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76)
레필리아 레소드-376화(376/398)
레필리아 레소드 376화
마왕의 최후(8)
푹!
리에르의 허리춤으로 찬란한 황금빛 칼날이 쇄도했다. 물풍선이 터지듯이 핏물이 튀었다.
창자가 베어진 살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리에르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그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머물던 붉은 이채도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이미 등 뒤에 넘실거리던 빛의 날개도 사그라들었다.
티미는 코웃음을 치면서 리에르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칼날이 그의 공격을 막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티미는 여유로웠다.
리에르를 막아선 유트는 정말 미친 듯이 개천, 개문도를 휘둘렀다. 은백색의 검광이 황금빛 이채를 띠고서 티미를 몰아붙였다.
“넌 날 이기지 못해.”
티미는 가소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즐거운 듯한 눈동자를 보고서 유트는 분노를 터뜨렸다.
힘이 필요했다.
유트의 힘은 분명 대륙 십웅 중 최상이었다. 아니, 순수한 검술만으로는 이미 천재의 범주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에게만 있는 진실의 눈동자는 안 그래도 강한 검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미 검의 궤도와 속도, 템포까지 미리 보이는 인물에게 검으로 이기는 것은 어려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트가 상대하는 것은 인간을 벗어난 괴물들이었다. 아무리 개미가 강해도 코끼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힘이 필요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싸울 수 있는 강력함이.
“잘 먹겠습니다!”
그때 뚱뚱한 포스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리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트는 반사적으로 뚱땡이 포스를 걷어차는 것과 동시에 목을 쳤다.
하지만 놈은 팔을 들어서 유트의 칼을 막았다. 하지만 놈의 팔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놈은 리에르의 어깨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크흑!”
유트는 다시 반격하려다가 티미의 공격을 받고는 물러섰다. 황금빛 잔영에 닿았으면 그대로 고기 조각이 될 뻔했다.
리즈와 엘도 천사들을 밀어내며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 슬슬 그들의 화력도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리에르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야……!”
유트는 이를 사리물었다. 평생토록 싸우고, 또 싸운 그 결과가 겨우 이거라면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포스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옛 친구에 대한 배려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군.”
티미는 그렇게 웃으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에레사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아름다웠던 금발 머리카락은 이제 피로 뒤엉켜서 볼링공처럼 굴러다녔다.
유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애초에 에레사의 죽음만 아니었다면 리에르가 반격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명백한 것은 자신에게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넌 무조건 내가 죽인다, 티미 아크우드.”
“X신.”
티미는 유트의 말에 폭소했다. 하지만 그때 유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티미를 비롯한 백색 포스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유트도 자신의 주변으로 강대한 기운들이 용솟음치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였다. 굉장히 포근했다. 그립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티미는 유트에게서 이상한 힘이 느껴지자 시험 삼아 칼라드볼그를 찔러보았다.
유트는 도를 들어 티미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개문도를 고쳐 잡으며 티미의 목을 찔러 들어갔다.
슥.
티미의 턱 끝이 개문도에 도려져서 혈선이 그려지며 핏방울이 맺혔다. 티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유트의 등 뒤로 빛의 깃털이 모여들었다.
[유트 페브리안 적합성 확인.] [System Setup 진행.]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이 유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All Green. Copy 완료.]칠흑으로 빚어진 듯한 암흑은 날개를 이루었다. 명백한 포식자의 탄생이었다. 어느새 칠흑의 검, 아르카는 유트의 등 뒤에 달라붙어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갖가지 빛이 유트의 전신에 달라붙으며 움직였다.
“무슨 수작이야!”
티미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분노하며 칼라드볼그를 종으로 그어 내렸다.
황금빛 잔영이 허공을 베어 버리며 유트의 허리춤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유트의 개문도가 진로를 가로막았다. 그와 동시에 개천도가 티미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은백색의 검광이 닥쳐오자 티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목은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핏물을 왈칵 토해냈다.
티미는 허공에서 추락하는 자신의 손목을 보고 동공을 확장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백색 포스들이 달려들었다. 이미 죽은 난쟁이를 제외한 전원이었다.
대장로 헬이 불꽃의 구체를 여러 개 소환해서 일격에 쏘아냈다. 유트는 바닥에서 튕기듯이 움직이며 가볍게 공격을 회피했다.
“재수 없는 검은 날개!”
분노의 라스는 칠흑의 날개를 보면 화를 참아내지 못했다. 자신을 최초로 절망하게 했던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더 검은 날개를 증오하게 되었다. 유트는 그대로 라스에게 돌진하여 마치 사과 깎듯이 도려내 버렸다.
창을 찔러 들어갔던 라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성의 섬광이 유트의 쌍도에 머물러 있었다.
발락시아의 섬광에 베인 라스는 그대로 몸이 조각조각 나서 허물어졌다. 글러트니는 흑색 화살처럼 쏘아지는 유트를 보며 거대한 입을 벌리며 막아섰다.
룬 위시 발동!
황금빛 나선 포가 글러트니를 향해 날아들었다. 글러트니는 도끼눈을 뜨고 모든 마력을 흡입했다.
이내 잘 먹었다는 듯이 트림을 하는 글러트니를 향해 니킥이 날아왔다. 글러트니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일격을 허용했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글러트니는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의 콧잔등이 일그러지고 톱니 같은 이빨 몇 개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유트는 글러트니를 무시하고서 리에르를 품에 안았다. 형편없이 찢겨 나간 옷가지 안으로 베여 나간 살점들이 보였다.
