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78)
레필리아 레소드-378화(378/398)
레필리아 레소드 378화
절망 속으로(1)
대륙의 전쟁은 끝났다.
연합은 교단을 이겼고, 신성 왕국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애초에 기존 코스모스의 장로들이 없기에 구심점이 약한 상태였다.
승리의 기쁨에 취하는 것은 아주 잠시였다. 이제 분명히 평화로운 나날이 다가오리란 것을 누구 하나 의심치 않았다.
물론 아직은 전국시대였기에 영토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누구 하나 예상하지 못했다.
연합군은 람세스 성에서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곧바로 하늘에서 날아오는 이상한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들은 거대한 새와도 같았다. 순수한 백색 결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흰 날개 깃털을 흩날리며 나타난 천사들을 보고서 사람들은 멍해져 있었다. 마치 신화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백여 마리의 천사들이 기도하듯이 합장을 한 채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들을 보고서 누구 하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명이 터졌다.
천사들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입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거대한 입을 벌리며 톱니 같은 이를 드러냈다.
퍼석!
마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기라도 하듯이 한 병사의 머리통이 삼켜졌다. 피보라가 일어났다.
사방에서 천사들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서 무차별적으로 포식을 시작했다.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몇몇 병사는 공포로 인해 반사적으로 창을 뻗었다.
하지만 의미는 없었다.
창은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자신을 향해 창을 찔러온 병사를 천사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네 발을 사용해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덮쳐든 천사에게 병사는 머리를 내어주었다.
아사삭.
단단한 뼈와 부드러운 뇌수를 음미하며 천사는 포식을 했다. 사방이 유혈로 물들었다.
천사는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내장하나 남기지 않고 후루룩 삼켜버렸다.
“집중 공격하라!”
개중에 몇몇 지휘관들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명령했다. 그 지휘관에 그 병사였다.
그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달려드는 흰색의 괴물을 향해 일시에 활시위를 놓았다.
후두둑!
쏟아지는 화살 비를 보고도 천사는 마구 달려왔다. 이번에는 화살 몇 개가 천사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천사가 이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병사들의 진형을 향해 점프한 천사는 마구잡이로 물어 뜯어댔다.
“후퇴, 후퇴하라!”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를 상대로 계속 전투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녀석들의 식사는 어찌나 빠른지 성인 남성 한 명이 1분도 되지 않아 믹서기처럼 갈려서 잡아먹혔다.
당장의 죽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전쟁에서는 이보다 많은 수가 초마다 죽어간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괴물이 마구잡이로 사람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공포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병사들은 대번에 사기를 잃고서 마구잡이로 진형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엄한 군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일방적인 전투였다.
칼도, 창도 통하지 않는 상대가 계속해서 돌진해 온다. 나오는 것은 오로지 이쪽의 희생뿐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연합군은 각자의 방향대로 일단은 후퇴하여 물러나기로 했다.
* * *
같은 시각, 대륙의 각지에선 람세스 성에서 벌어지는 살육과는 또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이, 이게 뭐야……!”
한 어부는 주변이 온통 붉은 것을 보고서 자신의 눈을 비볐다.
물고기 포획을 위해서 부두에서 멀리 나왔다가 피곤함에 잠시 눈을 붙였었다. 음산한 기운에 눈을 열어보니 주변이 온통 붉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그는 사방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뱃사람으로 지낸 지 수십여 년이었지만,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보았다.
그 순간 어부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기 전에 분명히 맑게 개어 있던 하늘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칠흑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시커먼 구름 사이로 보이는 것은 붉은 달의 그림자였다.
어부는 불길함을 느끼고 노를 잡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집으로 향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이상한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자신의 어망에 있는 물고기들이 무언가 이상했다. 물고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어부는 자신이 저런 것을 낚은 기억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망 안에 있는 것들은 전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어였다. 그것들의 무심한 얼굴에 왠지 모를 공포를 느꼈다.
그 순간 눈앞이 시커메졌다. 무언가 하나가 탁, 튀어 올라서 콧잔등을 깨물었다.
녹슨 톱으로 코를 잡고 자른다는 느낌이었다. 어부는 비명을 질렀다. 손을 들어 자신의 코를 물고 있는 생명체를 잡아 뜯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미끈거리는 비늘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쥐기도 힘들었다.
‘물고기.’
어부는 자신을 물고 있는 것이 인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인면어들이 코를 시작으로 자신의 팔과 목을 물어뜯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살점을 음미하는 물고기들의 시선을 느끼며 어부는 축 늘어졌다.
지금 이 순간, 대륙에는 온갖 이변들이 발생했다.
거꾸로 자라나는 숲이 생겼다. 그리고 곳곳에서는 이미 죽은 정령들이 나타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정령들은 산 자의 정기를 먹기 위해, 혹은 몸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륙에 있는 모든 숲은 진화하기 시작했다.
검은 숲.
