다.
다시 한번 엔비는 자신의 혀를 강제로 재단당해야만 했다.
리에르를 향해 라스와 슬로스 등등이 거의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펑!
슬로스는 리에르의 보디 블로우와 스트레이트를 얻어맞았다. 뒤이어 공격해 온 라스의 헬버드는 리에르의 흑도에 막혔다.
펑!
막는 것과 동시에 리에르의 앞차기가 라스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저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그저 한 대 맞았을 뿐인데도 라스는 땅바닥에서 몇 바퀴나 굴러갔다.
티미도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재빨리 물러섰다. 바닥에서부터 칠흑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나무처럼 잔가지를 피워 올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지워냈다.
’말도 안 되는 괴물이군.‘
티미는 이를 갈았다.
티미는 죽음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
이 세상의 유일신. 테헤라자드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받은 친위대로 다시 탄생했다.
포스. 일개의 무력으로 능히 역사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자그마치 일곱이나 있었다.
똑같은 포스인데도 한 명의 포스를 이기지 못해서 전부 다 당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이 아리아의 무구를 활용하는 리에르는 강력했다. 같은 포스들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전투를 선보였다.
리에르는 이제 더 시간을 끌 수 없었고, 끌어서도 안 됐다. 그렇기에 최대한 마력을 끌어모아서 확실한 결정타를 먹이려 했다.
그때 리에르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칠흑의 도를 머리 위쪽으로 베어내려 했다. 그 순간 시야 안에 들어오는 물건은 이상한 것이었다.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잡아 뜯긴 머리통은 목 아래로 흰 척추뼈를 매달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은 긴 금발 머리카락이었다.
그 머리카락은 핏빛에 물들었지만, 분명히 에레사의 머리카락을 연상시켰다.
회전해서 날아오는 머리통의 얼굴이 보였다.
리에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에레…….”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편안한 죽음은 아니었다.
“사…….”
리에르의 두 눈동자가 분노와 공포로 흔들렸다. 자신의 앞에 데굴데굴 굴러오는 에레사의 머리통을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굳이 아르카를 통하지 않더라도 진짜 에레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그녀를 몰라볼 리 없었다. 자신이 기억 못 할 리 없었다.
“생각보다 맛있더라.”
어느새 리에르의 귓가에 속삭이는 티미의 중얼거림.
푹.
리에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뻘건 핏물이 깊게 파인 살점 위로 솟아올랐다.
“언제까지고 네놈이 최강일 줄 알았냐?”
티미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칼라드볼그(Kaladbolg)를 더욱 깊게 쑤셔 박았다.
그것은 매끄럽게 다리를 관통하고 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황금빛의 칼날 위로 검붉은 핏물이 코팅되듯이 흘러내렸다.
극심한 고통에 리에르는 숨소리조차도 뱉지 못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백의 포스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리엘!”
유트가 부르짖었다. 그의 칼날은 이제 붉은 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숱하게 베고, 싸웠지만 친구에게 다다를 수 없었다.
옆에서 엘과 리즈가 돕고 있었지만, 천사 하나하나의 강함은 포스와 필적했다. 오히려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리즈.”
“네.”
엘과 리즈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제는 불가능한 전투였다. 천사들은 백여 마리였다. 그리고 전투를 하는 동안 천사 다섯을 죽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유트는 전신이 상처투성이였고, 당장 지혈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엘과 리즈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전투를 하다가는 밑천이 바닥나는 순간 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트가 온 힘을 다해 구하려고 하는 리에르도 이미 끝나가는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가진 생명력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무턱대고 싸웠다. 분명히 적에게 일방적이리만큼 압도적인 전투를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적들은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이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 리에르는 제압될 일만 남았다.
“테헤라자드에게 장난감 하나 받아왔다고 자랑하기는.”
리에르는 조소하면서 흑도에 마력을 듬뿍 담아 티미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티미는 코웃음을 치면서 황금의 검을 그대로 양손으로 움켜쥐며 베어냈다.
투둑!
리에르의 허벅지 바깥쪽이 깨끗하게 도려졌다. 칼라드볼그는 그대로 리에르의 다리뼈를 깔끔하게 잘라내며 외발로 만들어 주었다.
리에르의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당연히 회심의 공격은 그대로 무위로 돌아갔다. 균형 없는 검격에 맞아줄 정도로 티미는 약하지 않았다.
“크에에, 먹고 싶어어어어!”
뚱땡이 포스는 그대로 거대한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가시가 달린 혓바닥도 리에르의 남은 다리 한쪽을 돌돌 감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그대로 입술을 깨물면서 초월기를 발동했다.
칠흑으로 물든 칼날이 사방에서 번뜩거린다. 주인의 위기로 인해 듬뿍 살기를 품은 것들이 주변의 적들을 향해 어지럽게 쏟아졌다.
리에르의 초월기가 작렬하자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었다. 혈화가 높이 솟아서 피었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더운 피를 쏟아낸다.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은 지지 않는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리에르는 검을 휘두르고, 남은 마력을 쥐어짜 냈다.
색욕의 포스는 깡총거리며 검을 피하다가 세로로 내려찍어진 아르카에 베어졌다. 난쟁이는 눈을 부릅뜨면서 상황을 인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하아, 하아!
리에르의 입에서 더운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드디어 한 마리를 해치웠다. 하지만 바닥에 눕혀진 것은 자신이었다.
“리에에에엘!”
유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