리에르의 양팔은 이미 백색의 포스들에게 씹어 먹힌 상태였다. 형편없이 짓뭉개진 상처 부위에서 끝도 없이 핏물이 새어 나왔다.
아니, 이미 리에르의 몸은 빠르게 부패하고 있었다.
아르카의 생명 유지 시스템으로 버티고 있던 육신이었다. 아르카가 리에르에게서 유트로 옮겨진 이상, 신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리엘……!”
다시 입을 열어 불러보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금발 머리카락의 젊은 남성이 기함을 지르며 오른팔을 뻗어 보였다. 그의 오른팔은 빠르게 변화하며 흉측한 괴물 뱀의 형상으로 쏘아졌다.
유트는 눈물을 토해내며 황금색 눈동자를 열어 보였다.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팔. 리에르의 팔을 씹어 먹은 그 기술이었다.
유트는 개천도를 들어 올렸다.
성검 발락시아(Ballacksia) 개방(開放).
성스러운 백 푸른 섬광이 개천도에 맺혔다. 유트는 그것을 그대로 세로로 그어 내렸다.
거대한 빛의 칼날이 그대로 프라이드를 향해 베어 들어갔다.
프라이드는 다급하게 회피했지만, 그의 몸은 절반으로 도려져 나갔다.
유트는 그대로 리에르를 안고서 엘에게 향했다. 강력한 회복 마법을 가진 그라면 리에르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몰랐다.
“어딜!”
티미의 황금빛 칼날이 옆에서 찔러 들어왔다. 유트의 등 뒤로 룬 위시의 나선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덕분에 티미는 오히려 방어 자세를 갖추며 뒤로 밀려났다.
“유트 군!”
리즈는 유트를 향해 쏟아지는 천사들을 향해 핏빛 창을 수백 가닥을 뽑아서 뿌려냈다.
견제를 당한 천사들은 공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 엘은 유트의 옆에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밝은 백색의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졌다. 그것을 본 대장로 헬이 노성을 지르며 불꽃의 구체를 다발로 쏟아냈다.
펑, 퍼펑!
불꽃은 허망하게 격추되어 허공에서 산화되었다. 오히려 리즈는 사방으로 붉은 창으로 만들어진 방진을 생성해 냈다.
점차 백색의 섬광이 강해졌다. 그 섬광이 연하게 사라질 즈음에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텔레포트.
백의 포스들과 천사들은 먹잇감을 놓친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을 것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자그마치 15만이나 되는 먹잇감들이 무방비하게 서 있었다.
“운이 좋았구나, 유트.”
티미는 낄낄거리면서 아군의 상황을 확인했다.
천사가 자그마치 일곱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포스 오브 러스트와 포스 오브 라스가 사망했다.
“자, 우리의 동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티미는 전투하느라 고생한 4명의 동지와 93마리의 천사들을 돌아보았다.
티미는 선택받았다. 이 세상의 유일신인 테헤라자드에게.
처음엔 황실 파티장에서 리에르에게 죽음을 맞이할 때, 도와주지 않은 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지금 티미는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기분이 좋았다. 세상은 이렇게나 유쾌한 곳이었다.
“자, 진화를 위한 포식을 하자!”
티미의 말에 백색의 포스들과 천사들이 이를 드러내며 바닥에 널브러진 고깃덩어리들을 서로 경쟁하듯이 흡입했다.
리에르의 잘려 나간 양팔과 다리 한 짝은 서로 뺏길세라 한 점씩 뜯겨 나갔다.
“첫 전투로 나쁘지 않아. 다음엔 더 힘들어질 거다, 유트 페브리안.”
티미의 입이 귀 끝까지 미소를 그렸다. 진화하는 괴물들. 경험치가 쌓이는 만큼 강력해지는 존재들.
티미는 이미 죽은 포스 오브 라스와 포스 오브 러스트를 물어뜯었다.
“러스트는 난쟁이라 고기가 적어 아쉽군.”
그의 말에 다른 포스들도 낄낄거리며 웃었다.
* * *
“리엘……!”
유트는 리에르의 몸을 흔들었다. 엘의 긴급 텔레포트 덕분에 그들은 겨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빅스터에게는 군의 지휘를 부탁했습니다만, 곧바로 천사들의 공격이 시작되어 피해를 본 듯하군요.”
리즈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대승으로 끝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끼어든 신의 장난으로 인해서 상황이 달라졌다.
“천사는 테헤라자드의 인형 중 최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살육을 경험하는 만큼 레벨이 상승합니다. 조금 전에 만난 것들은 레벨 1이었습니다.”
엘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받았다. 빅스터나 다른 영웅들이 있으니 최소한의 피해로 끝냈을 것은 분명했다. 다만 천사들이 흡수한 고기는 그대로 적의 전력 상승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유트는 리에르를 들판에 눕혀놓고서 내려다보았다. 다행히도 리에르의 눈동자가 천천히 열렸다.
“정신이 들어?”
유트는 다행스러운 듯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리에르는 말을 하지 못하고,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내어 보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죽음이 만연했다.
리에르는 유트의 눈동자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친구의 뒤로 엘과 리즈가 보였다.
엘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수나 다름없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순수하게 리에르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었다.
“엘, 치료를!”
유트는 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냥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엘의 모습이 답답한 듯했다. 하지만 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었다. 리에르를 치료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 치료를 한다 하여도 의미는 없었다. 그것은 이미 시체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