일찍이 드래곤의 가호 아래 번성하던 죽음의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존재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륙에 있는 모든 숲이 검은 숲으로 바뀌며 생태계의 조건도 뒤바뀌었다.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멋대로 베어버리고, 멋대로 자신들의 공간을 빼앗은 인류에 대한 적의를 바짝 세웠다.
도시들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진격해 오는 검은 숲에 대해 제대로 대비도 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마치 삼자갈나무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열매를 뱉어냈다.
열매들은 기다란 거미의 발 같은 것을 여섯 개 꺼내놓고서 마구잡이로 인육을 찾아다녔다.
트리글로다이트들도 이 순간 숲과 함께 창을 움켜쥐며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들을 쓰러뜨렸다.
대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 따위는 없다는 듯이.
* * *
유트 일행은 곧바로 빅스터와 합류했다. 이들도 람세스 성에서 천사들의 공격으로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아로운 킴의 파천대 덕분에 천사의 추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애초에 아로운은 포스를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는 리에르 아르빈트를 잡기 위해 준비된 화살들을 천사에게 썼다.
그 마법 화살은 천사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오히려 천사를 잡기까지 한 파천대는 쾌거를 이뤘다 할 수 있었다.
다만 화살의 숫자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고 제작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극소수만 생산되었던 제품이었다.
“람세스 성뿐이 아니라 전 대륙에 괴물들이 출몰하고 있다 하는군요. 그동안 잘 보이지도 않던 몬스터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각 도시와 마을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저희 페리안도 마찬가지의 일을 겪고 있고요.”
마치 누군가가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터지고 있었다.
빅스터 나이브만은 자신에게 날아온 장계들을 다시 말아 넣었다.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마치 당장에라도 세상이 망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다른 연합의 군대는 자국으로 돌아간 건가요?”
“그렇습니다.”
유트의 말에 빅스터가 대답했다. 그는 유트의 분위기가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빅스터는 검 하나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문인이었다. 그런 문인인 빅스터의 눈으로 보아도 유트의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마력이 없는 이들도 눈치챌 지경이었다.
“빅스터는 저희 정예들을 끌고 페리안에서 방어를 서둘러주세요.”
“베리타스께서는 같이 가지 않으시겠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빅스터는 유트의 입에서 무언가 폭탄선언이 나올 것 같아서 불안해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저와 리즈, 그리고 엘은 페이서스로 향할 겁니다.”
농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있지 않은 도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베리타스께서 계셔주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빅스터에게 부탁드리는 거예요.”
유트는 자신이 없어도 빅스터가 충분히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단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 지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었다.
“왜 가시는지 물어보는 것은 안 됩니까?”
“이 모든 비극을 끝내기 위해 갑니다.”
유트의 말에 빅스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치기 어린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지만 빅스터의 입장에서는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상황이어도, 그 어떤 말이어도 자신이 따르는 주군의 명령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집 지키기라면.”
“인간들과의 싸움이라면 빅스터가 최고지만, 저쪽은 인간이 아니니까요.”
군대와 군대의 전쟁 따위가 아니었다. 상대는 상상도 하지 못할 괴물들로 가득할 터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정예라도 차출해서 가시지요. 왕의 옆에 최강의 전사들이 있다 해도 군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법입니다.”
“그 부분은 부탁드릴게요, 빅스터.”
유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적인 전투는 두 명의 포스와 자신이 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최소한의 정예들이 필요했다. 그들 이외에도 다른 몬스터들이 나타난다면 지원을 해줄 기사들이 있어야 했다.
“아무리 아렌과 혈맹국이 되었지만, 페리안의 왕이 국경을 침범한다면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도 부탁드릴게요.”
유트의 말에 빅스터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픈 일들은 전부 자신에게 미루는 왕이었다. 그런데도 짜증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트는 자기 일을 타인에게 미루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빅스터에게 가볍게 넘기는 것은 충분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저씨도 간다.”
한쪽 구석에서 흡연하고 있던 거무튀튀한 남성이 입을 열었다.
아로운 킴. 대륙 최강의 활잡이였다.
“지금 페리안이 위험합니다. 당신의 힘이 더 필요할 거예요.”
“네놈이 더 위험해 보여.”
리즈의 말에 아로운이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했다.
“제가요? 저를 뭐로 보시는 걸까요?”
리즈는 샐쭉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붉은 입술을 연지 바르듯이 검지로 문질렀다.
“역사상으로는 최악의 악인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멘탈 약해서 징징거리는 애송이지 뭐야.”
“…….”
리즈에 대한 아로운의 평가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엘이 큭, 웃음을 터뜨렸다. 유트도 지금까지 굳어져 있던 얼굴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로운 님. 제 나이가 몇인 줄 아시나요?”
리즈는 자신을 애송이 취급하는 아로운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거기에 털도 제대로 안 난 놈이 나이는 뭣 하러 따져.”
“어?”
아로운의 말에 빅스터가 깜짝 놀라서 리즈를 바라봤다. 리즈는 차가운 눈길로 빅스터를 쏘아보았다.
“아닙니다.”
“아, 네……. 흠흠.”